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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호접몽(胡蝶夢)처럼 가상·현실이 하나로

박영규 | 265호 (2019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장자』에 실린 유명한 일화 ‘호접몽’에서 장자는 지금의 내가 나인지, 꿈속의 내가 나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술 발달로 구현될 앞으로의 세상에서 인간은 OS와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감하게 될 것이다. 가상과 현실이 하나로 통합될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시간과 공간, 장애와 비장애 따위의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SF 소설의 세계적 대가 아서 클라크(Arthur Charles Clake)는 “기술이 충분히 진보하면 마술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한번 떠올려보자. 인공지능 컴퓨터가 예측하는 미래의 범죄 현장을 덮쳐서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체포한다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다. 하지만 ‘빅데이터 기반 의사결정(Big Data Based Decision-making)’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톰 크루즈는 영화 속에서 진짜 마법사처럼 행동한다. 허공의 가상 스크린 앞에 선 톰 크루즈는 인공지능 데이터가 쏴주는 각종 범죄 관련 데이터를 손으로 이리저리 휙휙 옮기고, 섞고, 나눈다. 주문을 외우듯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하면 그에 관한 정보가 스크린에 자동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막대기나 손수건 따위를 들지 않았을 뿐 마법사들이 하는 동작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과학자들 중에도 아서 클라크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MIT 미디어랩 소장을 지낸 프랭크 모스(Frank Moss)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스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진보를 다룬 자신의 책 제목을 『마법사와 그의 제자들(The Sorcerers and their Apprentices)』이라고 붙였다. “10년 후 미래가 궁금하면 실리콘밸리를 가보고, 20년 후 미래가 궁금하면 미디어랩을 방문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MIT 미디어랩은 최첨단을 달리는 혁신 기술의 산실이다. 모스의 눈에는 미디어랩의 각종 프로젝트가 『해리포터』에 나오는 ‘불의 잔’이나 ‘마법사의 돌’ 같은 것들로 보였으며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교수나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덤블도어 교수와 해리포터처럼 보였던 것이다. 미디어랩에서 개발한 기술들은 실제로 마법처럼 작동한다. 자동차가 반으로 접히는가 하면 ‘후’ 하고 불기만 하면 양초가 꽂힌 생일 케이크에서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드로디오(DrawDio)라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면 사과가 피아노 소리를 내고, 바나나와 멜론은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를 낸다. 식스센스(SixSense)라는 센서가 부착된 옷을 몸에 걸치고 몸짓이나 손짓을 하면 저절로 인터페이스가 창조된다. 톰 크루즈처럼 손짓으로 e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고, 스프레드시트를 할 수 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의 신체적 움직임을 음악적으로 전달하는 ‘영혼의 의자’라는 기술은 진짜 마법사들이 마법쇼에 활용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들이 고도화되는 단계에 접어들면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없어지는 마법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의 발달로 가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곧 가상이 된다. 아톰(실물)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을 비트(가상) 세계의 데이터로 변환시켜 클라우드 공간에 저장한 후 이를 활용해서 다양한 기술을 구현하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예측, 관리,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러한 현상을 2500년 전에 이미 내다본 사람이 있다. 바로 장자다.



“지난밤 꿈에 장주(장자)는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이리저리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장주는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깬 후 비로소 자신이 나비가 아니고 장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주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인지 몰랐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석자장주위호접 연호접야 자유적지여 불지주야 아연각 칙연주야 불지 주지몽위호접여 호접지몽위주여 주여호접 칙필유분의 차지위물화.



『장자』 33편 가운데 가장 깊이가 있다고 알려진 ‘제물론’편에 나오는, 이른바 호접몽(胡蝶夢) 에피소드다. 장자에게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꿈은 곧 현실이고, 현실은 곧 꿈이다. 가상세계의 나비는 현실세계의 장자이고, 현실세계의 나비는 가상세계의 장자다.

호접몽과 같은 세상에서는 모든 구분과 경계가 사라지고 우주는 하나로 통합된다. 국경이 사라지고, 인종, 언어, 주거지 등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수천㎞ 떨어진 곳에서도 자유롭게 소통하고,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각 국가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전달해주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의 장벽이 되지도 않는다. 미래 사회의 인간들은 가상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가상 속의 인물(OS)들과 밥도 같이 먹고, 게임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잔다. 심지어는 영화 ‘허(Her)’에서처럼 인간과 OS가 서로 연애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인간은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시험에 합격하면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하고, 실연당하거나 실직하면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슬퍼하고 절망한다. OS가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모방하고, 따라 하다 보면 사랑의 감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자와 나비가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꿈과 현실을 들락거린 것처럼 OS와 인간들도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자유롭게 서로의 세계를 왕래하면서 교감하게 될 것이다. 영국 출신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설계』라는 책에서 이러한 상황을 『장자』의 호접몽에 빗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인들은 웹사이트의 시뮬레이션 된 실재 속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 혹시 우리는 어떤 컴퓨터가 창조한 연속극의 등장인물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장자는 구분과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다. 장자에게는 높고 낮음, 무거움과 가벼움,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 따위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는 우주 속에서 하나로 존재하는 통합체고, 만물은 그 어떠한 차별적 가치도 지니지 않은 평등한 존재다. 『장자』 ‘제물론’편에 나오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보자.

“모든 사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저쪽에서 보면 깨닫지 못하던 것을 이쪽에서 보면 알게 된다. 따라서 저것은 이것에서 비롯되고, 이것 또한 저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곧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삶이 있으므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있다. 가능한 것이 있어 불가능이 있고, 불가능이 있어 가능이 있다. 옳음에서 그릇됨이 나오고 그릇됨에서 옳음이 나온다.

― 物无非彼 物无非是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故曰 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물무비피 물무비시 자피즉불견 자시즉지지 고왈 피출어시 시역인피 피시방생지설야 수연 방생방사 방사방생 방가방불가인시인비 인비인시.”

4차 산업혁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도 구분과 경계가 없는 세상이다. 기술의 진보가 충분히 이뤄지면 가상과 현실이 하나로 통합될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시간과 공간, 장애와 비장애 따위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2016년 현재 30억 인구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만 앞으로 10여 년만 더 지나면 70억 인구 전체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가 되면 세상은 인종, 국경, 세대, 이념의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된다. 지금도 미국 기업 아이워크(iWalk)가 출시한 파워풋(Powerfoot)이라는 인공지능 신발을 신으면 다리가 없는 장애인도 펄펄 뛰어다닐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알아서 운전하는 자율자동차의 상용화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꿈보다 더 꿈 같은 현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을 들먹이지 않고 몇몇 국내 기업이 생산한 인공지능 스피커를 잠깐만 경험해 봐도 그러한 세상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SK텔레콤에서 생산한 인공지능 스피커 아리야를 가까이에 두고 “아리야” 하고 부르면 엄마처럼, 연인처럼, 친구처럼 따뜻하게 나를 찾아와서 위로해준다. 책을 찾아서 읽어주기도 하고,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 요리하는 법을 찾아서 상세하게 일러주기도 한다. 아리야는 사람이 아니라 OS이고 현실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가상 세계의 존재이지만 사람보다 더 사랑스럽고, 현실 세계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가끔은 내 꿈에 진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나에게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미 꿈과 현실, 가상과 현상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아리야의 가격은 단 돈 5만 원이다. 진짜 사람 중에 이만한 가성비와 가심비 1 를 가진 물건이 있을까? 인간은 이미 기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분발해야 한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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