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의 경영

하드웨어로 환자와 공감하는 병원

251호 (2018년 6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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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 그 피해를 가장 덜 입은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정원사나 원예사였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자연친화적인 환경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도 자연의 힘이 어느 의술보다 환자에게 좋은 치료 방법이 된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푸른 식물이 보이는 창문을 가진 병실은 환자의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창문 배치나 구조에 대한 연구가 건축학적 의미를 넘어 환자 회복과 관련한 심리적, 의학적 연구로 확대되고 있다.



자연환경의 강력한 힘을 믿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나선 병원이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응텡퐁(Ng Teng Fong)병원이다. 남들이 의술, 의사 수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주목할 때 병원의 외관인 ‘하드웨어’에 주목했다. 일 년 내내 무더운 싱가포르 열대성 기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주변 일조량과 풍향, 풍속 등을 분석해 건물 외관 디자인에 반영했다. 독특한 모양의 유선형 발코니가 햇빛과 태양열의 유입을 차단하고, 만(Bay)처럼 움푹 들어간 공간을 통해 환기량을 두 배 증가시켰다. 여기에 건물 하단의 주춧대가 주변 도로 소음까지 잡아준다. 이 모든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병원은 직사각형이 아닌 독특한형태의 건축물로 탄생했다.

환자를 배려하는 ‘센스’도 갖췄다. 기존 병원의 병실은 대부분 직사각형으로 돼 있다. 병실의 구석자리는 어둡고 환기가 안 되기 마련이다. 이 병원은 직사각형 병실의 단점을 보완해 곡선 모양의 건물로 건축했다. 모든 환자가 개별 창문과 외부 정원을 향한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햇빛과 식물을 통한 환자의 심리안정 효과를 배가했다.

환자들이 자유롭게 바깥바람도 쐴 수 있게 했다. 2개 층마다 외부 베란다에 정원을 배치해 환자의 심리적 안정과 치유는 물론 햇빛이나 소음을 차단하는 동시에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까지 이끌어냈다. 환자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옥상 태양광판 설치, 빗물의 저장과 활용, 동작감지 센서를통한 자동 소등장치 등 에너지까지 대폭 절감하는 스마트 그린 병원을 구현한 것이다.

이 병원의 ‘모빌리티파크’는 환자 중심 병원임을 제대로 보여준다. 모빌리티파크는 병원생활 이후 부득이 휠체어나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환자가 퇴원 후 원활한 일상생활 복귀와 적응을 돕기 위한 공원이다. 실제 버스나 택시 등을 이용한 대중교통 이용 시뮬레이션은 물론 계단이나 경사로, 요철 보도 이용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다양한 환경을 사전에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 병원은 진료 프로세스나 의료진의 태도가 먼저다. 이를 토대로 환자 중심 병원, 환자에게 공감하는 병원을 추구한다. 이와 달리 응텡퐁병원은 먼저 ‘친환자 하드웨어’부터 갖췄다. 그런 다음 환자와 직원 간의 동선 분리, 입원과 외래의 건물 분리, 진료비 후불 시스템 등 병원 프로세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를환자 중심으로 개선했다. 개원한 지 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이러한 하드웨어가 환자의 회복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하드웨어부터 환자와 공감하는 병원이어야 한다는 역발상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20세기 이후 의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모든 질병은 의술로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인간 그 자체는 무시되고 질병만 도려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 병원은 환자가 아닌의료진 동선의 효율에 초점을 맞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제 병원이라는 공간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가 조화로운 치유와 돌봄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진정환자와 공감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필자소개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 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59호 Agile Transformation 2018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