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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5000년 중국사에서 리더십을 캔다

김영수 | 25호 (2009년 1월 Issue 2)
역사 속에서 참된 리더십을 통찰한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통치자의 리더십이 크게 손상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고경영자(CEO) 리더십과 정치 리더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느니,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리더십을 바란 결과라느니 이런저런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러운 답은 없다. 다만 리더의 자질과 리더십에 대해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씁쓸한 결론을 건졌을 뿐이다.
 
그렇다. 리더십을 둘러싼 숱한 논의와 진단에 해답과 정답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리더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생명체 가운데 가장 복합적이고 복잡한 동물인 인간의 행위를 말이나 글로 딱히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다분히 가식적인 리더의 행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리더십의 정답을 찾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단지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리더와 리더십을 찾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지만 모범 답안은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모범이 될 만한 답안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당연히 지나온 인간의 삶의 자취, 즉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범 답안이라는 것도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찾으려는 사람의 인문적 소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인문 경영’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동서양 수천 년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은 물론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직관력을 갖추어야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참된 리더와 리더십을 발견하고 그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
 
어쩌면 모범 답안을 충실하게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리더십을 기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행위가 곧 성찰의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찰할 수 있는 리더야말로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다. 역사는 ‘지난 일(과거)을 돌아봄으로써(현재) 다가 올 일(미래)을 생각하는’ 가장 고차원의 인간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를 통해 보는 리더와 리더십
지난 반세기 가까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이끌어온 서양식, 좀 더 정확하게는 미국식 리더와 리더십에 대한 회의와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식 리더십 이론이나 경험이 무익하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리더십을 우리 리더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근본적 한계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다. 정서적으로 우리 리더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차이는 경험의 시간차에서도 비롯된다. 미국은 약 300년의 시간을 통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반면에 우리는 그 열 배가 훨씬 넘는 시간의 경험을 갖고 있다. 시간으로서의 역사만을 놓고 볼 때 상대비교가 안 되는 대상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굴곡진 근현대사 때문에 우리의 경험을 농축해 미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놓쳐왔다. 또한 역사 저술이나 연구가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에 집중되면서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고대사를 홀대했다.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수천 년의 경험을 우리 스스로 내던진 것이다.
 
중국과 우리는 시간적으로 비슷한 길이의 경험을 갖고 있다. 두 나라 모두 5000년 역사를 거론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그 5000년의 양과 질은 낯 뜨거울 만큼 큰 차이가 난다. 연표를 놓고 볼 때 우리의 5000년은 반 토막이다. 단군의 건국 연도인 기원전 2333년 이후 1000년 이상이 공백이고, 그 후로도 수백 년 공백은 보통이다.
 
반면에 중국사 5000년은 국가 차원의 통제와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긴 하지만 연표 상으로는 물론 내용면에서도 명실상부한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중국 문화권에서는 5000년 경험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지나간 역사의 경험과 지혜를 현재의 문제, 특히 국가 통치나 기업 경영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용한 방안으로 걸러내는 ‘응용 역사학’이라는 분야도 개척되고 있다.
 
중국은 5000년이란 긴 시간뿐 아니라 무려 1000만㎢(남북한을 합친 영토의 약 50배)에 가까운 엄청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秦)나라만 해도 300만㎢의 영토로 출발했다. 여기에 많은 민족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으며, 지금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5000년의 시간과 방대한 공간 속에서 수많은 민족이 관계를 가지면서 쌓아온 역사 경험은 그 다양성은 물론 농도 면에서 지구상 어떤 나라도 따를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이런 경험을 기록한 엄청난 양의 문자 기록까지 소유하고 있어 중국 역사는 말 그대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더나 리더십과 관련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약 600명에 가까운 제왕을 경험한 중국사는 그 자체로 리더의 역사라 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비슷한 체제를 수천 년 경험한 우리에게 중국사는 그 자체로 참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리더와 리더십 관련 부분도 마찬가지다.

인간 행위의 파노라마 ‘사기(史記)’
중국의 문자 기록은 인류의 귀중한 자산이다. 역사 분야의 기록들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기록 가운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석처럼 빛나는 기록이 있다. 바로 사마천(司馬遷)이라는 위대한 역사가가 남긴 역사책 ‘사기(史記)’다.
 
‘사기’는 5000년 중국사의 시간 가운데 5분의 3을 기록한, 즉 3000년 중국 고대사를 정리한 전무후무한 통사다. 전체 130권, 글자 수로는 52만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이 역사서는 사마천이라는 한 개인에 의해 완성된 기적과도 같은 기록이다. 130권 중 인간에 대한 기록이 112권으로 전체의 86%에 해당한다. 역사상 리더로는 90여 명의 제왕과 약 200명의 제후를 다루고 있다. 더 소중한 것은 봉건시대의 주류인 지배층 위주의 역사 서술에서 철저히 벗어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서민은 물론 소외 계층에까지 눈길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친 통계이긴 하지만 ‘사기’에서 주연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은 200명이 넘고, 이들과 어우러져 함께 활동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들의 직업만 약 1300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오늘날 유의미한 통계를 내기 위한 표본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수백 명의 리더와 그보다 더 많은 참모, 이들의 활동을 더욱 생생하게 빛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의 행적을 남기고 있는 ‘사기’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탐욕과 양보, 은혜와 원수, 우정과 배신, 웃음과 풍자, 비극과 울분 등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극적인 인간 행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대하드라마다.
 
리더·리더십을 통찰한 역사서
리더·리더십과 관련해 ‘사기’는 깊은 직관과 통찰력을 보여 준다. 제왕들의 기록인 본기 12권과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 30권은 그 자체가 다양한 리더들의 행태에 대한 종합 보고서다. 특히 오늘날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거의 흡사하게 다양한 민족과 충돌하고 교류하고 융합해가는 이른바 ‘이질적 공동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종합되고 정리된 리더십의 행태는 2000년이 넘는 시공을 초월해 지금 적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또한 ‘사기’가 보여 주고, 사마천이 이상으로 내세우는 리더와 리더십에는 서사 구조가 뒷받침되어 있다. 쉽게 말해 스토리가 있다. 이를 중국 사람들은 고사(故事)라 하고, 이 고사를 압축한 짧은 단어나 문장을 성어(成語)라 부른다. ‘사기’에는 언어나 문자의 소금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고사성어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아무리 감동적인 이야기라도 그 감동을 정제된 언어나 문자로 전달하지 못하면 의미와 감동은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사기’는 완벽에 가까운 언어와 문자로 고사의 의미와 감동을 충분히 전달하는 문학적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이제 ‘사기’가 보여 주는 실로 다양한 리더의 모습과 그들이 한 시대와 더불어 자신의 육신과 영혼으로 표출한 리더십을 역사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감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리더와 리더십의 실체를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필자는 고대 한·중 관계사를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동안 사마천 ‘사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2002년 외국인 최초로 중국 사마천학회의 정식 회원이 됐다. 지난 15년 동안 100여 차례 중국의 역사와 문화 현장을 답사하며 중국 알기와 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난세에 답하다> <사기의 인간경영법>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명문가의 자식교육> <지혜로 읽는 사기>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용인> <황제들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 <모략> <간신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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