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김영민의 『논어』란 무엇인가

孝弟와 治國이 갈등관계 아님을 천명한 까닭

김영민 | 279호 (2019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 가르침은 『논어』에서도 중요한 내용으로 다뤄진다. 이는 곧 인(仁)을 실천하는 일의 근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논어』에서 다뤄지는 효(孝), 제(弟·悌), 인(仁), 도(道)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논어』의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에는 수많은 해석이 있어왔다. 크게 비정치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으로 나뉘는데, 한 가지 재밌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손윗사람에게 공경스럽게 대하는 자세가 모든 인간관계에 근본임을 가르쳐주고 있다기보다는 가족과 국가의 관계를 하나의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어』를 현시대 관점이 아닌 ‘논어의 시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재미가 큰 대목이다.


그의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데, 윗사람에게 덤비기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 터이다. 윗사람에게 덤비기 좋아하지 않는데 난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본 적이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인(仁)을 실천하는 일의 근본일 것이다.(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해설 5: 가족의 정치적 의미
어법상의 논란 1: 문형의 문제
먼저 ‘기위인야효제(其爲人也孝弟)’라는 첫 문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는 고대 중국어에 나오는 ‘주어(명사/대명사+爲+명사)+也+형용사 술어’의 문형을 따른 것이다. 1 즉 ‘명사(혹은 대명사)+위(爲)+명사’로 이뤄지는 절이, 야(也)라는 주어를 나타내는 조사와 결합해 주어절을 이루고, 뒤이어 나오는 형용사가 그 주어의 성격을 묘사하는 문형의 한 예다. 이러한 문형을 취한 다른 예는 『한비자, 오두(五蠹)』에서 찾을 수 있다. “전지위사야위(戰之爲事也危, 전쟁의 성격은 위태로움이다)”가 있다.

‘기위인야효제’ 문장과 ‘전지위사야위’ 문장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爲+명사’ 표현법을 쓴다는 점이다. 위인(爲人), 위사(爲事)처럼 ‘爲+명사’가 결합하면 그 명사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에 쓰인 ‘위’는 ‘되다’라는 뜻이기에 ‘위인’은 ‘사람됨’, ‘위사’는 ‘일됨’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오늘날 사람됨이란 표현이 해당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해서 고대 중국에서도 그러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고대 중국에서 ‘위인’이라는 표현은 용모 역시 지칭할 수 있었다. 예컨대, 『사기, 고조기(高祖紀)』에 나오는 ‘고조위인 융준이용안(高祖爲人 隆準而龍顔, 고조의 용모는 콧날이 우뚝했고 용안이었다)’라는 문장을 보라. 2 여기에 나오는 ‘위인(爲人)은 용모를 지칭한다.



어법상의 논란 2: 조사의 문제
이번 회에서 다루는 『논어』 문장들에는 기(其)라는 글자가 두 번 나온다. 그중 ‘기위인야효제(其爲人也孝弟)’에 나오는 ‘기’는 대명사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번역자들 간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기위인지본여(其爲仁之本與)’에 나오는 ‘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아래는 ‘기위인야효제’에 나오는 ‘기’처럼 ‘기위인지본여’에 나오는 ‘기’ 역시 대명사라고 간주하고 번역했다고 판단되는 사례들이다(밑줄은 번역자가 아니라 필자가 친 것).


강동석 번역본: 그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3
성백효 번역본: 그 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4
이상임 번역본: 그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5
임동석 번역본: 그 인仁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근본이로다! 6
조명화 번역본: 그것은 아마도 仁을 완성하는 바탕일 것이다. 7


그런데 ‘기위인지본여’의 ‘기’는 ‘기(其)…여(與) 문형’의 일부로 사용된 ‘기’로서, 대명사가 아니다. 즉, 여기서 ‘기’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문미의 ‘여’와 호응해 추정, 의문, 감탄 등의 어기(語氣)를 나타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존 주석들은 이 어기가 갖는 함의를 어떻게 봤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른 두 가지 견해가 주목된다.

첫째, “예(禮)는 겸퇴(謙退), 겸양(謙讓)을 중시(重視)하니 감히 질언(質言, 단정해 말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與)’라고 한 것이다.(禮尙謙退, 不敢質言, 故雲與也.)” 8 이 견해는 대다수의 논어 번역자가 따르고 있다. 기(其)…여(與) 문형이 추정의 뜻을 전하는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 용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견해는 자연스럽다.

둘째, 정약용은 이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추가했다. “‘여(與)’라는 것은 의문사인데 그 이치에 아무 의문이 없는데도 ‘여’라고 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믿으려고 하지 않음을 기롱한 것이니, 그 말은 풍자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與者, 疑辭. 其理無疑,而謂之與者,譏時人未之信也.其辭,若含諷然.)” 9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정약용의 이러한 해석은 흥미로운 추정 이상의 것이 아니다.

문미의 조사 중에서 또 주목할 만한 것은 ‘호범상자, 선의(好犯上者, 鮮矣)’에 나오는 ‘의(矣)’이다. 먼저 이을호의 번역을 살펴보자. ‘윗사람에게 함부로 굴지 않는 사람이 난리를 꾸민 예는 절대로 없다.’ 10 그런데 이 문장에 나오는 ‘선(鮮)’은 ‘드물다’는 뜻이지 ‘완전히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아·석고(爾雅·釋詁)』에서는 “선, 한야(鮮,罕也)”라고 했고, 주희 역시 『논어집주』에서 “선, 소야(鮮, 少也)”라고 말한 바 있다. 즉, 거의 예외 없이 주석가들은 ‘선’을 ‘드물다’로 해석해 왔다. 그렇다면 왜 ‘선’을 ‘절대로 없다’고 해석해야 하는지 근거를 대지 않고 있는 이을호의 번역은 설득력이 없다. 아래와 같은 논의가 과거 주석사에 이미 존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점은 더욱 분명하다.


“혹자가 물었다. 그 사람됨이 효제하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가는 드물다’는 구절에 대해 회옹(주자)은 ‘드물다는 것은 적다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만약 드물다고 한다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니, (그렇다면) 효제하는 사람도 윗사람을 범할 뜻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잠실 진씨가 답했다. 효제하는 사람은 그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워 비록 아직 학문을 하지 않았더라도 원래 세속의 거칠고 난폭한 그런 기상은 없어서, 어쩌다 (윗사람을 범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종내 보기 드물고 거칠고 난폭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임을 보장할 수 있다. 효제하는 사람은 좋은 점은 많고 좋지 않은 점은 적다는 말이다.(或問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 晦翁謂鮮是少若說鮮矣, 則未以爲絶無. 孝弟之人猶有犯上之意邪. 潛室陳氏曰, 孝弟之人資質粹美, 雖未嘗學問, 自是無世俗一等麄暴氣象, 縱是有之終是罕見, 到得麄惡大過可保其決無. 言孝弟之人占得好處多不好處少.)” 11


이을호의 번역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는 ‘적다’는 말이 가진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 뉘앙스가 실종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왜 이을호는 선을 ‘드물다’라고 번역하지 않고 ‘절대로 없다’라고 애써 강조했을까? 그것은 혹시 ‘의(矣)’라는 종결어미 때문이 아닐까? 실로 ‘의’는 다른 종결어미에 비해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종결어미다. 그런 점에서 “의(矣)는 종결어미로 문장의 마침표라고 보면 된다” 12 라고 한 윤재근의 말은 무리가 있다. ‘의’에는 마침표 이상의 강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역상의 관건은 ‘선’이 갖는 삼가 말하기의 뉘앙스와 ‘의’가 갖는 단호함의 뉘앙스를 동시에 살려서 번역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현행 『논어』 한국어 번역은 ‘의’를 단순한 종지어로 본 나머지, 번역문에 단호함을 담지 않는다. 반면, 이을호는 단호함을 강조한 나머지 ‘선’을 아예 없다고 번역했으니 오역의 소지가 있다. 고민 끝에, 여기서는 ‘선의’를 ‘드물 터이다’로 번역했다.

마지막으로, ‘호작난자 미지유야(好作亂者, 未之有也)’에 나오는 미지유(未之有)라는 표현을 검토해 보자. 이에 관련해 배병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윗사람을 능멸한다’ ‘분란을 일으킨다’라는 표현에 깃들인 과장법, ‘없다(未有)’라고 하면 될 걸 ‘있을 턱이 없다(未之有)’라고 하는 강조법, 근본(本)과 말절(末)로 나누는 이분법, 그리고 효와 공손이라는 실천(구체)적 언어를 인(仁)이라는 포괄적 언어에다 곧바로 연결시켜버리는 무모함 등이 이 장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유약은 세계를 흑백논리로 구획하고 그 가운데서도 기성(旣成)의 관점에 서서 상대편을 억압하는 ‘권력적’ 담론을 구사하는 것 같다.” 13


이 논의에 따르면 ‘미지유’는 미유(未有)와는 달리 강조하는 표현이며, 그러한 표현의 사용은 위 문장을 권력적 담론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미지유’에 들어간 ‘지(之)’는 도치법에 사용된 ‘지’에 불과하다. 고대 중국어에서 부정문이 대명사를 목적어로 가질 때는 해당 대명사가 도치되는 패턴을 보인다. 따라서 ‘지’의 존재 여부는 강조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다. 결과적으로 위 문장은 소위 ‘권력적 담론’과는 관계없다. 다른 한편, 최근덕은 ‘미지유’를 ‘있을 수 없다’라고 번역하고 14 강동석은 ‘있지 않다’라고 번역했는데 15 미(未)가 가진 시간적 요소를 감안하면 ‘있어 본 적이 없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상의 논란 1: 범상(犯上)과 작란(作亂)
범상(犯上)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문답이 실마리를 준다.


“물었다. 부모에게 간언하다가 혹 부모의 노여움을 사는 것, 이는 범하는 것 아닙니까? 답했다. 이(간언하는 것)는 효의 내부의 일(효에 포함된 일)이니 어찌 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간언할 때는 또 스스로 기를 낮추고 안색을 화기롭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간언해야 또한 능멸하고 범하지 않는 것이다.(問人子之諫父母或貽父母之怒, 此不爲幹犯否. 曰此是孝裏面事. 安得爲犯. 然諫時又自下氣怡色柔聲以諫, 亦非淩犯也.)” 16


이러한 문답을 통해 미뤄본다면 단지 태도의 부적절함에 의해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범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범상이란 위계 자체를 침해하는 성격을 지닌 행위인 것이다. 한편, 주희는 그 정도에 관계없이 윗사람을 거스르면 곧 범상이라고 봤다.


“주자가 말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어기는 것이 있으면 곧 윗사람을 범하는 것이지 꼭 능멸하고 거스르는 것에 이르러야 범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른을 제치고 앞서 빨리 가는 것도 윗사람을 범하는 것이다.(朱子曰, 只少有拂戾便是犯上, 不必至淩犯乃爲犯. 如疾行先長亦是犯上.)” 17


여기서 윗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군주와 부모만을 가리킨다는 주장과 윗사람 일반을 모두 가리킨다는 주장이 병립하고 있다.


정의일(正義曰) : 황씨(皇氏)와 웅씨(熊氏)는 “상(上)은 군친(君親)을 이르고, 범(犯)은 범안간쟁(犯顔諫爭, 윗사람이 싫어하는 안색을 짓는데도 개의치 않고 간함)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주(注)를 살펴보면 “상(上)은 모든 재상자(在上者)를 이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황씨(皇氏)와 웅씨(熊氏)의 설(說)은 주(注)의 뜻과 어긋나니, 그 뜻이 옳지 않은 듯하다.(皇氏熊氏以爲上謂君親,犯謂犯顔諫爭今案注雲, 上謂凡在己上者, 則皇氏熊氏違背注意, 其義恐非也.) 18


‘범상’이 위계를 침해하는 성격을 지닌 행위라고 할 때, 그 행위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선제적으로 취하는 조치일까, 아니면 윗사람의 적극적인 억압 행위에 대한 대응 조치일까? ‘범상’이 뒤에 이어지는 ‘작란(作亂)’이라는 적극적인 정치질서 교란 행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범상하고 작란하는 이의 선제적 의도가 전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이 이른바 ‘봉건’질서가 와해되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도 들어맞는다. 최영갑은 ‘범(犯)’을 ‘대항하다’로 번역하는데 19 대항이란 윗사람의 선제성을 전제하는 것이어서 적절한 번역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작란’은 무엇인가? 먼저 현행 『논어』 한국어 번역본 중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윗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도리나 규범을 어지럽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20

“사람 됨됨이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들에게 공손하면서 걸핏하면 윗사람에게 대거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에게 대거리하기를 반대하면서 툭하면 공동체에서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21


위 번역들에서 작란은 ‘도리나 규범을 어지럽히기’ 혹은 ‘공동체에서 혼란을 부추기기’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한문에서 ‘작란’은 단순히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 질서를 교란한다’ 혹은 ‘반역한다’는 의미다. 현행 『논어』가 편집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 때 용례로는 『사기·오제본기(史記·五帝本紀)』에 나오는 ‘치우가 반란을 일으켰다(蚩尤作亂)’라는 문장을 들 수 있고, 남송 시기 주석가인 주희 역시 『논어집주』에서 ‘작란이란 패역 쟁투의 일이다(作亂則爲悖逆爭鬪之事矣)’라고 풀이했으며, 주희의 사서 해석에 많은 이의를 제기했던 정약용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해, 전통적인 ‘작란’ 정의를 따랐다.



작란(作亂)은 시역(試逆)과 반역(反逆)으로 난을 일으키는 것을 이른다. 춘추시대에 난을 일으킨 자가 많았는데, 그 당시 군주들이 이를 근심하면서도 구약(救藥)할 방법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자가 이 말을 하였다.(作亂,謂弒逆責逆以起難也麵之時, 作亂者多, 時君憂之, 而不知所以救藥之術, 故有子爲此言.) 22


의미상의 논란 2: 인(仁)과 도(道)
이번 회에서 다루는 『논어』 구절에는 효(孝), 제(弟·悌), 인(仁), 도(道) 등의 개념이 『논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역대 주석가들과 번역자들은 이러한 개념들이 갖는 의미와 상호 관계에 대한 해설에 주력했다. 그중 특히 주목돼 온 것은 이러한 개념들이 갖는 형이상학적 차원이었다. 실로, 오늘날 적지 않은 독자들과 학자들은 ‘인’이나 ‘도’를 인간 본성에 관련된 심오한 이론이나 우주의 운행 원리에 대한 비밀을 담은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일반 독자뿐 아니라『논어』 번역과 해설을 시도한 학자들도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양차오밍(楊朝明)은 “여기에서는 추상적인 도덕의 개념으로 쓰였으며”라고 말하며 이러한 개념들이 갖는 추상성 혹은 형이상학적 성격을 명백히 한다. 23

이러한 경향은 최소한 성리학자들의 『논어』 해석으로까지 소급할 수 있다. 정이와 주희 같은 성리학 이론가들은 ‘인’을 형이상학적 원리로 간주하고, 효제는 그러한 원리를 실천하는 사안이라고 간주한다.(仁是性也, 孝弟是用也.) 그러나 정이와 주희의 이론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정약용은 효제(孝悌)와 인(仁)을 형이상학적 체계를 통해 구별하거나 관계 짓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는 마지막 문장에 쓰인 ‘위(爲)’를 ‘실천하다/(행)하다’로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이다/되다’로 번역한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위’의 번역 문제는 그 목적어인 ‘인’의 성격을 결정하는 문제이기에 간단하지 않다.

‘위’를 ‘행하다/실천하다’로 풀이하면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는 “효제는 ‘인’을 행하는/실천하는 일의 근본일 것이다”로 번역되며, 이를 통해 ‘효제=인을 행하는/실천하는 근본’이라는 이해가 성립한다. ‘위’를 ‘이다/되다’로 풀이하면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는 “효제는 仁(됨)의 근본일 것이다”로 번역되며, 이를 통해 ‘효제=인의 근본’이라는 이해가 성립한다. ‘효제=인을 행하는/실천하는 근본’이라는 이해 속에서는 효제가 (인을 행하는 일과 동일시될 뿐) 인 그 자체와는 동일시되지 않기 때문에 인은 형이상학적 원리가 돼도 무방하다. ‘효제=인의 근본’이라는 이해 속에서는, 효제가 인 그 자체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인’은 형이상학적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 혹은 그에 상응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효제가 형이상학적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 혹은 그에 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길을 간 것이 정이와 주희와 같은 성리학 이론가들이다. 주자의 집주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仁)이란 사랑의 이(理)이고, 심(心)의 덕(德)이다. 위인(爲仁)이란 인(仁)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仁者, 愛之理, 心之德也. 爲仁, 猶曰行仁.)’ 『논어』를 영역한 제임스 레기(James Legge)가 이 부분을 “benevolent actions”라고 번역한 것도 이와 같은 주희의 주석을 반영한 결과다. 반면, 위인(爲仁)을 ‘인이다’라고 번역하면, 거기서 인은 얼마든지 형이상학적 원리로 간주될 수 있다. 이 후자의 길을 간 대표적 주석가가 황간(皇侃), 형병(邢昺), 정약용 등이다.

위(爲)가 아예 없는 『논어』 판본도 있다. 그리고 유월(兪樾)의 『논어평의(論語平議)』 같은 경우는 위인(爲仁)의 ‘위’를 허사로 보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위’를 불필요한 글자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법상 ‘이다/되다’로 쓰이는 ‘위’는 생략 가능하지만 ‘실천하다/행하다’로 쓰이는 ‘위’는 생략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우들은 정이나 주희의 해석에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 문제가 도(道) 개념에 대해서도 생긴다. 오늘날 사람들은 도를 심오한 형이상학적 실체로 이해하기 쉽지만 고대 중국에서 도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행동 방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임스 레기(James Legge)가 도를 “all practical courses”라고 번역한 것은 그가 도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실천적 차원에서 취해야 할 길 정도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24

지금까지 논한 사안은 성리학 계통의『논어』 이해와 비(非)성리학 계통의 『논어』 이해의 차이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로, 향후 다른 구절을 해설할 때 좀 더 부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리민샤오(李旻曉)는 “《논어(論語)》효의 논술과 당대 의의에 관하여(關於“孝”的論述及其當代意義, 2016)”라는 논문에서 『논어』에 나오는 효에 대한 언명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바 있다. 25 그에 따르면, 『논어』에 나오는 효 관련 언명은 총체적 표준(總體標准)으로서 제시된 효, 공경과 부모를 섬김(恭敬事親)의 차원에서 제시된 효, 끊임없는 계승(繼繼承承)으로서의 효, 제례와 상례 지내기(祭祀守孝) 등의 효로 나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효를 형이상학적으로 탐구한 것처럼 보이는 언명은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효를 형이상학 체계와 연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일은 성리학 이후의 현상이므로 일단 여기서는 고대 세계의 효라는 차원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의미상의 논란 3: 효(孝)와 제(弟)
『논어』에서 효(孝)와 제(弟)는 종종 함께 쓰인다.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나가면 윗사람을 공경한다(弟子入則孝, 出則弟.)” 26

“일가친척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마을 사람들이 윗사람을 공경한다고 칭찬한다(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27

그러면 효(孝)와 제(弟)는 어떤 차원에서 함께 거론될 수 있고, 또 어떤 차원에서는 구별되는가? 가장 이른 한자 사전 중 하나인 『이아·석훈(爾雅·釋訓)』은 효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부모에게 잘하는 것이 효다.(善父母爲孝)’ 28 효에 대한 이와 같이 범박한 정의는 현행 『논어』 한국어 번역본들 속에도 통용되고 있다. 현행 한국어 『논어』 번역 및 해설에서 쟁점이 되곤 하는 것은 효(孝)라기보다는 제(弟)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弟)와 제(悌)는 같은 뜻으로 두 글자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후대에는 ‘제(悌)’가 주로 사용됐다. 쟁점은 제가 과연 위계적 혹은 수직적 의미를 가진 개념인지, 아니면 수평적 의미를 가진 개념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에 관련해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효(孝)는 분명 부모와 자식 간의 덕목이다. 그것은 종적(vertical)이다. 제(弟)는 황본, 정평본에는 다 ‘제(悌)’로 돼 있는데 형제간, 그리고 좀 외연을 넓히면 평배(平輩) 상하 간의 덕목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횡적(horizontal)이다. 제(弟)는 횡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공손함’(fraternal submission, 레게Legge 역)을 나타내는 일반적 덕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29

사진

효와 제의 차이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을 제공하지 않아도 제(弟)에 대한 특정 번역들은 수평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홍승직, 30 차주환, 31 이기석/한백우, 이기석·한백우, 32 한필훈 33 등은 제를 ‘우애’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들은 제에 관련된 당사자 간의 수평적 혹은 비위계적 관계를 암시하는 번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DC Lau는 “obedient as a young man”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러한 번역어에는 위계적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34 『논어』의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의 전반적인 취지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제(弟)가 가질 수도 있는 수평적인 의미보다 연장자 역시 위계상 위에 존재하는 이로 보고 그에 대한 공경을 강조한 개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논어』 이 부분의 전반적 취지란 무엇인가?


해석상의 논란 1: 비정치적 해석 대 정치적 해석
『논어』의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의 전반적 취지에 대한 해석은 비정치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비정치적 해석의 사례를 살펴보자.


“여기에서는 유가 사상의 윤리적 성격의 일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이나 윗사람들에 대한 공순을 강조한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부모와 자식 또는 아우와 형의 관계가 사회질서의 기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성스런 마음과 공순한 몸가짐을 그대로 사회에 확충해 나가면 모든 질서가 이룩되고 사람들이 ‘어짊’의 경지에 이르게 될 거라는 것이다.” 35


위와 같은 해석은 광범위하게 발견되는데 종종 ‘윤리적’ 해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해석을 적극적인 ‘정치적’ 해석과 대별하기 위해 편의상 비정치적 해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른바 비정치적 해석은 한국 학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효제(孝弟)’, 곧 어버이와 윗사람에 대한 착한 마음은 ‘인(仁)’, 즉 널리 인간에 대한 사랑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이 장의 대략적인 뜻이다. 요시가와는 유가 사상에서는 핏줄로써 연결되는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선의(善意), 그것이 바로 널리 인간에 대한 선의의 출발점이라고 했으며 이 장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36

이와 같은 박유리의 언급이 보여주듯이 이 점에 관한 한 상당수 한국어 담론이나 해외 담론이나 큰 차이가 없다.

이번 회에서 다루는 『논어』 문장, 특히 효제와 가족에 대한 비정치적 이해가 전제하는 것은 개인과 가족 간의 갈등, 국가와 가족 간의 갈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부남철은 해당 구절을 해설하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첫 번째로 소속되는 공동체가 가족이다. 가족은 피와 운명을 같이하는 식구이기에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사랑하는 일은 조금만 노력해도 가능하다” 37 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개인과 가족 간의 잠재적 갈등은 ‘조금만 노력해도’ 해소될 만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개인, 가족, 국가 간의 관계가 그처럼 갈등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족이란 그토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안식처이기만 할까? 가족이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자연스러운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의 가족 비판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상당수의 페미니스트들이 가족을 번영의 기제라기보다는 억압의 기제로 파악해왔다. 38 페미니스트의 가족 비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가족이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가족의 형성과 유지는 인간 본성에 달린 문제라기보다는 역사적 조건과 정치·경제적 이해에 달려 있다는 취지의 역사적 연구는 많이 있다. 39 “자연적인 성질을 가졌다고 선전하는 신개발품 가루비누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이상으로, 가족은 전혀 ‘생물학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가족이 생물학적 재생산의 자연적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가족을 자연이 발동한 그 무엇으로 느낀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먹는 행위는 부인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적이지만 누구도 레스토랑이나 식료품점을 자연적이라 하지 않는다.” 40

사정이 이러하다면 『논어』의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에 대해서도 좀 더 정치적인 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이 문장들에 나오는 효제 및 가족 관념에 대해서 정치적 해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5.4 신문화운동 이래 많은 이가 효 혹은 연장자 공경 혹은 가족주의를 전제주의의 일환으로 간주해왔다. 41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성립한 이후에는 가족이란 사회의 세포로서, 그 세포가 기초의 역할을 잘해야 보다 큰 사회 질서가 이뤄지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의 실현을 할 수 있다고 본 해석이 다수 있다. 42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해석은 당대의 정치적 의제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 대해 역사적 접근을 취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한층 더 역사적인 해석을 향하여 43

앞서 예문에서 김학주는 현재 다루고 있는 『논어』 문장이 ‘유가 사상의 윤리적 성격’ 44 )을 드러내 준다고 했는데 그러한 견해는 종종 효제를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삼는 태도가 이른바 유가 사상의 핵심이라고 가정한다. 이를테면 배병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는 문장은 요컨대 ‘효도와 공손(孝弟)에 유교 문명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선언에 진배없다. 2500년을 전해오는 유교의 가(家)에 대한 중시와 또 여기서 파생된 효제의 윤리에 대한 강조는 이 장에서부터 흘러나온 샘물이다.” 45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효제는 가족 중시의 경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시대를 초월한 유교의 특성이며, 그러한 특성은 다름 아닌 『논어』의 이 단락에서 발원했다.

그러나 효제와 같은 덕목은 소위 유교의 텍스트로 간주되지 않는 다른 텍스트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상이기에 유교만의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관자(管子), 계(戒)』에는 “효도와 연장자 공경은 인의 뿌리이다(孝弟者,仁之祖也)”와 같은 언급이 나오며 공자 및 그의 추종자들의 경향과 대척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진(秦)나라의 법률에서마저 효의 덕목은 인정되고 있다. 46 그뿐 아니라 효도나 가족에 대한 강조는 소위 동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널리 존재해 온 경향이다. 47 그렇다면 효도나 가족 중시는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보편적인 것일까? 실제 심경호는 『논어』의 이 단락을 해설하면서 “공자와 그 제자 및 이후의 유학자들은 효제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자 인간이 실천해야 할 바른 도리라고 봤다” 48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논어』에서 효제를 인간 본성(性)과 연결해서 논한 부분은 없다. 그렇다면 효제나 가족 중시를 소위 유교가 독점하는 특성 혹은 인간 본성에 뿌리박은 경향으로 성급히 규정하지 말고 역사 속에서 효제와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49


그런 맥락에서 효 개념의 역사적 의미 변화의 일단을 살펴보자. 효는 적어도 서주(西周) 시기(기원전 11세기 기원전 771년)까지로 소급될 수 있는 개념, 즉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다. 서주 시기 청동기 명문(銘文)에 나타난 효라는 글자는 대체로 부모나 조상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경(書經)』에 나오는 효 개념은 효가 부모나 조상을 보살핀다는 뜻과 그에 관련된 의무의 뜻을 종종 담는다. 50 상(商)나라 때 효, 즉 제물을 바치는 일은 먼 조상까지 포함하는 일이었으나 51 서주 시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직접적 관계를 맺는 부모, 혹은 조부모 등으로 효의 대상이 한층 더 국한된다. 52 다른 한편, 전국(戰國)시대(기원전 453∼기원전 221)로 향해 갈수록 제사에 밀접하게 관련된 효의 의미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부모에 대한 복종이라는 의미가 보다 강화 53 이러한 점은 예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조상을 모아 묘당에서 집단적으로 제사 지내는 일이 줄어드는 한편 개인의 무덤에서 제사 지내는 일이 크게 늘어난다. 우홍(巫鸿)은 이러한 예제의 변화를 종족 조직의 쇠퇴, 그리고 개인과 가족의 사회적 중요성 증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연결한 바 있다. 54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라면 효 및 가족이 갖는 사회정치적 의미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윤재근은 해당 『논어』 구절을 해설하면서 “제 부모를 잘 모시고 집안 어른을 받드는 사람이 세상에 나아가 허튼짓을 할 리 없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들 효자가 어찌 남의 손가락질 받는 못난 인간이 되겠는가. 태초부터 효자가 못된 송아지처럼 된 적은 없다” 55 고 했는데 개인, 가족, 국가가 맺는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고대의 역사는 보여준다. 국가와 경쟁할 만한 정도의, 혹은 국가를 위협할 정도의, 거대한 종족집단이 존재할 경우, 종족 내 효의 강조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 반면, 가족이 소규모로 파편화된 상태에서는 효에 대한 강조가 곧 국가에 대한 위협이 되기는 어렵다.

이번 회에서 다룬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라는 『논어』의 언명은, 가족 내에서 효라는 덕목에 충실한 이들은 가족을 넘어선 공적 장(예: 국가)에서도 바람직한 신민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종족집단이 해체돼가는 와중에 그러한 언명은 효가 갖는 의미를 국가의 이해관계와 양립 가능한 것으로 조정하는 함의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논어』의 다른 부분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충성이 긴장을 빚을 때 후자를 더 강조하는 듯한 언명 역시 존재한다. 즉, 『논어』의 세계는 가족보다 국가를 강화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기보다 가족을 중시하되 그것이 국가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대와 짧았던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면 『논어』 및 효가 한층 더 유행하게 된다. 효행을 실천한 이가 면세 혜택을 받기도 하고 56 『효경(孝經)』은 학교에서 다룰 첫 번째 텍스트로 선정된다. 그 과정에서 『논어』와 효경이 종종 연용되는 현상마저 생기는데 실로 효경 안에는 이번 회에서 다룬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의 취지와 공명하는 언명들이 적지 않게 있다. 57 그러나 이것이 곧 중국 제국에서 효라는 덕목이 늘 국가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방식으로만 구현됐다는 말은 아니다. 한나라 시절 효가 한층 강조된 때는, 바로 지방의 거대한 가문들의 황실의 권력과 거의 맞먹는 상황이기도 했다. 황실은 각 가문의 무덤보다 황실의 가문을 더 중시하고 보살피라고 명령할 만한 권력이 없었다. 따라서 황실은 지방의 호족들의 힘에 밀려 타협해야만 했다. 검소와 효도라는 명분하에 각 지역 가문들은 황실의 묘당을 상대적으로 억압했다. 자기의 직접 조상이 아닌 대상에 제사를 지내는 관리나 지방 유력자는 소위 유교 사상의 핵심 원리인 효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58

이와 같이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이번 회에서 다룬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난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라는 『논어』 문장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손윗사람에게 공경스럽게 대하는 자세가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임을 가르쳐 59 주고 있다기보다는 가족과 국가의 관계를 하나의 의제로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효제와 치국(治國)이 갈등 관계에 있지 않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일부러 천명해야 할 필요는, 양자가 얼마든지 갈등 관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에서 왔을 것이다. 『논어』의 시대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필자소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imyoungmin@snu.ac.kr
필자는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 교수를 지냈다. 영문 저서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8)』가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