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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성격심리학

사회적 가치추구형 CEO가 승리한다 아들러 심리학, 위대한 리더십의 열쇠를 던졌다

고영건 | 184호 (2015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15년 한국의 독서시장 키워드 중 하나는아들러 심리학이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층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로 우리가 흔히 쓰는콤플렉스’ ‘라이프스타일등의 개념과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라이프스타일을 사회적 가치추구형·지배형·의존형·회피형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분석틀을 토대로 위대한 리더를 살펴보면 대부분사회 가치추구형인 것으로 나타난다. 애플의 현 CEO 팀 쿡이 대표적인 사회 가치추구형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리더다. 심지어지배형 리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스티브 잡스 역시 아이팟 성공 이후 좀 더사회적 가치 추구형 라이프스타일로 변화했을 때 더 큰 업적을 내고 세상에 공헌했다.

 

편집자주

심리학은 현재 경영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가장 고독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경영현장에서 글로벌 경쟁을 치르고 있는 CEO들은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임상심리학자이면서 각종 이론심리학에도 정통한 고영건 교수가 CEO 여러분들이 심리학 이론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CEO를 위한 성격심리학을 연재합니다.

 

 

미국의 경제지 <포천(Fortune)> 2015년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조직을 발전시킨 지도자 50명을 선정했다. 세계 최고의 리더로는 팀 쿡(Timothy D. Cook) 애플 CEO가 선정됐다. <포천>은 애플 주가가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애플페이와 애플워치 등 새로운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내세웠다.

 

팀 쿡이 애플의 CEO로 선임된 건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6주 전인 2011 8월이었다. 사실 그가 애플의 CEO로 취임할 당시 회사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애플은 경쟁업체들의 추격에 따라 순이익이 전년보다 18%나 감소한 상황이었다. 또 잡스가 쓰러진 후 애플이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2013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언론은 팀 쿡의 애플에 대해서 비관적인 전망을 공공연하게 내보냈다.

 

하지만팀 쿡의 애플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기업 중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7000억 달러(7776300억 원)를 넘어섰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1999년에 세웠던 시가총액 6130억 달러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때와 비교하더라도 애플의 시가총액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것은 팀 쿡이 2011 8월 애플의 CEO로 취임한 지 채 4년도 되지 않아 세운 대기록에 해당된다.

 

물론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팀 쿡이 스티브 잡스보다 더 훌륭한 CEO라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적 자료들은 애플이 반드시 스티브 잡스의 애플로 남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얼마든지 팀 쿡의 애플도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현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CEO로서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이러한 차이, 그리고 CEO로서 팀 쿡의 성공 비결을 이해하는 데 아들러의 성격 심리학 이론은 매우 유용한 분석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심층심리학의 거장, 아들러

올해 한국 독서 시장에서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알프레드 아들러(Alferd Adler). 아들러는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 이면의 세계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심층심리학의 3대 거장 중 나머지 두 명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칼 융(Carl G. Jung)이다.

 

그중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프로이트라는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가 거인보다도 세상을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전형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의미치료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Vikctor Frankl)은 아들러가 사실상실존주의적 정신의학 운동의 창시자이며 그가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발견해낸 성과는 가히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업적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이 일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을 마치 상식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상식처럼 활용하고 있는 심리학 이론을 만든 사람이 바로 아들러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거의 모른다. 이 글에서 소개되는 아들러의 설명을 읽다 보면 아들러 이론의 대부분이 매우 익숙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아들러가 창안한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의 핵심 개념들을 실제 인물 사례들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아들러 생애의 특징

세 명의 심층심리학자 중 아들러는 가장 단명한 사람이었다.

 

 

프로이트는 83세에 세상을 떠났고 또 융은 86세에 사망했다. 19세기에 유럽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사망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 수명이 약 66세였던 점을 고려해 보면 이들은 대단히 장수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심리학자들이 장수하게 된 중요한 비결 중 하나는 그들이 평생 내면의 세계를 깊이 탐구했던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심층심리학이 선사해 주는 삶의 지혜가 그들이 장수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반면 아들러는 프로이트 및 융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67세 때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당시 유럽인들의 기대수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아들러의 삶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모순되는 평가가 공존한다. 하나는 그가 심층심리학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들러는 심층심리학을 제대로 탐구하지 못한 것이 된다. 반면에 이것과는 정반대로 그가 심층심리학의 지혜 덕분에 자신처럼 삶을 불행한 조건하에서 출발하게 된 다른 동년배들보다 장수의 혜택을 많이 누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되는지 직접 판단해 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러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러는 아동기 때 매우 병약했다. 사실 아들러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도 병약한 편이었다. 실제로 바로 밑의 남동생은 그가 4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들러는 어려서부터 구루병(rickets), 즉 비타민D 결핍으로 인해 척추가 굽는 병을 앓았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비명을 지를 정도의 고통을 일으키는 후두 경련에 시달리기도 했다. 5세 때 그는 폐렴 때문에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취약하게 태어났던 아들러가 평균 수명만큼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심층심리학을 통해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초기 아동기 경험이 삶의 목적성에 미치는 영향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주로 만 4∼5세 무렵의 아동기 경험이 향후 개인의 삶의 방향성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봤다는 점이다.

 

아들러는 삶의 목적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초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초기 기억이 반드시 사실에 기초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무엇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들러가 이러한 이론을 제시하게 된 데는 그 자신의 독특한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들러의 초기 기억 중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가는 길목에 있었던 공동묘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그 공동묘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아들러는 그 자신에게 유전적인 결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년 시절에 질병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던 관계로 그의 내면세계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러는 다른 친구들이 자신과는 달리 그 공동묘지를 태연하게 지나치는 것을 보고서 크게 당황했다. 스스로 겁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러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해 냈던 방법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다가 가방을 묘지 근처에 두고 온 다음에 혼자서 그것을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그는 12차례나 시도한 끝에 간신히 두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아들러는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초등학교 동창들을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아들러와 친구들은 유년 시절의 추억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아들러는 친구들에게 무심결에 과거에 자신이 두려워했던 공동묘지에 관해 얘기하면서 아직도 그 공동묘지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러의 친구들은 그 누구도 공동묘지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 후 옛 동네를 다시 방문한 아들러는 자신의 과거 기억 속 공동묘지가 실제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들러는 자신의 왜곡된 초기 기억이 유년 시절에 죽음 문턱에 다다르고 또 질병으로 동생을 잃었던 충격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또 아들러는 이러한 기억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상상을 통해 빚어낸 창작품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그에게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게 심어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아들러는 삶에서 사실 그 자체보다는 인간의 현재 행동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는 동일한 경험을 하더라도 개인이 어떤 삶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회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들러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많은 유년기 상황들이나 일화들 속에서 한 가지 특별한 것을 골라서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중요한 관심사가 이러한 과거 기억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바로 이러한 선택적 관심사가 그 사람의 삶을 관통해 흐르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100명 이상의 의사들에게 유년기의 첫 기억에 관해 질문을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의사들은 첫 기억으로 자신이 중병에 걸렸던 경험 혹은 가족의 죽음과 연관된 사건들을 떠올렸다. 또 아들러는 가족 중에 사망자가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를 질문했다. 그러자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의사라고 답했으며 여자 아이들은 간호사라고 대답했다. 다만 일부는 화학자나 약사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와는 대조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알콜 중독자의 최초 기억은 다른 집단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더 적고 부정적인 자기개념이 더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개인심리학에서의 꿈 분석

아들러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틀에 관해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각 다른 생각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 등이 종합적으로 개인의 주관적 현실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개인이 지각하는 주관적인 현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 및 융과 마찬가지로 아들러 역시 꿈 분석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꿈을무의식적 소망이 충족된 것이라고 해석한 프로이트, 그리고인류의 종 특성으로서의 집단적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융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아들러에 따르면 꿈은 단지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꿈 분석 과정에서 아들러는 개인적인 차원의 욕구보다는 꿈을 꾼 사람의 사회적 관심을 해석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들러는 아내와 불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어느 남성의 꿈 분석 사례를 제시한 적이 있다. 그의 불만은 아내가 두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 남성은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세 자녀 중 막내를 잃어버리는 내용의 꿈을 보고했다. 그는 자신의 꿈과 관련해서 아내가 자녀 양육에 태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녀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같은 꿈에 대해서 그 남성의 심리적 세계가 아내와의 화해를 원하고 또 부부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아들러는 꿈이 미래 삶의 방향성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아들러는 꿈 분석 과정에서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들러는 불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는 젊은 남성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젊은이는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에 취업한 적이 있었는데 불면 때문에 그 일을 그만뒀다. 그 젊은이의 최초 기억은 레스토랑에서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내용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벽에 공을 던지는데 그 공이 튀어 날아가 버리는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된다고 보고했다. 아들러가 그에게 꿈에서 공이 날아가 버렸을 때 느낌이 어땠냐고 묻자 공이 날아가 버리면 곧 잠에서 깬다고 답변했다.

 

아들러는 그 꿈이 그에게 일종의 자명종 시계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꿈에서 누군가가 공을 벽에 던지는 것은 상징적으로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아버지가 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꿈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중간에 잠을 깨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음 날 피곤해서 아버지가 권유했던 바로 그 일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 젊은이가 아버지의 권유를 거절하기 위해 사용한 무의식적인 방법은 불면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아들러의 라이프 스타일

아들러에 따르면 개인(individual)나누는(divide) 것이 불가능한(in) 존재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개인을 무의식적인 본능인 원초아(Id), 무의식적 통제자인 자아(Ego), 그리고 무의식적 도덕성에 해당되는 초자아(Superego)로 나눴다. 또 융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자기모습인 페르소나(persona)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기 내면의 모습인 그림자(shadow), 남성 속의 여성성을 뜻하는 아니마(anima), 여성 속의 남성성을 의미하는 아니무스(animus) 등으로 나눴다. 아들러는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인간 존재를 나누려 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및 융과는 대비되는 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확립했다. 개인심리학에서는 개인 내적인 분석보다는 개인과 또 다른 개인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회적 관심과 태도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들러는 개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오늘날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전문 용어로 간주되지 않을 정도로 상식적인 표현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이 용어는 아들러가 창안한 개념이다. 아들러가 프로이트 및 융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심리학적 분석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라이프스타일은 삶에 대한 개인의 기본적 지향성 및 성격을 뜻한다. 또 라이프스타일은 인생관, 자기관, 인간관 등을 포함한 개인의 인생 취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아들러에 따르면 만 4∼5세 때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은 그 이후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속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한 개인이 인생의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어떠한 방법으로 인생의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지에 관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진행하기에 앞서 < 1>의 단축형 검사문항을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CEO를 위한 아들러의 라이프스타일 검사

< 1>의 체크리스트가 비록 단축형 검사일지라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검사의 채점

본 라이프스타일 검사는 각 요인당 3문항씩 총 15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관심요인 점수: 1, 2, 3번 문항 점수의 합

이타성요인 점수: 4, 5, 6번 문항 점수의 합

지배형점수: 7, 8, 9번 문항 점수의 합

회피형점수: 10, 11, 12번 문항 점수의 합

의존형점수: 13, 14, 15번 문항 점수의 합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가치 추구형 점수를 계산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 추구형 점수는 다음과 같이 계산한다.

 

* 사회적 가치 추구형 점수 = [사회적 관심 요인 점수 + 이타성 요인 점수] ÷ 2

 

당신의 지배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사회적 가치 추구형 점수, 지배형 점수, 회피형 점수, 의존형 점수 중 가장 높은 값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사회적 가치 추구형 점수가 10점이고 지배형 점수가 12점이며, 회피형 점수가 11점이고, 의존형 점수가 10점이면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은 지배형이 된다.

 

만약 동점이 있는 경우, 당신의 지배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여러 가지 유형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본 검사가 단축형 검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당신의 지배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여러 가지 유형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래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설명을 읽어봄으로써 단순한 측정 오차의 문제인지, 아니면 실제로 여러 가지 라이프스타일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과 세 가지 인생과제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해서 아들러는 누구나 세 가지 주요한 인생과제(life task)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제는 일, 사랑,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이러한 세 가지 인생과제와 관련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아들러는 이러한 세 가지 인생과제들이 개별 문제의 형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세 가지 요소가 긴밀하게 상호 연관돼 있다고 봤다.

 

아들러의 세 가지 인생과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인 관심이다. 사회적 관심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공동체 내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의 발전에 기여한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모든 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한 아무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왜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아들러는 개인의 사회적 관심이 그 사람의 심리적 건강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유용한 척도라고 믿었다.

 

아들러는 사회적 관심과 개인의 활동성 수준을 중심축으로 해서 라이프스타일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 2) 사실상 아들러의 라이프스타일 유형은 사회적 관심 수준이 높은 유형과 낮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낮은 수준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존형은 타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기를 기대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인 협동이 필요한 장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또 회피형은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 현실 세계로부터 철수된 상태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자신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지배형은 개인적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주로 독재자나 가학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여기에 해당되며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마치 정복자 같은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가치 추구형은 심리적으로 가장 건강한 유형에 해당된다. 이들의 사회적 활동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며 이들은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 협동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 추구형은 이타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인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이타적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줬으면 하는 바로 그 행동을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타주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도록 해주며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은 이타적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타주의자는 보수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풀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이 실제로 수행한 일의 10배를 심리적 보상의 형태로 되돌려받게 된다.

 

 

리더들의 라이프스타일 비교

유명한 CEO들 중에는 사회적 가치 추구형과 지배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드물지라도 의존형 리더와 회피형 리더가 역사적인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워런 하딩(Warren G. Harding)과 캘빈 쿨리지(John Calvin Coolidge)가 대표적인 예다. 2007 CBS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둘은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명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형적인 의존형 리더에 속하는 워런 하딩은 미국의 오하이오 주 소도시에서 신문 편집장으로 일했다. 정치적 야망이 컸던 연상녀 플로렌스와의 결혼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부유한 은행장의 딸이었던 플로렌스의 노력으로 그는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의원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준비가 돼 있지 못했던 그는 재임 중 단 한 건의 의회 발언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놀랍게도 1921년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발탁됐다. 그 결정적인 비결은 바로 그의 외모가대통령답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당시 정세로는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는 선거였기 때문에 공화당 원로들은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워런 하딩을 꼭두각시 역할을 해줄 후보로 내세웠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그를로마인으로 표현할 정도로 열광했으며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61%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는 순종하는 바보인 동시에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그의 재임기간은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졌다. 결국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떠맡았다가 무거운 책무에 짓눌려 허우적거리다 죽은 무능한 대통령의 상징으로 남게 됐다. 그 스스로도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고 직접 토로할 정도였다.

 

전형적인 회피형 리더인 캘빈 쿨리지 역시 미국 최악의 대통령 리스트에서 줄곧 상위를 점하는 인물 중 하나다. 캘빈 쿨리지는 1920년에 워런 하딩과 함께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고 선거에서 승리해 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1923 83일 새벽 캘빈 쿨리지는 급사한 워런 하딩의 뒤를 이어 미국의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된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그가 보였던 지독한 과묵함과 침묵은 백악관에서 전설이 될 지경이었다. 영부인이었던 그레이스는 만찬장에서 있었던 캘빈 쿨리지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만찬장에서 한 여인이 캘빈 쿨리지가 만찬장에서 세 마디 이상 말을 하면 자신이 이기는 내기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캘빈 쿨리지는 그 여인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답했다. “당신이 졌소(You lose).” 그 후로 그는 그 만창장에서는 한마디 말도 안 했다. 분명히 두 마디는 더 할 것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결국 그게 마지막 말이었던 셈이다. 1928년에 사우스다코다에서 휴가를 보내던 캘빈 쿨리지는 그가 발표했던 간단한 성명서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발표를 한다. “나는 1928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역사가들로부터 캘빈 쿨리지는임기 동안 잠만 잔 대통령혹은침묵의 쿨리지라는 조롱 섞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리더로서 중요한 일들에 대해 시종일관 회피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세상의 호사가들은 스티브 잡스 이후에 누가 애플의 CEO가 될 것인지 많은 추측을 내놓았다. 그때 호사가들이 거론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스콧 포스톨(Forstall) 수석 부사장과 팀 쿡이었다. 이들은 아들러의 라이프스타일 이론을 바탕으로 할 때 지배형과 사회적 가치 추구형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스콧 포스톨은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처럼 부하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그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의 젊은 시절을 빼닮았던 그는 한때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애플에서 그는리틀 잡스로 통할 정도였다.


 

지배형 리더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형으로 변한

스티브 잡스가 스콧 포스톨과

팀 쿡 중에서 팀 쿡을 후계자로

발탁한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팀 쿡은 스콧 포스톨을 단칼에 해고했다. 팀 쿡이 밝힌 해고의 이유는협업(collaboration)’에 방해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팀 쿡과 스콧 포스톨 중 자신의 후계자로 팀 쿡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지배형 리더의 한계를 그 자신이 직접 절감한 적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85년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 애플에서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John Sculley)에 의해 쫓겨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전형적인 지배형 리더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후 넥스트와 픽사를 거쳐 다시 애플에 복귀하게 되면서 스티브 잡스는 변했다. 팀 쿡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후 다른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왜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런 점에서 지배형 리더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형으로 변한 스티브 잡스가 스콧 포스톨과 팀 쿡 중에서 팀 쿡을 후계자로 발탁한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팀 쿡이 스콧 포스톨을 해고했을 때, 애플 내부에서는이것은 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이라는 평가가 터져나왔다. 이런 점에서 역사에서 지배형 리더의 말로는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콤플렉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서 사람들이 흔히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라고 부르는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학자도 역시 아들러다.

 

콤플렉스는 개인이 주어진 문제 상황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을 말한다. 콤플렉스는 단순히 좌절감과 무기력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슬픔과 분노감도 콤플렉스가 표현된 결과일 수 있다.

 

콤플렉스가 표출되는 방식에 관해서는 동물원에 구경을 간 세 명의 아이들이 사자를 보고서 나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동물에서 사자를 본 세 명의 아이들 중 첫 번째 아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면서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는 창백한 얼굴로 떨면서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아이는 사자를 노려보면서침을 뱉어줄까 보다라고 말했다. 아들러에 따르면, 이 세 아이들은 모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각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열등감을 표현한 것이 된다. 즉 사자가 무섭고 그 무서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콤플렉스는 세 아이 모두 같지만 표현 방식은 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모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봤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콤플렉스와 더불어 자신의 삶의 문제들에 도전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향해 나아가는우월성에 대한 추구(striving for superiority) 경향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콤플렉스는 사람들이 완전성과 우월성을 추구하도록 동기화할 수 있으며 심리적으로 적절한 보상(compensation) 과정을 거치게 될 경우 실제로 심리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공동묘지 일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들러는 취약한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러의 삶에서 이러한 콤플렉스는 그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병약한 신체 조건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됐다. 따라서 콤플렉스는 그의 삶이 발전하는 원동력의 역할을 해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들러는삶에서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자기완성을 위해 중요하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상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아들러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도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콤플렉스를 경험하지 않거나 심각한 콤플렉스를 보고한 대학생들이 어느 정도 열등감을 느낀다고 보고한 대학생들보다 학점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정상적인 수준의 콤플렉스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더 우수한 성취를 나타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들러는 개인이 어떤 형태의 사회적 관심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제안했다. (그림 3) 개인이 진실된 형태의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면 삶에서 자기완성을 추구함으로써 건설적인 생활양식을 구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반면에 진실성이 결여된 형태로 사회적 관심을 갖거나 사회적 관심 자체가 부족하면 자기완성이 아니라 타인보다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삶의 목표로 추구함으로써 파괴적인 생활양식을 구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리더들의 콤플렉스 분석

2차 세계대전 때는 4명의 전쟁 리더들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 Spencer-Churchill), 조셉 스탈린 (Joseph Stalin),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 네 명의 전쟁 리더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불행한 과거사를 바탕으로 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처칠은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고 매독 치료 때문에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처칠은 학창시절 내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고통받았다. 그는 학창시절 내내 반항아로 생활했고 그의 성적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3수 끝에 왕립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진단으로 인해 걷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뼈를 깎는 재활 치료와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것은 가능했을지라도 하반신 마비증세로 인해 소아마비 진단 이후로는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이러한 콤플렉스 때문에 항상 기자들에게 자신의 상체만 나오게 사진을 찍도록 요구했다. 그래서 평상시에 계속 휠체어를 타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 속에는 휠체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스탈린의 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무능력했다. 게다가 알코올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스탈린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분개한 스탈린은 아버지에게 칼을 던지면서 대항하기도 했다. 7살 때 스탈린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천연두를 손과 바늘로 짠 탓에 그의 얼굴은 곰보가 됐다. 이 때문에 스탈린이 등장하는 소련의 사진들은 모두 스탈린의 천연두 자국을 편집하거나 삭제 처리했다. 또 스탈린은 마차에 다친 탓에 왼팔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1차 세계대전 때 징집에서 면제됐을지라도 왼쪽 팔이 짧은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 왼쪽 손을 주머니에 넣거나 해서 이것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세무 공무원이었던 히틀러의 아버지는 학력이 낮았고 무례한 술꾼이었으며 흉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머니 클라라는 후처였는데 매우 병약했다. 히틀러는 화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관대한 어머니와는 달리 화가 나면 손찌검도 마다않는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실업계 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자신의 꿈을 짓밟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히틀러는 학업에 매우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히틀러는 미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도전을 하지만 두 차례 모두 낙방하고 만다. 그 후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는 노숙생활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이처럼 네 명의 전쟁 리더들은 모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달랐다. 아들러의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본다면 루스벨트와 처칠은 사회적 가치 추구형인 반면에 히틀러와 스탈린은 지배형에 해당된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진실된 형태의 사회적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콤플렉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적 노력이 효력을 발휘해 세계 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됐다. 반면에 히틀러와 스탈린은 개인적인 욕구를 사회적인 관심인 것처럼 위장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그 결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재자로 이름을 남겼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의 문제행동을 나타냈다. 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에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전 세계를 정복하면 전 세계의 수도에 해당되는 도시를 계획했다. 실제로 히틀러는 건축가를 고용해 1938년에 인구 1억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세계의 수도게르마니아를 베를린 지역에 건설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곳에 무려 18만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돔 형태의 국민대회당을 세웠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 공사 역시 중단됐고 이곳은 폐허가 됐다.

 

스탈린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우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스탈린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만능의 천재’ ‘빛나는 태양’ ‘삶의 지주로 찬양하도록 강제했다. 참고로 그의 수많은 가명 중 하나인 스탈린은강철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이러한 가명을 선택했던 것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무기력하게 구타당할 때의 아픈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이 가지고 있었던 강철의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무기력하게 생활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상상조차 못하도록 막아 줄 수 있다. 스탈린의 이러한 노력 역시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과잉보상에 해당된다.

 

출생 순위 효과

아들러는 출생 순위에 따라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성격 차이에 주목한 최초의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아들러에 따르면, 한 가족 안의 아이들이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란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가족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각 아이들의 심리-사회적 환경은 출생 순위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첫째 아이의 경우, 큰 아이가 처하는 사회적 조건은 폐위된 왕에 비유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권위와 칭송을 한 몸에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폐위된 왕의 신세가 바로 큰 아이의 신세라는 것이다. 이런 심리-사회적 환경 덕분에 큰 아이는 책임감과 배려심 같은 긍정적 특성을 발달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감 부족, 비관주의, 적대적 성향, 그리고 보수적이고 규율을 중시하는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둘째 아이의 경우, 둘째가 처하게 되는 심리-사회적 조건은 언제나 손위 형제들이 삶의 모델이 되고 생애 초기부터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다른 형제 또는 자매와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둘째는 야심에 찬 경쟁자이자 공동체 지향적인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반항적이고 질투심이 많으며 승부에 집착하고 추종자가 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셋째가 막내인 경우, 이들이 처하게 되는 심리-사회적 조건은 본받아야 할 복수의 모델들이 있고 여러 사람에게서 많은 애정을 받으며 설사 애정을 다른 형제자매와 나눈다고 하더라도 가족들 사이에서 대우받는 지위가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들은 항상 많은 자극과 많은 경쟁 속에 성장하게 돼 다른 형제를 앞지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다른 형제들과 비교되거나 경쟁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콤플렉스를 더 심하게 갖게 될 수 있다. 또 이들은 가족들의 과잉보호로 인해버릇 없는 아이와 같은 부적응 문제를 보일 위험이 있다.


 

외동 아이의 경우, 이들이 처하는 심리-사회적 조건은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독립적인 특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지나친 관심이 집중될 경우 공주병이나 왕자병과 같은 문제 행동을 나타낼 수 있고 유아독존적이고 경쟁을 회피하려는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이처럼 아들러는 출생 순위와 가족 내 위치가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봤다. 아들러의 출생 순위 효과 이론은 다양한 심리학 연구를 통해서도 타당성이 입증되고 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형제자매가 셋인 참여자들의 IQ 검사 자료를 수집했다. 이때 세 명의 형제자매가 모두 생존해 있는 경우 IQ 검사 점수는 막내보다는 둘째의 IQ 점수가, 그리고 둘째보다는 첫째의 IQ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세 명의 형제자매 중 첫째가 사망한 경우에는 셋째보다는 둘째의 IQ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세 명의 형제자매 중 첫째와 둘째가 사망한 경우에는 셋째의 IQ 점수가 세 명의 형제자매가 모두 생존해 있는 가족의 첫째, 그리고 세 명의 형제자매 중 첫째가 사망한 가족의 둘째 IQ 점수와 동등한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료는 첫째가 다른 형제자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다는 아들러의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으로서의 첫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출생 후에 정해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가족 내 서열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자료는 자녀 양육에서마치인 것처럼(as if)”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자녀양육 방법은 자녀의 출생 순위가 몇 번째이든지 간에 모두가 마치 첫째인 것처럼 양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터닝 포인트를 위해

찰스 디킨스(Charles J. H. Dickens)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간의 삶에는 저마다 독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예정된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그 결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 이탈하면 생의 결말도 바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주장의 타당성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이론체계라고도 할 수 있다. 아들러는 처음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운동에 동참했지만 이론가로서 그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합리주의자였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자기계발 분야에서는 프로이트 및 융보다는 아들러의 심층심리학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심리학의 거장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까지도 바뀐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들러와의 만남은 위대한 터닝 포인트(great turning point)가 될 수 있다.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이 과거의 정신적 상처 경험에 의해 좌우되기보다는 미래의 삶에 대해 어떤 목적성을 갖느냐에 의해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다. 인간의 삶에서 미래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삶을 위한 목적 역시 과거만큼이나지금 그리고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미래의 삶을 위한 목적성은 개인이 무엇을 진실로 수용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삶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또 자신과 타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미래의 삶을 위한 창조적 힘을 가질 수 있다. 아들러에 따르면 창조적 자기(자아·creative self)는 사람들이 유전적 소인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성격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창조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개인은 자신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 6>은 정신건강 분포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주로 하위 5%에 속하는 사람들이 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정신건강을 기준으로 할 때 하위 5%, 평균 이하 수준, 평균 수준, 평균 이상 수준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바탕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킴으로써 상위 5%에 속하는 사람들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부디 아들러 심리학 이론과의 만남이 여러분의 삶에서 위대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결론: 결국은 사회적 가치 추구형 리더가 승리한다

<포천>은 팀 쿡을 2015년 세계 최고의 리더로 선정하면서 그가 글로벌 롤모델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애플의 CEO로서 팀 쿡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동성(同性) 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그전 해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혔던 팀 쿡은 자신의 트위터에오늘은 평등·인내·사랑이 승리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적었다. 팀 쿡의 이러한 활동은 애플이소수자도 존중하는 열린 회사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또 팀 쿡은 약 88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얼마 전부터 한 자선단체에 650만 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기부하는 등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포천> CEO인 팀 쿡의 이러한 활동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애플에 집중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6000여 명의 미국의 조지워싱턴대 졸업생들 앞에서 팀 쿡은 지식인으로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공적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졸업식 초청 연설에서 그는세상은 지금 이 졸업식장에 참석한 졸업생을 기다리고 있고, 그러한 세상엔 지식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며, 세상의 불평등은 반드시 종식돼야 하고, 또 박해 받고 병든 사람들은 구제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적 가치 추구형 CEO로서의 팀 쿡의 면모는 비즈니스 활동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취임 후 6번째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 방문과 동시에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가입하고 또 중국 산림 조성사업으로 대기환경 개선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사회에 대한 팀 쿡의 진정성 어린 관심은 즉각적으로 중국 사회를 달아오르게 했다. 3시간반 만에 팀 쿡은 30만 명이 넘는 중국인 친구를 만들었다.

 

또 팀 쿡은 애플 CEO로서 애플의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팀 쿡은 애플의 최대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주주배당을 늘리기로 했다. 애플이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데는 팀 쿡의 이러한 주주친화정책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결국은 사회적 가치 추구형 리더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지배형 리더로 활동할 때도 많은 업적을 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이러한 업적이 그가 지배형 리더이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전적으로 그가 위대한 창조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그가 지배형 리더로서 성취한 결과물은 그가 사회적 가치 추구형으로 성숙한 후에 보여준 공헌에 비하면 결코 비교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아들러에 따르면, 진정한 리더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가치 추구형이 될 수밖에 없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lip@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전문가 자격을 따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했으며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고영건 고영건 |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 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을 지냈다.
    elip@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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