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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 Book

1950년대 TV 시청은 세련된 취미

김정수 | 46호 (2009년 12월 Issue 1)
2006년, 홍콩의 여성 갑부 니나 왕이 15조 원의 유산을 수년간 함께 일했던 풍수지리 전문가 토니 찬에게 남겼다는 외신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만큼 풍수지리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두터웠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드나든다는 ‘점집’들이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곤 한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슈퍼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아무리 발달해도 미래 예측은 아직도 어려운 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조금이라도 엿보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돈과 시간의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바로 과거가 미래를 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세계 가전제품 80% 생산
빌 브라이슨은 여행작가 겸 기자 출신이다. 그는 여행담에서 과학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보여왔다.
 
 
는 브라이슨이 1950년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 책이다. 그는 놀랍도록 생생한 기억을 통해 지난 50여 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재미있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책에 등장하는 1950년대 미국의 생활상에는 지금은 전혀 믿기지 않는 모습도 많다.
 
빌 브라이슨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50년대의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이자 가장 생산적인 나라였다. 네 집 중 세 집이 세탁기와 전화기, 진공 청소기를 가지고 있었고, 전 세계 가전 제품의 80%가 미국에서 생산됐다. 철강의 60%, 원유의 66%도 미국이 만들어냈고, 세계 인구의 5%인 미국인들이 나머지 95%보다도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쓰지 않고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는 때가 올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엄청나게 달랐다. 요즘 사람들은 텔레비전 시청을 매우 비생산적인 일로 여기지만, 1950년대의 사람들은 가장 새롭고 세련된 트렌드로 생각했다. 사람들의 TV 시청 시간이 늘어나자 한 의류회사는 집에서 누워 TV를 볼 때 가장 편안한 옷을 시판했다. 식품회사들은 TV를 보면서 가볍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신상품을 내놓았다. 콜게이트, GE, 질레트 등 대기업들은 이 같은 새로운 생활 패턴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무지와 극단적 보수의 시대
하지만 당시 미국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시대적이기도 했다.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14살 난 흑인 소년이 맞아죽는 일이 벌어졌지만, 해당 사건의 범인들은 무죄로 풀려났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남편과 아내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two-income family)’란 신조어는 195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등장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의 48개 주 가운데 절반이 기혼 여성의 고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기혼 여성이 바깥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모두 막혀 있었던 것이다. <타임>은 1959년 ‘과거에 5시간 반이 걸리던 가족의 식사 준비를 90분만에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기사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건강과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무지(無知)에 가까웠다. 분무기 소독차가 지나기라도 하면 어린아이들이 그 뒤를 쫓아다니며 살충제를 들이마셨다. 당시에는 살충제의 주요 성분인 DDT가 몸에 해롭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한 담배 광고는 ‘가장 많은 의사들이 선택하는 담배’란 광고 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내걸었다. 심지어 미국 의학협회지에도 담배 광고가 실릴 정도였다. 방사선의 위험성을 몰랐던 사람들은 딱 맞는 구두를 찾기 위해 엑스레이로 발 크기를 쟀다. 지금은 사라진 소아마비는 1950년대 미국에서 해마다 3만, 4만 명의 환자를 발생시켰다. 
 
1950년대 미국의 성() 관념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과 달랐다. 인디애나 주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21세 이하의 남성에게 자위행위를 유발하는 행동에 대해 최고 14년의 징역형을 구형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여배우들은 귀걸이를 빼고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풀고 나면 어김없이 옆방이나 화면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결국은 발목 위로 떨어지는 옷이나 욕조로 들어서는 발을 보여주는 정도가 ‘최고 수위’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사상은 반공주의였다. 미국인들은 낚시 허가를 얻거나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기 위해서도 반공 서약을 해야 했다. 반공주의 사상의 중심에는 당시 공화당 상원 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가 있었다. 매카시는 “국무부에 근무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결국 36일 동안 TV로 중계된 청문회에서 허구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반공주의는 무소불위의 사상이었다. 1950년대 미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저축 스탬프’라는 것을 사서 공책에 붙이게 했다. 스탬프 판매 대금을 모아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미래 예측은 생사의 문제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50여 년 전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미국의 모습을 살펴보면 ‘과연 그럴 수가 있었을까’ 싶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50년, 아니 10년이나 20년 후는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도 1950년대 미국의 생활상처럼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개인 차원에서는 이런 물음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얼마나 많은 전기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하게 될까? 직장으로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 사라지면 서울과 수도권이 공동화되지는 않을까? 자동 번역기의 성능이 완벽해져서 더 이상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지진 않을까? 이런 모든 의문과 어떤 산업이 흥하고, 어떤 산업이 망할 것인지는 지금의 변화 속도를 감안할 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전략적 문제다.
 
1950년대에도 미래를 잘 내다봐 성공한 기업이 있었다. 1950년대 초 월트 디즈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무려 40km나 떨어진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를 짓겠다고 결정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가 단순히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그렇게 먼 곳까지 간다는 말인가?” 그러나 1955년 문을 연 디즈니랜드는 불과 2년 만에 입장객 450만 명을 돌파했다. 월트 디즈니는 주먹구구가 아니라 지금도 미래 예측으로 유명한 스탠퍼드연구소의 해리슨 프라이스 박사를 고용해 최적의 입지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디즈니는 당시 10년 만에 2배나 증가한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통한 홍보라는 2가지 시대 조류도 천재적으로 이용했다.
 
한편으로 기업은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거란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현재 에너지원의 61%를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는 태양열, 풍력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불구하고, 20년 후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58%)를 차지할 전망이다. 다만 지금까지 육상에서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석유나 가스 채굴을 위해서 앞으로는 극지나 심해로 가야 할 거란 점이 변화라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기업은 현재 사업의 효율성 추구보다 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산업과 경제의 변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틀에서 경제와 산업을 이해하고 창의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영진도 관리 중심의 사고를 전략·기획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산업자원부에서 국제통상 업무를 담당했다. 공인회계사이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베인&컴퍼니 도쿄 및 시드니 오피스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 오피스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금융, 중공업, 인수합병(M&A) 및 인수 후 통합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김정수 |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jungsu.kim@gscalt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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