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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애자일 조직 위해선 질문을 許하라

박영규 | 294호 (2020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조직 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 경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직급 간 경계, 팀 간 경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 둘째, 문서 작업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두툼한 보고서로 능력을 측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셋째, 자유롭게 질문을 허(許)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이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는 조직이 건강하고 창의적인 조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변혁 운동은 선언문으로 시작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변혁은 ‘공산당 선언’으로 시작됐고, 3•1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문’으로 시작됐다. 최근에 유행하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혁운동인 애자일도 ‘애자일 선언문’으로 시작됐다.

모든 선언문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 애자일 선언문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소통이다. 칸반(Kanban) 보드, 포스트잇, 스크럼, 스프린트, 사시미 등으로 대표되는 애자일의 전략적 수단들은 원활한 소통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칸반 보드와 포스트잇을 통해 조직원들은 간단명료하게 요약된 동료의 메시지를 읽는다. 메시지는 업무상 지시나 전달사항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다. 스크럼을 짜는 이유도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공통된 목표를 응시하다 보면 상대의 숨소리, 생각에 효율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스프린트도 속도보다는 릴레이식 소통에 무게가 실린다. 사시미도 마찬가지다. 회 접시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사시미의 모양은 꼬리에 꼬리를 문 구조적 소통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먼저, 조직 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경계를 허물어야 민첩한 소통, 애자일 조직이 가능해진다. 경계에는 눈에 보이는 유형적 경계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사무실 내 칸막이를 치운다고 경계가 저절로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직급 간 경계, 팀 간 경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 긴급한 의사결정이나 피드백이 필요할 경우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든지 자유롭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엊그제 입사한 주제에 감히” “대리 따위가 부장한테 대들겠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근무 연수, 직급 등으로 경계를 지으면 애자일이 성공할 수 없다.

“무릇 도에는 경계가 없다. 경계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왼쪽이 있으므로 오른쪽이 있고, 옳음이 있으므로 그름이 있다. 겨룸(競)이 있으므로 다툼(爭)이 있고, 나눔(分)이 있으므로 분별(辯)이 있다. 성인의 도에는 나눔과 경계가 없다. 나이(年)도 잊고, 옳음(義)도 잊은 채 경계가 없는 곳으로 무한히 나아갈 따름이다.”

- 『장자』 ‘제물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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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문서 작업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두툼한 보고서로 능력을 측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는 연중 계획, 연차보고서와 같은 서류 자체를 없애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장자』 ‘천지’ 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보자.

어느 날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의 북쪽으로 유람을 떠났다. 곤륜(昆侖)이라는 언덕에 올라 남쪽을 구경하다가 궁궐로 돌아왔는데 깜빡하고 현주(玄珠)를 두고 왔다. 황제는 내로라하는 신하들을 시켜 현주를 찾아오게 했다. 먼저 지(知)를 보냈으나 찾지 못했다. 다음에는 이주(離珠)를 시켜 찾도록 했으나 그 또한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세 번째는 개후(喫詬)를 시켰지만 그 또한 실패했다. 실망한 황제는 마지막으로 상망(象罔)을 시켰고, 그는 단숨에 구슬을 찾아왔다.

맨 먼저 구슬을 찾아 나선 지는 지식, 지혜를 상징한다. 조직에서 보면 풍부한 정보력과 두툼한 보고서로 상사를 만족시키는 직원이다. 이주는 시력이 가장 좋은 신하다. 문서의 토씨 하나 틀린 것도 그냥 넘기지 않고 꼼꼼하게 체크하는 사람으로 그 또한 보고서 만능주의자다. 개후는 말을 잘하는 신하다. ‘喫’는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는 의미를 갖는 한자로 여기서는 ‘끽’이 아니라 ‘개’로 읽는다. 조직에서 보면 매사에 말을 앞세우고 남의 허물을 후벼 파는 유형의 사람이다. 상망은 현장중심주의자다. 지, 이주, 개후가 구슬에 대한 시장 가치와 구슬의 소재, 위치 추적 방법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분실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을 따질 때 상망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과업에 부과된 비본질적인 요소보다는 ‘구슬을 찾아야 한다’는 본질적인 요소를 앞세웠다. 상망은 애자일 조직에서 말하는 시장 중심, 고객 중심, 과제 중심에 가장 충실한 유형의 인물이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물음표 던지기다. 질문이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는 조직이 건강하고 창의적인 조직이다. 『장자』의 주요 에피소드도 질문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대붕과 호접몽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장자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원래 색깔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워낙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자신이 직접 하늘 높이 올라가 볼 수는 없었기에 장자는 대붕이라는 새를 등장시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호접몽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나비가 등장하는 꿈을 꾼 장자는 이런 물음표를 던진다. “내 꿈속에 나비가 등장한 것일까? 아니면 나비의 꿈속에 내가 등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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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장자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의식, 물화(物化)에 대한 탁견을 내놓는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질문을 질문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질문을 던진 후 즉시 답을 찾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붕과 호접몽 우화의 원문에는 장자의 질문과 답이 붙어 있다. 즉문즉답이다. 스탠퍼드대에 다니던 래리 페이지는 어느 날 밤 기숙사에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 순간 질문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만약 내가 모든 인터넷 웹을 다운로드하고 이것들을 잘 링크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래리 페이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알고리즘)을 메모지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 자신의 구상을 밝힌 후 공동으로 창업에 나선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구글이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리더는 지시하는 리더였고 미래의 리더는 질문하는 리더다.” 애자일 조직의 핵심은 소통이고, 소통을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자유롭게 질문을 허(許)하는 것이다. “말이 많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하고 질문을 봉쇄하면 애자일 경영이 성공할 수 없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계획을 실천하는 것보다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음표는 변화에 대한 모멘텀을 제공한다. 질문이 있어야 변화가 촉발된다. 물음표가 막히면 조직 내 소통이 막히게 되고 소통이 막힌 조직은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다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된다.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한마디로 압축하면 ‘Q-매니지먼트(Question Management, 질문 경영)’로 표현할 수 있다. 미심쩍은 게 있으면 반드시 물음표를 던져야 하며(Query), 물음표를 던진 후에는 그것을 묵혀두지 말고 즉각(Quick)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기발한(Quaint) 아이디어를 동원해야 한다. 『장자』가 오랜 세월 읽히고 있는 이유도 상식을 뛰어넘는 독창성 때문이다.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Quit)하고 미래적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명마(名馬)는 자신이 밟고 지나온 풀을 먹지 않는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 박영규 |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chamn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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