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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中有訓

무릉에서 도원을 찾다:새 세상은 미래다

고연희 | 202호 (2016년 6월 lssue 1)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동아시아 유토피아

 

‘무릉도원’이란 말은 중국의 대문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한다. 5세기 초의 글이다. 내용을 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漁夫)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도화꽃잎이 떠내려 오는 물길을 따라 가서 동굴 너머에 숨은 한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마을은 진시황(秦始皇)의 폭정을 피해 온 사람들이 근 600년을 평화롭게 꾸려온 행복 공동체였다. 어부는 이곳에서 며칠 동안 대접받은 후 나왔다. 나올 때 마을 노인이 바깥 세상에 알리지 말라 당부했지만 어부는 곧장 세상에 알렸고 사람들은 동굴 속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마을을 찾지는 못했다.

 

<도화원기>의 기록은 1000년이 넘도록 한국과 중국의 문인들의 상상을 자극했다. 많은 문인들이 도원 속 마을의 정체에 대해 무궁한 생각을 쏟아놓으며 시문을 지은 이유다. 도원의 사람들이 복숭아꽃이 떠내려오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치고 동굴을 막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버리고 다른 데로 옮겨간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곳은 원래부터 신선의 마을이었나? 명백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무릉도원으로 떠오르는 상상의 이미지가 동아시아 유토피아로 정착됐다는 사실이다. “이곳이 곧 무릉도원이야라는 구절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의 표현이다. 무릉도원이란 아름답고 즐거운 곳의 대명사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무릉도원을 상상으로 그린도원도(桃源圖)’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 소개하는 작은 한 폭의 <무릉심원>도 그중 하나다. 푸른 산속 동굴 너머로 도화가 활짝 피어 분홍 색조가 화사한 가운데 닭 가족이 먹이를 먹고, 개가 뛰며, 아이들이 활기차고, 가옥들은 말쑥하다. 18세기 조선의 화원화가가 상상한 도원의 풍경, 행복한 마을의 풍경이다.

 

한후량(梁箕星), <무릉심원(武陵尋源, 무릉에서 도원을 찾다)>, 18세기, 종이에 설색, 38.0 x 30.3cm, <만고기관(萬古奇觀)> , 삼성리움미술관.

 

꽃과 빛을 따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한 무릉도원. 그곳에 이른 오직 한 사람이 <도화원기> 속 주인공 어부다. 어부가 도화원에 도착한 뒤, 많은 사람들은 도원을 찾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찾을 수 없었으니, 결국 어부는 도원에 이른 유일한 사람이다. 어부는 어떻게 도원에 들어간 것일까. <도화원기>를 다시 살피면 이러하다. 어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헤매던 그가 물에 떠 흐르는 꽃잎을 보았다. 어부는 꽃잎이 어디에서 흘러오나 궁금했다. 산속에서 홀로 어부는 겁도 없이, 생각도 없이 꽃잎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그는 산 속 깊숙이 들어가서, 꽃잎의 근원지인 도원(桃源, 혹은 도화원桃花源, 즉 복숭아꽃의 근원)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고 동굴 속에는 빛이 어렸다. 어부는 곧장 동굴로 들어갔다.

 

어부의 모습은 발명과 발견이 이뤄지는 과정을 응축해 보여주는 시적 은유(隱喩, 메타포). 분홍꽃잎을 쉼 없이 하염없이 따라가고 빛을 쫓아간 어부. 그 맹목적인 호기심과 추진력의 과정은 우리가 계획서를 제출해 실천하는 과정과는 매우 다른 프로세스다. 계획서 그대로 진행할 수도 없지만 뜻밖의 발견이나 발명이란 계획될 수 없다. 그것은 계획한 것 밖의 세계에서 이뤄진다. 호기심에 끌려가는 맹목적 실천과 용기의 세계가 그것이다.

 

노인과 아이가 즐겁다

 

그런데 행복한 곳의 대명사라는 무릉도원 속 마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산속의 밀폐된 공간에서 수백 년을 버텼다니 꽃잎을 쫓아온 어부처럼 새를 따라, 구름 따라 그곳을 빠져나가려 한 젊은이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고, 질병도 없고, 범죄도 없고, 경제적 심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회라는 그 자체도 이상하다. 이처럼 이상하게 행복을 보장하는 곳, 무릉도원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의 구현으로 알려져 있다. <도덕경>이 묘사한 작은 나라에는 수레, , 무기, 의례용 기물 등이 있으나 사용되지 않고 문자도 고대문자가 쓰인다. 바꿔 말하면, 전쟁, 여행, 잔치, 그리고 잡다한 문학이 없다는 뜻이다. 소란한 치장의 문화가 없기에 소박하고, 영토 확장의 욕망이 없으니 평화롭다.

 

 무릉도원의 핵심은 그래서 구성원들이 누리는 행복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그들의 행복지수를 한 구절로 표현했다.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과 머리터럭이 아직 노란 어린이가 모두 즐거워하더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구성원들까지 모두가 즐거운 공동체, 말하자면 평화와 평등이 실천되는 이상적 공동체이다.

 

 

우리의 무릉도원

 

무릉도원이란 갈 수 없는 곳이라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의 무릉도원을 수도 없이 구상했다. 저 아래 청학동이 그런 곳이라며 가까운 곳에 이웃이 꾸려놓은 무릉도원을 상상했고, 아예 자신의 공간을 무릉도원이라 말하면서 활짝 웃곤 했다. 사실 인류가 구상한 여러 가지 유토피아 가운데 동아시아 무릉도원은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자연친화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곳은 저 산 너머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화려한 요리와 음악의 감각적 환상을 제공하는 유토피아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뜻이다.

 

그림을 다시 보면 작은 시골마을의 풍경일 뿐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화첩은 <만고기관(萬古奇觀)>, 즉 만고의 멋진 볼거리라는 표제를 가진 왕실 그림책이다. 이 그림 곁에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쓴 시 <도원행(桃源行)>이 적혀 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가 원조(元祖)라면, 그 후로 역대의 걸출한 문인들인 당나라의 왕유와 한유(韓愈), 송나라의 소식(蘇軾) 등이 지은 도원시문이 있다. 우리 선저들 중에도 고려의 이색(李穡)으로부터 조선후기 강세황(姜世晃) <도원도>그림과 이를 읊은 정약용(丁若鏞)의 시문 등 무수하며, 세종대왕 시절의 대표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도 도원의 오랜 꿈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만고기관> <무릉심원> 곁에는 이 가운데 왕유의 시 전편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그 마지막 구절만 옮겨보겠다. 당나라 때에도 이미 무릉어부 이야기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였다. 해마다 봄이 오고 분홍빛 복사꽃이 피어나면 사람들은 무릉도원을 떠올렸다.

 

봄이 오니 온통 복숭아꽃 떠 흐르는 물이라,

선경 도화원을 어찌 찾을지 분간하지 못하겠네.

春來徧是桃花水, 不辨仙源何處尋.

 

한반도에도 새봄이 왔고 거리에는 봄꽃이 가득 피었다. 복사꽃 가득한 무릉도원 그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 흩어져 날리는 저 꽃잎들 가운데, 도원의 마을에서 내려온 꽃잎이 있을 수 있다고 상상했던 옛 분들의 마음을 떠올려 볼 일이다. 더 나은 현실과 이상으로의 비전은 봄날의 꽃잎처럼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찾고 누릴 비전은 어부가 찾았던 그곳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낼 새로운 세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 고연희 고연희 | - (현) 서울대 연구교수
    -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활동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
    -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lotus12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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