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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 임금도 쇼를 했다, 인재를 얻으려고…

김영수 | 37호 (2009년 7월 Issue 2)
3년을 기다리다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왕조인 상(商, 사기에는 은[殷]으로 기록돼 있음)은 약 550년 동안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약 30명의 제왕들이 부침을 거듭했다. 상 왕조는 제20대 제왕인 반경(盤庚) 때 은(殷)으로 도읍을 옮기는 등 국정 전반에 변화를 줘 쇠약해가던 나라의 기운을 되살리고, 중흥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반경의 뒤를 이은 소신(小辛)과 소을(小乙)의 재위 시절에는 다시 국력이 쇠퇴했다. 그래서 죽은 반경을 그리워하는 노래까지 지어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침체된 분위기에서 소을의 뒤를 이어 즉위한 임금이 무정(武丁)이었다. 무정은 왕조의 부흥에 강력한 의욕을 보였다. 국정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무정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몰락한 왕족 출신이라, 즉위하자마자 전권을 휘두르며 개혁에 나설 정치적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무정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궁정이 아닌 민간에서 생활했다. 소을이 죽은 뒤 마땅한 왕위 계승자가 없어 신하들이 수소문한 끝에 몰락한 왕족이었던 그를 찾아내 즉위시켰다. 그러니 무정에게는 왕실 내 정치적 기반은 물론, 궁중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측근도 전무했다. 무정은 무려 3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기존 총재(재상)에게 정치를 맡기고,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국정 전반을 유심히 관찰했다.
 
쇼’를 하다
3년을 기다린 끝에 무정은 실질적인 리더로서 기지개를 켜
며 처음으로 공식 무대에 나섰다. 그런데 이 데뷔 무대에서 그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한바탕 ‘쇼’를 벌였다. 어느 날 대신들과 연회를 베풀던 무정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깨어나질 않았다. 신하들은 어쩔 줄 몰랐다. 의원을 부르고, 복사(卜師·점을 치는 사람으로 제사장과 비슷함)를 데려와 굿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무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신하들은 후계자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분위기가 여간 뒤숭숭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기적과도 같이 무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신들을 불렀다. 그리고 난데없이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누워 있는 동안 하늘에 올라가 천제를 만났다. 천제께서는 나더러 온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리되, 지난날의 법이나 습속에 매이지 말고 유능한 인재를 기용해 나라를 부흥시키라 하셨다. 그리고 ‘열(說)’이라는 이름의 현명하고 유능한 노예를 내게 주신다고 했다. 그대들은 얼른 사방으로 흩어져 변방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있는 열을 찾아라.”
 
당시 사람들은 천명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사흘 만에 깨어난 무정이 신탁을 받고 돌아왔다고 믿었다. 더욱이 무정은 화공을 불러 열이라는 자의 모습까지 상세히 설명하며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는 그것을 들고 다니며 열을 찾게 했다. 그러니 대신들은 더욱더 무정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무정의 명령, 아니 천제의 신탁을 받은 신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부험(傅險·지금의 산시성 평륙현 동쪽으로 추정됨)에서 마침내 열이라는 이름의 노예를 찾아냈다. 부험 일대에서 성을 쌓고 있던 그의 이름은 물론, 얼굴 생김새도 무정이 말한 그대로였다. 무정의 신통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한 대신들은 열을 극진히 모셔왔다. 무정은 바로 이 사람이라며 그를 재상에 임명해 국정을 이끌게 했다. 그리고 부험이라는 곳에서 열을 찾았다 하여 ‘부열’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정치가 조기의 충고
부열을 재상으로 맞아들인 상 왕조는 크게 발전했고, 무정은 상 왕조를 중흥시킨 공을 인정받아 훗날 상나라 왕으로는 드물게 ‘고종(高宗)’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울러 그는 주변의 충고에 늘 귀를 열고 있던 리더였다. 무정이 시조인 탕 임금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 날, 꿩이 세발솥 손잡이에 앉아 우는 모습을 보고는 불길하게 여겼다. 이에 대신 조기(祖己)는 다음과 같이 무정에게 충고했다.
 
하늘이 인간을 감시하고 살필 때는 인간의 도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늘이 내린 수명에 길고 짧음은 있으나, 하늘이 인간을 요절케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수명을 단축할 뿐입니다. 어떤 인간은 도덕을 무시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를 어쩌나’ 하고 한탄합니다. 오, 임금이시여! 임금께서 백성을 위해 힘껏 일하는 게 하늘의 뜻을 잇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잘못된 방법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조기의 충고에 무정이 한층 더 분발해 정치를 바로잡고 은혜와 덕을 베푸니 천하 백성이 모두 기뻐했고, 상나라는 중흥의 기운으로 흘러넘쳤다.

인재 기용으로 리더십 완성
중흥기의 리더십과 관련해 무정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직이 침체기나 쇠퇴기로 접어들 때, 많은 리더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나 단기간에 조직을 완전히 뜯어고치려 한다. 그러나 대개 두 방법 모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나라도 그렇듯 조직이나 기업 경영에도 큰 흐름, 즉 ‘대세’라는 것이 있다.대세를 거스르기는 매우 어렵다. 이럴 때 리더는 자신을 도와 조직을 추스르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
 
무정이 부열을 발탁한 과정은 얼핏 황당무계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사실 무정은 젊은 날 민간에서 생활할 때부터 부열을 알고 있었으며, 그의 능력과 인품을 존경했다. 그래서 왕이 되자 바로 부열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부열이 노예 신분이라는 게 문제였다. 여기에 조정 내에서 기득권을 가진 대신들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까지 겹쳐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데려올 수 없다고 판단한 끝에 무정은 ‘쇼’를 벌였고, 대신들은 신탁에 따라 자발적으로 부열을 모셔왔다.
 
리더는 유능한 인재를 찾을 때 출신이나 배경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또 주위의 편견과 반대가 예상된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직원들을 설득해 모두가 포용할 수 있게 한 뒤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올바르고 제대로 된 인재를 기용함으로써 완성된다.
 
조직과 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면 리더가 마다할 일이 없다. 심지어 ‘쇼’라도 해야 한다. 아울러 리더의 몸과 마음은 리더의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조직원과 국민들이 그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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