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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드라이브스루 진료소 고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교수

“감염 위험? 병원 밖에서 진료하면 되겠네!
현장에 맞게 생각 바꾸니 혁신적 솔루션”

이미영 | 298호 (2020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형태의 선별 진료소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드라이브스루의 성공 요인을 크게 3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과거 감염병 사례에 집착하지 않고 코로나19 고유의 특성을 찾아내 초기 방역에 집중했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공식, 비공식 채널에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하며 새로운 솔루션을 도출해냈다. 셋째, 의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솔루션부터 신속하게 적용하면서 아이디어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편집자주
드라이브스루 형태의 선별 진료소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대한민국이 방역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드라이브스루 진료소는 의학계의 영역이지만 이 진료소를 고안하고 세계 의학계에 널리 알리기까지의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인 고경주(경희대 관광학과 4학년) 씨와 장동욱(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의료계만큼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집단도 없다. 의료 현장은 생명을 다루는 곳인데다 돌발 상황과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매뉴얼 따르기’를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그래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개방적 협업이 이뤄지기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이런 의료계의 불문율을 깨뜨렸다. K-Pop을 본뜬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배경에는 그동안 기존 감염병 관리 체계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적 시도들이 있었다.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선별 진료소가 대표적인 예다. ‘검사 대상자가 자동차를 타고 진료소로 들어와 자동차 안에서 검사를 받게 한다’는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의 검사 시스템에 비해 감염 여부 판별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유럽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혁신 방역 아이템’이 됐다.

드라이브스루를 처음 고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조직 내 경직성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그는 드라이브스루의 성공 요인을 크게 3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과거의 감염병 대응 경험에 집착하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부터 파악해 감염 초기에 모든 방역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둘째, 개방적 의사소통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이 비공식 채널에서 나눈 아이디어를 공식 채널로 옮겨와 논의를 확장시켜나갔다. 아이디어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솔루션이 탄생할 수 있었다. 셋째, 새로운 아이디어의 현실 실현성을 두고 설왕설래하지 않았다. 현장의 전문가들이 빠르게 현장에 도입해 그 효과를 테스트했다. 효과성이 입증되면 전문가들은 이 매뉴얼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코로나19는 기업 입장에서도 뜻밖의 위기였다. 많은 기업이 코로나 이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일 것이다. 이번 드라이브스루 사례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DBR는 김진용 과장을 만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개발하고 실행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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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스루’ 형태의 선별 진료소를 빠르게 고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초 조사가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19일, 중국 우한에서 온 중국인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돼 인천의료원으로 이송됐다. 다음날 그는 국내
1호 환자로 확진 판정돼 음압병동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 생각했다. 입원 시부터 격리해제 될 때까지 약 열흘 동안 매일같이 검체를 채취해 질병관리본부로 보냈다. 코로나19를 식별할 수 있는 기초 데이터가 쌓인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이 검체를 분석했고, 분석 결과를 모두 인천의료원에 다시 보내줬다.

검사 결과를 보니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만의 특성이 보였다. 이 바이러스는 과거 한국을 거쳐 간 다른 신종 감염병과 성격이 매우 달랐다. 사스나 메르스의 경우 인체 내 바이러스양이 감염 중반, 증세가 심화될 때 가장 많이 나온다. 반면 코로나19는 감염자가 별다른 증상이 없는데도 발병 초기부터 바이러스 수치가 매우 높았다. 결국 발병 후 환자를 관리해 확산을 막는 것보다 의심 환자들을 빠르게 걸러내는 작업이 방역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이 2월3일이었다. 이 내용을 개인 페이스북, 전문가 소통창구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빠르게 알리기 시작했다.

결과 발표 이후 반응은 어땠나?

물론 처음부터 이 주장이 의료계에 잘 먹혀들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미 한국에선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 증후군)를 막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계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해하기보다 과거 경험과 매뉴얼대로 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의료계는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학벌, 소속 병원 등이 중요하다. 나는 의사 중에 메이저로 속하긴 어려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염증 발병 초기 의료계에서 내가 주장하는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내 주장이 확산되면서 코로나19는 메르스나 사스처럼 중증 환자만 관리해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데이터를 통해 증명할 수 있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이렇게 데이터를 모으지 않았나?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검체를 잘 채취해 보관해 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많은 유행병이 한국을 거쳐 갔지만 검체는 하나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 2013년 메르스 환자를 돌봤고, 2014년엔 나이지리아 출신 에볼라 의심 환자를 가장 먼저 대응했지만 그 당시에도 검체는 따로 보관되지 않았다. 이때 좀 아쉬움이 남아서 혹시라도 다음 신종 감염병이 등장하면 꼭 검체를 채취해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코로나19 환자가 들어왔을 때 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왔는데 이때 2억 원 정도를 들여 검체 진단과 보관에 필요한 장비를 가장 먼저 구매했다.

바이러스는 굉장히 정직한 생물이다. 예측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크게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특성을 유지한다. 초기에 바이러스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바이러스 특성을 데이터로 증명함으로써 대응 방향을 빠르게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드라이브스루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코로나19는 초기 증상자를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 신종유행병은 폐렴처럼 중증 환자에게 집중하면 됐지만 코로나19는 초기 환자를 가려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론상 가벼운 감기에 걸린 환자도 하나하나 다 검사해야 했다. 한국의 겨울 감기 환자만 하루에 10만∼12만 명이다. 당연히 이들을 다 검사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많은 인원을 빠르게 검사해야 하는 시스템이 분명 필요했다.

그런데 기존 검사 방침을 그대로 도입해서는 불가능했다. 감염병 진단을 병원 진료실에서 하게 될 경우 환자 1명을 진료한 후 30분을 환기해야 했다. 검체 채취를 위해 면봉 등으로 환자의 콧구멍을 후벼야 하는데 이때 재채기를 참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가 내뿜는 에어로졸이 공기 중에서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8시간 동안 많아야 16명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감염 환자 진단을 실내가 아닌 밖에서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 진료실을 밖으로 끄집어내 환자와 의사 모두가 안전한 방법을 생각해봤다. 그러다 문득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논문이 생각났다. 대유행 인플루엔자를 대비해서 백신을 주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 것인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다 갖추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에 한곳으로 모일 수 있어야 하고, 감염이 이뤄지지 않도록 서로 분리돼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다들 드라이브스루가 창의적인 발상으로 기지를 발휘해 나온 발명품 같은 솔루션이라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간단하면서 쉽고, 어디에서나 적용 가능한 솔루션이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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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코로나19 초기 대응이나 드라이브스루는 감염내과 의사 개인의 의견에 가깝다.
어떻게 이 아이디어가 발전하고 새로운 솔루션으로 거듭날 수 있었나?

대한감염학회 신종감염병위원회 정책 태스크포스(TF)의 도움이 컸다. 대한감염내과학회 소속인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그룹이다. 회비도 없고 보수도 없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대응책을 한번 고민해보자고 만든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를 포함해 감염내과, 진단내과 등 예방의학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8명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이 TF는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서 주로 활동한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피드백을 준다. 대응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해서 더 좋은 대안을 모색하기도 하고, 만약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좋으면 계속해서 좋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구성원이 모두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으로 비교적 젊은 의사들이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실제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관련해서 오프라인으로는 딱 한 번 만났다. 급한 회의가 있으면 화상회의를 통해서 진행했다. 공식 TF였다면 이런 과정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도 여러 보고 자료를 준비하고 오프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하느라 아이디어를 내고 도출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또한 원로 교수들의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내놓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드라이브스루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다. 2월18일 대구에서 31번째 신천지 교인 환자가 터진 이후 정책 TF 카카오톡 방도 불이 났다. 여러 정책 방안을 고민하면서 자가격리 지침을 우선 만들었다. 이틀 뒤인 20일 밤, 이재갑 교수가 권영진 대구 시장을 만나러 가면서 카카오톡 방에 코로나19 검사를 빠르게 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톡이 올라왔다. 결국 밖에서 검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야외 선별 진료소 이야기가 나왔다. 선별 진료소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운영원칙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다음날 새벽 3시, 예전에 봤던 논문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드라이브스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손 그림을 그려 간단하게 PPT 파일을 올렸다. 그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하루 선별 진료소 한 곳에서의 검사 인원을 최대 200명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그저 개인적인 생각에 멈출 수 있다.
결국 누군가가 이 아이디어를 실행해 실험해야 한다. 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그렇다. TF에서 내놓은 것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실행하는 것을 지역 병원이나 지자체, 정부 등이 해야 할 일이었다. 대한감염학회 내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13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KoEID(Korean surveillance system of Emerging Infectious Disease)라는 시스템이 개발됐다. 질병관리본부, 감염전문가, 역학전문가, 진단검사전문가, 방역전문가, 의료진 등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KoEID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 아이디어에 대한 댓글도 활발하게 달린다.

우리 TF 멤버들이 KoEID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인플루언서’인 것도 일부 작용했다. 이재갑 교수가 우리가 TF에서 했던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KoEID에 올렸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당시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대구시 칠곡경북대학교병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기도 했고, 실제로 코로나19가 발병한 지역에선 감염자 스크리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드라이브스루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보더니 23일 첫 드라이브스루 선별 진료소가 꾸려졌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관련 자료나 의견을 개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인천의료원 글로벌 감염병 관리센터를 만들었다. CGIDN(Center for Global Infectious Diseases Control, Incheon Medical Center)이란 이름으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했고 재능기부를 통해 로고도 만들었다. 아주 작은 조직이지만 꽤 진지하게 임했다. 감염병 관련 연구 논문도 공개하고, 감염병 발병 시 환자 진료 매뉴얼도 만들어 공개했다. 코로나19 환자 관련 바이러스 데이터도 이곳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2018년부터는 관련 세미나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의료진이 감염병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 드라이브스루 선별 진료소 안을 공개 논문을 통해 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솔직히 처음엔 개인적인 지식이나 의견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더 잘하는 교수들이나 의료진도 많은데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도 됐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나 지식이 개인 병원, 지방 의료원 등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드라이브스루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 알았나?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발상의 전환이다. 긴급한 감염병이 발생할수록 병원 중심이 아니라 사람, 즉 사람의 이동이나 동선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의료계에선 이 부분을 자주 놓친다. 환자들이 아니라 병원이나 의사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번 코로나19 초기 대응 시기에도 의료계는 감염 환자 스크리닝도 병원 ‘안’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발병 초기 일반 병원들이 병원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의심 환자를 보건소로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매우 간단하게 해법이 나온다. 병원 밖에서 진료하면 된다. 사람들은 병원이 아무리 지침을 주고, 주의를 줘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돼 있다. 만약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지나치게 대기시간이 길거나, 오히려 감염 우려가 높아진다면 검사를 아예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병원이 ‘사용자 편의’를 중심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드라이브스루는 상호 간의 감염 우려를 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자동차 안에서 검사를 받기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자발적인 검진자 수를 늘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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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선별 진료소를 자문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동선 간소화, 실내 검사 최소화. 이 두 가지가 코로나19 관련 선별 진료소의 원칙이다. 하지만 종종 이런 원칙을 무시한 선별 진료소가 설계되는 경우가 있었다. 부스 형태의 실내 선별소가 대표적인 예다. 3월 중순 인천공항공사에서 외국인 입국자 검사를 위한 선별 진료소를 만든다며 자문 요청이 왔다. 공항 내에 부스를 설치하고 검사원들이 이곳에 들어가 부스에 설치된 장갑으로 손을 넣어 입국자들을 검사한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듣자마자 강하게 반대했다. 아무리 장갑을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 손을 거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감염 검사자와 대기자가 한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위험도를 높이는 것이다. 결국 부스를 없애고 천막을 쳐서 야외 선별 진료소를 만들었다. 이동경로도 검사 대기자와 완료자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다.

일부 사람은 드라이브스루라는 형식이나 형태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부스형, 워크인형 등 다양한 방식의 검진 장비가 나오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러한 장비들이 드라이브스루 선별 진료소를 고안한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에만 집착해 본질적인 목적이나 의도를 훼손하거나 핵심 요소를 빠뜨리는 경우를 볼 때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제품에도 철학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하듯이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혁신이라는 겉모습에 현혹돼 실제 이 서비스를 왜 제공하고 있는지, 이 서비스를 통해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 그 철학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다. 최근 K-방역과 관련한 움직임을 보면서도 유사한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스루와 관련해 이번에 공개한 논문에 보면 참여한 전문가가 모두 의료진은 아니다.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의료집단은 굉장히 폐쇄적이다. 같은 동문끼리만 활동하는 경우도 매우 잦고, 다른 분야와의 접촉도 적다. 혼자 독립적으로 일해도 어느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잘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만의 전문 지식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와 함께 활동하면 그 시너지가 매우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2013년 질병관리본부가 운영했던 ‘공중보건 위기대응 사업단’에서 음압병동 운영지침 과제를 맡으면서다. 이때 사업단에서 과제를 맡고 있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회의를 참석했다. 의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건축학과 교수, 수학과 교수, 심지어 언론인까지 감염병에 대응할 때 필요한 전문가들이 다 모였다. 건축학과 교수들은 진료소 환기 시스템이나 의료진 동선을 다뤘고, 언론인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맡는 식이었다. 이 회의를 통해 서로 전문 지식을 공유하다 보니 정말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도 성민기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가 선별 진료소 설계에 조언을 주는 등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해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

사실 이번 드라이브스루 솔루션은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미국을 비롯해 코로나19가 심각한 다른 나라에서 먼저 이 솔루션을 응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단어’에 너무 갇혀 있었다. 코로나19는 초기 ‘우한 폐렴’이라고 불렸다. 그때는 우한에서 발병한 병이고 감염자 대부분이 폐렴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맞는 이름처럼 보였다. 그리고 폐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다 보니 이 바이러스는 메르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하다고 단정 지었다. 이후 바이러스 유전자의 80%가 사스와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오니까 사스와 유사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모두 사람이 정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스스로 말한 게 아니다. 바이러스의 성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안일하게 있다가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 항상 진실을 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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