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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Science in Practice

AI와 궁합 잘 맞는 사람은 누구?

유재연 | 293호 (2020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곳곳에서 인공지능(AI) 시스템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조직 내 구성원들 중에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저 기계가 나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AI 자체에 대한 신뢰도,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거리감, 프로세스 변동으로 인한 번거로움 등 다양한 요인이 작동한다. 이런 가운데 AI가 유독 ‘잘 받는’ 사람들도 있다. AI 시스템과 인간 사용자가 어떻게 발을 맞춰 나갈 수 있을지 그 협업 케이스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지난해 12월, 프랑스계 컨설팅 회사 캡제미니(Capgemini)는 제조업에서의 인공지능(AI) 활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서 캡제미니는 AI를 제조업 생산 설비에 적용할 때 고려할 만한 세 가지 유즈 케이스(Use case)를 제시했다. 지능형 정비(intelligent maintenance), 퀄러티 컨트롤(product quality control), 수요 예측(demand planning) 부문이 그것이다.

캡제미니는 그중 한 가지 케이스로, 제너럴모터스(GM)가 어셈블리 로봇에 카메라를 달아 생산 라인의 오류 발생을 잡아내는 현상을 소개했다. 볼보도 기존의 조기 경고 시스템이 구축해 둔 대규모 데이터세트를 AI로 학습하고, 기계 고장이나 오류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매주 분석해내고 있다고 한다. 이같이 생산라인에서의 AI 도입은 기계의 효율을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내용이 중점적으로 보고됐다.1


사람에 따라 AI 협업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최근 진행됐다.2 통상 이 반도체 라인에서는 이상 알람이 울리면 사람이 직접 내려가 기계의 오류를 확인하는데, 이 연구 논문을 쓴 저자는 이 같은 이상 발생 알람 데이터를 모아 직접 알고리즘을 짰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현장 엔지니어들에게 얼마만큼, 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봤다. 국내 반도체 공장 내 기계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이곳의 엔지니어들이 기록한 레이블, 그리고 현업인 78명의 코멘트가 다뤄진 실증 연구였다.

저자는 앞선 리서치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짚어냈다. 먼저, 전문가와 비숙련자 사이에 AI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느끼는 체감 온도 차이다. 경력 4년 이상의 전문가 그룹보다 경력이 짧은 비숙련자들에게서 ‘알고리즘으로부터 효과적인 도움을 얻었다’는 답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선배가 부재중인데 급히 처리해야 하는 사항을 맞닥뜨렸을 때 특히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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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현장 사람들은 알고리즘의 정확도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한 정확도로는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 적어도 전문가 그룹만큼의 정확도(95%)는 돼야 비교적 쉬운 문제는 기계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인간 스스로 오류에 대한 레이블을 더 정확하게 기록하겠다는 필요성이 전문가와 비숙련자 모두의 그룹에서 긍정적으로 공유됐다. 실제 업무에서 자신들을 도울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특히 오류에 대한 레이블을 정확히 기록하면 비숙련자들의 전문성도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실제로 AI 기술이나 서비스를 조직에서 직접 반영해 쓰려면 태스크(task) 그 자체와 그것을 쓰는 사람의 특성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전문가에게는 자신의 일을 대체할 AI가 필요하고, 비숙련자에게는 자신을 전문가급으로 올려줄 교육용 AI가 필요하다. 각각이 AI 시스템에 기대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듯 조직 또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은 AI 시스템을 적용할 수는 없다.


장인의 감각을 학습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전문가 그 이상의 수준, 즉 ‘장인급’은 AI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 사실 얼마 전, 장인의 손기술이나 노하우를 조직 차원에서 축적할 수는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만이 지닌 특유의 감각을 데이터로 담을 수 있다면 노화로 인한 감각 쇠퇴나 은퇴로 인한 인력 손실로부터 타격을 덜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출판계 장인이라면 종이의 소소한 질감과 색감과 냄새가 모조리 그 자신에게 체화(embodied)돼 있을 것이다. 옷을 만드는 업체라면 천의 텍스처, 고유의 질감을 적합하게 짜 맞추는 장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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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 중 시각과 청각은 AI가 비교적 잘 학습하고 있는 분야다. 시그널과 패턴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수준으로 올라오려면 여전히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촉각 센싱의 경우, 아주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차츰 기계 학습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MIT 연구진이 만든 글러브가 꽤 흥미롭다. 글러브에 센서를 촘촘히 수놓아 사람의 통각과 물체마다 다르게 쥐는 습관 같은 것을 학습한 뒤 손에 든 물체를 알아맞히는 프로세스다. 연구진은 여기에 시각 기술(computer vision)이 결합되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3

기계가 인간의 오감을 모두 섭렵한다 해도 아직까지는 AI가 장인을 대체한다거나 장인의 노하우를 죄다 학습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장인의 데이터 자체가 많지 않고 설령 데이터가 많다 하더라도 그 데이터에 대한 대표성을 쉬이 평가할 수 없다. A회사에서는 ○○○ 장인의 스타일을 우대하지만 B회사에서는 그의 취향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AI 기술은, 어쩌면 장인에게 ‘보조(assistant)’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지도 모른다.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重版出来)’에 보면 일을 너무 오래 해서 어깨가 구부정해지는 바람에 그림체가 달라진 원로 만화가가 나온다. 그는 그 해결책으로 각도 조절이 되는 전자 태블릿을 장만해 젊은 시절에 날렵했던 그림체를 되찾는다. 그가 젊은 시절 그림을 그리던 자세로 몸을 돌이킬 수는 없으니 기술로 보조를 하는 것이었다. 기술은 장인의 감각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장인에게 꼭 맞는 AI가 있다면 그것은 장인의 기술력을 더욱 극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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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날 때부터 ‘AI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없다

공학적인 의미의 ‘기술’을 업으로 삼은 직종이 아닌 비(非)엔지니어의 케이스를 보자. 한 달 전 한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회사에서 파워 비아이(MS Power Bi4 )를 쓰라고 하는데, 빠르고 쉽게 배우고 싶다”며 사용법을 물어왔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한 사회과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 한 명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앱(chrome extension)을 활용해 데이터를 긁어오라는 교수의 지시에 진땀을 빼다 연락을 해 왔다. 두 사람 모두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름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높은 세대에 속해 있다. 둘 다 외국에 있으니 영어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직 차원의 압박을 받고 홀로 끙끙대다, 결국 각종 분석 툴과 서비스 사용법을 문의해오는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다. 복잡한 데이터 번들과 옵션이 번지르르하게 수놓인, ‘개발자가 보기에 예쁘고 산뜻한’ 대시보드를 접하면 순간 위압감이 상당하다고 한다. 기업 내 데이터분석을 위한 리터러시 측정이 단순히 그들이 태어난 시기나 학력, 배경이나 생활 습관만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AI 리터러시를 익히려면 누구에게나 일정량의 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I 리터러시는 최근 곳곳에서 강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호로비츠 교수와 칸 교수는 최근 기고에서 미국 정부 관료와 정책 입안자, 국가 안보 관계자들 모두 AI 리터러시를 더 많이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AI를 잘 아는 사람을 채용하고 볼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AI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이나 광범위한 사용, 여기에 얽힌 도덕 및 안보 문제, 적합한 데이터 활용 등 AI는 이미 인간사에 온통 얽혀 있다. 따라서 ‘코딩 101’ 같은 가이드로 학습을 하거나 스탠퍼드대를 비롯한 주요 교육기관들이 제공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학업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하게 요구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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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 AI 시스템

각계각층의 인간 사용자들이 펼치는 AI를 향한 구애만큼 AI 또한 이에 응답해야 한다. 좀 쉽고 친절한 AI를 많은 이가 원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를 제치고 세계 혁신지수 1위 자리를 꿰찬 독일의 AI 제조업 혁신 사례 하나가 눈에 띈다.6 과거 제조업의 영광을 맛본 일본과 독일 양국이 서로 제조업 분야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7

양국 모두 중소•중견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디지털화를 필요로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오너든 직원이든, 기술에 대한 이해가 낮은 상태에서 무작정 디지털화를 시도했다가는 큰 실수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흐름상, 혁신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이 모습이 비단 이 두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리서치는 어느 회사에나 적용돼야 할 ‘사람 중심’ AI 엔지니어링을 제시했다. 플라스틱 공정 플랜트에서든, 기계 제조업체든, 의류 공장이든, 디지털 혁신 플랫폼의 시작은 구성원 개개인의 수용력을 높이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업종별로 다양한 실제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물론, 직원들의 지식과 일의 여정(work flow)을 섬세하게 평가한 뒤에 그에 적절한 IT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AI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리터러시가 갖춰지면 AI를 잘 쓸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인공지능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 AI를 아는 인간, 그리고 그에게 딱 맞춘 AI 시스템의 결합이야말로 ‘환상의 짝꿍’이 아닐까 싶다.


유재연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연구원 you.ja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에서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미디어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 딥러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학 전까지 언론인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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