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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파도에서 살짝 물러나보자

최명기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왜 기업가는 사업을 확장하려고 할까
우리들이 일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소비를 위해서다. 그러나 이미 충분한 돈이 있지만 계속 일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기업의 경영자들 중 대부분은 이미 평생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일군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떻게 해야 사업을 확장하고 이익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기업가들이 끝없이 사업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욕구를 들 수 있다. 즉, 지위에 대한 욕구다. 모든 동물들이 만든 집단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회사의 우두머리는 기업의 오너다. 원숭이, 사자, 사슴, 개미 모두 다 우두머리가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통해서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배할 수 있는 집단도 커진다. 가급적 무리를 키워서 더 큰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게 사람의 욕망이다. 인수합병(M&A)을 통해서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곤란을 겪는 기업인들의 비이성적인 판단 아래에는 더 큰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 있다.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이동하면서 사냥을 해야 하는 육식동물은 냄새를 남김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집에서 애완견으로 키운 강아지들도 밖에 데리고 나가면 전봇대 밑에 소변을 봐서 냄새로 영역을 확보한다.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의 로고는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식당을 해서 성공하면 분점을 내려고 하고, 병원도 잘 되면 분원을 계획한다. 조금만 회사가 커지면 해외 진출을 모색한다. 우리 회사의 로고와 상표가 도처에서 눈에 띈다는 것은 나의 활동 영역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국적 대기업의 로고는 국경과 지역을 넘어서 시베리아 동토, 아프리카 오지로 확장되었다.
 
자식에게 뭔가 물려주고자 하는 본능도 무시할 수 없다. 왜 부모가 그토록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DNA가 발견되면서 풀렸다. 내 몸의 46개 염색체 중 절반은 아버지로부터, 절반은 어머니로부터 왔다. 자식은 말 그대로 내 분신이다. 나라는 사람이 죽어도 내 유전자는 세상에 남는다. 만약에 두 명의 자식을 나아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운다면 내가 죽어도 내 자식의 자식을 통해서 내 유전자는 전달된다. 만약에 후손이 대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평균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낫는다면 유전자의 형태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후손들이 대가 끊어지는 법이 없도록 안전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있다. 유산은 이러한 안전 수단의 하나다. 내 후손들이 내가 일궈놓은 사업으로 인해서 안전하게 대를 잇기를 원하는 것이다.
 
기업은 어떤 점에서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을 모뉴먼트(monument)다. 파라오는 없어졌어도 피라미드는 남았고, 교황은 죽었더라도 성당은 남았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한 영생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대기업에 지분을 가진 대주주 일가가 몰락해서 기업이 남에게 넘어간다고 해도 그룹의 이름이 남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올수록 죽음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해진다. 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며칠 전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는 한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를 갖고 있다. 기업가에게 있어서 기업은 죽음을 부정하게 만드는 불멸의 기념물이다.
때로는 욕망의 범주를 벗어난 삶을 맛보라
하지만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이어리를 보면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인생을 가장 값지게 보내는 방법은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객관적인 시간, 즉 수명을 늘리고자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관적인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이 주어지지만 모두 똑같은 하루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하루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신없이 지나간 24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순간순간 감정과 의미가 부여된 24시간이다. 내가 깨닫지 못한 무의식적인 욕망 때문에, 혹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 휘말려서 보낸 하루의 가치는 존재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24시간은커녕 0(零)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반면에 사랑하는 이들과 아름다운 곳에서 죽어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면서 하루를 보낸 이에게 주관적 시간은 48시간, 72시간, 어쩌면 1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욕구, 영역을 넓히고 싶은 욕구, 유전자를 안전하게 후세로 전달하고 싶은 욕구, 죽음을 이기고 싶은 욕구를 떨쳐버린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욕구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스님이 되던지 신부가 되어야 한다. 성직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욕망을 실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망만으로 인생을 채워서는 안 된다. 때로는 욕망의 범주를 벗어나서 삶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공간 이동에 해당하는 것이 여행이고 시간 이동에 해당하는 것이 회상과 인생 계획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곳에 여행 가서 기업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시간을 보내면서 욕망의 범주를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건, 집에서 묵상을 하건 우리는 그 순간에 인간이라는 동물의 껍데기를 벗어나서 다른 차원의 삶에 혀를 대고 맛볼 수 있다. 자전거 타기가 되었건 낯선 외국어 공부가 되었건 평소에 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날 수도 있다. 가끔씩은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앨범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본능과 욕망에 지배당하는 대신 본능과 욕망을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나라는 자아가 핸들이 되고 본능은 추진 엔진이 되어서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한다.

편집자 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시면 적절한 사례를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 최명기 |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yongk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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