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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他山之石의 지혜

김현진 | 300호 (2020년 7월 Issue 1)
2010년 자본금 3000만 원으로 출범한 A 기업은 2019년 12월 글로벌 기업과 인수합병을 하면서 시장 가치를 40억 달러 (4조8000억여 원)로 인정받습니다. 10년 만에 기업 가치가 15만 8000배가량 뛴 셈입니다.

글로벌 한류 붐의 주역이었던 B 기업은 소속 아티스트의 마약 혐의 논란, 성 접대 등 추문에 휩싸이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입니다.

대략의 스토리만 봐도 눈치채셨겠지요. A 기업은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B 기업은 아이돌 사단 YG엔터테인먼트입니다. 업종도, 성공 공식도 다른 두 기업의 공통점 중 하나는 DBR의 케이스 스터디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심층 취재 및 경영학적 분석을 거친 아티클로 선보여졌다는 점입니다.

DBR이 우아한형제들의 성공 요인을 취재했을 때가 2014년 5월. 이 회사가 만든 배달의민족이 국내 배달 앱 카테고리에서 1등을 차지하며 플랫폼 비즈니스의 ‘잘된 예’로 급부상했던 때입니다. 창업 초기부터 ‘키치’를 기업 문화로 내세워 B급 감성의 독특한 브랜딩으로 인기를 끈 이 기업의 성공 방정식은 하지만 이미 이 기업에선 ‘소명’을 다했을지 모릅니다. 임직원 규모 1500명을 갖춘, 웬만한 대기업 계열사 규모로 성장한 이 회사는 이제 소수의 의사결정과 남다른 실행력으로 신선함을 주는 과거의 업무 처리 방식만으론 제2, 제3의 성공을 이어나가지 못할 겁니다. 이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를 외쳤던 마케팅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 가운데 일부는 배달의민족이 해외 기업에 인수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기업의 새로운 목표는 로컬 소비자의 마음을 달래고 커진 몸집만큼이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동시에 글로벌 전략 수립에 박차를 다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케이스 스터디로 소개됐던 당시에 도출된 성공 요인, 즉 전성기의 성공 방정식이 ‘능숙함의 덫’이 되면서 오히려 오늘날의 위기에 원인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가 그런 예 중 하나입니다. 이 기업은 아티스트별 개성이 강해 회사 차원의 브랜딩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고민이 있었고, 이에 회사 브랜딩의 정체성을 정리하는 브랜드 경험 디자인에 나서면서 브랜드를 일관되게 의사소통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DBR 아티클로 소개된 2013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특정 그룹 멤버의 일탈 및 경영진의 사회적 물의는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며 새로운 과제를 남겼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사례는 이제 ‘잘나가는 기업들이 경계해야 할 경영 지침’이란 화두를 남깁니다. 일관성도 필요하지만 ‘양손잡이’ 경영을 통해 능숙함의 덫을 경계하고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를 심도 깊은 전략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점 등이 새로운 비전으로 대두된 것입니다.

기업, 그리고 비즈니스 환경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아서 이처럼 과거의 성공 요인이 오늘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13년째를 맞는 DBR의 역사 속에 축적된 케이스 스터디 속 기업 사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DBR은 300호 발간을 맞아 기업 경영 환경이나 위상이 달라져 다시 한번 성공 요인과 비전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사례들을 골라 재고찰(revisit)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3년째를 맞은 DBR이 그간 다룬 케이스 스터디는 500여 개. 다양한 기사 속에 녹인 케이스까지 합치면 수천 건의 기업 사례가 DBR 편집진과 국내 최고 학계, 업계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기사로 탄생됐습니다. 이 케이스들 가운데 엄선 과정을 거쳐 2020년 버전으로 재고찰한 기업은 우아한형제들, YG엔터테인먼트, 마켓컬리, 카카오택시, 젠틀몬스터, 코스맥스입니다. 이 기업들의 그간 여정을 추적해보면 과거의 판단이 오늘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DBR의 핵심 콘텐츠이자, 많은 대학과 기업의 교육 자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케이스 스터디의 가장 큰 미덕은 타산지석(他山之石)입니다. 심지어 해당 기업에는 이미 유통기한을 다한 성공 공식이 우리 기업에는 여전히 유효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산의 ‘돌’이 내겐 ‘옥’이 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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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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