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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Interview : 마크 W. 존슨 이노사이트 대표

“현재 상황 토대로 미래 계획 세우면 실패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의 계획 세워야”

이규열 | 328호 (2021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변혁적 혁신을 이루고 팬데믹의 충격을 빠르게 극복한 조직의 공통점은 명확하고 새로운 비전을 재정립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극대화된 시대에 뚜렷한 비전은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기업이 비전을 새로 세우고 전략을 다시 짤 때는 첫째, 핵심 경영진이 업무 시간 중 10∼20%를 미래를 상상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둘째,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셋째, 계획을 테스트하며 배운 점들을 빠르게 반영해 전략과 비전을 조정한다. 넷째, 비전을 팀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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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서두를수록 자칫 중요한 것을 놓치게 돼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게 이 속담의 교훈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상황을 대변한다.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급한 불에 먼저 주목하고 이를 끄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혁신 컨설팅펌인 이노사이트(Innosight) 1 를 창업하고 유수 기업의 혁신 전략을 수립한 마크 W. 존슨(Mark W. Johnson)은 애플의 아이폰 역시 20년 전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던 IT 산업의 폭락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부터 계획됐다고 말한다. 즉, 위기 상황에서도 몇 년 후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기업이야말로 획기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존슨은 변혁적인 혁신을 이룬 기업들과 팬데믹의 위기를 다른 기업들보다 빠르게 헤쳐나가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의 신간 『Lead from the Future: How to Turn Visionary Thinking into Breakthrough Growth』(국내 미발행)에서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기업이 장기적 목표를 좇고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명확하고 새로운 비전(vision)을 강조했다. 또한 비전을 이루기 위한 전략을 세울 때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부터 시작하는 ‘역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2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DBR가 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팬데믹 이후의 혁신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비전을 재설계할 때 주목해야 할 점들을 들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리더들은 당장 해결해야 할 눈앞의 문제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왜 비전에 주목해야 하는가?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일단 경영진의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더불어 이들이 회사 내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의 보상 체계가 대체로 단기적인 계획과 실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직원들 역시 타성에 젖기 쉽다. 비전은 구성원들에게 조직의 목적을 제시하고 영감을 불어 넣는 동시에 조직이 장기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이니셔티브에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극대화되고, 사람들이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쉬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비전은 더욱더 중요해 진다. 미국에서는 약 120만 명이 실직 상태이고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있다.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디지털 콘텐츠 소비와 같은 소비는 더욱 가파른 속도로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원격 의료 서비스가 상용화된다면 미국에서는 지난 10년간의 오바마 케어가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즉, 지금부터 1∼2년 후의 비즈니스 환경은 팬데믹이 시작될 때와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명확한 비전은 기업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또한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등 조직에 방향성을 알리는 북극성 같은 존재다.

이에 따라 리더들은 5∼10년 후에 업계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20년 전 미래 선도 기술로 인정받은 컴퓨터 산업이 기대감에 비해 소비자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자 과도하게 부풀려졌던 IT 기업들의 주가가 대폭락하는 ‘닷컴 버블’ 붕괴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애플 역시 막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이 시기에 애플은 이후 대박이 터진 아이팟과 아이폰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시작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이노사이트는 2010∼2019년, 즉 10년 사이에 가장 영향력 있는 혁신을 달성한 20개의 글로벌 기업을 연구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비즈니스를 하는 목적, 즉 목적의식이 명확하고 새로웠다는 점이다. 예컨대 덴마크의 국영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ørsted)’는 원래 천연가스 사업을 영위하던 회사다. 점차 전통 에너지가 환경을 헤친다는 여론이 들끓자 오스테드는 첨단 풍력 에너지 회사로 변신을 시도하며 사명까지 ‘동에너지(Dong Energy)’에서 오스테드로 바꿨다. 그리고 2018년, 300억 덴마크 크로네(약 5조4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로 재도약했다. 장기적인 비전을 재설정해 리더들이 목표한 전략을 꾸준히 유지하고, 직원들 역시 이에 맞춰 성과를 내도록 노력한 결과다. 3 위챗의 개발사인 중국의 IT 회사 텐센트도 사회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기술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팬데믹이 덮친 이후에도 변혁적인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더욱더 비전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설득력 있는 비전을 개발한 기업들은 비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기업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코로나19에 의해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를 극복했다. 또한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회사가 위기 상황에도 장기적 목표를 좇아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좋은 비전의 조건은 무엇인가?


비전은 단순한 한두 문장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더욱 상세히 설명하는 내러티브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회사의 핵심 사업, 신규 사업과 이와 관련된 역량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 좋은 비전일수록 명확한 목적이 깃들어 있고 직원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미국의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의 ‘질병 차단 이니셔티브(Disease Interception Initiative)’의 내러티브가 좋은 예다.

우리는 질병이 역사적 유물이 되는 세상을 상상한다. 모든 사람이 기술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건강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명과학 회사들이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차단•치료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의료 기술의 변혁적인 혁신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인류 건강의 궤도를 바꾸겠다는 우리의 사명에 발맞춰 우리는 질병을 제거할 헬스케어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하기 위해 질병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을 개발할 것이다. 질병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식별하고, 질병 발생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임상적으로 입증된 치료법을 통해 질병의 발생을 막을 것이다. 우리는 존슨앤드존슨 전역의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해 세계적인 의료 제품을 개발하고, 바이오 의학 연구 생태계의 파트너들과 광범위하게 협력하며 비전의 실현을 가속화할 기술, 솔루션, 프로토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것이다.

위의 내러티브에는 존슨앤드존슨이 질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들이 비즈니스 관점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명확히 담겨 있다.

좋은 비전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어떤 방식으로 비전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할까.

첫째, 우선 미래를 상상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리더들은 매주 일하는 시간 중 약 10∼20% 정도를 투자해 위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순간에 조직이 어떤 위치에 있고, 또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어디인지 점검하는 데 써야 한다. 현재 경영진은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터라 이같이 중요한 일을 다른 리더들에게 위임하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러나 CEO, CFO 등 최고위층 리더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회사의 주요 핵심 자원을 배분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객, 시장 등 회사의 환경에서 무엇이 변하고 있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 확인하라. 고객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들의 요구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살펴보고, 회사가 이 같은 새로운 요구들을 어떻게 충족할지 등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와 더불어 역량에 대해 점검하라.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가 이 같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위협과 기회를 모두 고려하라. 즉,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서 더 이상 주효하지 않고 끝내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 반대로 빠른 속도로 새로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둘째, 미래를 기준으로 현재에 대한 계획을 세워라. 대부분의 리더는 과거나 현재 상황을 토대로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무엇이든 실천에 옮기는 것이 기업가정신에 부합한다고 느끼고, 무엇이라도 진행이 되는 순간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지나치게 구속되면 오히려 묻고 따져야 할 요인이 많아 회사의 핵심 자원을 배분해 이니셔티브를 실행하기 어려워지거나, 반대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자각 없이 섣불리 의미 없는 행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장기적인 미래 목적을 먼저 세우고 그 미래를 시작점으로, 그리고 현재를 도착점으로 정하라. 미래에서 현재로 오기까지 어떤 이정표를 일정 간격으로 세워야 하는지 고민하라. 공학 분야에서 완성된 제품을 분해해 어떤 기술과 설계가 들어갔는지 살펴보는 ‘역엔지니어링’과 유사하다.

예컨대 당신이 한 대학의 총장이라고 가정해보자. 현장 교육은 붕괴됐고, 온라인 학습 또는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학습이 지금의 교육 체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 같은 학습 방식은 팬데믹 이전에도 부상하고 있었고, 팬데믹 이후 확산 속도에 불이 붙은 것이다. 모두가 백신을 맞은 이후에도 하이브리드 학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22년 봄 학기에 학생들이 캠퍼스와 집을 안전하게 오가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부터 고민하지는 말라. 새로운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실행돼야 할 것이고, 현장에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거나 새로운 인력을 고용해야 할 것이다. 개발사와 파트너십을 맺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보고 미래에서 지금까지 역순으로 배치하면 어떤 투자가 우선시돼야 하는지 각각의 과정에 얼마큼의 자원을 들여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셋째, 학습과 피벗을 준비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일할 때는 일의 진행 상황을 측정하고, 모니터링하고, 공식적으로 리뷰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바라는 미래로 가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으나 처음 세웠던 가정을 벗어나는 일도 숱하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사실은 실제 환경에서 원래 세웠던 가정을 테스트할수록 검증되거나 혹은 반증되는 데이터와 경험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에 따라 전략을 조정하라. 필요하다면 비전 자체를 조정해도 좋다.

시장과 조직으로부터 오는 명확한 신호와 희미한 신호 모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언제나 옳을 것이라는 자만은 내려놓고 겸손해야 한다. 현실에 부딪히면서 수도 없는 실패를 마주할 것이다. 그때마다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피벗을 꾀하고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팀을 비전과 일치시켜라. 새로운 비전을 좇는 과정에서 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줄어들 수도 있다. 존슨앤드존슨과 같이 비전이 명확히 서술되면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비전이 효과적으로 공유될 수 있다. 새로운 비전과 비즈니스가 ‘무엇(what)’인지 만큼이나 ‘왜(why)’, 그리고 ‘어떻게(how)’ 이 비전을 좇아야 하는지도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직원들을 소규모 그룹으로 묶어 비전을 공유하며 이들이 직접 비전에 대한 내러티브를 작성하게 해보는 워크숍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명확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자체가 직원들에게는 영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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