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다섯 끼 먹고, 저녁은 9시부터... 독특한 스페인 식사 문화의 비밀

251호 (2018년 6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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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독특한 식문화를 자랑한다. 특히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저녁 식사를 10시나 돼서 시작하는 이들의 식문화 패턴 때문에 스페인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당혹스러울 수 있다. 스페인이 이렇게 독특한 식문화를 갖게 된 것은 국가 표준시로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서유럽 표준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 경도상 영국보다도 서쪽에 위치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 훌리오 프랑코가 독일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표준시를 그리니치 표준시(GMT+0)에서 서유럽 표준시(GMT+1)로 변경하면서 여름에는 밤 10시까지 해가 떠 있고, 겨울에는 오전 9시에나 해가 뜨게 됐다. 스페인의 식문화는 이 시간대에 맞춰 살기 위해 생활습관을 바꾸면서 발전한 것이다.

비즈니스 갈라 미팅의 추억
수년 전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유통 표준 관련 국제회의였는데 장소는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태양의 해변)로 유명한 스페인의 남부 해안 도시 말라가(Malaga)였다. 스페인의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은 필자가 처음 만나 본 새로운 하늘이었다. 회의에서는 참석자들을 위한 갈라 디너(Gala Dinner) 초청장이 모두에게 전달됐다. 의아했던 것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다음 날 저녁 9시까지 갈라 디너 장소로 오라고 쓰여 있는 초대장을 보고, 필자는 혹시 19시의 잘못된 표기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다음 날 저녁 8시가 되니 허기가 폭발하고 시차 때문에 졸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나가 갈라 디너 장소로 향했다. 8시40분쯤 도착했는데 야외 수영장이 있는 멋진 정원이었다. 그런데 정원에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으며 조명도 켜져 있지 않았다. 거기에 있었던 사람은 나를 비롯한 한국인 교수 두 명과 일본인 한 명까지 셋뿐이었다. 9시가 가까워지자 외국인 몇몇이 등장했지만 주최 측 인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9시가 돼서야 정원에 불이 켜지며 서빙 담당 직원들이 슬슬 준비를 한다. 이렇게 스페인에서의 희한한 식사 경험이 시작됐다.

9시15분쯤 되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직원들은 작은 접시에 담은 음식을 의미하는 다양한 타파스(Tapas)와 함께 스페인식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와 스페인 남부 맥주 ‘크루즈캄포(Cruzcampo)’를 아름다운 정원에서 서빙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있는 스탠딩 테이블에 서서 그렇게 10시까지 식사를 마치고 이제 다시 호텔로 귀가하려는데 주최 측에서는 이제 식사를 시작하겠다며 다들 저택 안으로 이동하라고 한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은 식사가 아니고 전식이었던 것인가? 이미 충분히 부른 배로 함께 저택으로 이동했더니 테이블에 식기류가 제대로 세팅돼 있다.

테이블에 앉고 얼마 후 전식은 카바와 함께 다시 제공됐고 그렇게 두 시간이 넘게 풀코스 요리가 서빙됐다. 자정이 좀 넘어 디저트가 나왔으며 옆 좌석의 스페인 비즈니스맨과 교수는 끊임없이 ‘살룻!’(¡Salud!)을 외치며 건배를 종용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이렇게 술을 권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즐거움의 연속이었으나 필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스페인 친구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제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다. 자정을 넘어 12시 30분쯤 이제 2차를 가겠다고 한다. 물어봤더니 이런 식사 패턴이 일반적이란다. 스페인에서 클럽은 새벽 두 시쯤 사람들이 모이고 세 시가 돼야 피크 타임이다. 스페인에서 음주 단속은 주로 새벽 다섯 시 이후에 한다. 이처럼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 식사는 우리의 저녁 식사보다 한참 늦은 경향이 있다.



하루에 다섯 끼 먹는 스페인 식문화
스페인은 식사 패턴이 우리와 꽤 다르다. 스페인의 지인들에게 우리나라는 보통 아침 식사를 7시쯤, 점심을 12시, 저녁을 6시나 7시쯤 먹는다고 하면 그건 영국식 식사 패턴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전 Food & Biz 지면에서 잠깐 소개했듯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다. 아침(Desayuno)을 일단 7시쯤 아주 가볍게 먹는다. 주스나 커피와 간단한 비스킷 정도로 끝낸다. 출근하고 나면 11시부터 30분 정도 ‘아점(Almuerzo)’을 먹는다. 스페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다. 이때가 되면 아무도 일하지 않고 인근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서 간단하게 아점을 즐긴다. 여유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사무실에 아점을 배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후 두 시쯤 되면 점심(Comida)을 먹는다. 이 점심이 진짜 점심인데 보통은 두 시간 동안 먹는 것이 전통이다. 대체로 관공서와 은행은 점심 전까지만 민원 업무를 한다. 그 이후에는 내근만 할 뿐 민원 업무는 잘하지 않는다. 오후 네 시쯤 점심 식사 후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면 저녁 여섯 시 또는 일곱 시까지 일하고 퇴근한다. 그리고 퇴근하자마자 ‘점저(Merienda)’를 먹는데 간단한 음료와 타파스 요리를 먹으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점저를 끝내면 저녁 9시에 비로소 저녁(Cena) 식사를 한다. 이렇게 하루 다섯 끼를 먹는 것이 스페인의 일반적인 식문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보통 11시나 자정쯤이 된다. 그리고 잠자리로 든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의 핀초스 바에 진열된 핀초스. 핀초스는 빵 위에 음식을 올리고 이쑤시개로 찔러 놓은 스페인 북부 사람들의 식문화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스페인의 식당(Restaurante)은 1시30분이나 2시쯤 문을 열고 4시에 문을 닫으며 저녁때는 8시30분, 혹은 9시쯤 문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식사 패턴은 스페인에 여행이나 출장을 간 ‘영국식 식사’를 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에겐 상당한 고통이다. 식당의 운영시간은 대략 이러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음식인 타파스를 파는 바(Bar)는 더 일찍 문을 여니 늦은 식사 시간에 따른 고통은 타파스 바에서 해결할 수 있다. 타파스는 뚜껑을 의미하는 단어다. 즉, 제대로 된 식기에 코스 정찬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보통 식사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로 간단히 먹는 것이다.


스페인의 대표 음식 하몬. 한 국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김치 생각나듯, 스페인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면 하몬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술잔 위에 벌레가 빠지지 않도록 술잔 위를 작은 접시로 덮고 그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던 것이 타파스 문화로 정착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타파스는 특정한 음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음식을 손님들이 다양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스페인 식문화의 한 형태를 의미한다. 타파스 바에서는 적은 분량의 타파스와 와인 한 잔 또는 맥주 한 잔으로 선 채로 식사를 하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남다른 스페인 식사 시간의 이유, 그리고 생산성
스페인의 식사 시간을 보면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두 시간 정도 늦다. 그리고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와의 시간 거리가 멀다 보니 중간에 아점을 먹는다. 스페인은 어떻게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식사 시간 문화를 가지게 됐을까?

지도를 보면 스페인의 중심을 통과하는 경도는 영국보다 더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런데 스페인은 국가 표준시로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서유럽 표준 시간을 쓰고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의 결정으로 당시 스페인이 쓰던 그리니치 표준시(GMT+0)에서 서유럽 표준시(GMT+1)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런던보다도 더 서쪽에 위치해 있지만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베를린의 시간, 1시간30분 정도 차이를 가진 시간대를 쓰게 됐다. 그러니 스페인에서는 해가 늦게 뜨고, 또 너무 늦게 진다. 여름에는 밤 10시까지 해가 떠 있고, 겨울에는 오전 9시쯤 돼야 해가 뜬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늦게 먹고, 늦게 잔다.

스페인 옆 포르투갈이나 하다못해 비슷한 위도의 지중해 연안 국가 이탈리아와 비교해도 스페인의 식사시간은 늦은 편이다. 최근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의 표준 시간대에 따른 이 독특한 식문화가 국가 노동 생산성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고 스페인의 표준 시간대를 그리니치 표준시(GMT+0)로 다시 옮기려는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 시간대를 옮기면서 ‘영국식 식사 시간’과 ‘영국식 근무 시간’으로 옮겨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표준 시간대의 변경으로 오랜 기간 유지된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이미 스페인식으로 고착화된 생활습관을 시간대를 바꾸는 것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필자 소개>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 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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