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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페셔널의 조건

선명한 꿈, 광기 어린 도전! 토종인재도 세계 흔들수 있다

DBR | 1호 (2008년 1월)
한국에서 프로가 되기는 쉽지 않다. 뛰어난 개인 역량을 갖춘 톡톡 튀는 인재보다는 조직과 잘 융화하는 성실한 인재를 더 선호하는 문화 탓이다. 하지만 척박한 토양에서도 개인 역량을 쌓아가면서 ‘세계 최고’자리를 차지한 한국인 프로페셔널도 많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LG경제연구원은 전문가 및 일반인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고의 글로벌 프로페셔널이 된 한국인 20명을 선정, 이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운이나 타고난 재능만으로 프로가 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가난이나 예상치 못한 불행으로 나락에 떨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고난 앞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을 담금질했으며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거침없는 도전 정신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세계무대에 우뚝 선 한국형 프로페셔널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자.
 
크고 선명한 비전을 가져라
코이’라는 비단잉어는 어항에 넣어 두면 7~8㎝밖에 자라지 못한다. 조금 더 큰 수족관에 넣어두면 15~20㎝까지 자란다. 하지만 큰 강에서는 무려 1m이상 자란다. 한국형 프로페셔널들은 코이와 마찬가지로 어항이 아닌 넓은 강과 같은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프로골퍼 최경주는 골프장 하나 없는 전남 완도의 섬마을에서 자랐다. 시골 마을의 8타석짜리 골프연습장에서 거친 바닷바람과 맞서며 연습을 해야 했지만 그는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갖고 있었다. 카펫 같은 골프장에서 화려한 대접을 받는 미국 프로 골퍼들의 모습을 보고 반드시 미국에서 성공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것이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최경주의 꿈을 허황된 ‘치기(稚氣)’로 생각했다. 실제 최경주가 1999년 미국 PGA투어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대부분은 “일본에서 두 어 번 우승하더니 간이 부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기필코 미국행을 강행했다.
 
세계 최대 중국음식점 ‘하림각’을 세운 남상해 회장도 어렸을 때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커다란 기와집을 꿈꿨다. 자신이 일하는 중국집보다 훨씬 더 큰 중국집의 사장이 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힘겨운 그의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그의 선명한 꿈은 그대로 현실에서 실현됐다.
 
세계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전문 잡지를 보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고 결국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스타 김윤진도 2002년 영화 ‘밀애’에 출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충무로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하지만 더 큰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 과감하게 미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2년 후 그녀는 미국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ABC방송의 프로그램 ‘로스트’에서 ‘선’이란 배역으로 출연하며 당당하게 세계 시장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아마추어는 평생 다른 사람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친다. 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뤄낸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꿈이 너무 커서가 아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현실과 타협하며 꿈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생후 19개월에 시력과 청력을 잃은 헬렌 켈러는 "맹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앞을 보면서도 꿈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경영 연구가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초우량 기업들은 모두 ‘크고 담대한 목표(B.H.A.G., Big Hairy Audacious Goals)’를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프로페셔널의 길은 크고 선명한 꿈과 비전을 갖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불행 속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를 찾아라
의외로 한국형 프로페셔널 가운데 지독한 불운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불행은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무차별적으로 찾아오는 불행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웹서버를 개발, 급성장하고 있는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한 박대연 최고기술책임자(CTO)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어린 시절 불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집이 가난해서 동생은 구두닦이로, 누나는 가정부로 일해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암으로 사망했고 젖먹이 동생은 입양되고 말았다. 세상을 저주하고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고 더 미친 듯이 공부했다. 고난을 ‘강해질 수 있는 기회’라며 축복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온라인 입시 교육시장을 평정한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은 재앙을 경험했다. 교통사고로 자녀들을 잃고 만 것이다. 눈물이 말라붙어 울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목숨을 걸고 수업 준비와 강의에 매달린 그는 한 시즌에만 1만 명의 학생을 가르칠 정도로 최고의 강사 자리에 올라섰으며 이를 발판으로 창업에 성공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이강숙 석좌교수는 1991년 가을 위암 판정을 받았다. 막 수술을 끝내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그에게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고민 끝에 총장직을 맡은 그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일에 매달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암 재발 여부를 진단받는 ‘일주일 인생’이었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값지게 살았다.
 
한국형 프로들은 사업에서의 불운도 긍정적 에너지로 극복해냈다. 로만손 시계의 창업자인 김기문 회장은 창업 3년 만에 일본 업체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생산 계약이 하루아침에 끊겼고, 야심작인 커팅글라스 시계의 짝퉁이 넘쳐나 판로가 막혔으며, 걸프전이 터져 수출길이 봉쇄되는 불운이 겹쳤다. 하지만 이런 불행을 신제품 개발과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의 기회로 활용하며 로만손의 기업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최종 결과까지 책임져라
아마추어는 주어진 일, 혹은 지시사항만 처리하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들은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발생하는 최종 결과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갖고 있다.
 
전자저울로 세계시장을 재패한 김동진 카스 사장은 저울을 팔 때마다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저울을 팔아 수익을 내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김 사장은 저울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 원활한 상거래가 이뤄져 저울이 최종적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직성이 풀렸다. 따라서 역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스 직원들은 고객들의 불만 제기가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씩 판매한 저울을 살펴보고 이상이 없으면 알코올로 저울을 소독해줬다. 또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웠지만 저울 오작동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약재상에게 700만원을 배상하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고객들의 신뢰는 더욱 높아졌다.
 
남상해 하림각 회장은 다른 중국 음식점과 달리 기름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대개 중국음식이 기름진데다 튀김 위주여서 보통 중국집 사장들은 기름기를 당연한 요소로 여겼다. 하지만 남 사장은 고객을 위해 기름을 적게 넣고 지방도 최대한 빼내기 위해 노력했다. 남 회장은 일반 기름보다 10배가량 비싼 최고급 기름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연수생 시절 혼자서 남몰래 연구하고 실험한 끝에 재료의 기름기를 제거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찾아냈다.
 
벽(癖)을 가져라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狂) 않으면 미치지(及)못한다)’이란 말처럼 프로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광(狂)적 집착’을 의미하는 ‘벽(癖)’을 갖고 있었다. 이런 ‘벽’이 없는 프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은 하루 평균 15~19시간을 연습에 매달렸다. 남들은 2~3주에 걸쳐 신을 토슈즈 네 켤레를 단 하루 만에 소모해 물품 담당자가 “제발 좀 아껴 신을 수 없느냐”며 사정하기도 했다. 품질 전문가인 두산인프라코어 김규환 명장의 경우 정밀 가공기계가 온도에 따라 가공 정도가 달라진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장 바닥에 모포를 깔고 2년 6개월 간 온도가 1℃ 변할 때 모형, 기종별로 가공되는 값의 차이를 알아냈다. 지독한 ‘시행착오(trial & error)’ 방식을 거쳐 만들어진 이 지식은 향후 세계 최고의 정밀 기계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됐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도 무서울 정도의 ‘벽’을 가진 캐릭터다. 하루 3시간만 자면서 의학 공부와 컴퓨터 바이러스 공부를 함께 해냈던 것은 강한 집착의 소산이다. 또 바둑 입문서를 무려 50권 이상 독파하면서 내공을 쌓은 후 실전에 데뷔해 불과 1년여 만에 아마 2단까지 오르는 등 그의 ‘벽’은 취미생활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박대연 교수는 ‘집중의 화신’으로 통한다. 먹고 자는 이유는 오로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아침 6시에 연구실에 출근해 학교식당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하고 밤 10시에 퇴근하기 전까지 연구에만 매달린다. 선진국보다 앞선 웹서버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벽’덕분이었다.
 
닳고 헤진 발 사진이 인터넷을 달구면서 조명을 받았던 축구스타 박지성, 고집스럽게 기본기를 익히며 연습 벌레가 된 피겨 요정 김연아, 파리 통역대학원 시절 한국어와 불어 영어 등 3개국어로 꿈을 꾸었다는 동시통역사 최정화, 수술시 왼손을 쓰기 위해 후배들에게 왼손 식사를 강요한 송명근 건국대 교수 등도 엄청난 ‘벽’의 소유자다. 영화배우 전도연은 영화 ‘밀양’에서 교회에 들어가 통곡하는 장면을 찍은 후 “촬영이 끝나고 신애(극중 전도연의 역할)가 내 몸 속에서 너무 많이 느껴져 두려움을 느꼈다”고 토로할 정도로 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프로들이 한결같이 ‘벽’을 가진 이유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일에 몰입하면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중단하지 않는다. 또 몰입 과정 자체가 이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이다. ‘벽’은 평범한 사람이 기적을 만들어내게 하는 원천이다.
 
거침없이 도전하라
외국의 프로에 비해 한국형 프로가 독특하게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거침없는 도전정신이다. 외국 프로들은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일에 도전해 최선의 성과를 내지만 한국의 프로들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일에도 과감하게 도전한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조선소 건설 자금을 마련했던 것처럼 거침없는 도전 정신은 한국 프로 특유의 근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자주 쓰는 “해봤어?”라는 말도 이런 도전정신의 또 다른 화법이다.
 
맨 손으로 연매출 2조원대의 기업을 일군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출판 업체의 대표 전화번호만 들고 무작정 일본을 찾았다. 호텔 방을 잡고 그는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좋은 사업계획서를 갖고 있으니 투자해보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회사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무대포’적 도전은 빛을 발했다. ‘헤임인터내셔널’이란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였고 결국 그는 70억 원 이상의 거액을 투자받았다.
 
가수 겸 JYP 대표 박진영이 미국에서 성공한 것도 철저한 한국식 도전정신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 진출했을 때 과거 자신의 매니저가 매일 방송국 예능 PD 사무실을 방문, 경옥고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데뷔 초 홍보활동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박진영은 이에 착안해 미국 가수이자 영화배우 윌 스미스가 차린 ‘오버브룩’이란 회사의 인포메이션 직원을 매일 찾아갔다. 끈질긴 도전 정신이 빛을 발휘했고 결국 11개월 만에 윌 스미스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팔 수 있었다.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한국인 프로페셔널들은 이처럼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도전하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무작정 고개를 들이미는 용기를 가졌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증권사 입사를 결심하고 당대 최고 스타인 동양증권 이승배 상무를 무작정 찾아갔다. 이 상무의 비서는 면바지에 셔츠 차림의 젊은 박현주를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매일 같은 시간대에 이 상무 사무실을 찾아갔다. 결국 동양증권 영업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박 회장은 45일 만에 대리로 승진하는 기염을 토하며 화려하게 증권업계에 데뷔했다.
 
[DBR TIP]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 프로는 일의 모든 측면을 다 배우려 하지만 아마추어는 가능한 한 학습을 회피한다.
▶ 프로는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 주의 깊게 관찰하지만 아마추어는 다른 사람이 이런 것을 원할 것이라고 그냥 가정해버린다.
▶ 프로는 항상 맑은 정신으로 무언가에 집중하지만 아마추어는 혼란스럽고 주위가 산만하다.
▶ 프로는 실수를 묻어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아마추어는 실수를 숨긴다.
▶ 프로는 어려운 일에 적극 뛰어들지만 아마추어는 피해가려고 노력한다.
▶ 프로는 냉정하고 낙천적이지만 아마추어는 당황하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 프로는 열정과 즐거움, 흥미, 만족감을 느끼며 살지만 아마추어는 화, 적개심, 분노, 두려운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
▶ 프로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밀고 나가지만 아마추어는 쉽게 포기한다.
▶ 프로는 예상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지만 아마추어는 겨우 통과할 정도만 성과를 낸다.
▶ 프로는 불을 피우고 아마추어는 불을 쬔다.
▶ 프로는 기회가 오면 우선 잡고 보지만 아마추어는 생각만 하다 기회를 놓친다.
▶ 프로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지만 아마추어는 두드리고도 안 건넌다.
▶ 프로는 자신에게 엄하고 남에게 후하지만 아마추어는 자신에게 후하고 남에게 엄하다.
▶ 프로는 시간을 관리하고 아마추어는 시간에 끌려 다닌다.
▶ 프로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마추어는 이기는 것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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