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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의 일 外

조진서 | 247호 (2018년 4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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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잠실 롯데호텔에서 최초의 ‘치믈리에’ 자격시험이 치러졌다. 치믈리에는 치킨 + 소믈리에, 즉 치킨 감별사다. 살아 있는 병아리를 감별하는 게 아니고 다 튀겨진 치킨을 먹고 어느 브랜드의 어떤 메뉴인지를 알아맞히는 행사였다.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이 마련한 이 행사의 취지는 장난스러웠지만 형식은 진지했다. 1교시 필기시험에는 OMR 카드와 컴퓨터용 사인펜이 사용됐다. 2교시 실기시험에는 
12가지 치킨 샘플과 함께 와인잔에 담긴 콜라가 제공됐다. 심지어 행사 피날레에서 뿌린 꽃가루는 네모난 색종이가 아니라 닭다리 모양 색종이였다. ‘쓸데없이 고퀄’이었을까? 아니다. 이 개그 이벤트는 공중파 TV를 비롯해 각종 언론매체에 보도됐고 소셜미디어에서도 화제가 됐다. 몇몇 연예인도 수험자로 참석했다. 만일 이 회사가 돈을 주고 TV 광고 매체비를 집행했거나 돈을 주고 연예인을 모델로 고용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치킨 500마리 값으로 어마어마한 홍보효과를 누린 치믈리에 대회는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였을까?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의 최고브랜드책임자(CBO)인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신규 입사자 워크숍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워크숍에서 눈을 가리고 무슨 치킨인지 맞추는 게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참석자들끼리 깔깔거리고 수다를 떨었다. 20분 후 정신을 차리고 떠든 내용을 문서로 정리했다. 그것이 곧바로 기획서가 됐다.

이 책을 보면 배달의민족이 어떻게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로 평판을 쌓아 올렸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콘텐츠 마케팅이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빅데이터다 하는 최신 기법들을 적용하는 것도 좋지만 핵심은 ‘사람’, 즉 마케터다. 좋은 사람을 마케터로 뽑고 다 같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 성공 비결. 쓸 수 있는 마케팅 예산이 경쟁사들 간에 비슷비슷하다면 성패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은 예산 제한 때문에 3초짜리 영화관, IPTV용 광고를 틀기도 했다. 3초 내내 치킨이 기름에 지글지글 튀겨진다.침이 꼴깍 넘어간다.

저자가 보기에, 좋은 마케터에겐 좋은 소비 감각이 필수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마니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애정하는 브랜드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본인이 소비생활을 즐기지 않으면서 소비자의 대변자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또 제품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명확한 목표의식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성이 중요하다. 마케팅은 팀 스포츠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성격 나쁜 동료와 일하는 법: 도망가세요. 답이 없습니다.”

배달의민족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책은 이 밖에도 몇 권 있지만 이 책은 한 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다는 단점 같은 장점이 있다. 중간중간 들어간 일러스트도 귀엽다. 그림을 그린 삽화가(김규림)도 이 회사 마케터다. 혹시나 직속상사인 저자의 압력으로 강제 노동에 투입된 게 아닌지 해서 김규림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정반대였다. 부하직원들이 저자를 1년간 채찍질해가며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사님, 이런 말씀도 하셨잖아요!” “우리 이것도 했잖아요”라며. 정말 일관성 있게 웃긴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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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리프레시(F5) 버튼을 누르면 플랫폼은 남고 콘텐츠는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리프레시’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스티브 발머 대신 구원투수로 나델라가 등판할 무렵 MS는 개인용 PC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입사 22년 차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나델라는 회사의 전략을 과감히 바꿨다. PC 중심 서비스를 버리고 모바일 중심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가 말하는 MS 역전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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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선 가지치기 작업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가지들이 광합성을 방해해 줄기 부분을 썩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성과를 창출해내기 위해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찾아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저자는 IT 업계에서 뼈가 굵은 경영자이며 피터 드러커 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폐기를 결정하는 기준, 실행하는 방안 등 ‘잘 버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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