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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쉴 줄 아는 농부는 낫을 갈아 일한다

박영규 | 257호 (2018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386세대는 일 중독 세대였다. 그들에게는 쉬는 것이 불편했고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한 밀레니얼세대에게는 일보다 가정, 개인의 성취가 더 중요하다. 업무가 과중해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 하면 이들은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난다. 어느 때보다 창의성이 중요해진 시대다. 잘 쉬어야 창의성이 발현된다. 오늘날 기업들에 직원들의 워라밸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필수가 됐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런던 근교 공장에서 일하는 나이 어린 소녀들에 대한 르포가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 정도의 어린 소녀들은 우중충한 공장의 방적기 앞에 앉아서 하루 14시간씩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소녀들은 허리 한 번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 요즘처럼 초코파이가 간식으로 나오는 일도 없다. 마르크스는 열악한 노동 조건 가운데서도 특히 14시간이라는 과도한 노동시간에 주목했다. 1894년 9월28일 영국 런던 세인트마틴홀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도로 열린 제1차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의 가장 주요한 의제는 ‘1일 8시간 노동’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사회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조정해 왔다. 최근 들어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그것도 많다며 주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았던지 주 40시간 노동으로 리턴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공약으로 내세운 후 주 40시간 노동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으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격론 끝에 2004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스타트를 끊었고, 이후 중소기업과 공무원, 교사들로 확대돼 2011년 마침내 일주일의 7일 가운데 5일은 일하고 이틀을 쉬는 ‘주 40시간 노동’이 모든 부문으로 확대됐다. 금요일이 주말의 시작이 됐으며 토요일은 반공일이 아니라 온공일이 됐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갑자기 늘어난 ‘노는 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차츰 다양한 여가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늘은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노동 현장을 덮치면서 많은 사람에게 주 40시간 노동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으며 토요일, 일요일은 완전히 노는 날이 아니라 파트타임이나 알바로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해야 하는 잠깐잠깐 쉬는 날이 됐다. 투 잡스(two jobs)도 모자라 스리 잡스(three jobs)가 등장했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위험사회』에서 말하는, 이른바 ‘노동의 브라질화’ 현상(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노동의 질에 상관하지 않고 노마드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아무 일이나 하려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는 멕시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OECD가 발표한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지수를 보면 1위인 네덜란드가 9.3, 2위인 덴마크가 9.0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7로 조사대상 국가 38개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바라보는 선진국으로서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연장근로를 포함한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은 이런 오명을 씻기 위한 조치다.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386세대는 일 중독 세대였다. 그들에게는 쉬는 것이 불편했으며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1934세대(밀레니얼세대)에게 이러한 삶의 패러다임은 거꾸로 바뀌고 있다. 이들은 일보다는 가정, 개인의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업무가 과중해 일상의 삶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는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난다. 1934세대의 64.4%는 돈을 덜 벌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을 원한다는 조사 통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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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휴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일깨운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쉬지 않으면 육체는 피폐해지고 정신의 에너지는 고갈된다. 形勞而不休則弊(형로이불휴즉폐) 精用而不已則勞(정용이불이즉로) 勞則竭(노즉갈)”
- 『장자』 ‘각의’편.

원문에 나오는 폐(弊)와 갈(竭)을 현대식 용어로 바꾸면 번 아웃(burn out)이 된다. 일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누구나 번 아웃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이 중요하다. 인공지능과 경쟁해서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로 일을 구상하고 추진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운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 서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두 농부가 있었다. 수확 철이 됐고 두 농부는 함께 벼를 벴다. 한 농부는 쉬지 않고 벼를 벴고, 또 다른 농부는 중간중간 논두렁에서 쉬었다. 그런데 일이 끝난 후 보니 쉬지 않고 일한 농부보다 쉬어가면서 일을 한 농부의 수확량이 더 많았다. 쉬지 않고 일한 농부가 물었다. “아니, 쉬지 않고 일한 나보다 자네 수확량이 더 많다니 이게 어찌 된 건가?” 그러자 쉬면서 일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쉬는 동안 나는 낫을 갈았다네.” 그렇다고 휴식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쉬는 시간을 자꾸 늘리다 보면 기업이 견딜 수 없게 된다. 개인의 행복과 기업의 생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장자』에 나오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우화를 통해 워라밸의 의미를 톺아보자.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직업은 원숭이를 기르는 일이었다. 원숭이들의 주식은 도토리였다. 저공은 매일 일곱 개의 도토리를 원숭이들에게 아침저녁 두 번씩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저공이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나눠서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반발했다. “무슨 소리예요? 말도 안 돼.” 이에 저공은 수정 제안을 했다. “그래 좋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했다. 조삼모사는 잔꾀를 써서 상대를 현혹시키는 것을 일컫는 사자성어로 사용되지만 장자의 참된 가르침은 그게 아니다. 이어지는 우화에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름(名)과 실제(實)가 훼손되지 않았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조화롭게 함으로써 자연의 이치에 맞는 하늘의 균형점(天均)에서 쉴(休) 따름이니 이를 일러 양행(兩行)이라고 한다. 名實未虧(명실미휴) 而喜怒為用(이희노위용) 亦因是也(역인시야) 是以聖人和之以是非(시이성인화지이시비) 而休乎天鈞(이휴호천균) 是之謂兩行(시지위향행)”
- 『장자』 ‘제물론’편.


하루 24시간 가운데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여가를 즐기고, 8시간은 잠을 자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이상적인 일상이다. 이것은 무슨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라기보다 수천 년간 인류의 역사에서 입증된 경험칙이다. 8대8대8의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위 우화에서 장자가 말하는 천균(天均), 즉 하늘에서 정한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이다. 일곱 개라는 도토리의 총량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 24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을 늘려 보너스를 더 받으려는 것은 저녁에 먹을 도토리 한 개를 아침에 당겨서 먹는 것과 같다. 그 한 개의 도토리는 일견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삶의 전체적인 모습에서 보면 저녁에 먹을 도토리를 희생함으로써 얻는 일시적인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여가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줄여 하루에 열 시간, 열두 시간씩 일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주 40시간 노동을 35시간으로 줄인 것도 천균의 관점에서 보면 밸런스를 깨는 것이다. 일을 과도하게 많이 하는 워크홀릭(workholic)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파괴할 수 있는 반면 일을 너무 적게 하는 라이프홀릭(lifeholic)은 공동체의 존립을 파괴할 수 있다. 우화의 가르침처럼 일과 여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兩行)을 균형 있게 유지(天均)하는 워라밸이 최선의 삶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잘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업에도 워라밸 경영이 필수적이다. 워라밸 세대 삶의 패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은 더 이상 인재를 유치하기 어렵다. 높은 연봉과 보너스, 승진 기회를 가지고 인재를 유치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과 가족의 균형, 일과 여가의 균형을 통해 회사와 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워라밸 문화를 갖춘 기업만이 인재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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