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커피를 좋아하시나요?

4호 (2008년 3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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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을 명예퇴직한 김모 씨는 회사 부근 지하상가에 커피전문점을 차리기 위해 시장조사에 나섰다. 우선 그는 기본부터 착실히 한다는 의미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해 설문조사를 해 봤다. 설문 문항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와 마시기 좋은 온도, 선호하는 매장의 인테리어 등으로 꼼꼼히 구성했다.
 
김 씨는 무려 3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하느라 부인과 함께 꽤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고생만큼이나 큰 성과가 있었다.
 
스타벅스도 알아채지 못한 틈새시장
설문조사에서 스타벅스도, 커피빈도 알아채지 못한 틈새시장(niche market)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 바로 이게 히트상품이다.’ 김 씨의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 온도는 바로 49도였다.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미지근한 커피…. 사람들은 의외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커피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미지근한 커피’를 대표상품으로 가게를 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김 씨의 가게는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임대료를 내지 못할 형편에 이르게 됐다.
어디가 잘못이었을까? 가장 큰 실수는 김 씨가 설문조사 결과의 ‘평균(average)’만을 분석했다는 데 있었다. 절반의 사람들은 90도 이상의 뜨거운 커피를, 나머지 사람들은 5도의 냉커피를 선호했던 것인데 김씨가 평균만을 보고 잘못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먼저
어떻게 하면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었을까? 만 일 김 씨가 300명을 대상으로 객관식 설문조사를 하기에 앞서 단 10명의 커피 구매자와 대화를 나누고, 단 1시간만 스타벅스 계산대 앞에서 구매패턴을 지켜봤더라면 명예퇴직금을 아깝게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서 말한 과정을 거쳤다면 통계숫자를 보았을 때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 씨에게는‘평균’과 같은 통계적 숫자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시장에 대한 이해 및 통찰력을 갖기 위한 노력과, 이를 통한 직관력(intuition)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해와 통찰력, 그리고 경험은 복잡한 사유와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직관의 토대가 된다.
 
물론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라고 하는 통계학적 개념을 이용해서 이런 오류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통계분석도 직관처럼 빠른 시간 안에 명확한 판단을 내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는 직관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직관을 검증하기 위한 수단이란 표현이 더 맞다.
 
표준편차 900만원… So what?
필자가 모 신용카드 회사를 위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국내 카드사들은 수익의 80% 이상을 현금서비스에서 얻고 있었다. 우리는 이처럼 기여도가 큰 현금서비스의 이용패턴부터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 3만여 명의 방대한 표본 데이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6개월 평균 1인당 현금서비스 이용금액은 480만원.’
물론 김 씨와 같은 오류를 피하기 위해 표준편차도 계산했다. 표준편차는 900만 원이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So what?) 이 결과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이렇다할 시사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팀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자율이 비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일반 서민들이 은행권 소액대출의 대용품으로 현금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답이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과다한 부실채권을 보유하게 된 시중은행들은 신용대출 요건을 크게 강화했다. 일반 서민들은 단기 급전을 마련할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 상대적으로 발급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은행 소액대출의 대용품으로 쓰이게 된 것이었다.
 
직관은 사실 확인을 위한 가설 제공
이렇게까지 생각을 발전시키고 나니 짧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현금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는 고객들은 현금이 급한 사람들이다. 매월 사용금액을 결제해야 하는 신용카드의 특성상 이들은 2∼3개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의 현금 수요는 매월 예측 가능하며, 반복적이지 않을까?
 
필자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 데이터로 그래프를 그려 봤다. 놀랍게도 6개월 현금서비스 사용금액이 1200만 원, 3000만 원, 3600만 원 등 한도액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들이 고액 사용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즉, 현금서비스 한도를 모두 사용하는 고객이 카드사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많은 전략적 시사점이 도출됐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즉 직관은 어떤 사실을 검증하기 위한 가설을 제공해 준다. 가설을 수립해 검증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시행착오와 작업에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컨설팅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직관적 판단이었다. 이 책 ‘직관의 힘(The Power of Intuition)’은 다양한 측면에서 직관의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 주며, 어떻게 직관력을 키울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필자는 산업자원부 사무관으로 국제통상 및 기획예산담당으로 일하다 2001년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금융, 소비재, 물류 부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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