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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를 운으로, 운을 실력으로 착각 마라

최명기 | 46호 (2009년 12월 Issue 1)
김 사장은 지방에서 장례식장 세 곳과 요양병원 두 곳을 운영하는 재력가다. 그는 원래 10여 년 전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던 중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희망퇴직을 신청했었다. 갈 곳 없는 상황에서 삼촌이 운영하던 장례식장에 투자해 동업을 하게 됐다. 그러다 아예 자기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땅값이 비교적 싼 지방에 건물을 지어 장례식장을 열었다.
 
장례식장 바로 옆에는 요양병원이 있었다. 그곳 환자들이 사망하면 가족들은 병원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시설이 깨끗하고 이용료가 저렴한 김 사장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김 사장은 기존 병원 장례식장 근처에 좀 더 나은 시설의 장례식장을 여는 전략을 채택했다. 한편 지역 주민의 반대로 장례식장을 짓지 못한 땅에 요양병원을 짓게 됐는데, 이 사업도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사업이 성공을 하게 되자 김 사장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합리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그는 다니던 대기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퇴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희망퇴직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자신이 애초부터 장례사업을 할 생각이 있어 삼촌에게 일을 배우러 갔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장례식 수요가 늘어날 거라는 거시적 시각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처음 장례식장을 지은 요양병원 옆은 싸고 괜찮은 땅이 그곳밖에 없어 선택한 곳이었다. 그런데 김 사장은 지인들에게 “내가 미리 앞을 내다보고 첫 장례식장 부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요양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장을 지으려다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요양병원이 잘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김 사장은 정말로 자신이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사업가이며,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각 지역마다 장례식장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김 사장의 장례식장 바로 옆에도 새로운 장례식장이 생겼다. 김 사장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기 위해 다른 지역에 요양병원을 하나 더 지었다. 그런데 새 요양병원을 열자마자 정부가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확 바뀌었다. 규정이 의사와 간호사를 많이 뽑아야 높은 수가를 받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지방에서는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의사와 간호사를 찾기 힘들었다. 새로 지은 요양병원은 워낙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금 압박도 심했다.
 
김 사장은 결국 기존 장례식장과 요양병원을 감정가보다 싸게 매물로 내놨는데, 도대체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부동산 가치가 떨어진 탓이었다. 김 사장은 거의 전 재산이 장례식장과 요양병원 등 부동산에 묶여 있어 빚을 갚기가 막막했다.
 
설상가상으로 김 사장은 최근 들어 당뇨와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신경성 두통도 심해졌다. 밤이면 밤마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을 잘 수 없었다. 김 사장은 과거에 일이 잘 풀릴 때마다 그것이 자신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것은 사실 결과를 알고 난 후에 자신은 이미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믿는 ‘후견지명(後見之明)’의 오류였다.
 
인간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원인과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얼핏 보면 관련이 없는, 실타래처럼 엉킨 복잡한 일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이들을 범주화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추상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상적 사고력은 사람들이 원인과 결과를 바꿔 생각하거나, 관련 없는 것들을 기계적으로 범주화하는 등 사고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경영자들이 경계해야 할 ‘후견지명’ 오류
가장 좋은 사례가 ‘성공 경영의 원인 분석’이다. 우리는 많은 책에서 성공 경영의 사례로 지적한 기업 중 상당수가 결국에는 몰락하고 마는 것을 본다. 저자들은 그 기업들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기업이 성공을 한 뒤 그 원인을 이리저리 유추해 글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가들도 종종 이미 벌어진 일을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재구성해 본인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실상 이것은 선견지명이 아니라 후견지명에 가까우며, 성공한 이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다.
 
후견지명은 경영자가 기업 환경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설혹 변화를 알아챈다 하더라도 ‘나만은 괜찮겠지’ 하는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한다. 후견지명의 오류를 거듭해서 범하다 보면 아무리 성공한 기업가라 하더라도 결국엔 남들보다 뒤처지게 된다.
 
성공의 자만심은 불합리한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후견지명의 오류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첫째, 정기적으로 생각의 휴지기를 가져야 한다.김 사장은 10년간 5개의 사업체를 만들었다. 그 사업체가 각기 다른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주중 내내 지방 출장을 다녀야 했다. 더군다나 건물을 새로 신축하고, 사업체 허가를 받는 과정도 복잡했다. 자금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김 사장은 너무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잘못된 판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간 중간 열기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교향곡 연주에도 악장 사이에 쉬는 틈이 있고, 연극 공연에도 막과 막 사이에 휴식시간이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휴지기에는 기존의 일과 문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 머리를 백지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정신없이 바쁜 사업가들은 휴지기를 가져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매일 잠자기 전에 1분씩 묵상을 해도 좋고, 한 달에 한 번 낚시를 가도 좋다. 여유가 있다면 1년에 한 번 텔레비전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남태평양의 섬에 휴가를 가도 된다. 다만 무엇을 하건 일상을 잊어야 진정으로 쉴 수 있다.
 
둘째, 대세를 자신의 운으로 착각하지 말고,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김 사장이 남보다 조금 빨리 장례사업에 뛰어들었고, 남보다 좀 더 경영을 잘해서 앞서나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사장이 아니었더라도 당시에 장례식장이나 요양병원을 설립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사장만 운이 좋았던 게 아니라 당시에 장례식장이나 요양병원을 한 사람들 대부분은 운이 좋았다.
 
이런 대세를 본인의 운으로 착각하면 ‘나는 진짜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야’ 하면서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자만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불합리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또 후견지명을 발휘해 운이 가져온 성공도 자신의 월등한 실력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대세와 운, 실력을 객관적·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동종업계 종사자나 동료들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전반적으로 다 잘된다면 내 사업이 잘되는 것 역시 대세 때문이다. 만약에 나는 잘되는데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모두 어려워하면 그 위기가 결국은 나에게도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셋째,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누군가가 자신의 사업방식에 토를 달면 ‘내가 부러워서 딴죽을 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후견지명만 강화해나간다. 결국엔 ‘내가 잘나고 남들이 못나다’는 생각만이 남고, 남이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대체로 내게 제대로 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이들은 가족이나 오랜 친구, 또는 옛 동료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이런 사람들이 객관적인 충고를 해줄 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독자 분들에게 상담을 해드립니다. 최명기 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주신 분들의 사례 중 적절한 것을 골라 이 연재 코너에서 조언을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소속과 이름은 익명으로 다룹니다. 이번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필자는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으며, HSM(Health Sector Management)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부여다사랑병원 원장과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 <심리학 테라피>가 있다.
  • 최명기 | - (현) 정신과 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
    - 경희대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myongk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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