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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을 참아내는 것 ‘경지’ 수준으로 올려라

한근태 |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나? 사람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나? 세상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일수록 조용히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 수신(修身)만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동양학 고전은 수신을 수정(守靜), 존양(存養), 자성(自省), 정성(定性), 치심(治心), 신독(愼獨), 주경(主敬), 근언(謹言), 치성(致誠) 9가지 영역으로 나눠 설명한다. 일생의 영욕과 성패는 언행에 의해 결정되므로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말을 줄이라는 근언의 미덕, 인생에서 겪는 억울함을 반드시 벗기 위해 애쓰지 말라, 굴욕을 참아내는 것도 일종의경지라는 치성의 미덕 등 곱씹어볼 만한 덕목들이 고전 속에서 생생하게 팔딱댄다. 

 

사람은 자기 그릇 사이즈만큼 산다. 조직은 그 조직을 다스리는 수장의 그릇만큼 성장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밖을 보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무슨 하자가 없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동양은 예로부터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금과옥조로 생각했다. 자신을 갈고 닦고 가정을 잘 다스린 후 천하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것이 반대로 되면 비극이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끌고 조직을 다스리겠다고 나서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들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수신(修身)만큼 중요한 건 없다. 자신을 갈고 닦아 자기 그릇 사이즈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중국 명문 칭화대 철학과 교수 팡차오후이가 쓴 <나를 지켜낸다는 것>은 동양학 고전에서 다룬 수신 관련 내용만을 뽑아 정리한 책이다. 아홉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정, 존양, 자성, 정성, 치심, 신독, 주경, 근언, 치성이 그것이다.

 

첫째, 수정(守靜)이다. 수정은 고요히 앉아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힘을 뜻한다. 현대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쁘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고요함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발전한다. 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잔잔한 물에서만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야 인생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정좌(靜坐)와 정양(靜養)은 학문의 필수과정이다. 조용하게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수양의 기본이다. 장자는 허정(虛靜)을 추앙했다. 텅 비어 고요하고, 욕심 없이 담박하며, 적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인은 허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작은 사물도 통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주희도 하루의 반은 책을 읽고, 반은 정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학자는 먼저 정좌를 하고 일정 시간이 흘러 마음이 안정되기를 기다린 후 성찰극치를 가르쳐야 한다. 왕양명의 학문법이다. 고요함 뒤에 안정이 오며, 안정해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해야 얻을 수 있다. 정 안 여 득 (, , , )이다. 진정한 평안이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은 생명의 근본이고 동()은 근본의 확장이다. 움직임이 극에 이르면 고요하게 되고, 고요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움직임이 생기고, 한 번의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뿌리가 된다. 동만 있고 정이 없으면 생명의 근본을 잃는 것이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쉬어야 하고, 쉬어야 움직일 수 있다.

 

늘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차에는 늘 라디오가 켜져 있는 사람도 있다. 등산을 할 때도 라디오를 목에 걸고 무언가를 틀어놓은 뒤에야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 또 잠시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고 무슨 얘기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조용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조용함을 못 견딜까? 자신과 마주 대하기가 두렵거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면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수신을 할 수 없다. 수신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정좌는 단순히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뜻하지 않는다. 한가롭게 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힘을 쓰는 과정이다. 정좌 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정한 목표를 갖는 것이 좋다. 자기 마음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지, 내 문제가 뭐고,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등…. 수신은 정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좌의 습관을 가지면 분명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존양(存養)이다. 마음을 쏟아 자신을 기르는 힘을 뜻한다. 생명은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다. 양생(養生)은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에 양식을 공급하는 행위다. 양생은 생명의 리듬을 파악하고 심신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존양이란 존기심 양기성(存其心, 養其性)에서 나온 말이다. ()은 보존한다는 뜻이고 양()은 양생한다는 뜻이다. 말과 행동, 음식과 생활 모두에는 심오한 양생의 원리가 포함돼 있다. 양생의 도를 이해하면 지금같이 과도하게 소진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서는 일로 건강을 해치지도 않는다. 옛사람들은 수련을 통해 생명의 리듬을 파악해 심신의 조화를 꾀하고, 몸을 쾌적하게 하며, 성정을 온화하게 했다.

 

수신 중 하나는 수양이다. 수양이란 수()와 양() 두 글자의 합이다. 수는 수신(修身), 수기(修己) 등 자신을 갈고 닦아 인격을 가다듬고 연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은 존양, 양심, 양성인데 본뜻은 음식물을 공양하는 것이다. ()과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인격 성장은 생명의 성장과 같은 원리다. 충분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고 항심과 의지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려면 의식주가 필요하고, 인내심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갑자기 세 살짜리 어린애가 20세 성인이 될 수는 없다. 이상적 상태에 도달하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병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다. 맹자는 말했다. “진실로 잘 기르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기르지 않고 내버려두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

 

 

칭화대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 수신의 길

나를 지켜낸다는 것

저자 팡차오후이, 번역 박찬철, 위즈덤하우스, 2014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존심(存心)이고 양심이다. 존심은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붙잡아 잃지 않으려는 행위다. 양심(養心)은 마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이다. 존심과 양심의 목표는 건전한 인격 배양이다. 핵심은 습관이다. 습관은 오랫동안 형성됐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어떻게 할 수 없다. 날마다 조금씩 고쳐야 한다. 그래서 양이 필요하다. 자기 마음을 한 그루 나무로 여기고, 키우고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을 기른다는 의미의 양기(養己)와 남을 기른다는 의미의 양인(養人)이다. 나를 기르고 남을 기른다는 의미다.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전제는 이선양인(以善養人)이다. ()으로 다른 사람을 기르는 것을 뜻한다. 선으로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이선복인(以善服人)이 아니다. 남을 억지로 굴복시킬 수는 없다. 마음이 움직여 자발적으로 추종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바람처럼 부드럽게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다. 교화(敎化)가 그렇다. ()는 한 사람은 서 있고 다른 사람은 거꾸로 서 있는 글자에서 유래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변화한다. 인격이 높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타인을 교화시킨다. 풍화는 강제와 억지 없이 서서히 부지불식간에 변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 마치 봄바람을 맞는 것처럼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부지불식간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화의 과정이다. 군자의 이상적 인간관계는 자신의 인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양육하는 과정이다.

 

 

셋째, 자성(自省)이다. 나를 허물고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다. 하루 세 번 반성하라. 그러면 나아질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는 현대인은 별로 없다. 바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짬을 내어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할 수 있다면 잘못을 저지를 확률은 줄어든다. 병은 남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생기지만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드러난다.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어두운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문제의 근원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으며 그것이 드러날 때쯤이면 문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후다. 그래서 수시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이 흐려져서 눈앞이 어른거릴 때는 무엇을 보아도 잘못 보게 되고, 귀에 병이 있어 귀 울림이 있을 때는 무엇을 듣더라도 잘못 듣게 된다. 어떤 사물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때는 무엇을 처리하든 잘못 생각을 하게 된다. , 마음이 비어 있지 않고 선입견으로 가득 차게 되면 자연히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고, 마음속 병의 근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대 유학자 여곤이 <신음어>에서 한 말이다.

 

넷째, 정성(定性)이다. 고난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이다. 현대인은 탈진(burnout)에 시달린다. 탈진은 개인의 능력과 자원을 넘어서는 외부 세계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릴 때 나타난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서 의욕 상실, 무관심, 성취감 저하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정성은 고난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이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도 태연자약하고 흔들리지 않는 심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 멈춤이 있어야 정함이 있다. 현대인은 멈춤을 알지 못한다. 인생의 네 가지 덫을 조심해야 한다. 재색명위(財色名位)가 그것이다. 번뇌의 대부분은 이 네 가지로부터 나온다. 먼저 재물이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그 다음이 색이다. 살면서 남녀관계와 애정문제는 평생 회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뒤를 명이 잇는다.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 명리를 추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치다. 직위, 지위, 신분을 말한다.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욕구다. 유가는 이를 거부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적절하게 대응하라고 말한다.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자신이 상한다. 먹고 마시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먹고 마시는 것과 폭음과 폭식은 다른 얘기다. 핵심은 절제다. 재색명위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제하고 일을 통해 갈고 닦는 재사상마(在事上磨)의 자세가 필요하다. 일을 통해 갈고 닦는다는 말이다.

 

다섯째, 치심(治心)이다. 자신을 살펴 하늘의 기운을 얻는 힘이다. 성공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다. 몸만 피로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피로는 훨씬 심각하다. 슈퍼맨 증후군이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마치 전갈처럼 매 순간 엘리트들의 정신을 물어뜯고 그들의 심신을 고달프게 한다. “마음이 편안하면 누추한 집에서도 평온하고 정서가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세상 일이란 고요한 가운데 바야흐로 드러나고 사람의 정이란 담백한 가운데 비로소 자라난다.” <명심보감>에 나온 말이다. 안정된 마음으로 살펴야 인생의 오묘함을 깨달을 수 있다. 명리를 위해 몸을 희생하고 정신을 소모하느니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낫다.

 

배움의 목표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생존 스트레스와 격렬한 경쟁이 있다. 다만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처리방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속세를 벗어나 안빈낙도하라는 게 아니다. 바쁜 삶 속에서 좋은 심성을 유지하고 유유자적하고 초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왜 피로한지 분석해 보라. 대부분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심을 버리지 못하는 건 세속적인 욕망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목표는 본심을 다시 찾는 데 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아나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 맹자가 주장하는 구방심(求放心)이다. 방심은 잃어버린 마음이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여섯 번째, 신독(愼獨)이다. 철저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현대인의 병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유래한다. 혼자 있는 시간도 없고, 혼자 있어도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기 내면세계에 대해 진지하고 꼼꼼하게 반성하지 않는다. 내면의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냐오냐 자라왔고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겨 스스로 선택할 시기가 됐을 때는 이를 직접 대면할 능력이 없다. 현실적 욕망에 밀려 인생의 진실한 방향을 잊어버린 것이다. 중용(中庸)에서 의미는 불편불의 (不偏不倚).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보편적 도리와 원리를 뜻한다. 중은 고요함을 나타낸다. 마음에 사사로움과 욕심이 없으면 인성의 진실한 본원이 드러난다. 신독은 <중용> <대학> <순자> 등에 나오는 말이다. 남들이 알지 못하지만 자신만 아는 내면세계를 대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생명에는 축양(畜養)이 있어야 한다. 모으고 기르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르고 정신을 모으고 기르는 것이 신독이다. 벌레는 앞으로 나가기 위해 먼저 자기 몸을 수축한다. 뱀은 겨울잠을 자야 다음 해에 활동할 수 있다. 활발한 정신적 활동을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돌아보고 힘을 기르고 생각해야 한다. 정신적 축양이 신독이다.

 

일곱 번째, 주경(主敬)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힘이다. ()을 행하기 위해서는 주경 사상을 이해하면 된다. 주경이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뜻한다. 타인에 대해 항상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자기 결점에 대해서는 걱정과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잘나가는 사람은 아집이 강하다. 자신만을 중시한다.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운 털이 박히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된다. 늘 앞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밀치는 사람이 있고 사사건건 이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좌절시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주경사상은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문밖을 나서면 모두가 고객이고 스승이다. 집 밖에 나가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고관대작이든, 평범한 백성이든 귀빈을 대하듯 공경하라. 한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가 돼 백성을 이끌 때 초심을 잃지 말고 큰 제사를 지낼 때 엄숙하고 진지하게 하듯이 조금도 소홀함 없이 책임을 다하라. 그게 생명을 경외하는 공자의 사상이다.

 

여덟 번째, 근언(謹言)이다. 절제하여 신뢰를 잃지 않는 힘을 뜻한다. 언행은 군자의 입신과 행사의 가장 중요한 절차다. 일생의 영욕과 성패는 언행에 의해 결정된다. 나이가 들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말을 줄여야 한다. 말에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그게 근언이다. 근언이란 말을 하기 전이나 말을 한 후 항상 자성하는 자세를 말한다. 부주의한 말을 내뱉거나 잘난 척하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고, 남의 스승 노릇하기를 좋아하면 상대의 반감을 살 수 있다. 눈을 감아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고 입을 닫아야 재앙을 예방할 수 있다. 닫는 게 이렇게 중요한데 우리는 항시 열려고 한다. 군자는 말을 한 후 항상 조용히 되돌아본다. 말하기 전에 늘 세 개의 체로 쳐봐야 한다. 진실의 체, 선의의 체, 중요함의 체가 그것이다.

 

아홉 번째, 치성(致誠)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자신을 완성하는 힘이다. 지극 정성은 언젠가 밝혀진다. 많은 문제들에 반드시 저항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인생에서 겪는 억울함 역시 꼭 벗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명을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벗으려고 애쓸수록 더욱 누명이 깊어질 수도 있다. 근데 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사람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굴욕을 참아내는 것도 일종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영웅치고 뜻밖의 누명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극한 정성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이 신과 같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사람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가? 자식이 속을 썩이는가? 그럴 때일수록 조용히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라. 내 자신이 남을 다스릴 만한 사람인지를 살펴보라. 핵심은 수신이다. 나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함이 필요하고,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인생은 계속해서 자신을 수신하는 과정의 연속일지 모른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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