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감가상각하다니…네슬레, 기계적 재무평가로‘ 망신 ’

2호 (2008년 2월 Issue 1)

 
 

 
기업 합병 마스터하기
데어비드하딩(David Harding)샘로빗(Sam Rovit) 2004
와인으로 유명한 미국 나파밸리에 갔을 때, 수많은 와이너리(winery) 중에서도 베린저(Beringer)라는 곳을 맨 먼저 찾아 갔었다. 예전에 읽은 ‘기업 합병 마스터하기(Mastering the Merger)’에서 베린저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이었다.
 
베린저는 원래 다국적 식품 회사인 네슬레의 계열사였다. 네슬레는 베린저의 수익성이 좋지 않다고 판단, 이 회사를 1996년 매각했다. 당시 매수자는 세계적인 사모 펀드인 TPG (Texas Pacific Group)였다. 그로부터 불과 5년 후, TPG는 투자 금액의 9배나 되는 수익을 거두며 이 회사를 매각할 수 있었다.
 
네슬레가 헐값에 팔아버린 와인 회사 
왜 같은 회사를 놓고 네슬레는 헐값 매각을, TPG는 매수 결정을 내렸을까? TPG는 어떻게 베린저의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수익성 평가 기준의 차이 때문이었다.
 
네슬레는 계열사들의 수익성 평가 기준으로 총자산이익률(ROA·Return on Asset)을 채택했다. 모든 계열사에 일괄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으며, 그 결과 베린저의 수익성이 매우 나쁘다고 판단했다.
 
ROA는 일반적으로 매우 유용한 수익성 지표다. 하지만 네슬레가 와인을 만드는 사업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이 기준을 적용한 것이 문제였다. 다소 기술적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ROA는 이익을 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ROA=이익/자산),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 대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회계 지표다. 이 값이 높을수록 작은 규모의 자산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산은 해가 지날수록 그 가치가 하락한다.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평가액이 매년 떨어지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이를 감가상각(depreciation)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감가상각이 ROA에 많은 영향을 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의 가격이 하락할 뿐만 아니라, 이를 커버하기 위한 비용증가로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숙성될수록 가격 올라
하지만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고자산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숙성을 통해 가격이 상승하는 매우 예외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판매가 되지 않고 나무통에 숙성 중인 와인이라 할지라도 매년 가치 증가분만큼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자산의 증가분과 이익의 증가분을 ROA 계산에 있어 각각 분모와 분자에 더해줄 수 있을까? 현행 회계기준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회계학의 보수주의 때문이다. 보수주의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항상 이익을 낮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는 일종의 관습이다. 이에 따르면 감가상각 ‘비용’은 발생 즉시 인식하되, 재고자산 가치상승에 따른 ‘수익’은 판매를 통해 확정될 때까지 수익으로 인식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네슬레는 ROA를 일률적으로 와인 산업에 적용했을 때 나무통에서 숙성중인 와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제로는 수익성이 좋은 베린저를 매각 대상으로 분류하게 된 것이다. 반면 TPG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현금유출입(cash-in/cash-out)이라는 평가 방법을 적용했고, 이를 통해 베린저의 수익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
 
 기계적 재무평가의 함정
기업을 파악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재무제표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평가 방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재무제표 분석을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이자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는 재무 건전성 파악에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산업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 재무제표를 분석해서는 이를 파악할 수가 없다. 같은 이자 비용이라도 금융업의 이자 비용은 ‘영업비용’이고, 제조업의 이자 비용은 ‘영업외비용’이다. 건설업의 경우 아파트 건설을 위한 차입금 이자비용은 재고자산의 취득원가, 즉 ‘재고자산’으로 분류한다.
결론적으로 베린저의 사례는 재무제표의 분석에 있어 해당 업종의 특성과 회계처리 방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유용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59호 Agile Transformation 2018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