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Creativity Code

애플 직원들이 피카소를 공부하는 까닭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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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예술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창의성이 중요하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남이 먼저 한 것이라도 더 좋게(better), 더 빨리(faster), 더 싸게(cheaper) 따라 할 수 있다면 운영 효율과 제조 경쟁력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예술에서는 남다른 점이 없다면 모두 ‘짝퉁’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술에서 창의적 발상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창의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편집자주
대부분의 사람에게 창의성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무수히 많은 창의적 사례를 분석해 보면 그 안에 뚜렷한 공통적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창의적 사고의 DNA를 사례 중심으로 체계화해 연재합니다.


애플 직원들은 왜 피카소를 공부하는가

2014년 8월 뉴욕타임스는 애플의 사내 교육기관인 애플대학(Apple University)을 취재한 기사를 실었다. 애플대학은 자사의 역사를 가르치고 기업문화를 심어주기 위해 고(故) 스티브 잡스가 설립했는데 그동안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1

애플대학의 학장인 랜디 넬슨은 피카소의 석판화 연작 황소를 이용해 애플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단순함(simplicity)에 대해 설명했다.

피카소는 1945년 12월5일부터 1946년 1월 17일 사이에 황소를 주제로 11개의 석판화를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황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단순한 형태로 추상화했다. [그림 1]에는 11개의 연작 중 8개가 제작순으로 정리돼 있다. 황소 연작의 마지막 작품을 보면 얼굴, 다리 골격, 발굽 등이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것이 황소인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본질적인 핵심 요소만 남을 때까지 단순화해야 한다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피카소의 작품을 예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애플의 디자인 철학이 현실 문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랜디 넬슨은 구글 TV와 애플 TV의 리모컨을 비교한 슬라이드를 종종 사용한다. 구글 리모컨에는 버튼이 78개나 달려 있지만 애플 리모컨에는 버튼이 3개밖에 없다. 구글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 담았지만 애플은 꼭 필요한 것들만 남을 때까지 열띤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남은 것이 동영상의 재생과 멈춤, 시청 프로그램의 선택, 메인 메뉴로의 복귀 버튼이었다.

애플이 피카소의 석판화 연작으로부터 배운 창의성 코드는 다름 아닌 ‘제거’였다. 실제로 피카소도 “예술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각예술에서 배우는 창의성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술이 어떻게 독자적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담아내기 위해 창의적 발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중 결합코드가 적용된 예를 보자.

원범식 작가는 건축조각(Archisculpture)이라 불리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개척했다. 목재나 석재가 아니라 건축물의 사진을 재료로 새로운 가상의 건축물을 창작하는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더불어 자신의 정취(情趣)가 담긴 집에 대한 꿈이 있다. 이러한 이루기 힘든 꿈을 작가는 사진 콜라주로 구현했다.



건축조각 사진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작품번호만 있지 다른 작품명이 없다는 점이다.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은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 때문이다.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작품명이란 프레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쓰인 이미지는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가상의 건축물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것의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권오상 작가는 평면적 사진과 입체적 조각을 결합한 사진조각(Photo Sculpture)이란 영역을 개척했다.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던 작가는 “왜 조각은 돌이나 청동같이 무거운 소재를 사용하는가?” “가벼운 조각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중 자신이 좋아하는 조각과 사진을 ‘결합’한 사진조각이라는 것을 착상했다. 아주 가벼운 소재인 스티로폼으로 조각하고, 그 위에 모델의 실제 사진 수백 장을 오려서 이어 붙인 다음 투명한 에폭시 수지를 입힌 작품을 만들었다. 2008년 영국의 유명한 4인조 록밴드 킨(Keane)의 세 번째 음반 재킷에 권오상 작가의 작품 사진이 실린 것은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바 있다.

김동유는 인물을 이용해서 다른 인물을 그리는 작가로서 독보적 명성을 얻고 있다. ‘마릴린 먼로 vs 존 F. 케네디’라는 작품은 케네디 대통령의 얼굴을 이용해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대중이 열광하는 아이돌(idol)을 ‘상반형 결합’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김동유 작가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디지털 프린팅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망점의 역할을 하는 작은 인물들을 일일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의 두 인물은 세인의 주목을 끄는 유명 인사이면서 상호 대비되거나 연관성을 갖고 있다. ‘마릴린 먼로 vs 존 F. 케네디’를 예로 보면 마릴린 먼로는 은막의 여왕이었으며 케네디는 권부의 왕이었다. 나아가 이 두 사람 사이에 시쳇말로 섬싱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2년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개최된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전’에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김동유의 ‘엘리자베스 vs 다이애나’가 전시됐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물을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작은 얼굴 그림 1106개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여왕과 왕세자빈은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면서도 두 사람은 애증이 교차하는 고부 관계였다.



공연예술에서 배우는 창의성

존 케이지는 미국의 전위 음악가였으며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4분33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총길이가 4분33초로
1악장이 33초, 2악장이 2분40초, 3악장이 1분20초다. 존 케이지는 이 작품이 악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독주(獨奏)나 합주(合奏)가 모두 가능한 곡이라고 했다.

이 곡은 1952년 8월29일 뉴욕주 우드스톡의 매버릭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에 의해 초연(初演)됐다. 튜더는 무대 위의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은 다음 잠시 후 피아노 뚜껑을 닫고 스톱워치를 보고 33초를 기다린 다음 1악장이 끝났다는 표시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2악장과 3악장도 뚜껑을 닫고 각각 2분40초와 1분20초를 기다렸을 뿐 어떤 연주도 하지 않았다. 연주에 사용된 악보에는 어떤 음표도 없었다. 다만 각 악장에는 연주하지 말라는 뜻의 타셋(TACET)이라는 표기만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가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자 청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와 기침 소리 등이 간간이 들렸다. 연주회는 그렇게 끝났지만 ‘4분33초’는 금세 논란이 많은 20세기의 음악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존 케이지는 이 작품에서 왜 모든 음표를 ‘제거’했을까? 음표가 없는 작곡이 어떻게 있을 수 있으며, 연주가 없는 연주회가 말이나 되는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Everything we do is music)”이라는 그의 글에서 기존의 음악 세계를 탈피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2012년 4월2일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에릭 휘태커는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무려 3000명에 가까운 단원들이 참여한 합창 공연을 선보였다. 이날의 공연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합창단의 규모뿐 아니라 공연의 주체가 가상합창단(virtual choir)이라는 점이었다.



휘태커의 가상합창 구상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2009년 한 소녀가 ‘Sleep’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다. 소녀는 이 곡의 작곡자인 휘태커가 동영상을 보고 이렇게 감동적인 음악을 만든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도 함께 적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휘태커는 온라인 팬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Lux Aurumque(황금 같은 빛)’라는 곡을 부르는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12개국에서 모두 185명이 동영상을 보내왔다. 이를 합성한 첫 번째 가상 합창을 유튜브에 올리자 두 달 만에 조회 수가 무려 200만 명을 넘어섰다. 자신의 곡 Sleep을 부른 두 번째 가상 합창은 2011년 4월에 공개됐는데 여기에는 58개국에서 1752명이 보낸 2052개의 동영상이 사용됐다.

2011년 9월 휘태커는 자신의 블로그에 3번째 가상 합창 구상을 올렸다. 자신이 작곡한 ‘Water Night’라는 곡의 무반주 지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다음 네티즌들에게 알토, 베이스, 소프라노 등의 각 화음 파트를 부르는 동영상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마감일인 2012년 2월1일 무려 73개국의 2945명으로부터 모두 3746개의 동영상이 접수됐다. 이렇게 모인 동영상을 합성해 아름다운 합창을 만들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편집해서 공개한 것이 2012년 링컨센터 공연이었다.

휘태커가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수천 명의 사람으로 구성된 가상합창단을 창안한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결합’해 보겠다는 착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작곡한 ‘백조의 호수’는 100년 이상 고전 발레의 대명사로 군림해 왔다. 백조처럼 목을 둥글게 돌리는 움직임, 양쪽으로 팔을 굽히고 펴는 날개 동작, 날개 끝처럼 파르르 떨리는 손의 움직임, 다리에 묻은 물방울을 톡톡 털어내는 모습 등과 같이 백조의 움직임을 섬세한 발레 동작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명작은 발레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새로운 창작 발레를 선보여도 백조의 호수의 높은 명성에 사로잡힌 대중들이 좀처럼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벽을 깨뜨리기 위한 시도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이 댄스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동화 속 이야기와도 같았던 원작의 무대를 현대 영국 왕실로 옮기고, 가냘프고 우아한 이미지의 여성 대신 근육질의 남성들에게 백조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남성 백조들의 군무는 큰 충격과 더불어 화제를 몰고 다녔다. 1995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최장기간 흥행한 댄스 뮤지컬이 됐다. 역전코드가 적용된 이 작품은 로렌스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비롯한 30여 개의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문학에서 배우는 창의성

문학적 표현에도 창의적 발상의 공통적 유형이 많이 발견된다. 정희성 시인의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라는 시를 보자.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마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가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이 시에는 해학(諧謔)이 넘친다. 어느 집 새우‘젓’이 가장 맛있냐는 질문이 어느 자매의 ‘젖’이 가장 맛있냐는 의미로 들리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뒤통수를 긁으며’라는 신부님의 민망한 모습을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라며 당황하는 장면으로 연결해 외설적 분위기를 수습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서 ‘젓’이 젓갈과 젖가슴의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수사법에서는 이를 중의법(重義法)이라고 한다. 창의적 발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하나의 요소가 두 개 이상의 기능을 담당하는 용도 통합에 해당한다.

문학에서 표면 아래의 진실을 드러내거나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통상적 생각이나 표현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영국의 서정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 ‘무지개’를 보자.

저 하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어릴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역발상이다. 어른이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떻게 아이가 어른의 아버지일까?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니 어른이 되기 전에 있던 아이가 오히려 아버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릴 적 삶과 경험이 훗날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아이가 아버지일 수도 있다. 시인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통해 대자연에 대한 변함없는 경외심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필자소개 박영택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ytpark@skku.edu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품질경영학회 회장,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단장,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명예 객원교수,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성균관대에서 ‘비즈니스 창의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온라인 대중공개 강의인 K-MOOC의 ‘창의적 발상’을 담당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8호 통제에서 자율로 2019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