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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極變… 실패가 극에 달하면 성공에 이른다

박영규 | 356호 (2022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극과 극이 서로 통한다는 주역의 원리는 양자역학과 유사하다. 태극의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듯 입자가 곧 파동이고 파동이 곧 입자인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실패가 극에 달하면 성공에 이른다. 에디슨, 일론 머스크 등 혁신가들도 무수한 실패를 마주한 끝에 성공을 거뒀다. 단, 실패를 그저 흘려보내지 말고 이로부터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작은 실수와 오류가 쌓인 뒤에 일이 완성된다.

주역은 과학이다. 심지어 주역은 최첨단 과학이론이라 불리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담고 있다. 태극기 중앙에 그려진 태극 문양을 떠올려보자. 올챙이처럼 생긴 빨간색과 파란색의 두 물체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양이다. 빨간색은 팽창하려는 에너지의 속성을 뜻하는 양(陽)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수축하려는 에너지의 속성을 뜻하는 음(陰)을 상징한다. 각각 2진법 체계의 아라비아 숫자로 표현하면 1과 0으로 쓸 수 있고, 주역에서 사용하는 기호로 표시하면 ―과 --으로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정식으로 태극 문양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양과 음의 머리 부분에 하얀색의 작은 점이 하나씩 찍혀 있다. 이 점을 극변(極變)이라 한다. 극변이란 사물의 상태가 극에 달하면 그 성질이 변하는 주역의 원리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주역의 해설서 중 하나인 『계사전』에서는 이 원리를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變)’이라고 표현한다. 궁극에 이르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뜻이다. 이 원리에 따라 양의 성질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하고, 음의 성질이 극에 달하면 양으로 변한다. 이처럼 주역에서는 양과 음을 고정된 상태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에너지의 위상(位相)으로 규정한다. 태극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구분된 경계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볼 때 양과 음은 하나로 통합돼 존재하는 실체이다. 주역을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爲道)’라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 번은 음이 됐다가 한 번은 양이 되는 도라는 의미다. 『도덕경』에 나오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나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도 그 함의가 같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와 양자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규명하는 이론인데 그 개념과 원리는 주역의 음양이론과 같다. 양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입자와 파동의 경계는 사실상 없으며 양자라는 하나의 실체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상태와 에너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속성은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물리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됐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주역의 음양이론을 접한 후 그것이 양자역학의 원조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덴마크 정부에서 기사 작위를 받을 때 태극 문양 주변에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었다.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에서의 입자와 파동은 동일한 현실을 상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음이 곧 양이고 양이 곧 음인 것처럼 입자가 곧 파동이고 파동이 곧 입자라는 것이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 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인 음양, 태극, 색즉시공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역이 서양 학문보다 우월한 과학 체계임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있다. 물과 불을 예로 들어보자. 물을 분자구조로 나타내면 H2O이다. 그런데 불을 분자식으로 나타내는 서양 학문은 없다. 가장 진화된 현대 화학으로도 불을 기호 체계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주역은 어떤가? 가능하다. 물은 ☵라는 기호로 나타내고 불은 ☲로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화학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질의 상태 변화를 나타내지 못한다. 물은 구름이 될 수도 있고 나뭇잎의 영양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상관관계를 화학식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주역은 가능하다. 주역의 8괘는 모두 3층 구조로 돼 있는데 아래에 있는 효가 시간적으로 가장 오래된 과거이며, 가운데 효는 현재, 위에 있는 효는 미래를 나타낸다. 즉, 물을 나타내는 기호인 ☵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 양, 음으로 그 성질이 변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불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의 속성은 양, 음, 양으로 변한다. 개체로서 물질이 갖는 속성이나 그 변화를 나타내는 방식에서 주역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물과 불이라는 두 개의 물질이 만나서 이뤄지는 화학 반응에 대한 설명에서도 주역은 서양 과학보다 뛰어나다. 서양 과학에서는 물과 불이 만나면 단순하게 그냥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물과 불의 위치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먼저 물이 위에 놓이고 불이 아래에 놓이는 경우를 일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수화기제(水火旣濟)라고 부른다. 물은 밑으로 흐르는 성질을 갖고 있고 불은 위를 향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상수하화(上水下火)이면 음양의 기운이 적당한 지점에서 만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작업이나 사건이 종료되거나 해결된 것으로 본다. 괘 이름으로 쓰인 기제는 결제가 이미 끝났다는 의미다. 반면 불이 위에 놓이고 물이 밑에 놓이는 상화하수(上火下水)의 경우에는 화수미제(火水未濟)라고 부른다.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밑으로 흘러가므로 둘은 각기 제 갈 길을 간다. 그래서 서로 만날 일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일은 접점을 찾지 못하거나 해결되지 못한 미제 상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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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물과 불은 극과 극의 성질을 갖고 있지만 상보적이다.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태극의 원리를 완성한다. 태극기의 4괘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감(☵)괘와 불을 상징하는 이(☲)괘가 대각선상에서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도 극과 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역의 원리에 의하면 동일한 속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패가 극에 달하면 성공으로 변하고 거꾸로 성공이 극에 달하면 실패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주역의 이런 원리를 잘 꿰뚫고 있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백열전등을 발명했으며 알파고는 수백만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친 후 비로소 인간 고수들을 이기는 인공지능(AI)으로 진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진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도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한 끝에 재사용 가능한 무인우주선 개발에 성공했다.

주역에서 일의 완성을 뜻하는 수화기제를 뇌산소과(小過)괘 바로 다음에 배치한 것도 이러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과(過)는 오류나 실수를 뜻한다. 작은 오류나 실수(小過)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일이 완성되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작은 오류나 실수들을 무의미하게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뇌산소과괘에서는 이런 교훈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비조유지음(飛鳥遺之音) 불의상(不宜上) 의하(宜下) 대길(大吉)’, 나는 새가 남긴 울음소리가 위로 가면 마땅치 않다. 아래로 가면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 새가 울음소리를 남긴다는 것은 소소한 행위들이 초래하는 일상의 결과를 상징한다. 새가 남긴 소리가 위를 향한다는 것은 그런 결과물들이 무의미하게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는 뜻이고, 아래로 간다는 것은 숲이나 공원과 같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 전달돼 유의미한 결과를 만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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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실패한 실험의 과정과 결과들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연구원들과 함께 꼼꼼하게 분석한 후 다음 실험에 반영했다. 일론 머스크도 우주선 발사가 실패할 때마다 실패의 원인을 정밀하게 진단한 후 물리학 이론을 다시 점검하고 보완해서 우주선의 설계도를 고쳤다.

주역에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조바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보다 한꺼번에 성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그런 조바심이 일을 더 그르친다고 말한다. ‘비조(飛鳥) 이흉(以凶) 밀운불우(密雲不雨)’, 어린 새가 멀리 날려고 하면 흉하며, 구름이 빽빽해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 새는 작은 몸짓으로 충분히 나는 연습을 한 후 창공을 날아야 한다. 학습하다고 할 때의 습(習)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린 새를 뜻하는 흰 백(白) 자와 깃 우(羽) 자가 합쳐진 것이 익힐 습(習)자다. 깃털이 미쳐 여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창공을 날려고 하면 그 결과가 흉하다는 것이 주역의 경고다. 구름이 빽빽해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단계를 밟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 아무리 용을 써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의미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로 가는 꿈을 키운 사람들이 많았다. 앞서 예로 든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2000년 시애틀의 황량한 들판 위에 블루오리진이라는 회사를 세운 후 차근차근 우주를 향한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블루오리진의 슬로건은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itim Ferociter)’이다. ‘한 걸음씩 용감하게’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제프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끈기 있게 한 걸음씩 전진한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더 자주 내딛다 보면 우주는 우리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질 것이다.” 노자도 『도덕경』 64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층지대(九層之臺) 기어누토(起於累土)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어족하(始於足下).’ 구층 누대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 박영규 |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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