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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장자가 설파한 체험 경제의 중요성

박영규 | 251호 (2018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비자들은 체험 소비를 중시한다. 직접 겪어보고 느껴본 후에야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체험 경제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로 VR과 AR을 꼽을 수 있다. 생생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적 토대다. 고전 『장자』에도 직접 겪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언급된다. 장자는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죽은 지식이며 몸으로 체득하고 직접 겪어본 일이라야 살아 있는 지식으로 체득된다고 설파한다.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이고, 또 하나는 상품 소비보다 체험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체험 자체가 서비스의 일종이므로 두 현상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기업이 시장에 내놓는 상품을 무조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감으로 직접 체험해 본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이들은 가격 대비 성능과 심리적인 만족도를 꼼꼼하게 따져본 후 가성비와 가심비가 더 높은 제품 쪽으로 손을 뻗는다. 블로그에 소개된 맛집을 직접 찾아가서 시식해 보는 맛집 탐방이 관광 상품화하는 트렌드도 체험 경제의 확산과 관련 있다. 미 컬럼비아대 번트 슈밋 교수는 『체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이라는 책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감각에 호소하고 가슴에 와 닿으며 자신의 정신을 자극하는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을 원한다”며 체험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체험 마케팅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브랜드 가치 구축을 위해 광고에 큰 비용을 투자하는 대신 그 비용을 매장이나 사람에게 투자한다. 큰 비용이 투자된 매장의 분위기를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하게 하고 그들의 입소문을 통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체험 마케팅 전략을 통해 스타벅스는 세계 커피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산업이 한 단계 더 고도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체험 경제가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체험 경제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기술이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다. 두 기술은 구현 방식과 응용 분야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가상과 현실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인터페이스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기술이다. 영화를 예로 들면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에 가깝고 ‘아이언맨’은 증강현실에 가깝다. ‘매트릭스’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상상만으로 뇌를 조작해 배가 부르게 함으로써 현실과 100% 다른 가상세계를 창조하지만 ‘아이언맨’은 주인공이 껴입은 슈트가 신체의 힘을 더 강력하게 증강시키는 방식을 통해 현실과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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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두 기술 모두 체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체험 경제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 구글이 내놓은 구글 어스 VR 버전에서 사용자는 파리나 베네치아를 걸으면서 맛집을 찾아갈 수 있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직접 비행기를 조종할 수도 있다.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구글 어스를 ‘손가락 끝으로 얻는 세계’라고 한다면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구글 어스 VR 버전은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체험 소비를 대표하는 스포츠나 콘서트, 공연, 관람 등에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무궁무진한 기술적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실 위에 새로운 가치를 더 입힘으로써 현실과는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기존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두 기술의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볼 때 VR과 AR은 VAR(Value Added Reality)로 합성해서 사용할 수 있다. 



장자는 우화를 통해 체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어느 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대청마루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때 윤편이라는 궁중 목수가 대청 아래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손에서 놓더니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이에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니라.” 윤편이 다시 물었다. “성인은 지금 살아계십니까?” 환공이 ‘죽었다’고 답하자 윤편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임금님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제나라 환공은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霸者)로 천하를 호령하던 군주였다. 그 환공이 읽고 있는 책을 일개 목수인 윤편이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했으니 당장 목을 베일 수 있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일개 목수의 도발적 언사에 화가 난 환공은 윤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를 깎는 자가 감히 시비를 따지다니 마땅한 근거를 대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윤편은 이렇게 말한다. “신(臣)이 신의 작업인 목수 일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지나치게 느슨하게 하면 헐거워서 수레와 바퀴의 아귀가 맞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너무 빡빡하게 하면 꽉 조여서 수레에 바퀴를 끼울 수가 없게 됩니다. 느슨하지도 않고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기술은 신의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것이라 말로는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제 자식은 그것을 저한테서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나이 일흔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은 기술의 이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은 그 전할 수 없는 도(道)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연즉군지소독자(然則君之所讀者) 고인지조박이부(故人之糟粕已夫)”- 『장자』 ‘천도’편.



모든 지식은 경험의 산물이다. 따라서 경험을 능가하는 지식은 없다. 우화에 나오는 목수 윤편의 말처럼 책에서 습득한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득한 지식만이 산지식이 될 수 있으며 생명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가 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체험을 고리로 소비자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기술적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문자와 동영상을 잇는 차세대 콘텐츠는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이 차세대 소셜 플랫폼이 될 것이다.” 2014년 페이스북이 VR HMD(Head Mounted Display)를 개발한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의 거금을 들여 인수한 것도 마크 저커버그의 이러한 생각 때문이다.

체험이 중요하지만 기존의 체험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기술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런 기술은 우화에서 말하는 옛사람들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체험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 영감에 상상력을 입혀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기술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옛사람이 먹다 남긴 찌꺼기가 아니라 미래사회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 상상력에 있다. 장자는 또 다른 우화에서 관습적 사고에 매몰돼 상상력이 고갈된 사람을 짚으로 만든 개에 비유한다.

공자가 위나라로 유세를 떠나게 되자 안연이 태사(太師)인 금(金)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행차가 어떠하리라고 보십니까?” 그러자 금은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대의 선생님은 곤궁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안연이 그 이유를 묻자 금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짚으로 만든 개(芻狗, 추구)가 있습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이 개를 대바구니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어 정성껏 받들어 제사상에 진설합니다. 하지만 제사가 끝난 후 이 개는 길거리에 버려져 길 가는 사람들에게 머리와 등이 마구 짓밟히고 결국에는 아궁이에 던져져 땔감으로 쓰이고 맙니다. 만약 누군가가 다시 가져다가 대바구니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은 채 그 곁에서 잠을 잔다면 그는 필히 좋은 꿈을 꿀 수 없으며 자주 가위에 눌릴 것입니다. 지금 그대의 선생님은 옛 성현들이 이미 제사에 썼던 짚으로 만든 개를 가져다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그 곁에서 잠을 잡니다. 주유천하 할 때 그대의 선생님은 송나라와 위나라, 주나라 등에서 곤란을 겪었으며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포위된 채 이레 동안 불을 떼어 밥을 짓지도 못하고 죽을 뻔했습니다. 이것이 가위눌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장자』 ‘천운’편.



장자는 공자의 유가사상을 짚으로 만든 개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 장자가 보기에 유가사상은 한물간 낡은 사상이다. 거기에는 옛 성형들의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미래지향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장자는 유교와 같은 상상력이 빈곤한 사상에 기댈 경우 가위눌림과 같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장자의 충고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3차 산업혁명의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위눌림을 당할 수 있다. 악몽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눈을 떠야 하듯이 기업도 새로운 흐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을 떠야 한다. 소비자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체험 경제에 먼저 눈을 뜨고 거기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버금가는 신기술로 눈을 돌리자. 지금 잘나가는데 굳이 낯선 것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학의 구루 찰스 핸디가 시그모이드 곡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듯이 어떠한 조직이든지 정점으로 치달을 때 하향을 염두에 두고 다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전략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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