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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대붕(大鵬)도 빅데이터 없인 날지 못했다

박영규 | 262호 (2018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세상의 모든 것이 데이터다. 문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그를 바탕으로 사람의 행동과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툴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있어도 그것을 꿸 수 있는 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혁신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깊고 두터운 데이터가 말해주는 시그널에 주목해야 한다. 쓰고 난 데이터를 방치하거나 버리지 않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백의의 천사를 상징하는 나이팅게일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가 영국 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라는 사실이다. 1854년 크림전쟁 당시 영국군 야전병원 간호사로 참전했던 나이팅게일은 전투 중 사망한 군인들의 수보다 2차 감염에 의해 사망하는 군인들의 수가 많다는 점을 발견한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들의 입퇴원 기록과 감염 현황, 사망자 수 등에 관한 데이터를 통계표로 작성, 이를 근거로 병원 내 위생 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그 결과 부상 군인들의 사망률은 42%에서 2%로 감소했다. 데이터의 힘이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자료의 크기가 늘어나고, 종류가 다양해지고, 처리 속도가 빨라질 때 데이터의 힘은 보다 더 세진다. 3V(Volume, Variety, Velocity)를 특징으로 하는 빅데이터는 부상병 치료에 그치지 않고 모든 질병을 사전에 예측, 관리함으로써 인간의 건강을 보편적으로 증진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헬스케어에만 빅데이터가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빅데이터는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출판, 교통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한 것은 그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 즉 빅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세상에 널려 있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데이터다. 문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그를 바탕으로 사람의 행동과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툴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있어도 그것을 꿸 수 있는 끈(툴)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것을 가장 잘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다. 가치가 수백조 원이 넘는 거대 기업이 됐지만 구글의 시작은 미약했다. 달랑 네모 박스 하나가 구글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네모 박스가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빅데이터의 산실이 됐다. 사람들이 시시각각으로 네모 박스에 쳐 넣는 단어들이 모이고 모여 태산이 됐다. 처음에는 ‘구글’이라는 단어 하나가 데이터의 전부였지만 지금은 수천조 개의 데이터가 쌓였다. 사랑과 전쟁, 행복, 스포츠, 먼지, 꽃, 별 등 구글의 빅데이터에는 인간의 모든 욕망,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다 들어 있다. 구글은 깊고 푸르고 넓은 데이터의 바다를 발판으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 속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유영(遊泳)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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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들머리 글인 ‘소요유’편에는 대붕(大鵬)이라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이 대붕이 바로 오늘날의 빅데이터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은 그 크기가 수천 리에 달한다. 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짝은 수천 리에 달한다. 붕이 힘을 다해 솟구쳐 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붕은 바다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남쪽 바다로 옮겨갈 준비를 하는데 남쪽 바다는 바로 하늘의 연못이다. 붕이 남쪽 바다로 이동하기 위해 솟구쳐 오를 때면 바닷물이 주변 삼천 리로 튀기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 창공으로 날아오르는데 6개월을 나른 후에 비로소 휴식을 취한다.”

빅데이터는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처리 속도도 날갯짓 한 번에 구만 리를 솟구쳐 오르는 대붕처럼 빨라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알파고처럼 14만 개의 바둑 기보(棋譜)를 통으로 집어삼킬 정도로 빅데이터의 속은 깊다. 영화 ‘허(H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사만다처럼 0.02초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두뇌 회전도 빠르다. 데이터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깊고 두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빅데이터가 될 수 없다. 나이팅게일의 데이터는 스몰데이터였다. 구글의 데이터는 빅데이터다. 나이팅게일의 스몰데이터는 부상당한 군인 수100명의 목숨을 살렸지만 구글의 빅데이터는 인류의 보편적 건강과 생명 연장을 지향한다.

대붕 이야기에 이어지는 소요유 편의 에피소드에서 장자는 양의 차이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가 없다. 水之積也不厚(수지적야불후) 則負大舟也無力(즉부대주야무력) 마당에 물을 한 그릇 부은 후 풀잎을 띄우면 배처럼 뜨지만 잔을 띄우면 가라앉는 것은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받쳐줄 수가 없다. 風之積也不厚(풍지적야불후) 則負大翼也無力(즉부대익야무력) 구만 리는 솟구쳐 올라가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막히는 것 없이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 무인자동차가 도로 위를 질주하고, 드론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도로와 하늘 등 지리적 공간에 대한 깊고 넓은 데이터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몇 군데에 관한 제한된 정보만으로는 자동차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스마트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 국도, 지방도, 골목길 등 땅 위의 모든 길과 그 길 위에 설치돼 있는 각종 장애물, 신호등, 주차장 등 관련된 모든 정보가 내장돼 있어야 자동차가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안전하게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다.

빅데이터 이전의 컴퓨터는 개와 고양이조차 구분하지 못했지만 빅데이터로 무장한 컴퓨터는 둘의 구분은 물론이고 그들이 무슨 종(種)인지 알아볼 정도로 똑똑해졌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SNS에 떠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에 관한 수억만 건의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다. 건물의 높이로 칠 때 인간의 신경망은 10층 정도 높이에 해당한다. 알파고는 48층이다. 인간의 뇌보다 4.8배 더 똑똑한 기계와 싸워 인간은 4대1로 패했다. 데이터가 누적되면서 구글의 인공지능(AI)은 이미 150층 높이를 돌파했다. 200층, 300층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만다처럼 특이점(singularity)을 통과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인간의 삶을 지원, 협력, 통제할 수 있는 빅데이터가 출현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2012년 10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를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직업으로 꼽았다. CEO의 감과 직관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좇아갈 수 없다. 혁신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깊고 두터운 데이터가 말해주는 시그널에 주목해야 한다. 데이터는 세계를 보는 창(窓)이면서 편견을 깨는 창(槍)이다. 유유제약은 그동안 유아용 멍 치료제만 생산해왔다. 하지만 빅데이터에 기반한 시장조사 결과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의 멍 환자가 4배 가까이 더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성인용 멍 치료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가 기업의 편견을 깨준 것이다. 스페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라(Zara)는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고객들의 취향을 신속하게 판단, 2주 만에 신제품을 출시한다. 감으로 할 수 없던 일을 데이터로 가능하게 만든다. 시골 마을의 작은 가게로 출발한 자라는 중저가 패션시장에서 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넷플릭스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으로 DVD 대여시장의 골리앗으로 불리던 블록버스터를 단박에 꺾고 업계 1위에 등극했다. IBM의 CEO 버지니아 로메티의 말처럼 ‘데이터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의 데이터는 쓰레기였다. 『장자』 ‘소요유’편에 나오는 큰 박처럼 아무 쓸모가 없어 버려졌다. 덩치 큰 빅데이터는 생산 수단이 아니라 처리 비용만 잡아먹는 골칫덩어리였다. 그러나 장자가 사고의 전환으로 큰 박을 초대형 호화 유람선으로 만든 것처럼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무인자동차를 만들고, 무인비행기를 만들고, 달나라를 탐사하는 우주선을 만들고 있다. 쓰고 난 데이터를 방치하거나 버리지 않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요즘에는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으로 남의 집(컴퓨터) 빈 헛간(남는 저장 공간)을 빌려서 값싸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빅데이터는 기업의 식량이다. 요리 솜씨에 따라 소비자들로부터 별점을 다섯 개 받을 수도 있고, 버림받을 수도 있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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