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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고전 읽기

조직의 생명력, 협력 의지에 달렸다

이동현 | 51호 (2010년 2월 Issue 2)

기업 경영에서 조직과 개인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근본적인 이슈다. 개인이 없는 조직은 성립될 수 없다. 조직은 개인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개인의 필요에 의해 조직을 만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조직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기업 조직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진보적 기고가인 다니엘 핑크는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경고한다. 프리 에이전트란 샐러리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거대 조직체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프리랜서와 임시직, 5인 이하 초소형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로 프리 에이전트다. 이들은 조직이 만든 규칙과 통제가 숨 막혀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20세기 관료제 조직도 이미 붕괴되고 있다. GM, AT&T, 닛산 등 20세기를 지배했던 거대 기업들은 중앙 집권화와 정교한 통제 모델에 의해 움직이는 관료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글로벌 시장을 지배할 21세기 조직으로 지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붕괴 직전의 난파선에 비유하는 게 적절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890년 미국 기업의 평균 직원 수가 4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자영업자의 천국이었으며 초소형 사업체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들 업체에 고용된 종업원들은 샐러리맨으로서의 꿈을 키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이 직접 운영할 사업을 꿈꾸었다. 그런데 이때쯤 기업이라는 조직이 등장했고,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샐러리맨과 블루칼라를 거대 조직으로 흡수했다. 덕분에 중산층이 생겼고, 몇몇 샐러리맨의 신화도 등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직은 성장했지만 개인은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은 조직의 논리에 의해 억압받고, 조직의 구성원들은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에 의해 움직이는 임금 노예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시작된 21세기에 기업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기업 조직은 ‘협력 행위 시스템’
체스터 바너드는 경영학 100년 역사에서 최초로 이러한 조직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는 책상물림의 학자가 아니라 현장의 경영자였다. AT&T에 입사한 그는 AT&T의 자회사인 뉴저지 벨 전화 회사의 사장을 역임했고, 은퇴 후에는 록펠러 재단 이사장, 국립과학재단 의장 등의 책임을 맡았다.
 
바너드의 사상 체계에서 조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협력 시스템(cooperative system)’이다. 그는 조직을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의식적으로 행동이나 힘을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1938년 출간된 고전 <경영자의 역할(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에서 바너드는 조직을 이렇게 정의했다.
 
“조직은 인간의 행위로 이뤄지고, 이런 행위는 여러 사람들의 조정된 노력에 의해 시스템이 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조직은 인간의 협력 행위 시스템이고, 조직의 기능은 효용을 창조하고 변환시키며 교환하는 것이다.”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개인은 조직에 공헌한 만큼 조직으로부터 보상을 받음으로써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가 주장한 협력이란 조직과 개인 간의 균형, 또는 상생의 관계를 의미한다. 개인은 조직에 공헌을 해야 하며, 조직은 이러한 개인의 공헌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야만 한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어느 한쪽에 불만이 쌓이면 균형이 깨지고 조직은 붕괴된다. 개인의 공헌과 조직의 보상이 균형을 이뤄야만 협력 시스템이 잘 작동될 수 있고,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바너드의 핵심 주장이다.
 
얼핏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그의 주장은 현대 조직 이론의 기반이 됐다.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꼭 필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를, 반대로 조직은 구성원들의 공헌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아마 오늘날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조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발전을 위한 3가지 요소
바너드는 ‘조직은 협력 시스템’이라는 기본 가정하에,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 요소들을 언급했다.
 
“조직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헌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성립한다. 따라서 조직의 요소는 의사소통, 협력 의지, 협력 목적으로 압축된다. 이 요소들은 모든 조직에서 발견되는 필요충분조건이고, 그중 하나인 협력 목적은 조직의 정의에 묘사돼 있다.”
 
조직의 생명력은 협력 시스템에 공헌하려는 개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고, 이 의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생긴다. 따라서 지속적인 의지는 목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공헌한 사람들이 저마다 얻는 만족에 달려 있다. 만족이 희생보다 크지 않으면, 조직에 공헌하려는 의지가 사라져서 비효율적인 조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경영자의 주된 역할은 의사소통 시스템을 만들고, 협력 의지를 유지하며, 조직의 목적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너드가 강조한 경영자의 첫 번째 기능은 구성원들로부터 ‘조직에 공헌하려는 의지(willingness to serve)’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개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했다고 본다면 협력 의지야말로 조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협력 의지를 이끌어내라는 바너드의 충고와 달리, 그동안 기업 경영의 실제는 구성원들의 참여와 권한 위양보다는 구성원들에 대한 지시와 간섭에 의해 전개됐다.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참여와 권한 위양은 요원한 과제이며, 일부 경영자들은 이를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월권행위 정도로 치부한다.
 
또한 바너드는 구성원들의 협력 의지를 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종업원들이 공감하는 조직의 목적(common purpose)’을 강조했다.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는 협력의 목적이 있을 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조직은 번영했지만 구성원은 정작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의 목적을 강조한 바너드의 충고는 놀랍게도 오늘날 기업 현장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들은 기업 그 자체를 경제적 활동보다 더 의미 있게 생각하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기업 활동에 부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핵심 가치라고 정의하고, 이익 추구와 함께 자신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본래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혁신 기업의 대명사인 3M은 개인의 창의성과 선의의 실수에 대한 관대함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존인 디즈니는 상상력과 가족의 즐거움을, 일본의 대표 기업 소니는 개척자 정신과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기술 혁신을 통해 기업 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다.
 
이처럼 많은 초우량 기업의 경영자들이 핵심 가치를 정립하고 전파하는 일에 몰두하는 이유는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핵심 가치의 공유를 통해 조직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바너드는 ‘경영자의 의사소통(communication)’ 활동을 강조했다. 조직에 참여한 구성원들 간에 의사소통이 부족하다면 공동의 목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키기 어렵고, 협력 의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바너드는 상사의 권한이 명령이라는 커뮤니케이션과 이를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의 수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따라서 상사의 지시를 부하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조직의 목적에 어긋난다면 권한이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은 상사의 명령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권한의 수용도를 높여주는 리더십의 핵심 수단인 셈이다.
 
오늘날 거대하고 복잡한 기업들이 저마다 관리 계층을 축소하고 조직 단위를 작게 쪼개는 것도 결국 의사소통 부재라는 동맥경화를 극복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의 활력을 유지하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70년 전 이미 조직과 개인의 협력과 균형을 강조한 바너드의 주장은 21세기에 새로운 기업 조직을 열망하는 현대 경영자들에게도 큰 울림이 되고 있다.
 
편집자 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 고전 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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