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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성, 드러내는 순간 사라져…
이제 가면을 벗어라

한근태 | 266호 (2019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여러분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가? 이 책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취약함을 당당하게 드러내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기쁨을 과소평가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감정을 차단하면서 스스로의 취약함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수치심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인정해야 비로소 자존감이 커진다.



늘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 얘기를 하지만 속으로 “저게 진실일까, 저 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항상 뭔가를 숨긴다는 느낌이다. 반대로 너무 과하게 친절한 사람도 종종 만난다. 자신의 남성적인 혹은 여성적인 면을 너무 과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이처럼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려는 행위들은 종종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가면으로 감춘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음가면』은 취약성에 관한 책이다. 약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취약성은 드러내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니까 괜히 가면을 쓰지 말고 떳떳하게 드러내고 사는 게 낫다. 온 마음을 다해 충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wholeheartedness라고 표현한다. 그 핵심은 바로 ‘취약해지기’와 ‘자아 존중하기’이다.

취약성에 대한 오해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그가 반드시 나를 사랑하리란 보장은 없다. 둘이 사랑해도 언젠가 이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랑을 하지 않거나 유보하는 건 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 취약성 관련한 질문을 던질 때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벌거벗은 느낌”이란 말이다. 무대 위에서 벌거벗은 느낌, 모두 옷을 입고 있는데 나 혼자만 벗은 느낌을 뜻한다. 취약함은 영어로 vulnerable이다. 어원은 라틴어 ‘상처 입다’란 뜻의 vulnerare에서 출발했다.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는,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을 수 있는’이란 뜻이다. 공격이나 상처를 견뎌낼 수 없다는 뜻의 나약함, weakness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신이 취약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 자신이 처한 위험과 노출 정도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은 건강하다. 취약성을 인정하는 게 핵심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수치심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취약성과 수치심은 함께 다닌다. 어둠을 탐색할 용기가 있어야 우리가 가진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편한 화제를 피하려 한다. 사실은 불편한 얘기를 해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지 못하는 것, 필요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는 것, 고객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못하는 것은 모두 수치심 때문이다. 틀리면 어쩌지, 망신당하면 어쩌지, 위축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치심이란 무엇일까? 관계가 끊어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어떤 결함 때문에 스스로를 사랑과 소속감을 느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모든 곳에 숨어 있다. 외모와 신체 이미지, 돈과 직업, 모성애와 부성애, 가족, 육아, 정신과 육체의 건강, 중독, 섹스, 노화, 종교, 트라우마, 편견 혹은 낙인 등이다. 임신한 아내에게 해고당한 사실을 말해야 할 때, 상사가 고객 앞에서 나를 바보라고 할 때, 짝을 찾지 못할 때, 성적이 나빠 퇴학당할 때,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 등이다.

수치심은 죄책감, 모욕, 창피와는 다른 감정으로 구분해야 한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수치심이다. ‘나는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은 죄책감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행동을 고치는 경우는 대개 수치심이 아닌 죄책감 때문이다. 죄책감은 불편한 감정이지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죄책감은 수치심과 비슷해 보이지만 수치심과 달리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반면 수치심은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 중독과 폭력, 억압과 공격성, 우울증과 섭식장애, 집단 따돌림으로 이어진다. 수치심을 경험하면 관계가 끊어지고 자기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모욕감과는 다르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난 루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수치심이다. ‘저 사람 참 자제력이 없구나. 내가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어’라고 생각하면 모욕을 느낀 것이다. 모욕을 자주 느끼면 수치심으로 변한다. 창피함은 순간적 감정이다. 창피한 행동을 했을 때 잠시 얼굴을 붉게 만드는 감정이다.

수치심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수치심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수치심탄력성이란 수치심을 느끼지만 이를 이겨내는 능력이다.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치심을 인식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요인을 알아야 한다. 수치심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수치심에 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상대의 공감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하면 그 순간 수치심은 사라진다. 수치심은 숨길수록 커진다. 텍사스대 제임스 펜베이커는 트라우마(강간과 근친상간)를 비밀로 간직했던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추적했다.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거나 의논하지 않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치명적이다. 자기 얘기와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피해자들은 건강이 좋아지고, 병원 치료 횟수가 줄었고, 스트레스 호르몬수치가 낮아졌다. 수치심은 드러내야 치유할 수 있다.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다.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3∼4일 연속으로 하루 15분에서 20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긍정적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을 담은 글쓰기는 수면, 업무 효율, 대인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글쓰기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수치심을 갖고 있을까? 여성이 갖는 수치심의 일등은 외모다. 다음은 모성애,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다. 여성들이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미혼에게는 결혼 왜 안 하니, 결혼한 사람에게는 왜 애 안 낳니, 애가 하나밖에 없는 여자에게는 언제 둘째 갖니 같은 질문이다. 끊임없이 모성애에 도전하는 질문이다. 남자들에게는 단 하나만을 요구한다. ‘약해지지 마라. 여자처럼 굴지 마라. 남자답게 행동하라’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과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을 함부로 구하면 안 된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치심이 강한 사람 역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하고 엉뚱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것도 자신의 수치심을 줄이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수치심 치료에는 공감이 최고다. 공감은 수치심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사다리와 같다. 내가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으면 수치심은 사라진다. 그저 얘기를 잘 들어주고 상대를 존중하면 된다. 섣부른 비판을 삼가고, 상대 감정에 다가서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면 된다.



세 가지 마음가면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페르소나를 쓰고 산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어로 무대에서 쓰는 가면을 뜻한다. 가면과 갑옷은 취약함을 감추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다.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 가면 때문에 숨이 막혀도 갑옷을 입고 있을 때 강해진 느낌을 받는다. 마치 갑옷 속에 숨어서 자신은 숨긴 채 다른 사람의 약점을 보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와서 가면을 벗을 수는 없어요. 내 진짜 모습은 아무도 몰라요. 배우자도, 아이들도 몰라요. 그들은 진짜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종종 헷갈려요.”

우리가 절대 벗지 않는 세 가지 마음의 갑옷이 있다. 첫 번째 갑옷은 기쁨 차단하기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있다. 아이의 잠든 모습 바라볼 때,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할 때,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할 때,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 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때, 항암치료가 끝나고 회복기에 들어섰을 때, 임신했을 때, 승진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등등…. 근데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에게 끔찍한 일이 생기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기도 한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 스스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세세한 부분까지 짜놓는다. 잘살기 위해 기대를 최소화하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근데 이런 기쁨 차단이 효과가 있을까? 실제 이런 식의 기쁨 차단 방법을 자주 쓰던 남자가 있었다. 예상대로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준비한 게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오히려 아내와의 즐거웠던 순간이 자꾸 생각이 나요. 내가 왜 순간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내가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매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사는 거였습니다.” 기쁨은 순간에 찾아오는 감정이다. 너무 바쁘게 살면 기쁨을 놓칠 우려가 있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가진 것을 당연시하면 안 된다. 그것을 축복하고 마음껏 누려야 한다. 기쁨을 아깝게 흘려보내면 안 된다. 불행과 이별은 미리 대비할 수 없다. 대비한다고 덜 불행해지는 것도, 이별을 방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한다.

두 번째 갑옷은 강박적 완벽주의다. 완벽주의는 건전한 성취와 성장이 아니다. 완벽주의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완벽주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면 비난과 비판과 수치심의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완벽주의는 20톤짜리 보호막이고, 그 보호막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으로 믿으면서 질질 끌고 다니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주의의 핵심은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완벽주의가 외부에 초점을 두는 반면 건전한 노력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완벽함보다는 어떻게 해야 내가 발전할까”를 생각한다. 반면 완벽주의는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초점을 맞춘다. 완벽주의는 수치심의 한 형태로 자기파괴적이고 중독성을 가지는 믿음 체계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낸다면 수치심, 비난, 비판의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완벽주의가 파괴적인 이유는 세상에 완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완벽주의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출발점은 수치심의 회복탄력성이다. 자기 자신에게 공감하고 내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갑옷은 감정 마비시키기다. 사람들은 감정을 마비시켜 싫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근데 싫은 감정 한 가지만을 없앨 수는 없다. 감정 마비 행위가 위험한 이유는 고통스런 감정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랑, 기쁨, 소속감, 창의성, 공감에 관한 감정도 함께 무디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 감정만 골라서 마비시킬 수는 없다. 어둠을 마비시키면 빛도 함께 마비된다. 마비의 1차 원인은 자존감과 수치심이다.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고통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한다. 그래야 편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자존감으로
수치심은 어떤 존재일까? 수치심은 집안의 흰개미처럼 활동한다. 벽 뒤 어두운 곳에 숨어 살면서 집의 토대를 조금씩 갉아 먹는다. 그러다 어느 날 집을 우르르 무너뜨린다. 관리자가 직원을 호되게 꾸짖는 모습이나 교사가 학생에게 창피를 주는 장면을 자주 본다면 그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비난, 뒷담화, 편애, 욕설, 괴롭힘 같은 행동은 모두 수치심과 관련 있다. 비난이 운전대를 잡는다면 수치심은 조수석을 차지한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불편한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은 불편함이다. 불편함이 있어야 배울 수 있다.

자존감은 사랑과 소속감이다. 소속감은 ‘나보다 큰 어떤 것의 일부가 되고 싶은 인간의 고유한 욕구’다. 소속감은 적응과 다르다. 소속감은 내가 원하는 곳에 있고, 그곳 역시 나를 원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적응은 내가 원하는 곳에 있지만 그곳은 내가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는다. 소속감은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고 적응은 남들과 똑같아졌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다. 어딘가에 소속되면 자기 모습을 잃지 않아도 된다. 반면 어딘가에 적응할 때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져야 한다. 학교에서 소속감을 못 느끼면 힘들다. 집에서 소속감을 못 느끼면 그건 재앙이다. 부모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부모만큼 똑똑하지 못할 때, 부모가 잘하는 일을 못 할 때,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식으로 취급받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부모가 싫어할 때, 부모가 내 생활에 무심할 때도 힘들다.

수치심, 불안 등 현대인이 겪는 고통의 뿌리는 취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있다.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시험에 떨어졌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할 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나에게 실망한 친구에게 연락할 때 등. 우리는 일상에서 취약해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취약해진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상처받거나 공격당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런 자신을 숨기려고 황급히 가면을 쓴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마음가면을 쓰는 이상 수치심이나 불안,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 마음가면을 벗고 자신의 취약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면 마음이 홀가분하고 무슨 일을 해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진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변인들과의 관계 또한 더욱 단단해진다. 건강도 좋아지고 거짓 마케팅에도 속지 않는다. 삶을 내 뜻대로 멋지게 살아갈 강인함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wholeheartedness를 위한 열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첫째, 진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구애받지 말자. 둘째, 나 자신에게 공감하고 완벽주의와 헤어지자. 셋째, 회복탄력성을 기르고 마비와 무기력에서 벗어나자. 넷째, 감사하고, 기뻐하고, 부족함과 어둠에 대한 공포를 버리자. 다섯째, 직관력과 믿음을 키우고, 뭐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여섯째, 창의력을 기르고 남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리자. 일곱째, 놀이와 휴식을 즐기고 과로하지 말자. 여덟째,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갖고 만성적인 불안을 버리자. 아홉째,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자. 열 번째, 웃음과 노래와 춤을 더 자주 즐기고 모든 걸 통제하려 하지 말자.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은 가면이 부리는 마법을 보여준다. 복면을 쓴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듣는 사람은 그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노래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영원히 복면을 쓰고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힘들어도 가면을 벗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약하면 약한 대로, 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필자소개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런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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