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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마음속에는 낮과 밤이 함께 있다

이경림 | 264호 (2019년 1월 Issue 1)
150만 원을 모금해 200부를 출간하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한 무명작가의 소박한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가 무려 1292명으로부터 2054만500원의 후원을 받으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독립출판물로서는 이례적으로 1500부나 찍은 초판은 전국 30여 개의 작은 책방에서 인기를 끌면서 무려 3쇄로 이어졌다. 정식 출간된 이 책은 현재 14쇄까지 찍으면서 28만 부에 이르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백세희 작가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출간 5개월 만에 거둔 놀라운 성적이다.

무명작가의 책이 오로지 입소문을 타고 살아나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스토리는 드라마틱하긴 해도 유례없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독자의 입소문이 살려냈던 책 『82년생 김지영』은 최근 출간 2년여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흥미로운 점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82년생 김지영』처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위로라고? 천만에!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이 책을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치료 일기”라고 설명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10년이 넘도록 ‘정신과를 전전’했던 작가가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지극히 개인적인 상담을 대화체 그대로 기록한 에세이다. 정말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정신병 치료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담 내용은 예컨대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의 삶에 나의 현실을 쉽게 겹쳐볼 수 있었던 것처럼 공감할 만한 내용일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작가가 상세히 밝히고 있듯 작가가 가진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요하는 병이다. 이 병은 그 주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이력을 지니고 있고, 특히 작가의 ‘사적이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담 내용은 출판을 염두에 둔 작가가 세심하게 다듬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매우 ‘개인적’이다. 즉,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아닌 이상 작가와 같은 마음의 병을 겪지 않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공감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얼마 전, 이 책의 성공 요인을 요즘 유행하는 ‘위로’에서 찾은 분석 기사를 읽었다. ‘무한경쟁 시대’와 ‘번아웃 시대’에 ‘힘내’라는 말에 너무나 지친 사람들은 ‘지금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마침 이 책이 ‘너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공감형’ 위로를 건넨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이 원하는 위로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넣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이 책의 성공은 분명 어떤 보편적 감성을 건드린 결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감성은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위로가 아니며 작가가 겪는 특수한 문제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감은 더더욱 아니다. 타인의 정신과 상담기록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조금 병적인 반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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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이지만 힘이 있는, 진정성
그렇다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성공은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 답은 이 책이 자기의 약점,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두움’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비판받는 데 익숙한 무한경쟁의 분위기, 단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다는 공포, 타인의 시선 하나하나에 안달복달하게 되는 불안은 분명히 이 책의 배경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약점이란 주로 세 가지 내러티브 안에서만 드러난다. 하나는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묻는 입사지원서 문항을 채울 때 우리가 쓰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절대로 ‘진짜’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약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점인 그런 면을 골라내어 마치 약점인 것처럼 보드랍게 포장해 내놓는다.

다른 하나는 성공의 내러티브 안에 약점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어떤 사람의 다양한 약점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그린다. 마치 미디어가 스티브 잡스를 재현하는 방식처럼 이 사람은 이런 약점을 이렇게 극복했구나, 혹은 이런 약점들을 안고도 결국 이렇게 잘됐구나, 개인적인 약점들이지만 성공에는 이렇게 일조했구나 하는 해석들을 유도하면서 말이다. 성공이 정점에 있는 내러티브 안에서 약점은 그렇게까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약점에 관해 말하는 체하며 실제로는 다른 주제를 내세워 약점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내러티브는 탐사보도적 혹은 학술적 내러티브이다. 약점을 숨기는 위의 두 가지 내러티브에 비해 이 마지막 내러티브는 약점을 정말로 드러낸다. 그러나 아주 차가운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실험대 위의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내러티브에서 누군가의 약점은 전문가가 분석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궁극적으로는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고쳐야 한다’는 목표 아래서만, 문제-해결의 내러티브 안에서만 약점을 실제로 드러낸다.

하지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방식은 이러한 세 가지 방식과 다르다. 작가는 약점을 포장하거나, 가리거나, 해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에게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성이라는 말은 너무나 많이 사용된 나머지 닳아버린 것 같다. 진정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구식으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하지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는 진정성, 즉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을까? (…) 나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이 궁금하다. 세상은 아주 밝거나 지나치게 어두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했던 주변의 반응이 떠오른다. 도대체 어떤 모습과 상황이어야 이해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이해의 영역이긴 할까? 아무쪼록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혹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네’라는 감상이 남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이 책에는 사람들이 약점을, 어두움을 드러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무거운 힘이 실려 있다. 작가는 ‘정신병(자)’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이상하고 불쌍하고 무섭고 해를 끼칠 것 같다는 뉘앙스)에 도전하면서 정신이 아픈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작가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사람의 내면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의 목표는 두 개다. 자신과 유사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는 한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인간의 어두움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인간의 내면에 어두움과 밝음은 공존하며 어두움을 가진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무한경쟁 사회에 필요한 위로로 축소될 수 없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생각하게 되는 ‘어두움’이란 아마 은유적인 개념이 될 것이다. 작가는 자기 정신에 존재하는 병적인 어두움에 관해 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작가의 상담기록을 읽으면서 나의 ‘어두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두움과 밝음은 공존한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다. 그동안 여러 심리학자나 정신분석의가 쓴 베스트셀러들도(최근에는 『미움받을 용기』가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인간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 왔다. 하지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실제로 어두움과 밝음을 안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은 드물었다. ‘당사자’임을 드러내는 순간, 내가 숨기고 싶었던 어두움이 만천하에 ‘까발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가장 와 닿은 지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용기를 내서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드러낸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을 발휘한다. 대중매체나 SNS, 전문가가 재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약점을 다룬 것이다.

기업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인간을 다루는 데 애를 먹는다. 인간이 지닌 다양한 어두움을 외면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기혐오에 빠진 소비자나 우울한 노동자 대신 행복한 소비자와 유쾌한 노동자를 원하리라. 하지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사람이란 행복하면서도 우울할 수 있고, 자기혐오에 빠진 다음에는 다시 유쾌해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어두움과 밝음이 균형 잡기의 문제라면 기업도 인간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대신 추스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사기 진작, 자신감 고양, 연대 의식 함양 같은 다양한 사내 HR 프로그램들은 직원들의 밝음을 유지하고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조직 내의 개인이 필연적으로 안게 될 어두움을 기업이 나서서 고민하고 추스르는 배려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어두움은 없앨 수 없다. 그렇다면 안고 갈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 이경림 | [現] 서울대 국문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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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 강의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 위한 기초 연구
    plum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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