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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미래, 통계적 예측으로 길을 찾아라

김정수 | 16호 (2008년 9월 Issue 1)
오래된 일이지만 어린 시절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를 보던 재미는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과학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을 연발하며 빠져들곤 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나 ‘맥가이버’의 작가 레너드 믈로디노프는 실제 버클리대 물리학 박사 출신이며,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이자 SF 영화 ‘스타트렉’ 작가이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드렁커즈 워크(Drunkard’s Walk)’는 바로 이 사람이 일반인을 위해 풀어 쓴 통계학 책이란 점 하나만으로도 많은 기대를 끌기에 충분하다. ‘드렁커즈 워크’는 전혀 예측할 수 없이 완전히 랜덤(random)한 움직임을 뜻하는 수학적 용어로, 드렁커드(drunkard, 술고래)는 짐작하는 대로 ‘술에 취한(drunk)’에서 온 말이다. 저자는 우리 주변의 많은 현상이 주정뱅이의 걸음걸이처럼 랜덤한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어설픈 통계적 규칙을 찾아내려 하는 데서 많은 오류가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기업 관련 통계는 ‘예술’ 수준
통계적인 방법론은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좋은지를 택하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의사결정에서부터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의사판단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많고 유용성도 매우 크다. 특히 오늘날 통계는 기업의 전략 수립과 의사결정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됐다. 극한의 수준으로 발달한 기업 관련 통계는 엄청나게 정밀해 ‘예술’의 경지로 불릴 정도다.
 
인수합병(M&A) 때 이뤄지는 기업가치 산정을 예로 들어 보자. 기업가치 산정은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이 대금을 과연 얼마까지 지불해도 되는지를 계산하는 작업이다. 이때 피인수 기업의 매출액과 이익, 인수하는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수백 가지를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런 변수들은 민감도가 매우 높아서 조그마한 예측치의 변화가 수백억 원의 차이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대에서 형성된다면’이란 가정 아래 피인수 기업의 가치를 5000억 원으로 산정했다고 하자. 이 경우 유가가 125달러가 되면 하루아침에 100억 원의 가치 하락이 생길 수 있다. 이 밖에 ‘중국이 현재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한다면’ ‘환경 관련 규제에 큰 변화가 없다면’ ‘환율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면’ 등 수없이 많은 가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기업가치 산정 작업은 끝없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 된다.
 
바로 여기에서 확률과 통계학이 요구된다. 기업가치 산정 담당자들은 좀 더 나은 예측치를 얻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료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가정을 수정한다. 이들은 ‘국제 유가는 지난해 말 110달러에서 지난달 130달러까지 상승했지만 최근 125달러에서 안정되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서서히 상승해 140달러대 초반까지 오르겠지만 11월 이후에는 계절적 수요에도 불구하고 110달러대로 돌아갈 것이다’는 정도의 세밀한 가정을 기업가치 산정에 반영하고 나서야 작업의 정교함에 스스로 만족한다.
 
‘통계의 덫’에 빠지는 이유
그러나 믈로디노프는 통계학적 분석을 제대로 된 방법론에 따라 엄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녹색과 적색이 번갈아 켜졌다 꺼지는 전등이 있다고 하자. 다섯 차례에 걸쳐 관찰해 본 결과 녹색과 적색이 켜지는 순서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지만 비율은 2:1이었다. ‘녹, 녹, 녹, 적, 적, 녹’ 또는 ‘녹, 적, 적, 녹, 녹, 녹’ 식이었다. 이미 ‘녹, 적, 녹, 녹, 녹’이 켜졌을 때 다음에 켜질 색은 무엇인지를 맞혀 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관찰된 2:1의 비율로 보았을 때 다음은 적색일 것이라는 응답과 순서와는 상관없이 더 자주 켜지는 녹색을 선택하겠다는 답이 그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기업가치 산정을 담당한 사람들은 적색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명확한 근거가 있고 훨씬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더 자주 켜지기 때문에 녹색’이라는 대답은 비과학적이고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순하게 녹색을 선택하는 편이 정답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녹색을 선택하는데 비해 오직 사람만이 적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앞의 예에서 녹색과 적색이 켜지는 것은 독립 사건이란 점에 있다. 녹색이 켜지는 것과 적색이 켜지는 것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두 가지를 연결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과거 관찰한 다섯 차례의 표본은 전체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제대로 된 통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얼핏 과학적으로 보이기만 할 뿐 통계 자체가 사용자의 발목을 잡게 된다.
통계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나?
그렇다면 회사의 중요한 결정에 통계를 사용하는 것은 오류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일이지 않을까. 자칫하면 수십 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기업가치 산정 같은 작업이 수많은 가정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무의미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통계와 철저한 분석이 가져다주는 이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기업 경영진은 기업가치 산정 작업을 통해 피인수 기업의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며, 어디에 경영진의 역량과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지, 주요한 모니터링 지표는 어떤 것으로 해야 하며, 어떤 수준의 성과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 등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두 번째, 불확실성이 강한 요소를 회피하거나 그 영향력을 줄일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앞의 사례에서처럼 유가가 5달러 오를 때 100억 원의 기업가치 변동이 있는 경우 인수 기업의 경영진은 유가 변동을 어떻게 헤징해야 할지를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헤징 비용으로 얼마까지를 쓸 수 있겠는가 하는 계량적 분석을 시도할 수도 있다. 아울러 경쟁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피인수 기업이 가장 선도적인 경쟁사 수준의 원가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최대 기업가치는 얼마나 될 수 있는지 등의 분석을 통해 ‘기업 경영의 맥’을 짚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1년 후 유가가 얼마나 될 것인가’를 족집게처럼 맞히는 것만이 기업가치 산정 작업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해당 산업과 경쟁 상황에 대한 정성적인 지식과 통찰력을 ‘조건부 확률’ 개념에 접목해 더욱 신뢰도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가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도 단순히 과거의 데이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보급률이 이미 10%대를 넘어섰다면’ ‘사탕수수를 활용한 자동차 연료용 에탄올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와 있다면’ 등의 관련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면 훨씬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기업을 경영할 때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과 이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 결단력이 절실할 때가 많다. 신의 계시를 받은 점쟁이가 아닌 이상 미래를 하나도 틀리는 것 없이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통계적 예측의 과정에 대한 수많은 가정과 자료 분석, 고민을 통해 얻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책이 알려주는 통계학의 맹점과 올바른 활용 방안을 따라가다 보면 지나치게 수치적인 자료와 차트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현명하게 통계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산업자원부 사무관으로 국제통상 및 기획예산 담당으로 일하다가 2001년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금융·소비재·물류 등 다양한 부문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김정수 |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jungsu.kim@gscalt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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