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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자연은 주인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

서광원 | 365호 (2023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성실한 군주였지만 그가 이끌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몰락했다. 성실하지만 변화를 싫어했던 요제프 1세가 시대의 변화 흐름을 따라가길 거부한 탓이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변화의 흐름에 뒤떨어진 종은 언제나 멸종한다. 특히 특정 시기 주류가 된 생명체의 경우 그 시기 환경에 가장 잘 적응했기 때문에 혁신을 멈추고 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사이 이 당연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한다. 주류가 당연함에 머물러 있을 때 한계를 돌파하는 새로운 능력을 개발해서 말이다. 이제는 경영 용어로 자리 잡은 ‘성공의 덫’이 사실은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덫에 빠져들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은 실험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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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보기 드문 성실한 군주였다. 중세의 대표, 신성로마제국을 이끌었던 합스부르크가의 후예로서 그는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한 후 수수한 제국군 중위 제복을 입고 서재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밤사이에 올라온 각종 서류를 읽으며 아침을 먹었고, 7시 반부터는 각료와 군부 지도자 등을 만나 회의를 했다.

국민들을 만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오전 10시부터 점심시간 사이에 그들을 만나 고충을 들었다. 점심 역시 서재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면서 업무에 매진하다 오후 5~6시쯤 퇴근하는 게 일과였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저녁 식사 역시 간단하게 먹었기에 그리 길지 않았다. 가끔 오페라나 연극을 관람했지만 대부분 다음 날을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1

이런 성실함은 단순히 시간 관리에 한정되는 게 아니었다. 종이가 없다 싶으면 공문서조차 이면지를 사용할 정도로 검소했다. 거세지는 혁명의 기운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큰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에 이어 1848년 18세에 군주가 된 그는 이렇게 68년을 재위했다. 아름다운 왕비로 유명했던 아내 엘리자베트 역시 우아한 자태 덕분에 요즘의 연예인, 스타들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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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군주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즉위 당시, 불안정한 정국을 안정시키며 그런대로 괜찮은 출발을 한 그는 덕분에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즈음 유럽을 휩쓸던 격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국가를 미래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시대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1866년, 그는 이름뿐이긴 했지만 독일연방까지 아우르던 군주 자리를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내주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됐다. 영토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제국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였고 유럽 전체 인구의 7분의 1 이상이 그의 휘하에 있었다. 넓은 제국이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지금도 분쟁의 불길이 솟아오르곤 하는 체코, 슬로바키아, 보스니아 등을 포괄하고 있어 계속되는 반란과 민족주의 물결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의 변함없는 성실성이었다. 성실은 좋은 것인데 왜 문제가 됐을까? 그는 해오던 업무에 성실했을 뿐 변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아니, 변화 그 자체를 싫어했다. 그가 원했던 건 현상 유지였다. 그는 한 학교에서 교사들을 상대로 이런 연설까지 했을 정도였다.3

“짐이 원하는 것은 박식한 학자가 아니라 선량하고 정직한 시민이다.”

다스리는 대로 순종하라는 얘기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호칭 역시 전통적으로 부르도록 했다.

‘사도의 법통을 이어받은 존엄한 분이시며 우리의 더없이 자비로운 황제이신 프란츠 요제프 1세 폐하.’ 이렇게 말이다.

이런 그에게 시대의 전환은 성가시고 버거운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반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세상은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지만 그는 공장 설립을 금지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 소요 사태를 일으키기 쉽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연히 새로운 기계를 수입하는 것도, 철도 건설도 반대했다. 철도를 따라 혁명의 물결이 들어올 수 있어서였다. 그는 오로지 자신을 지지하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만 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공장에서 직물을 대량 생산할 때, 그의 제국은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강력한 농노제에 묶여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후계자였던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1914년,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으로 암살당하자 세르비아를 공격,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러다 2년 후인 1916년 사망함으로써 68년간의 재위를 비교적 무리 없이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제국은 그렇지 못했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1918년 제국이 산산이 분해돼 멸망한 것이다.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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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의 비결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

성실은 분명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이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국가를 경영할 수는 없다. 특히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에는 더 그렇다. 변화를 읽고 속성을 파악해 제대로 대처하는 역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건너는 배의 선장이 성실하기만 해서 될까?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폭풍을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하지 못했기에 그의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멸종한 생명체들 역시 변화하는 환경이 요구하는 것을 갖추지 못해 사라진다. 이 시리즈의 초반부에서 다룬 질문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자. 공룡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거대한 덩치 때문에 멸종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답이 애매한 이유가 있다. 만약 6500만 년 전처럼 커다란 소행성이 지금 지구에 부딪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공룡보다 덩치가 훨씬 작고, 대단한 문명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 역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서처럼 히말라야산맥이나 화성 같은 곳에 피난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시 환경이 요구하는 생존의 조건은 몸무게 20㎏ 이하의 덩치였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환경의 변화가 워낙 거셌기 때문에 이 이상의 생명체들은 종을 막론하고 살아남기 힘들었다. 공룡이 거대한 덩치 때문에 멸종했다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뇌가 크다고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 날개가 필요한 상황에 큰 뇌를 가진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환경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필요하다.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의 모르텐 베네드센 교수가 전 세계 장수 기업들을 연구해 추출한 비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00년이 넘는 장수 기업에서 4가지 공통점을 추출해냈는데 (그림 1) 세 번째가 시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다. 언제, 어느 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는 혁신 DNA를 갖췄기에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DBR 연재를 통해서 분석한 생명체의 멸종과 장수를 가른 요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역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번성했어도 새로운 환경에 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라졌고 이에 부합한 생명체는 지금도 살아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본격적인 부흥기라고 하는 캄브리아 대폭발 시대에 가장 발달된 수준의 눈을 개발한 덕분에 무려 3억 년 이상 장수했던 삼엽충은 2억5000만 년 전에 일어난 페름기 대멸종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해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뜻이다.

자연에 있는 것과 없는 것 3가지

20년 가까이 자연의 생태계를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자연에는 3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당연한 게 없다. 당연하다는 건, 어떤 과정을 거치면 A가 무조건 B가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인데 생명체의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 그런 것이 없다.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 지금까지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자연에는 ‘원래 그렇다’는 것도 없다.

또한 이유가 없는 게 없다.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이유를 모를 뿐이다. 멸종한 생명체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파리나 모기를 하찮게 생각하지만 이들은 무려 2억 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는 대단한 생명력의 소유자들이다. ‘대단한’이라고 한 건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금의 인류가 그렇듯 전 세계 대륙의 생태계를 장악하며 오랜 중생대를 주름잡았던 공룡은 사라졌어도 파리나 모기는 용감히 살아남았듯 말이다. 이들이 무슨 능력을 갖췄는지 궁금하다면 이들을 맨손으로 잡아보면 알 수 있다. 아마 잘 잡히지 않아 스트레스 지수가 단시간에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다. 생존 능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반면 자연에는 반드시 있는 것도 있다. 먼저, 살아 있는 자연은 주인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 이를 위해 실험하고 폐기한다. 적합한 건 취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 시스템이다.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의 세상에서 처음에는 어류가 주인공이었고, 다음에는 양서류가, 그다음에는 파충류와 포유류가 차례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들 주인공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능력 개발을 통해 이전 주인공들보다 더 넓은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양서류는 물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낸 덕분에 레드오션이 된 수중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을 갖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 밖으로 나오려면 아가미 대신 폐로 숨을 쉬어야 하고, 짧게라도 목이 있어야 하며, 지느러미 대신 사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가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유전자 차원으로 변해야 가능한 것들이다. 국내 시장에서 살아가던 기업이 해외시장에 나가는 것 같은, 아니 화성에 정착촌을 만드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양서류에 이어 시대의 주인공이 된 파충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서류는 육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지만 물에서 멀리 떠날 수 없었다. 지금의 개구리 역시 물 밖에서 살아도 알을 낳으려면 물로 들어가야 하고, 올챙이 시절을 물에서 보내야 하듯이 말이다. 항상 물이 필요하기에 성체가 돼서도 물 근처를 떠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룡으로 대표되는 파충류는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 양서류보다 사지를 진화시킨 덕분에 더 빨리 달릴 수 있었고 폐호흡 역시 강화시켰으며 무엇보다 육지에서 알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 물이 많지 않거나 물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살 수 있었다. 당연히 더 넓은 세상을 삶의 영역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들의 뒤를 이은 포유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파충류가 배가 노를 젓는 방식으로 사지를 움직인다면 포유류는 이 네 다리를 몸통 아래쪽으로 더 이동시켜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개발했다. 이러다 보니 머리가 땅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들어 독립적인 감각을 확보하기도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귀의 기원이다. 후손 전략도 혁신적이어서 난생(卵生)을 태생(胎生)으로 전환해 새끼들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쉽게 말해, 알을 몸 밖이 아니라 몸 안에 낳고 기르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 교체 현상에는 더 뛰어난 능력자를 탄생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있다. 생명의 역사에 꾸준하게 나타나는 패턴 중의 하나는 혁신을 통해 주류가 된 생명체들이 이른바 ‘굳히기’ 단계로 들어가는 경향이다. 경제적으로 살아가는 게 이익이기에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이익을 누리려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세상이 되면 혁신을 멈추고, 이전의 혁신으로만 살아간다. 이 정도만 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더 많은 힘을 쓰겠는가, 이런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는 사이 이 당연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한다. 주류가 당연함에 머물러 있을 때, 이들의 한계를 돌파하는 새로운 능력을 개발해서 말이다. 양쪽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을 하지만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묘하게 주인공을 바꾸는 것이다. 이제는 경영 용어로 자리 잡은 ‘성공의 덫’이 사실은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덫에 빠져들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전체 차원으로 보면 앞에서 말한 자연의 속성 하나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자연은 실험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을 바꿔가며 진화한다.

특히 대멸종 같은 사태로 환경의 변화가 가파르게 진행될 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두 번째 대멸종이 있었던 고생대 데본기 후기(3억7500만 년~3억6000만 년 전)에 척추동물의 육지 상륙이 이뤄지면서 양서류가 출현한 것이 그렇고, 세 번째 대멸종인 페름기 대멸종(약 2억5200만 년 전) 후, 공룡이 자신들의 시대를 시작한 것, 다섯 번째 대멸종인 백악기 대멸종(6500만 년 전) 후, 포유류가 전면에 나선 것이 좋은 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 시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누구보다 잘 적응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수록 이들의 적응력은 비례 정도가 아니라 추락 수준이 된다. 마치 여름에 완벽하게 적응할수록 겨울을 견디기 힘든 것이나 하나의 왕조가 무너지면 이 체제에 살던 왕족들과 명문가들이 몰락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 생태계의 꼭대기에 있는 최강자들이 대멸종 사건 때마다 대체로 멸종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덕분에 최강자가 됐지만 바로 그 때문에 바뀐 환경을 견뎌내는 힘이 가장 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변화가 거칠수록 최강자가 최약자가 되는 묘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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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군가의 멸종은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더 나아가 번성의 토대가 된다. 무엇보다 대전환의 시기를 이겨 내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에 가까워진다. 위기를 이겨내는 건 힘들지만 이겨 내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이 자산이 되는 까닭이다. 태풍이 불 때, 그저 버티기만 하는 것과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건 완전히 다르다. 그 상황에서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축적했기에 남들이 걸을 때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벌어지고 만다. 어려운 상황을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 헤쳐 나가는 생명체가 주류로 등극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공룡은 2억5000년 전 대멸종 중에서도 최대 규모인 페름기 대멸종 이후 지구환경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을 때 좋지 않은 대기 속에서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호흡기 혁신을 이뤄냈다. 그 덕에 누구보다 빠르게 생존력을 키울 수 있었고 주류로 자리 잡아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대멸종으로 생태계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는 속도 역시 빨랐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삶에 장착한 능력들에 힘입어 초기 상황을 장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무려 1억5000만 년 이상을 최강자로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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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만 년 전, 이들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전면에 등장했지만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600만 년 전까지 주류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그러니까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인류 역시 마찬가지다. 600만 년 전, 인류의 기원지라고 하는 아프리카 동부는 대규모 기후변화로 거대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숲이었던 곳이 지금의 사하라사막과 세렝게티 초원으로 변했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였다. 영장류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숲에 남아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이때 딱 한 영장류만이 완전히 다른 선택을 했다. 좁아지는 영역에서 나와 넓어지는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물론 그곳 역시 장밋빛 세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암흑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 진입한 초원 생태계에서 인류는 신참이었지만 안간힘을 쓰며 새로운 능력을 개발한 덕분에 점점 강자가 될 수 있었다. 인류의 특징이라고 하는 직립보행과 이로 인한 손의 활용과 불의 이용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 인류는 이 기간 뇌를 집중 성장시켰다. 이 기간 동안 인류의 뇌는 3배 이상(1350㏄) 커졌지만 숲에 그대로 남았던 침팬지의 뇌(400㏄)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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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변화 속도도 빨랐지만 더 중요한 건 기존의 강자들보다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역량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인류는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작은 신체 조건임에도 더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역량은 대단한 것이었다. 문명이라는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 여기에 생태계 원리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류는 이 안에서 주인공이 바뀌게끔 하는 시스템을 통해 문명 속의 주인공은 바뀌지만 생태계의 주인공은 계속 자신들이 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그 어느 생명체도 할 수 없었던 의도적 진화를 할 수 있었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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