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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중견 기업 안 키우면 계속 눈뜨고 당한다

이홍 | 284호 (2019년 11월 Issue 1)
한국의 경제 구조는 쌍봉낙타형이다. 중소 벤처기업과 대기업은 잘 성장한 데 비해 중견 기업은 무너져 있는 구조다. 한국 사회가 중견 기업을 푸대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중소 벤처기업이 중견 기업이 되는 순간 기존에 누리던 혜택을 내놓아야 한다. 큰 기업이 됐으니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정서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피터팬 증후군’이다.

중소기업들은 기업 쪼개기 등의 방법으로 중견 기업으로의 성장을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중견 기업 집단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중소 벤처기업→중견 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의 붕괴를 뜻한다. 이게 왜 문제인가? 이탈리아의 사례를 보면 안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중병자로 비유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붕괴 속도가 가장 빨랐다. 이유 중 하나가 기업의 영세성이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직원 10인 미만의 소기업 비중이 전체 기업의 94.9%를 차지한다. 독일의 80.1%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국가 경제가 소기업에 의존할수록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불행히도 한국은 이탈리아와 경제 구조가 유사하다. 직원 10인 미만 기업이 전체의 92.2%에 이른다. 특히 중견 기업 비중이 낮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글로벌 수준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치명상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

중견 기업이 부족하면 일자리 미스매치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 입맛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할 뿐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일자리가 반(反)대기업 정서로 늘어나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할 중견 기업이 없다. 중견 기업의 대졸 초임 임금은 대기업의 90% 선, 중소 벤처기업의 경우는 평균 70% 선이다. 부족한 대기업 일자리를 중견 기업이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견 기업 역시 암묵적 대기업으로 분류돼 있어 국가가 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은 이유다.

중견 기업이 취약해지면 국가 경쟁력도 약화된다. 2019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했다. 반도체나 OLED 같은 한국의 주력 산업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일본이 첨단 소재 수출을 막은 것이다. 이 같은 공세의 배후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일본의 중견 기업들이 있다. 한 예로 감광재인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일본의 도쿄오우카란 기업은 한국 기준으로는 중견 기업인데, 이번에 한국 수출을 중단하면서 경제 공격 선봉에 섰다. 이런 첨단 소재는 어느 날 갑자기 중소 벤처기업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긴 개발 시간과 생산 규모를 늘리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한 만큼 중견 기업 이상이 아니면 쉽지 않다. 문제는 한국에 이런 역할을 할 중견 기업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일본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견 기업의 성장이 막히면 기업가정신도 쇠퇴한다. 국가 경제가 활기를 띠는 이유는 누군가 목숨을 걸고 기업을 키워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중소 벤처기업이 중견 기업으로 도약하려 할 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마음이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다. 요즘 중소 벤처기업인들도 웬만큼 기업을 운영하다 대충 팔고 편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국가 경제다. 더 늦기 전에 왜 우리가 중견기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필자소개 이홍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한국중견기업학회장)
필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직 혁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조직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것인지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 이홍 | - (현) 광운대 경영대학장
    -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 한국지식경영학회장
    - 정부혁신관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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