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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不恥下問:역멘토링의 지혜

정현천 | 107호 (2012년 6월 Issue 2)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위나라에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문()이라는 시호를 얻어서 사람들이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불렀다. ‘()’이라는 시호는 가장 훌륭한 인물에게 부여됐는데 그렇게 훌륭하다고 칭송하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그 점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그는 머리가 명민하면서도 배우는 것을 좋아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이라고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였다. 무릇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나이나 신분,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며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훌륭한 자세라는 것이다.

 

실제로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은 공자 스스로 불치하문의 자세를 실천했음을 보여준다. 공자가 어떤 사람에게서 진귀한 구슬을 하나 얻었는데 그 구슬의 구멍에는 아홉 번이나 돌아가는 굽이가 있어서 도저히 실을 꿸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하고도 실패한 공자는 길옆에서 뽕잎을 따고 있는 아낙을 떠올리고는 아낙들이 바느질을 잘하니 그 방법을 알지 않을까 생각해 물었다. 아낙은 꿀과 개미를 이용해보라고 가르쳐줬다. 아낙의 말을 듣고 공자는 구멍 한쪽에 꿀을 묻혀 놓고 허리에 실을 묶은 개미를 다른 구멍으로 넣으니 개미는 꿀을 찾아 구멍을 타고 나가서 실을 꿸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배우는 데는 나이나 신분, 학문의 높고 낮음이 관계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당대의 지식인인 공자도 모르는 것의 답을 찾으려고 신분이 낮고 배움이 적은 아낙에게 거리낌없이 물었던 것이다.

 

GE P&G의 역멘토링

불치하문의 자세를 현대적인 경영 기법으로 발전시킨 것이역멘토링(Reverse Mentoring)’이다. 원래 멘토링(Mentoring)의 어원인 멘토(Mentor)라는 말은 호메로스의오딧세이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 이타카 왕국의 오디세우스 왕이 트로이전쟁에 출전하면서 아직 어린 나이인 아들 텔레마쿠스 왕자의 교육을 자신이 가장 믿는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맡겼다. 오디세우스가 전쟁과 온갖 고난을 치르면서 20년 만에 이타카로 돌아올 동안 멘토는 스승이자 아버지, 때로는 상담자이자 친구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 텔레마쿠스 왕자를 지혜롭고 현명한 왕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며 그 상대방인 도움을 받는 사람을 가리켜 멘티(Mentee)라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멘토링은 멘토(Mentor)와 멘티(Mentee)가 합의된 목표하에 상호인격을 존중하며 일정 기간 동안 멘티의 잠재능력을 개발해 핵심인재로 육성하는 체계적인 활동을 일컫는다.

 

GE의 전임 CEO인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은 고위 간부들로 하여금 부하직원들로부터 인터넷 등 신기술을 11로 배우게 했다. 자신도 이를 실천함으로써 기존 멘토링 제도의 멘토(Mentor)와 멘티(Mentee)의 역할을 뒤바꾼 것이 역멘토링의 시초가 됐다. 잭 웰치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GE의 중요한 경영 전략 중 하나로 e-Business를 삼았는데 사실 GE는 그 전에 정보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업을 주로 영위했다. 내부적으로 정보기술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진 경영진도 부족했다. 잭 웰치는 그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정보기술에 능통한 일반 사원을 멘토로 선정해 인터넷 관련 지식을 학습했다고 한다. 그 후 GE는 약 600여 명의 임원이 최소 1∼2주에 1회 이상 일반 사원으로부터 11로 정보기술을 교육받는 리버스 멘토링 제도를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입 및 하급직원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기술과 환경에 익숙한 선배사원들보다 정보나 기술에 대한 이해와 숙달도가 앞서는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배우는 것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역멘토링은 상사가 자신보다 아랫사람인 일반 사원들과 11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 아이디어를 획득하는 학습의 방법으로 시작됐다.

 

역멘토링을 활용하고 있는 또 다른 대표적 기업으로 세계적 생활용품 업체인 P&G(Proctor & Gamble)를 들 수 있다. P&G는 연구개발을 통한 제품의 혁신을 50% 이상 아웃소싱함으로써 괄목할 성과를 내는 소위 Connect & Develop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배우는 것이라면 ‘Mentoring Up’이라고 명명한 역멘토링은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회사는 경영이나 관리 활동에는 능통하지만 의약이나 제품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경영진을 위해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11로 매칭시켜 생명공학 기술이 실제 사업과 어떻게 연계되고 운영되는지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또 경영진으로 하여금 현장에서 여성 인력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실제 체험하고 이를 반영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차원에서 회사 경영진과 여성관리자들을 매칭시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여성관리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경영진은 여성과 남성 간 차이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역멘토링은 경영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GE P&G의 사례처럼 경영진이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이나 외부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학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한 조직이나 분야에 오랜 기간 동안 몸담아 생각의 폭이 좁아지거나 타성에 빠진 경영진이 스스로 외부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이때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

기업마케팅의 관점에서도 역멘토링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사실 세대의 변화에 따른 기호와 관심사의 변화는 마케팅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소비층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바로 디지털세대다. 디지털세대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디지털 기구를 활용하는 데 능숙하고 신속한 반응을 추구하는 등 새로운 고객집단을 형성한다. 이런 집단에 속한 신입사원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고객들의 기호와 니즈(Needs)를 알려줄 뿐 아니라 전체 고객들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서 기존 직원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외에도 역멘토링은 조직관리 차원에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켜서 일반 사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업무상의 애로(Bottleneck)를 해소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사실 일반 사원들은 경영진을 만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설령 만난다고 하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역멘토링은 경영진과 일반 사원들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그들이 회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개인적인 고민까지도 편한 마음으로 털어 놓게 할 수 있다. 이로써 경영자들은 일반 사원들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애로를 느끼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일반 사원들은 자기의 업무환경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개선포인트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반 사원들은 자기 업무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몇 개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현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번잡하고 기존 업무에 시간이 쫓기기 때문에 선뜻 아이디어를 꺼내 구현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멘토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내다 보면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고 토론도 활발해지며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려는 노력도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역멘토링이 활발해지고 조직 내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은 경영진 자신의 학습에 대한 개방적 마인드, 즉 불치하문의 자세다. 경영진은 조직에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신들이 갖고 있다는 생각에 후배와 부하들로부터 배우기보다는 잘 가르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조직에 변화를 가져와야 하며 그 일은 경영진이 주도해야 한다. 변화를 주도하려면 오랜 삶의 경험이나 많은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CEO로 재직하며 Intel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앤디 그로브(Andy Grove)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경영에 접목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며배움 경영을 실천했다. 그리고배움 경영의 세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새로운 문제에 부딪치면 이전에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 고정관념은 새로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는 경영자가 아닌 경영학자가 돼볼 것. 그래야 사실과 데이터에 입각한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져야 하는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 것. 논쟁을 하다 보면 자칫 직위에 매몰돼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항상 자세를 낮추고 배우려 했다. 그렇게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인텔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리더의 대표적인 덕목이다.

 

사실 배운다는 것, 즉 학습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기능이다. 유기체가 원시적인 것에 속할수록 반사나 본능과 같은 타고난 행동방식에 의존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꾀하지만 고등동물은 생활환경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타고난 행동만 가지고는 적응이 곤란하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단순한 생물적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더 나아가 환경변화의 폭도 크기 때문에 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과거경험의 수동적인 사용뿐 아니라 경험과 지식을 끊임없이 확장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더구나 지위가 상승할수록 감당해야 할 책임은 커지고 그 책임에 영향을 끼칠 환경변수는 더욱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갓 진출한 신입사원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나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열려 있음, 끊임없이 발전할 가능성과 실제로 발전해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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