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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문과생도 클라우드 엔지니어 될 수 있나요?”

김윤진 | 280호 (2019년 9월 Issue 1)
처음 ‘클라우드’ 스페셜 리포트를 준비하게 됐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미래 먹거리라니, 이 기회에 내 먹거리부터 염탐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문·이과 사이에 담을 쳐 온, 그간 공교육의 폐해로 첨단 기술에 지레 겁부터 먹는 문외한들을 대표해 지식의 격차를 좁혀보겠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클라우드 관리서비스업체(MSP) 베스핀글로벌 이한주 대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필요한 클라우드 전문 인력은 약 30만 명, 공급은 2000여 명에 불과하다.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나날이 치솟고 있으니 몸값을 높일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표에게 “문과생은 클라우드 엔지니어가 될 수 없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리를 못 깨우쳐도 기술은 익히면 되니 별문제 없단다. 희망이 생겼다. IT 인프라가 클라우드화되는 과정에서 기존 시스템 엔지니어와 개발자들도 새로 배워야 하긴 마찬가지란다. 굴지의 대기업마저 공용 클라우드로 눈길을 돌리면서 대기업 시스템 통합(SI) 엔지니어들도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다.

용기를 얻어 클라우드 엔지니어 입문 단계를 찾아봤다. 당연히 데이터를 다루고 가공해야 하니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 같은 최소한의 컴퓨터 언어는 익혀야 한다. 여기에 시장의 52%를 독식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주관 클라우드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면 금상첨화다. 국내에서는 클라우드 인재 사관학교를 표방하는 베스핀글로벌아카데미에 들어가 역량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클라우드에 대해 취재하면 할수록 클라우드 시대의 경쟁력이 결코 ‘기술’에 있지 않다는 게 또렷해졌다. 기술은 학원에서 배우면 되고 자격증은 따면 되지만 그것만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국내 방송 사업자 중 최초로 클라우드를 도입한 SBS의 박종진 SBS I&M 플랫폼사업실장은 시종일관 기술이 아닌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클라우드 이전의 성패는 ‘데브옵스(DevOps)’ 조직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빠르게 변하는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발자(Developer)든, 시스템 안정을 추구하는 엔지니어(Operator)든 직군의 경계를 초월해 협업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다. 기술 자체보다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내 영역이 아닌 업무도 기꺼이 끌어안고 시도해보는 태도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개발과 운영 업무로 동시에 뛰어든 SBS의 데브옵스 인재들은 한때 ‘관종(관심종자)’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훨씬 높은 몸값에 다른 기업들로 스카우트됐다.

최근 5G 전쟁이 치열한 통신업계의 SK텔레콤은 아예 개발 조직과 별개의 인사(HR) 조직인 역량문화그룹을 두고 전사적인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도 결국엔 협업과 공유, 즉 일하는 문화의 혁신이다. 클라우드는 부서 간, 직군 간 칸막이를 없애고 고객 및 계열사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결국, 클라우드가 기업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직군을 파괴한 ‘융합형 인재’들의 등장이다. 피자 두 판만 시키면 되는 5명 안팎의 작은 데브옵스 조직으로도 파괴적 혁신이 가능해진 이유다. 한 우물을 진득하게 못 파고, 곁눈질해도 괜찮은 시대가 왔다. 이번 클라우드를 공부하면서 배운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도, 물리적인 네트워크 장비를 다루는 법도, 통신기술도 아니다. 클라우드는 이미 기술이 아닌 문화이고, 문화를 익히는 데 있어 문·이과의 구분은 없다는 것이다. 클라우드형 인재로의 변신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그건 심리적 장벽뿐이다. 마음을 열어보자. 구름에 올라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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