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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코너를 도는 12가지 방법 -4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준비의 힘’

구본형 | 31호 (2009년 4월 Issue 2)
모든 우연이 다 필연이 되진 않는다. 우연은 우연으로 흘러 잊혀지는 일이 태반이다. 오직 특별한 우연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와 공명하고 있다는 일대 각성에 이르게 한다. 그 우연은 이내 우리의 소명(召命)이 된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연을 해석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그 우연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 선다. 마하트마 간디의 마리츠버그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일이 간디에게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당시 그곳에서 1등칸에 타고 있는 유색인종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수모였다. 그런데 어째서 간디만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했던 걸까? 남아메리카 대륙에 가난과 착취는 만연해 있었고 누구나 아픔의 현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 왜 유독 체 게바라에게만 잊혀지지 않는 사건으로 각인됐을까?
 
우연은 영혼의 각성을 촉구한다
우연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우연은 말 그대로 뜻밖에 찾아온 일이지만, 그 일을 맞이하는 순간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제 발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끌림은 실수로 생기지는 않는다. 인간의 원형 이미지에 대한 해법으로 신화에 천착해온 조셉 켐벨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그 주름의 골은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간디는 마리츠버그 사건 앞에서 홀연 각성한다. 그 우연한 사건은 영혼의 각성을 촉구하는 ‘전령관’이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모험에의 소명을 깨닫는다. 마리츠버그의 우연은 그에게 역사적 사명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었고, 간디는 정신적 통과의례를 거쳐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너무 좁아 더 이상 그의 영혼의 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됐다. 그는 바야흐로 또 하나의 삶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에 이르렀다.
 
캠벨은 이런 역사적 소명을 받는 장소나 사건이 대개 깊은 숲 속, 큰 나무 아래, 심연으로 상징되는 어둡고 험하고 추한 곳일 때가 많다고 말한다. 간디가 마리츠버그에서 떨며 지낸 하룻밤, 체 게바라가 가난한 노동자 부부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겪은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하룻밤, 박원순 변호사가 감방에서 지낸 시기는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지는 특별한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프로이트는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와 분리될 때의 고통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분리와 탄생의 순간에 불안이 생긴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는 순간, 길은 별이 보석처럼 빛나는 밤으로 열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에게 의미 있던 사물이 이제는 무가치해져버린 성숙을 경험한다. 이게 바로 각성이다. 이제 빛나는 별밤은 끊임없는 꿈으로 은하수처럼 이어진다.
 
준비된 사람에게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떤 우연한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 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간디가 마리츠버그의 모욕을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사건이 그의 존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미 존재의 깊은 심연 속에 ‘중재력을 가진 도덕적 정치가’ 간디가 도사리고 있었고, 영혼 속에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는 각인이 깊이 찍혀 있었다. 마리츠버그 사건은 다만 미래를 암시하는 전령관이자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간디는 소년 시절에 셰이크 메타브라는 이슬람교도 청년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설득에 넘어가 힌두 율법을 깨고 육식을 하거나 담배를 사기 위해 돈을 훔치고 매춘굴을 찾아가기도 했다. 간디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돈을 훔친 다음 자살을 생각하고, 창녀 앞에서 몸이 굳어 아무 짓도 못하고 돌아와 심한 모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옳고 그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년이었다. 그를 규정하는 가장 큰 기질적 특성은 도덕성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중재력이었다.
 

사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 간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자질은 어려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도덕적 중재력’이라는 간디의 선천적 특성은 어린 시절을 거치는 동안 잘 훈련될 수 있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았다. 부모도 그의 남다른 재능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아들이 도덕적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해줬다. 친구들이나 가족 간에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대답하는 재량권을 시험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특성을 계발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마리츠버그 사건은 이렇게 성장한 간디가 마주친 가장 결정적 우연이었다. 그의 도덕성은 이 사건을 묵과할 수 없었고, 중재자로서의 능력이 발휘됐다. 그는 마리츠버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 프리토리아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정치적 활동이 시작됐고, 그는 작은 성공을 이뤘다. 인도인은 이제 옷차림만 적절하다면 1등칸이나 2등칸을 타고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우연한 사건이 갈무리된 그의 재능과 특별함을 건드렸고, 그는 대각성에 이르렀다. 그리고 위대한 도덕적 정치가로서의 소명을 깨달았다. 간디는 평범함을 넘어 위대한 종교·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조건인 ‘엄격한 자기 검열’에 특히 민감했다.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한다면 초자아(super-ego)가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애썼다. 다른 사람들은 사소하게 여기고 쉽게 용인하는 도덕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이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간디 역시 위대한 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도덕적 자기 검열이라는 특성을 어려서부터 계발해왔던 것이다.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자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자체로 위대한 스승이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 때문에 그 만남이 위대해진다. 우연의 얼굴을 가진 필연, 이미 그 사람의 운명인 그것을 홀연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떨림은 이렇게 맺어진다. 그 후 그들은 평범함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하나의 세계를 지나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각성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번 고양된 정신은 낮아지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 않을 때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사는 평범함을 넘어서기 시작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위대함이 평범함 속에서 싹을 틔운 것이다. 그때부터 소명이 그들을 이끌기 시작한다. 그들은 크든 작든 하나의 영웅이 돼간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아름다운 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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