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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전문화의 한켠, 딴짓할 필요도 있다

정현천 | 77호 (2011년 3월 Issue 2)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통한 전문화가 인류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였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한편으론 분업의 결과 민중의 대다수가 한두 가지의 단순작업을 하는 데 생애를 보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단순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력을 마음껏 발휘하지도, 독창성을 시험해 볼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우둔하고 무지한 상태에 이르고 만다고 주장했다. 전문화의 빛과 그늘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사실 분업과 전문화가 가능해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시장의 존재다. 시장을 통한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큰 가치를 갖지 못하는 재화와 서비스, 인간의 능력들이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시장은 인간의 최종적인 소비에 적합한 완결성을 갖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해서까지 부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전문화의 빛과 그늘
생물의 세계에서도 전문화는 양면성을 갖는 상당히 위험한 전략이다.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한 결과로 얻어지는 전문화는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것들을 포기하게 한다. 전문화에 성공한 생물들은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위험에 빠질 공산이 크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는 가젤영양을 사냥하기 위한 전문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가젤영양은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작은 편에 속하는 사냥감이지만 그 수가 매우 많다. 가젤영양만 잡아먹고 살 수 있다면 다른 사냥감들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가젤영양은 매우 빠르다. 치타들은 속도를 최대한 높여 가젤영양을 사냥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 다른 많은 것을 포기했다. 턱과 어깨의 힘도 가젤영양을 잡기에 적합한 정도로만 유지했다. 순간속도는 빠르지만 지구력은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시간 뛸 수 없다. 급회전을 할 때 방향을 잡기 위해 꼬리는 몸체에 비해 상당히 길다. 긴 꼬리 때문에 몸체를 더 이상 키우기도 힘들었다. 그 결과 치타는 사자나 하이에나, 심지어는 원숭이의 일종인 바분들에게도 잡혀 죽기 일쑤다. 가젤영양보다 더 큰 사냥감은 감히 거들떠보지도 못한다. 초원을 떠나 밀림이나 사막에서는 생존할 수도 없다. 그나마 치타들이 당분간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아프리카 초원에 가젤영양의 수가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초원의 생태조건이 크게 변해서 가젤영양들의 몸집이 더 커지거나 더 빨라지거나 또는 멸종해버린다면 치타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또 전문화에 성공한 동물로는 중국의 판다가 있다. 과거에는 너구리의 일종이라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곰과로 분류되는 동물인 판다는 대나무, 그 중에서도 직경 13㎜ 정도의 죽순을 주로 먹고 산다.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는 다른 종류의 식물이나 물고기, 설치류 등을 먹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판다는 대나무 숲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원래 육식동물로부터 진화한 판다는 대나무의 식물성 셀룰로스를 효과적으로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체구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비슷한 크기의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먹이를 섭취해야 한다. 몸무게가 대략 75∼160㎏인 이들은 하루 평균 12.5㎏의 대나무를 소비하며 이를 위해 10∼12시간을 먹는 데 할애한다. 이들이 이렇게 진화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과거에 대나무 숲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숲에서 대나무를 먹으면서 사는 방식은 천적도 드물고 먹이 걱정도 없어서 효과적인 생활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나무 숲 면적이 크게 줄어들면서 판다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비해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하이에나를 꼽을 수 있다. 하이에나의 사냥 대상은 아주 큰 초식동물부터 작은 동물, 심지어 썩은 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자나 치타와도 먹이경쟁을 하고 심지어 물고기나 갑각류까지 먹는다. 곰이나 돼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잡식성으로 못 먹는 것이 거의 없다. 동물성과 식물성을 가리지 않고, 큰 먹잇감과 작은 먹잇감을 가리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들은 서식지도 아주 넓게 분포하며, 종 전체적으로는 멸종의 위험과도 거리가 멀다.
 
이처럼 전문화는 현재 상태의 환경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생존방식일 수 있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비극적인 결말로 흐르기도 한다. 전문화는 상황의존적으로 임기응변적이거나 상황개척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전문화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전문화의 아슬아슬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처연함에 공감하며 소위 비장미를 느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전문화가 위험스럽고 불안하기만 한, 그래서 장려하기보다 폐기해야 할 전략이라면 사람들은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는 것은 진화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화의 그늘을 해결할 최고의 발명품
서커스에 등장해서 기기묘묘한 재주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나 스포츠 선수들, 심지어 예술가들을 보자. 그들의 능력은 우리가 당장 하루하루 입에 넣을 음식, 몸을 보호할 옷, 거처를 구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능력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 최적의 상태에서 우아함을 느낀다. 문학작품에서도 사람들은 임기응변적이고 모사에 능한 악당보다는 운명이 정해준 대로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며 쉽게 감정이입을 한다.
 
왜 그럴까? 바로 인류 조상들은 이미 전문화의 위험성을 알고 있고, 그 위험을 극복할 새로운 전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능력을 전문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전문화를 장려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 전문화를 시장이란 제도를 통해 교환했다. 소비를 위한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부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들은 시장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 또 시장에서는 시간과 장소의 괴리, 사람들 간 선호도의 차이가 극복된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전문화할 수 있었다. 시장이야말로 인류가 다양성을 확보해 환경변화에 아주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교환이 가능한 것들을 대상으로 삼는 시장의 존재만으로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사람들의 능력 가운데는 당장 교환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당대의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무시되거나 배척당하는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그것들을 기꺼이 추구한다. 그 결과가 인류의 발전과 지적, 문화적 다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례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 멘델의 유전법칙의 발견, 고흐의 그림, 그 외에도 수많은 예술가, 종교인들의 헌신과 이름을 남기지 못한 과학자, 철학자들의 사색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인류는 변화에의 적응뿐 아니라 스스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생물종이 됐다.
창조적인 게으름 용인되는 문화
어떻게 시장에서조차 교환이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추구할 수 있었을까? 그 근저에는 바로 사회적 배려와 안전망(Safety Net)의 제공이 있었다. 애초부터 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개인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인류의 발전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이단자들과 국외자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시스템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당장 시장에서 교환될 수는 없으나 잠재성을 지닌 것들을 추구할 수 있었다. 시장과 사회적 배려라는 두 가지 수단으로 전문화의 약점을 극복해낸 인류는 극단적으로 전문화된 상태의 아슬아슬하고 비장한 모습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장려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적인 혜택을 후대의 인류가 고루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시장과 복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대개는 상호배타적이고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한쪽의 역할을 늘리면 다른 쪽의 역할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전제에서 주장들을 전개한다. 시장에 대해서는 효용의 극대화를 위한 최고의 장치라는 관점과 통제가 불가능한 인간생활의 파괴자라는 시각이 대립한다. 복지에 대해서는 도덕적 당위라는 관점과 나태의 원천이라는 관점이 대립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 두 가지는 모두 전문화의 위험성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한 인류가 창의적인 개인을 통해 종 전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해낸 최고의 장치들이다. 시장만으로는 당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견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대응은 할 수 없다. 더구나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일부 소수에 의해서만 움직여지는 세상은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는 다수 개인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시장을 통한 교환과 보상이 있어야 창의성은 더욱 촉진되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과 복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되고, 상호 지탱하고 의지하며 인류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돼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기는 문제점은 계속해서 보완돼야 한다.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제품 고객 만족체계,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성은 지속적으로 추구돼야 한다. 전문화와 불필요한 비용의 감축 등이 그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의 최적상태에 도전하는 이단적인 아이디어 또한 조직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창조적인 게으름이 장려돼야 한다. 조직구성원의 일부는 항상 제3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현재 체계에서의 효율 극대화와 관계없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치타의 사회에서 가젤영양을 더 잘 사냥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 추구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젤영양이 곧 초원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므로 두더지나 쥐를 잡거나 개미를 먹어보겠다며 ‘딴 짓’을 하는 치타에게 먹이의 일부를 나눠줘야 한다는 얘기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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