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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 전 펼쳐진 리더십 대토론

김영수 | 27호 (2009년 2월 Issue 2)
중국 전설시대의 이상적 통치자로 꼽히는 순(舜) 임금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닌 덕과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선양(禪讓)’을 통해 요(堯) 임금으로부터 천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홀아비이자 민간에서 발탁된 순 임금은 오랜 시간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훈련을 거친 끝에 추대되었다.
 
제위에 오른 순은 요 임금 때 기용됐지만 적당한 업무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던 기라성 같은 인재들에게 각자의 특기에 맞는 업무를 분배했다. 또 자신의 집무실 문을 모두 개방해 민심과 여론을 수렴하는 열린 통치를 실천에 옮겼다. ‘사기’의 첫 권 ‘오제본기’에 따르면 당시 순 임금이 업무를 분장한 인재가 22명이었다. 특히 용(龍)이란 인재를 여론을 수렴하는 ‘납언(納言)’에 임명하면서 “용! 나는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말과 세상 이치를 파괴하는 행위를 싫어하오. 그런 언행은 내 백성들을 동요시키기 때문이오. 내 그대를 납언에 임명하니 밤낮으로 나의 명령을 전달하고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여 내가 오로지 신의(信義)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오”라고 했다. 소통의 리더십과 민심을 수렴하는 행위는 곧 리더의 신의와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런데 통치 후반기에 접어든 순 임금은 후계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순을 보좌하면서 큰 실적을 낸 인재로는 아버지 곤의 뒤를 이어 치수사업을 맡아 전국적으로 명성을 쌓은 우(禹)를 비롯해 법을 담당한 고요(皐陶), 제사를 담당한 백이(伯夷) 등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이 잠재적 후계자였다. 순 역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리더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순은 몇 차례 조정 회의를 열어 리더십과 후계 문제에 대한 대토론을 시도했다. 사기 권2 ‘하본기’에 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리더십 대토론
4000년 전의 이 흥미로운 리더십 대토론에 참여한 사람은 당시 최고 리더인 순 임금을 비롯해 우와 고요, 백이 등 네 사람이었다.(하본기 기록에 따르면 네 사람 외에 음악 연주를 담당한 기()가 더 있었지만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백이의 발언도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제로 토론을 벌인 사람은 순·우·고요 세 사람인 셈이다)
 
먼저 고요는 “리더가 진심으로 도덕에 따라 일에 임하면 계획한 일이 분명해지고 보필하는 사람들은 화합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고요가 지적한 ‘도덕(道德)’은 ‘덕정(德政)을 펼친다’는 뜻이다. 순이 그 방법을 묻자 고요는 리더의 자기수양을 강조하며 “가까운 곳은 물론 먼 곳까지 잘 다스릴 수 있느냐 여부는 모두 (리더)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사람을 알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 있다”는 감탄조로 자신의 심경을 마무리했다. 고요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을 꼽았다. 사실 이 두 개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람을 알아야 백성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어 발언에 나선 사람은 우였다. 그는 먼저 지인과 안민은 성군인 요(堯) 임금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라며 고요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백성들이 우러러보며 따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고요는 좀 더 구체적으로 리더가 일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9가지 덕행, 즉 ‘9덕(九德)’의 리더십을 설명했다. 고요가 제기한 9덕의 리더십은 리더의 다양한 스타일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리더십 이론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자세히 검토하려 한다)
 
고요의 9덕론이 제시되자 순 임금은 우에게도 고견을 물었다. 이에 우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매일 부지런히 일할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말로 발을 빼려 했다. 그러자 고요는 도대체 부지런히 일할 것만 생각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며 우를 압박하고 나섰다. 여기서부터 대토론회는 거친 논쟁으로 발전한다.
 
토론의 여운
고요의 힐난에 우는 자신의 치수사업 경험을 회고하면서 오로지 백성들만을 위해 애쓴 점을 이야기했다. 그제야 고요는 그것이 바로 리더의 미덕이라며 수긍했다.
 
이어 우는 순 임금에게 훌륭한 신하들이 보필하는 큰 복이 있다며 축하했고, 순 임금은 모두가 자신의 팔다리와 같은 신하인 ‘고굉지신(股肱之臣)’이라며 이들을 칭찬했다. 순 임금은 “나에게 치우친 점이 있으면 그대들이 나를 바로잡아 주어야 하오. 보는 앞에서는 아첨하다가 뒤돌아서서 비방해서는 안 될 것이오”라고 당부했다.
 
순 임금은 자신의 아들인 단주(丹朱)는 교만하고 방종하며 주색잡기 등 놀기를 좋아해서 후계자로서 자격이 없음을 선언했다. 그러자 우는 치수사업을 위해 결혼한 지 4일 만에 집을 떠나는 바람에 자신은 태어난 아들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어려움을 피력했다.
 
순 임금은 우의 공로 덕분에 자신의 덕행이 빛난다며 우를 칭찬하고 고요에게 백성들에게 우를 본받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우를 사실상 순 임금의 후계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토론이 마무리되려 했다.

대토론의 분위기는 기의 축하 음악 연주로 절정에 이르렀다. 기분이 좋아진 순 임금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대신들이 기꺼이 일하면 천자도 분발하게 되고, 모든 관리가 기쁘게 화합하리라”고 했다. 순 임금의 멘트로 토론회는 끝이 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때 고요가 나서 큰소리로 “유념하소서! 신하와 백성을 통솔하고 나라 일을 크게 일으키시되 신중히 법도를 준수하여 삼가 공경하십시오”라고 외친다.
 
그리고 노래 가사를 바꿔 “천자가 영명하면 대신들도 현명해져 모든 일이 평안해지리”라며 순 임금의 마무리 멘트에 토를 달고 나섰다. 고요는 계속해서 “천자가 자잘하여 큰 뜻이 없으면 대신들도 게을러져 만사가 엉망이 되리다”며 장내 분위기를 일순간 썰렁하게 만들었다. 이에 순 임금은 고요를 향해 답례하며 “그렇소! 지금부터 모두 성실하게 노력합시다”는 말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서둘러 정리했다.
 
대토론의 의미
4000년 전에 벌어진 리더십 토론은 지금 보아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순 임금은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한 조정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는 사실 우를 후계자로 결정하기 위해 예정된 요식 절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당시 법 집행을 책임지던 고요는 9덕론과 같은 상당히 구체적인 리더십 항목을 제기하며 토론을 주도했다. 때로는 우를 압박했으며, 심지어 순 임금까지 압박하는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특히 마무리 단계에서 순 임금이 부하들의 팔로어십(follower ship)을 전제로 내세우자 서슴없이 리더십, 다시 말해 리더의 ‘현명한 판단력’이 전제되어야만 부하들도 따르게 되고 일도 제대로 처리된다고 반박했다. 리더가 큰 이상이나 비전 없이 자질구레한 일에만 집착하다가는 모든 일이 엉망이 된다고 경고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사실 리더십과 팔로어십에 관한 논의는 얼핏 동전의 양면이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결론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리더의 리더십 발휘가 없이는 팔로어십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충분한 팔로어십을 통해 리더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따라주지 않고 따르려고 하지 않는데 리더가 제아무리 뛰어난 리더십을 갖추고 있으면 뭐 하느냐는 푸념은 말 그대로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리더는 따르지 않는 사람,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포용하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라 골목대장과 다를 바 없다.
 
고요는 성군의 대명사 순 임금에게 리더는 이런저런 전제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고요는 리더의 자질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이는 다음 호에서 고요의 9덕론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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