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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고전 읽기

직원의 창의력 일부만 활용되는 이유

이동현 | 60호 (2010년 7월 Issue 1)

기업 경영의 역사에서 인간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종업원들은 ‘노동(labor)’이라는 생산요소로 취급됐다. 1867년 출간된 <자본론(Das Kapital>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에 의해 형성되고 가치의 크기는 그 사회에 있어서의 평균적인 생산 조건 하에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굳이 마르크스의 주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을 비롯한 산업화 국가들에서는 공장제 공업의 출현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립은 격화됐고, 종업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파업이 속출했고 실업을 우려한 종업원들의 태업으로 노동생산성도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화가 늦은 미국에서는 1911년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인 프레드릭 테일러가 출간한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이라는 책이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테일러는 당시 생산현장에 만연했던 태업과 주먹구구식 관리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과학적 관리법을 역설했다.
 
그가 제시했던 과학적 관리법은 작업 시간과 동작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루의 공정한 작업량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태업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켜 노사가 함께 발전하자는 테일러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그가 주장했던 과학적 관리법은 인간을 기계적으로 취급하고 효율성의 논리만 추구하는 노동착취의 상징으로 비난받았다.
 
종업원을 단지 생산요소의 하나로 취급하는 관점은 1930년대 이후 인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즉, ‘투입 요소(input factor)’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human beings)’로서 종업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는 1954년 출간된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동기와 성격(Motivation and Personality)>과 1960년에 출간된 더글러스 맥그리거의 <기업의 인간적 측면(The Human Side of Enterprise)>을 들 수 있다.
 
매슬로는 ‘욕구 단계설(Hierarchy of Human Needs)’이라는 모델을 통해 인간이 가진 기본 욕구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소속 및 애정의 욕구, 자기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의 총 5단계 욕구를 갖고 있다. 특히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성장욕구라고 주장했다.
 
MIT대 교수인 맥그리거는 “모든 경영 의사결정이나 행동의 배후에는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한 가정이 깔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유명한 X이론과 Y이론을 제시했다. 매슬로의 연구가 인간 욕구에 대한 기초 연구였다면 맥그리거의 연구는 이러한 매슬로의 인본주의 사상을 기업경영 전반에 접목시킨 기념비적인 연구였다. 맥그리거는 매슬로의 하위 욕구를 X이론, 상위 욕구를 Y이론에 접목시켜 이론 체계를 정립했다.
 
그가 말하는 X이론의 핵심은 통제다. X이론에서 직원들은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비용’ 요소로 취급된다. 이러한 X이론은 다음 세 가지 가정에 기반을 둔다. 첫째,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일하기 싫어하며 가능하다면 일을 회피하려고 한다. 둘째, 일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적 특성 때문에 기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강요와 통제, 명령과 함께 처벌에 대한 위협이 수반돼야 한다. 셋째, 사람들은 지시받는 것을 좋아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별다른 야망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원한다. 맥그리거는 당시 기업 현장에 X이론이 만연하고 있음을 개탄했다.
 
사람들은 조직 안에서 지시받고 조종당하고 통제받는 데 익숙해졌다. 사회적 욕구와 자아 욕구, 자기실현 욕구에 대한 만족은 일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Y이론에서 직원들은 존중되고 개발돼야 할 ‘자산’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X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정을 하고 있다. 첫째, 노동에 심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놀이나 휴식에 대한 본성과 다를 바 없다. 즉, 사람은 선천적으로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둘째, 외적인 통제나 처벌의 협박만이 직원으로 하여금 기업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셋째, 목표에 어느 정도로 헌신하느냐 하는 것은 목표 달성으로 얻게 되는 보상과 상관관계가 있다. 넷째, 상황이 적절하다면 사람들은 책임을 떠맡는 것을 수락할 뿐만 아니라 자진해서 책임을 떠안으려 하기도 한다. 다섯째, 조직 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상상력과 통찰력, 창의력은 단지 일부의 사람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돼 있다. 여섯째, 현대 기업 환경 하에서는 직원의 지적 능력 중 극히 일부분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맥그리거는 Y이론을 통해 잘못된 기업 관행을 비판하고 인본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Y이론은 조직 내에서 사람들 사이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인간 본성의 한계에서 찾기보다 경영자가 조직의 인적 자원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실현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데서 찾고 있다. X이론은 경영자로 하여금 부진한 업무성과의 모든 원인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인성에서 찾도록 만들지만 Y이론은 그 원인을 공평하게 경영자 자신에게서도 찾도록 만든다. 만일 직원이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고집스럽고 창의력이 없고 비협조적이라면, Y이론은 그 원인이 조직 체계와 통제 방법에 있다고 알려준다. 오히려 X이론은 경영진으로 하여금 비효율적인 조직성과를 쉽게 합리화하게 만든다.
 
조직 환경에서 인간의 협력활동이 제한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인적 자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경영진의 독창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기념비적인 책을 출간한 지 거의 50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맥그리거의 문제 제기 후 ‘직원들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는 주장은 이제 학계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기업 현장은 여전히 X이론을 신봉하는 경영자들로 넘쳐 난다. 예컨대 한때 경영혁신의 대명사로 불렸던 과거 GE의 직원평가 시스템도 사실은 X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매년 직원들을 상위 20%, 중간 70%, 하위 10%의 비율로 평가해서 하위 10%를 조직에서 퇴출시키는 상향평준화 정책이 잭 웰치 시절 GE의 상징적인 인사관리 정책이었다.
 
이는 분명 혹독한 평가와 치열한 내부경쟁을 유발해 궁극적으로 팀워크를 해칠 수도 있는 전형적인 X이론의 경영기법이었다. 이같이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게 자행되는 수많은 기업 관행 때문에 대부분의 종업원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발휘하기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를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점점 더 전락하고 있다.
 
물론 맥그리거 자신도 공장이나 영업 현장에 있는 일선 종업원을 대상으로 Y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관리자나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Y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맥그리거가 Y이론을 주창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몇몇 선도 기업들은 Y이론을 믿고 자신들의 조직 전반에 Y이론을 적용시키고 있다. 탁월한 서비스로 유명한 노드스트롬 백화점, 종업원 중시의 전통을 자랑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 팀 단위의 자율과 책임 경영으로 운영되는 홀푸드 마켓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영원한 진리인 줄 믿었던 뉴튼의 물리학 법칙에 중대한 모순과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은 무려 300년이 지난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발표되면서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비한다면 이제 겨우 50년이 지난 Y이론을 여전히 믿지 않는 경영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맥그리거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고전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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