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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전체의 윤리 마비가 부른 MLB 스테로이드 파문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DBR | 5호 (2008년 3월 Issue 2)
지난해 12월 조지 미첼 전 민주당 상원의원이 미국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의 약물 투여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폭로 다음날 과거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스테로이드가 야구를 망쳤다”는 말로 팬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미첼 보고서에는 프로야구 선수 89명이 약물을 투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미 많은 선수들은 이전부터 혐의를 받아왔다. 2006년 기자들이 공개한 보고서 ‘게임의 그늘’, 2005년 발간된 호세 칸세코 선수의 회고록에는 경기 능력 향상을 위한 약물남용으로 얼룩진 미국 프로야구의 어두운 일면이 속속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수면에 부상한 뒤 꾸준히 이어져온 미국 야구계의 약물 논란은 이제 ‘스테로이드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그렇다면 야구 선수들의 부정행위를 잘 알면서도 여전히 팬들이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 ‘소비자’들은 윤리적 타락에 무감각한 것일까? 와튼 스쿨의 교수진은 이 질문에 대해 ‘노(no)’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태가 팬들의 편견, 선수들의 과도한 경쟁, 관리 태만 등과 겹치면 심각한 윤리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와튼 스쿨에서 신뢰 및 기만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모리스 슈바이처 정보처리학과 교수는 특히 팬들이 분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팬들은 스테로이드 투여를 개인적 문제로 봐야 할 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약물 투여 논란이 메이저리그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8년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선수의 지나친 홈런 경쟁이 스테로이드 사용을 촉발시켰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운영협회는 2002년까지 약물테스트를 하지 않았고 약물을 투여한 선수도 가볍게 처벌하는데 그쳤다. 2005년에서야 뒤늦게 규제가 강화됐지만 앨런 버드 셀리그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 총재는 미첼 상원의원에 대한 수사를 요구했다. 기타 메이저리그 운영진 역시 약물 근절을 위한 조치를 단행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와튼 스쿨에서 법률 및 기업윤리를 강의하는 케네스 슈롭샤이어 교수도 이런 비판에 동조했다. “메이저리그가 약물 투여에 대한 대책 마련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팬들의 방관적 태도는 큰 문제입니다. 미첼 보고서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야구 선수들과 운영진이 경각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아무도 윤리적 위기감을 갖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별 야구팀과 메이저리그 모두 윤리 감독관을 두는 수준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스테로이드 사용을 윤리적 범죄라고 여기지 않고 단순한 경쟁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죠.”
 
팬들의 편견과 기만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리처드 아이비 비즈니스 스쿨에서 마케팅을 강의하는 준 코테 교수와 박사과정 중인 레미 트루델은 곧 발표할 연구에서 소비자들이 그들의 구매 제품에 대한 윤리적 정보에 반응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윤리적으로 생산된 커피를 더 많이 구매하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농경법이나 부정한 수단으로 커피를 생산한 회사를 비난했다.
 
슈바이처 교수는 윤리적 타락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그릇된 행위가 그 회사의 본질적 존재 이유와 어떤 관계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회사 정체성을 흔들 정도의 잘못은 소비자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는 반면, 정체성과 무관한 행위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너그러운 편이라는 의미다.
 
“회계법인인 아서 앤더슨이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 회사의 가치는 무너졌습니다. 반면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는 부적절한 주식 매각으로 감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역할은 우리의 은퇴 연금 계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냅킨 접는 법이나 생선 굽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욕 소재 의류회사인 옐로 래트 배스타드 역시 비슷하다. 이 회사는 임금 체불,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임금 지급, 부적절한 직원 해고 등으로 기소당해 14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생산하는 의류는 여전히 멋있다. 이는 임금과 관련한 부정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옷을 사는 고객들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와튼 스쿨에서 법률 및 기업 윤리를 강의하는 토머스 던피 교수는 “비윤리적 행위가 드러나면 회사는 흔히 이를 일부 직원의 책임으로 돌리지만 부정행위가 만연하면 회사 전체가 부패의 온상이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슈롭샤이어 교수는 이것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배리 본즈가 경험한 일종의 ‘편집증적 세계’라고 정의했다. “본즈는 주위를 둘러보고 마크 맥과이어 같은 홈런왕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잘못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경쟁에 임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약물을 사용했습니다.”
 
던피 교수는 이런 악순환이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인간의 착각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더 크게 인식하고 자신의 행위를 그러한 기준에 맞추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일로에 이르는 겁니다.”
 
슈바이처 교수는 뇌물이 널리 통용되거나 인맥 형성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특히 이와 유사한 윤리적 마비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한 사업가가 최근 ‘나는 세금을 내는 만큼 뇌물에 돈을 쓴다.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비윤리적 행위가 일반화되면 전체적으로 유해한 분위기를 조성하므로 근절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와튼 스쿨의 금융학 교수인 필립 본드는 한 사회나 업계가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다’는 부패의 늪에 빠진 상태를 ‘영구적 부패’라고 명명했다. “부정행위를 적발하기 어렵고 적발 시스템이 제한적인 경우 특히 사람들이 범죄의 물결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야구 선수들의 스테로이드 투여가 명백한 예죠. 규제가 미미한 반면 부정행위로 인한 이득이 클 때 사람들은 쉽게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어요.”
 
신뢰 파기에 대한 처벌
그렇다면 과연 스테로이드 논란이 미 프로야구의 가치를 떨어뜨렸을까?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와튼 스쿨에서 소비자 행동에 나타나는 편견을 연구 중인 데보라 스몰 교수는 인간이 원래 이기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설사 보상을 해준다 해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는 편견을 드러낸다는 것. 그녀는 1960년대에 다트머스와 프린스턴의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양팀 팬들은 음성이 소거된 경기 녹화 테이프를 보면서 심판 판정을 정확히 맞출 경우 보상을 받기로 했다. 이런 이득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꾸준히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만 유리한 판정을 했다.
 
슈바이처 교수는 팀이나 선수에 대한 신뢰가 클수록 그 선수가 부정행위를 했다거나 실력이 없다는 정보를 접할 때 팬들의 거부 반응 또한 크다고 지적했다. “배리 본즈가 영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미 그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팬들은 본즈의 성공에 일체감을 느끼고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연관시킵니다. 이 경우, 몇 년 후 본즈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증거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더라도 한 순간에 그를 거짓말쟁이로 여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증거가 불확실하다거나 약물 투여는 그렇게 큰 죄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습니다.”
 
그릇된 행위를 하더라도 용서를 받을 만큼 야구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강력한 충성도는 많은 기업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도 스포츠 팀과 팬들의 관계처럼 소비자와 개인적이고 깊은 관계를 구축해야 할까?
 
스몰 교수는 애당초 기업이 소비자와 그런 관계를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팬에게 스포츠 팀은 자아의 연장이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소비자가 개인적 수준에서 브랜드에 애착을 갖더라도 기업에게 항상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신뢰를 얻었는데 이를 배반한다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뢰하던 브랜드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면 소비자는 그 브랜드를 더욱 엄격하게 처단하려 할 것입니다.”
실제로 코테와 트루델의 연구에 따르면 커피 생산 기업이 비윤리적 행위에 연루됐을 때 해당 기업의 윤리성을 높이 평가한 소비자가 그렇지 않은 소비자보다 향후 구매를 더 큰 폭으로 줄였다. 이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아지면 동시에 위험도 커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로저 클레멘스같은 인기 선수는 그가 약물을 투여했다는 전 트레이너의 폭로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대답은 로저 클레멘스나 다른 선수들이 이러한 혐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카드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른 참가자의 미심쩍은 행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는 연구에서 슈바이처 교수는 거짓으로 부정행위를 은폐하는 것보다 자신의 행위를 솔직하게 인정할 때 사람들이 용서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신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부정한다면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최근의 스테로이드 논란에서도 이런 일이 실제 발생했다. 뉴욕 양키즈 소속 앤디 페티트 선수는 성장 호르몬을 사용했다고 고백함으로써 칭찬을 받았다. 반면 변명을 늘어놓으며 발뺌하려 들었던 로저 클레멘스는 팬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이런 거짓말은 사법적으로도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배리 본즈의 경우 지난 11월 법정에서 스테로이드 사용을 부정한 사실 때문에 위증죄 판결을 받았다.
 
인센티브의 위력
야구 선수들을 윤리적 마비 상태로 몰고 간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미첼 보고서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운영진, 팀 운영자, 선수 협회, 선수들 등 지난 20년간 미국 프로야구에 관여한 모든 사람에게 스테로이드 시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초기에 대응하지 못한 것은 집단 전체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던피 교수는 야구 지도자들 또한 일부 과오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윤리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을 예상하는 일은 관리자의 몫입니다. 호세 칸세코 선수의 책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스테로이드 사용은 메이저리그와 구단주가 제한적 조치만을 취하는 동안 더 커졌습니다.” 그는 만약 팀 전체가 부정행위의 온상이라면 팀 단위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각의 팀은 하나의 사업 단위입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한명이라도 있는 경우 메이저리그 측은 이 팀의 드래프트와 수익 분배에 이를 반영해야 합니다. 물론 약물을 근절하는 팀에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지급해야겠죠.”
 
인센티브의 위력은 시어스 카센터의 사례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1990년대 초반 시어스 카는 특정 차 수리에 대해 직원들에게 커미션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차가 바퀴의 얼라인먼트 교체를 필요로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던피 교수는 “개개인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할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강력한 감독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사실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홈런을 칠 경우 수백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으므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엄격한 약물 테스트 정책이 필요한데 메이저리그 측은 아직도 이러한 현실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팬은 거의 없지만, 한 온라인 단체는 메이저리그 측에 엄격한 규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 단체는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에 대한 구체적 처벌 시행계획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한 인터넷 사용자는 “야구를 정화하라. 뿌리 깊은 약물 남용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슈바이처 교수는 야구계의 신뢰 회복은 완전히 원칙에 충실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1982년 시카고의 약국 5곳에서 조작된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존슨앤드존슨은 1억 달러를 들여 즉시 3100만 개의 타이레놀을 회수했고, 두 달 뒤 부정 조작이 불가능한 용기에 담긴 제품을 다시 출시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규제체계를 구축해서 사람들이 경기 과정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슈롭샤이어 교수는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악의가 없는 사람들도 기준 부재로 인해 불법 행위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음을 우려했다. 특히 사각 지대가 많고 관리 감독이 허술한 경우 고립된 곳에서 많은 비윤리적 결정이 이뤄진다. 그는 명확한 정책 시행만이 선수들의 윤리 의식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키즈의 앤디 페티트 선수는 “적발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이라는 판단에서 성장 호르몬 복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던피 교수는 미국 프로야구계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야구공과 배트를 들고 나설 때 내 세 살짜리 손주는 아직도 ‘이제 치는 거야, 배리 본즈’라고 말한답니다. 야구에 대한 팬들의 성원은 아직도 뜨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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