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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근면성

[강부장 개조 프로젝트] “퇴근? 남들 놀 때 놀면 언제 일해!”

김현기 | 29호 (2009년 3월 Issue 2)

조아라 씨, 시설팀에 전화해 우리 부서는 10시까지 소등 연기해달라고 하세요.”
여, 열 시요? 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오후 7시 이후에는 사무실 전체가 불을 끄는 Y 주식회사에서는 이렇게 소등 연기 신청을 해야 야근을 할 수 있다. 지금은 7시. 퇴근 시간을 이미 한 시간이나 넘겼지만, 외근 나간 김기본 차장을 제외한 영업부의 모든 직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설팀에 연락하라는 강 부장의 말 한마디로 야근이 결정되자 부서원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먼저, 남자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조아라 사원.
 
오늘은 영화 못 보겠다. 또 야근이야. 어쩐지 부장이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할 때부터 불안했어. ㅠㅠ 지금 블로그 다시 꾸미고 있는 중이니까 얼른 들어와서 봐. 그리고 퇴근하기 전까지 봄옷 하나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을 테니 오빠가 결제해 줘. *^^* 휴 바쁘다, 바빠.’
 
진지한 얼굴로 컴퓨터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일만해 주임은 사실 친구와 메신저 대화 중이다.
 
오늘도 야근이다. 일단 너희들끼리 마시고 있으면 늦게라도 갈게.’
일 많아? 분기에 한 번 있는 동창 모임인데 얼른 끝내고 와라.’
일은 별로 없는데, 부장보다 먼저 퇴근하면 한동안 고달프다.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 때워야지, 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너희 회사는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냐?’
그러게 말이다. 우리 부장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 나도 미치겠다.’
 
유부단 대리는 월 매출 보고서를 세 번째 수정 중이다. 사실 이미 오후에 작성을 마쳐서 결재만 남았다. 하지만 강 부장의 야근 선언에 꼼짝없이 사무실에 묶여 있게 된 김에 몇 번 더 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지금 결재를 받고 다른 업무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유 대리가 보고서를 새로 작성하고 있는 동안, 나만희 과장은 퇴근 준비를 마쳤다.
 
전 이만 퇴근합니다.”
뭐? 퇴근?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 그런데 혼자 퇴근하겠다고? 조금이라도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 부하 직원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남들 놀 때 같이 놀면서 성공할 수 있겠어?”
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요? 경쟁사 신제품 분석도 이미 끝냈고, 홍보팀과 연계한 영업 기획안도 이미 보고 드렸습니다. 하루 종일 멍하니 쉴 거 다 쉬고 나서 퇴근 직전에야 일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요?”
“!!! 뭐야? 나 과장, 말 다했어?”
그럼, 전 이만 퇴근해서 재충전한 뒤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일하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나 과장의 발언에 모두가 속으로 통쾌해 하고 있는 사이, 뿔난 강 부장의 화살이 유 대리에게 꽂힌다.
 
유 대리, 매출 보고서는 끝냈나?”
마무리 검토 중입니다.”
검토는 무슨….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니, 이렇게 야근이라도 해야 하잖아. 일 주임은 신제품 판매 현황 분석 다 끝냈나?”
네, 메일로 보내드렸는데요.”
그래? 그럼 이제 뭘 하지? 아! 하반기 신제품 영업 계획서 초안 좀 만들어봐.”
구체적인 마케팅 플랜도 안 나왔는데 벌써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요? 좀 무의미한 것 같은데….”
일단 해놔! 미리 준비해야 나중에 편하지. 그런데 벌써 11시네? 자, 수고 많았어요.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애써주니 김 상무님도 우리 영업부에 거는 기대가 크시잖아.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남은 일은 내일 마저 하자고.”
‘!!!’
저, 부장님. 내일은 주말인데요.”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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