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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 많은 독일이 부러워? 삼성 협력업체가 애플에 납품 가능한가?

한근태 | 204호 (2016년 7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 세계 2734개의 히든챔피언 기업 가운데 무려 1307(48%)가 독일에 있다. 이들은 막강한 연구개발 능력과 조직 내 다양한 부서끼리의 원활한 공조 체제 등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독일에 히든챔피언이 유독 많은 이유는 다양하다. 통일이 19세기 말에야 이뤄지면서 국가 내 인재와 기업, 문화시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는 분권적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 훌륭한 직업훈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을 독일과 같은 히든챔피언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혁신 능력을 높여야 한다. 또 훌륭한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거나 창업을 하는 것이 인생에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대기업 역시 국내에 여러 히든챔피언이 존재해야 그들에게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딜 가나 힘들어 못살겠다는 얘기뿐이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세상 진리 중 하나는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고 반대로 나쁜 면 안에는 좋은 면도 있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역경과 고난도 그렇다. “역경에 처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좋은 약이 되고 행동이 단련된다. 만사가 잘 풀릴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가 되고 살이 녹고 뼈가 깎여도 깨닫지 못한다.” 채근담에 나온 말이다. 지금 여기서도 배울 게 있고 그것만 깨달으면 지금 일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쓴사장 일기라는 시를 보면 그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은 회사의 강장제, 변덕스러운 고객은 우리 제품을 나날이 더 나아지게 하는 은인, 말 안 듣는 직원 덕분에 내가 사람 다루는 솜씨는 이제 보통이 아니다.” 결국 고난을 통해 사람이나 조직은 성장한다.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역경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멘토를 갖고 있는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저자는 드러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만약 드러커가 살아 있다면 다음과 같은 답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생각해야 한다. 혼자만의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시간에 쫓기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둘째,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부분에 빠져 있지 말고 전체를 봐야 한다. 전체적인(holistic) 시각을 가져야 한다. 셋째, 과거를 봐야 한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 드러커는 역사를 깊이 이해했다. 역사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 미래를 기묘한 방법으로 연결했다. 과거에서 해법을 구해야 한다는 게 드러커의 주장이다. 넷째, 윤리경영의 중요성이다. 그는 탐욕, 과대망상, 고위 경영진의 지나친 보수 등에 관해 경고했다. 그가 특히 역겹게 생각한 것은 회사의 경영자가 수천 명의 근로자를 내보내면서 자신은 계속해서 엄청난 수입을 챙기는 것이었다. 도덕적,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드러커가 주장한 덕목은 고객을 진정으로 섬기기,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 사용자와 피고용자 간 상호 충성, 장기적 관점, 지나치게 큰 위험의 회피 등이다. 다섯째, 이익 중심의 경영 패러다임이다. 이익은 생존을 위한 비용이다. 이익을 내면 좋은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한다. 여기서의 이익은 장기 이익이다. 힘들어도 함부로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거나 정리해고 등을 하면 안 된다. 모든 경영활동의 초점을인간이익에 맞추고 넓고 깊게 생각한 후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역경을 돌파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히든챔피언들이다. 숨어 있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정 분야에서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특히 독일에는 히든챔피언이 많다. 전 세계 2734개의 히든챔피언 기업 가운데 무려 1307(48%)가 독일에 있다. 인구 100만 명당 히든챔피언 숫자는 독일 16, 미국 1.2, 일본 1.7, 중국 0.1, 한국 0.5개니 독일이 얼마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뛰어난 혁신으로 고성능 마이크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사를 압도하는 젠하이저(Sehnheiser), 칩 공장에 석판렌즈를 공급하는 석판 시스템 분야 일등 칼자이스 SMT, 풍력발전 분야의 선도기업 에네르콘 등이 그렇다. 독일 히든챔피언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문화고 다른 하나는 세계화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부가가치 높은 제품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틈새시장에 파고드는 것이 그들의 기본 전략이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연구개발 능력이다. 부가가치와 혁신능력은 바로 연구개발 능력에서 나온다. 이들은 매출액의 5.9%를 연구개발에 쓴다. 독일에서 혁신기업으로 분류된 기업들의 두 배에 해당하고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회사 1000곳의 연구개발비 지출비율보다 50%가량 더 높다. 종업원 1000명당 특허출원 건수가 대기업은 5.8건인 데 비해 히든챔피언 기업은 30.6건에 달한다. 특허 신청을 위해 지출한 연구개발비 역시 히든챔피언의 경우 529000유로이고 대기업은 건당 259만 유로다. 수성페인트 분야의 선두주자 알버딩크볼리(Alberdingk Boley)의 경영진은시장과 기술을 통합해 내부의 전문지식과 외부의 기회가 적절히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고 말한다.

 

혁신에서 성공하려면 연구개발부서와 다른 부서 사이에 공조 체계가 필요하다. 안전벨트용 스프링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케른-리버스(Kern-Liebers)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참가자 모두의 협조를 통해 완성된다.” 이들 기업 내에서 부서 간 협조는 대기업보다 원활하게 이뤄진다. 각 부서의 공동 작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제품 또는 서비스의 개발기간도 짧아진다. 크고 획기적인 혁신보다 조금씩 꾸준히 개선하는 일에 더 힘을 기울인다. 쇼핑 카트 시장의 선도업체 반즐은지속적인 혁신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고급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밀레(Miele)항상 더 낫게(Immer besser)’란 구호를 쓴다. 끊임없는 작은 개선을 통해 완벽의 상태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돈의 문제라기보다 올바른 두뇌, 리더십, 그리고 과정의 문제다.

 

 

히든챔피언 탄생의 비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독일에 히든챔피언이 많은 것일까? 첫째, 통일이 늦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국, 일본 같은 선진국과 달리 독일은 아주 늦게 통일이 됐다.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한 것은 1871, 19세기 말이다. 그때까지 독일은 수많은 작은 나라의 집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방법은 국제화뿐이었다. 남부 바이에른에 있는 회사가 북부 베를린이나 함부르크에 있는 고객에게 자사 제품을 팔려면 그 자체가 이미 국제사업이다. 둘째, 여러 지역별로 오랜 기간 축적돼온 전통 역량이다. 남서부의 흑림(black forest) 지역인 슈바르츠발트에서는 몇 백 년 전부터 시계 공업 등 정밀기계공학이 발달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정밀기계공학을 필요로 하는 의료기술 전문 회사가 400개나 몰려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히든챔피언이다. 괴팅겐대가 있는 북부의 괴팅겐에는 수십 개의 계측기 회사가 있다. 이는 오랫동안 수학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 온 괴팅겐대 수학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셋째, 치열한 경쟁이다. 독일은 많은 산업에서 국내 회사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 경쟁사들이 같은 지역에 집중해 자리잡은 경우도 많다. 일종의 산업 클러스터가 여러 지역에 형성돼 있는데 그 안에서 히든챔피언을 비롯한 국내 회사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면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넷째, 분권적 구조를 갖고 있어 산업 및 시설이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정치, 경제, 행정, 문화는 한 도시 혹은 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이 거의 모든 분야의 중심지이며 일본은 도쿄, 영국은 런던, 프랑스는 파리에 나라의 핵심 인물과 시설이 몰려 있다. 반면 독일은 분권적 구조를 갖춘 독특한 나라다. 나라의 주요 인물과 기업, 문화 시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따라서 히든챔피언도 독일 전역에 비교적 고루 퍼져 있다. 덕분에 독일은 지방에서도 인재를 채용해 오래 머물게 하기 쉽고, 구태여 큰 도시에 회사나 공장을 세울 필요가 없다. 지역적 분산은 독일의 큰 강점이자 독일에 특히 히든챔피언이 많은 주요 원인이다. 다섯째, 제조업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는 점이다. 독일은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육박한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약 두 배로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튼튼한 제조업 기반은 수출경쟁력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무엇보다 제조업은 국내에서 생산해 국내외에서 판매하므로 서비스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대부분 제조회사이며 이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중소기업보다 훨씬 활발히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여섯째, 혁신 능력이 뛰어나다. 한 나라의 혁신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특허출원 건수다. 지난 10년간 독일이 등록한 13만 건의 특허출원은 다른 나라의 특허출원 건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인구가 4700만 명인 스페인의 특허출원 건수는 독일의 2.8%에 불과하다. 독일의 1인당 특허출원 건수는 프랑스의 2배 이상, 이탈리아와 영국의 4배 이상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를 합한 것의 12배를 넘는다. 이처럼 독일은 혁신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레 형성된 국가적 분위기가 히든챔피언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나오는 특허출원 중 상당수가 히든챔피언의 작품이다.

 

일곱째, 훌륭한 직업훈련 시스템이다. 정부가 직업학교를 운영하고 민간기업이 기술 훈련을 맡고 있는 독일의 직업훈련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것은 정부와 기업, 이론과 실무를 결합한 모델로 독일 기업들의 생산성과 품질이 높은 이유의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여덟째, 단위 노동 비용(unit labor cost)의 경쟁력이 높다. 단위 노동 비용은 생산성 변화와 임금 변화를 모두 감안한 수치다. 예를 들어 생산성이 5%, 임금이 4% 상승하면 단위당 노동원가는 1% 감소한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독일의 단위 노동 비용은 10% 오른 데 반해 유럽연합(EU) 전체는 24%, 프랑스는 무려 30%까지 상승했다. 이는 독일 경제가 품질뿐 아니라 원가 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는 뜻이다. 아홉째, 독일 국민의 국제화 수준이다. 독일인의 56%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해외여행도 많이 한다. 덕분에 독일에는 기꺼이 해외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비교적 많다. 또한 독일 대학생의 6.2%가 해외에서 공부했고 현재 독일 내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11.4%가 외국인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외국 학생들은 히든챔피언의 세계화 전략 실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리더십도 이들의 강점이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압도적인 인적·물적 자원 앞에서 독일군이 그토록 오랫동안 잘 싸운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실제 히틀러는 1941 1211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그로부터 무려 36개월이나 버틴 끝에 1945 5월에야 항복했다. 미국, 소련,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엄청난 인적·물적 우위에 맞서 독일군은 42개월이나 버텼다. 독일군은 긴 전쟁 기간 내내 한결같이 최강의 전투력을 발휘했고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비결이 뭘까? 바로 임무 중심적 지휘 시스템(mission-oriented command system) 때문이다. 지휘관은 부하들에게 임무만 하달하고 수행을 위한 자세한 지시는 직접 하지 않는다. 반면 미군의 지휘 시스템은 프로세스 중심적(process-oriented)이다. 지휘관이 수행해야 할 임무뿐 아니라 실행 지침까지 지시한다. 헤르만 지몬은 독일 히든챔피언의 여러 성공요인 중 최고는 CEO의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독일군 지휘관처럼 우선순위와 목표를 확실히 정한 뒤 실행을 위한 세부사항은 직원들에게 맡긴다.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부하직원이므로 그들은 당연히 상관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 잘 안다. 이처럼 전쟁터나 경영 현장에서 개인의 솔선수범, 책임, 유연성, 그리고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독일 특유의 리더십 스타일이 현대 경영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게 헤르만 지목의 해석이다.

 

히든챔피언의 나라가 되려면

 

그렇다면 한국을 히든챔피언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혁신 능력을 높여야 한다. 확실한 전문성 없이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고 전문성은 쉴 새 없는 혁신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자체 역량만으로 원하는 만큼의 연구개발을 진행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프라운호퍼(Fraunhofer)연구소처럼 산업체가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해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프라운호퍼에서는 약 2만 명의 연구원이 응용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독일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은 프라운호퍼와 긴밀히 협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혁신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가용 필름 카메라 분야의 선도기업 ARRI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 회사는 MP3 시스템을 개발한 프라운호퍼의 도움으로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정부 정책의 주안점은 궁극적으로 히든챔피언들이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연구개발 능력을 함양시켜주는 데 있다.

 

둘째, 훌륭한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키우거나 창업하는 것이 인생의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야 한다. 히든챔피언은 기업가정신이라는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다. 독일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 SAP IBM의 독일 자회사에서 일하던 네 명의 젊은이가 과감히 IBM을 그만두고 1972년에 설립한 회사다. 설립자 중 한 명인 하소 플래트너는 거대한 전자회사 지멘스에서 인터뷰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멘스에서는 도저히 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 회사는 마치 우체국 같았다.” 스크린골프 시장의 1위 기업인 골프존의 설립자 김영찬 회장과 세계적인 건설사업관리(CM) 회사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은 모두 삼성 출신 기업인이다. 이들이 IBM이나 삼성에 계속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개인적으로는 성장하는 회사에 합류한 젊은이가 대기업에 입사한 또래보다 더 성장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셋째, 대기업은 국내에 우수한 히든챔피언이 많아야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독일의 보쉬(Bosch)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 회사다. 그러나 그 회사의 국제경쟁력은 수많은 히든챔피언의 도움 덕분에 가능하다. 우수한 협력회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재벌 기업들에 유리하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회사는 애플이나 화웨이 혹은 샤오미에도 납품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자동차의 협력회사는 도요타나 폴크스바겐과도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수한 인재가 몰려 있는 대기업에는 잠재적 히든챔피언이 아주 많다. 그런 사업부들을 과감하게 분사하면 그들이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Bayer)에는 한때 치과용품을 생산하는 부서가 있었는데 연 매출이 약 15000만 유로( 2000억 원)였다. 그 정도 매출로는 회사 내에서 주목을 받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바이엘은 이 부서를 분사해헤라우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분사 후 헤라우스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치과 의료장비 시스템 회사 지로나(Sirona)도 지멘스의 작은 치과사업 부서였다. 몇 년 전에 독립한 지로나는 곧바로 기업가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났다. 한국의 대기업에는 많은 잠재적 기업가들이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좌절하거나 관료화되고 있다. 이들의 기업가정신과 대기업의 자본력, 경영 노하우를 결합한 사업모델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

 

넷째, 히든챔피언이 나오도록 여러 개의 산업 클러스터가 있어야 한다. 산업 클러스터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국내 경쟁은 기업을 강하게 만드는 담금질이다. 실제로 독일에서 산업 클러스터는 히든챔피언의 산실이다. 한국에서는 대덕단지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KAIST 졸업생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전문화된 기업이 속속 생기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곳의 기업인들은 서로 협조하는 동시에 경쟁한다.

 

무엇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열린 문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전략이나 경영 방식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상, 혁신적인 전략과 경영 방식을 자유롭게 논의하며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조직 구성원의 경험이 다양하고 폭넓을 때 잘 이뤄진다. 특히 전문가는 경험의 포로가 될 위험성이 크므로 회사나 업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가끔이라도 만나는 것이 좋다. 또 체계적인 직무 순환(job rotation), 해외 근무, 부서 간 잦은 접촉 등도 도움을 준다. 임원진 나이를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도 좋다. 임원들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모두 나이가 많으면 회사가 과거 경험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임원회의가 원로회의로 전락하면 곤란하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경험의 덫을 피해 가는 중요한 수단이다. 경영자가 쌓아온 경험은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배적인 판단의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대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기는 아이디어를 살펴보기 전에 경영자 자신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경영자는 언제나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듯 비판적으로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경영자의 그러한 아량과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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