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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깨기 두려워 말고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해라”

하정민 | 37호 (2009년 7월 Issue 2)
키 퍼슨(Key Person) 보험’이 있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나 스포츠 선수들이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드는 보험이다. 신체가 가장 중요한 재산인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이런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에게도 이런 보험이 필요할까? 한국에서도 키 퍼슨 보험에 가입한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바로 송명림 파맥스 오길비 헬스월드 대표다. 1997년 헬스케어 전문 마케팅&리서치 업체 파맥스를 설립한 송명림 대표는, 2007년 파맥스를 다국적 광고회사인 오길비&매더 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오길비는 2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인수 후 최소 5년간 파맥스 오길비 헬스월드의 경영을 송 대표가 계속 맡아야 하며, 그녀의 업무 능력과 관련해 100만 달러 이상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제약업계 마케팅 분야의 베테랑인 송 대표의 능력을 믿고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그녀의 신상 변화에 대한 위험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만큼 송명림 대표의 능력을 믿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송 대표가 걸어온 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전지대 탈출’이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그녀는 대학 졸업 직후 결혼했다. 약사이자 교수 부인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깨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도약할 수 있다”는 송 대표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제약 마케팅 분야에 몸담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저도 부모님의 권유로 약대에 갔
습니다. 하지만 약국 개업이나 병원 및 제약회사 근무라는 천편일률적인 약사의 직능이 전혀 제 가슴을 뛰게 하지 못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4학년 때 약사 시험 준비와 대학원 준비를 병행했습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아이디어는 결국 틀을 깨는 과정에서 나오잖아요. 남들이 다 옳다는 걸 부정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 행복했던 거죠. 대학원 졸업 후에는 남편이 있는 캔자스대로 가서 사진 전공으로 예술사(art history)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일만 계속한 셈이죠.(웃음) 부모님과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안전지대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습니다.
 
졸업 후 계속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파 1년 정도 쉬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미국 약사 시험에 응시하려 했는데, 그 와중에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1992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IMS 데이터라는 헬스케어 전문 리서치 업체에 입사하면서 이 분야에 발을 들였습니다. IMS와 다국적 제약회사 MSD를 거쳐 1997년 파맥스를 설립했습니다.”
 
의사, 약사들을 상대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의사, 약사, 간호사,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 저희가 상대하는 분들이 다 전문직이다 보니, 확실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힘이 듭니다. 의사들의 일상이 무척 고되잖아요. 쉴 틈 없이 바쁜 의사들을 붙잡고 저희 얘기를 하다 보면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많아요. 저도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속으로 울컥할 때도 있었고 ‘나도 배울 만큼 배웠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저의 궁극적인 고객은 제 눈앞에서 저를 무시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잖아요. ‘내 일은 기업의 영리만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공공의 건강이라는 사회 공헌의 성격도 크다’고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제게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는 일단 수긍하는 게 최선책입니다. ‘화가 많이 나셨네요. 저번에 다른 회사의 직원이 약속도 없이 들이닥쳐 인터뷰를 요구했다고요? 제가 한 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화가 나실 만하네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이러면, 그분들도 ‘사실 내가 요즘 좀 힘들었다.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냈다’고 미안해하면서 더 잘해줬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그런 문전박대를 당하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 경험을 들려줍니다. MSD에 근무할 때, 한국에서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관심이 막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담당하면서 여의도 성모병원에 계신 의사와 얘기를 했는데, 그분이 알려주신 내용이 친정아버지의 증상과 비슷하더군요. 깜짝 놀라 아버지를 병원에 모셨더니 그 병이 맞았어요. 미국에서는 성인 남자의 사망 요인 중 전립선 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아버지는 수술 후 10년을 더 사셨어요.
 
제가 그 일을 안 했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겠어요. 저는 미 항공우주국(NASA) 바닥을 걸레로 닦는 사람도 우주선 발사에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일도 공공 건강에 기여하는 거고요. 그 자부심으로 지금껏 버텨왔죠.”

요즘 젊은 세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저희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 사회나 부모가 요구하는 걸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으니까요.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도전 정신 자체는 예전보다 부족하다는 겁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 그걸 밀고 나가는 힘도 커져야 하는데, 주관은 커졌지만 밀고 나가는 힘은 훨씬 작아졌거든요.
 
제 이력이 독특하다 보니 약대나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할 때가 많아요. 함께 약대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약국을 개업했거나 전업 주부로 살고 있거든요. 저는 ‘약사 자격증,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자격증이 보험이 될 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약사는 취업하기 매우 쉽습니다. 초봉도 굉장히 높죠. 문제는 거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먼저 하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누구나 좋다고 하는 길은 사실 가장 위험한 길입니다.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이렇게 휘청댈지 누가 알았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 아이비리그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으려고 버둥대죠. 등대 불빛은 오른쪽에 있는데, 어두운 바다에서 배들이 왼쪽으로만 모여들어 서로 부딪치는 꼴과 비슷합니다.
 
강연할 때마다 ‘사회의 불확실성은 점점 커져가는데 알량한 자격증만 믿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지금이라도 당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강조합니다. 안전지대를 조금만 벗어나면 훨씬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데, 벗어나는 게 두려워 점프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각자 경제적 독립을 해야 부부도 서로에게 당당할 수 있어요.”
 
대부분 기업에서 중간 간부 이상 여성 관리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리더 한 명을 키우려면 적어도 20년이 걸립니다. 20년 전에는 초기 단계에도 여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단 관리자 반열에 오를 풀 자체가 부족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여성 특유의 완벽주의입니다. 이게 의외로 여성의 성장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칩니다.
 
직급이 낮을 때는 완벽주의가 업무 성과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저도 남 못지않은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관리자가 되고 보니, 그런 태도가 제 개인은 물론 회사 전체의 성과를 저해한다는 점을 금방 깨닫겠더군요. 완벽주의는 곧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직원들도 그 점을 금방 눈치챕니다. ‘어차피 내가 해봐야 위에서 또 고칠 텐데 무엇 때문에 열심히 일해’라는 태도로 나오죠.
 
제가 좋아하는 격언이 있습니다. ‘나보다 그릇이 작은 사람만 쓰면 난쟁이 왕국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직원을 뽑을 때 항상 제가 존경할 점을 가진 사람을 뽑습니다. 말(馬)로 표현하면, 보통 말이 아니라 적토마나 준마가 넘쳐나는 조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저도 그 사람들에게 배우고, 우리 회사도 더 클 수 있으니까요.”
 
잘나가는 여성에게는 ‘누가 뒤에서 봐준다더라’는 식의 구설수가 따라다니곤 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왜 여기 남아야 해’라며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합니다. 최악의 선택이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당당히 맞서는 게 중요합니다. 퇴직이나 이직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현실과 맞부딪치는 게 아니라 도피입니다. 문제와 맞서본 다음에 회사를 그만둬도 그만둬야죠.
 
개인적인 문제로 회사 생활의 어려움에 부딪힌 많은 여성들이 혼자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태도부터 버려야 합니다. 절대 숨기지 말고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세요. 본인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고민을 얘기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큰 도움을 줍니다.
 
저도 사회생활 하면서 뜻하지 않은 분들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한번은 ‘왜 저를 도와주십니까’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이 ‘당신이 너무 절실하게 찾아다니니까’라고 답하시더군요. 제가 국내외 기업 여성 임원들의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으로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후배에게 조언해주는 자체가 큰 기쁨입니다.”
 
똑같이 화를 내도 남성 리더가 화내면 카리스마 있다고 하는데, 여성은 히스테리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남녀 구분 없이 리더는 일단 화를 내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게 직원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회사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을 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를 시정해야죠. 문제는 자신의 감정 조절에 실패해 직원에게 인신공격을 하거나, 근태 문제를 지나치게 물고 늘어질 때입니다. 이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곤 합니다.
 
저는 제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끼면 일단 사무실을 나갑니다. 밖에 나가 잠시 전시회를 보고 오거나,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죠. 정말 힘들 때는 혼자 일주일 정도 여행을 가요. 완전히 혼자인 채로 지내다 오면 저절로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입니다. 떠날 때는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원망스럽다가도, 돌아올 때는 ‘결국 그 사람 덕에 여행까지 했네’라고 고마워하게 됩니다.” 

일하는 엄마로서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계시나요.
교수님 한 분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3가지 원칙을 들려줬습니다. 첫째는 ‘남편을 최대한 활용하라’입니다. 캔자스대로 유학 갔을 때부터 남편과 집안일을 딱 절반으로 나눴습니다. 제가 처음 B 학점을 받아왔을 때 처음으로 부부 싸움을 했어요. 남편이 ‘당신의 공부를 위해 집안일을 똑같이 분담하는데 왜 B를 받아오느냐. 내가 밖에서 벌어오는 돈에 B라는 성적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사실 남편의 말이 맞죠. 남편과 일을 정확히 나누되, 제가 할 몫은 철저히 해내야 합니다.
 
둘째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돈으로 해결하라’, 셋째는 ‘가족의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가족과 함께하라’입니다. 이 말은 돈으로 할 수 없는 일, 즉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가족이 슬플 때 옆에서 어깨를 빌려주는 일은 직접 하되, 나머지 일은 돈으로 처리하라는 거죠.
 
저는 엄마가 일을 하는 게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가족 관계가 건강해져요. 저희 어머니는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나오셨지만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고 사셨거든요. 그래서 저를 약대에 보내셨구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았어요.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 엄마는 자신의 욕구를 자식에게 투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엄마와 자식 모두 불행해지죠. 자녀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엄마야말로 가장 행복한 엄마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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