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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경영 찾기

‘골목식당’에서 본 ‘자기부정’의 어려움

안병민 | 248호 (2018년 5월 Issue 1)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은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리겠다는 취지 자체가 경영이고 마케팅입니다. 그 치열한 ‘골목식당’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경영 마케팅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멸치국수를 파는 작은 가게입니다. 비싼 멸치를 아끼지 않고 듬뿍 끓여 육수를 우려낸 국숫집 사장님의 SOS. 원가가 높다 보니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레서피에 대한 자부심으로 싼 멸치를 쓰거나 멸치의 양을 줄일 수는 없다는 입장. 이에 백종원 대표는 멸치의 양을 줄이고 채소류를 넣어 더 오랜 시간 육수를 우려낸, 즉 원가를 줄인 육수로 손님들의 평가를 받아보자고 제안합니다. 국숫집 사장님의 ‘비싼 육수’와 백종원 대표의 ‘원가절감 육수’의 승부에서 고객의 입맛은 백종원 대표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국숫집 사장님은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버팁니다. 육수 레서피는 그냥 자기 스타일대로 할 테니 대신 새로운 메뉴를 하나 개발해달라 고집을 부립니다.

세상은 일 분 일 초마다 변합니다. 그러니 과거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으로 미래를 설명할 수 없어서입니다. 세상의 변화에 눈과 귀를 열어야 합니다. 변해야 삽니다. 모든 기업이 혁신, 혁신, 노래를 부르는 이유입니다. 출발점은 ‘자기부정(自己否定)’입니다. 변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이 혁신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껏 나를 지탱해왔던 신념과 자부심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국숫집 사장님도 그랬습니다. 오랜 기간 고수해왔던 나의 레서피를 한순간에 바꿀 수 없겠지요.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비우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를 껴안을 수 있습니다. 자기부정 없이는 변화와 혁신도 없습니다. ‘필름의 명가’ 코닥이 그랬습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서도 필름에 연연합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Kodak Moment’라 하여 ‘멋진 순간’을 의미하던 ‘코닥’이란 단어가 지금은 ‘Be Kodaked’라 하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하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 혁신의 동력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번엔 라오스 전통 국숫집으로 가볼까요? 라오스 여행을 갔다가 현지 국수의 매력에 빠진 사장님이 레서피를 배워와서 차린 국수가게입니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메뉴부터가 문제입니다. 라오스 전통 국수를 파는 집인데 메뉴를 보니 각종 롤과 버팔로윙 등 국적 불명의 아이템들이 고개를 삐쭉삐쭉 내밉니다. 매출을 위한 구색용 아이템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 늘어날수록 ‘컨셉(concept)’의 날은 무뎌져만 갑니다. 잘되는 집은 메뉴가 단출합니다. 손님이 없는 식당일수록 카레라이스에서부터 동태찌개까지 안 하는 게 없습니다.

컨셉은 곧 ‘자기중심(自己中心)’입니다. 자기를 잃으니 컨셉도 사라집니다. ‘라오스’가 사라진 라오스국숫집의 국수는 더 이상 라오스 국수가 아닙니다. 고객의 머릿속에 ‘강렬한 한 단어’를 남기는 게 마케팅입니다. 줄여야 합니다. 좁혀야 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다가는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골목식당’ 두 번째 키워드는, 그래서 ‘자기중심’입니다. 명확하고 명징한 나만의 차별적 컨셉이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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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국수의 맛입니다. 특징 없는 심심한 국수에 손님들의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국숫집 사장님의 태도입니다. 손님이 느끼는 맛과 상관없이 자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겁니다. 레서피는 라오스 현지에서 직접 배워왔지만 그걸 한국 상황에 맞추느라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몇 트럭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전제조건입니다. 기준은 ‘내’가 아니라 ‘손님’이어야 합니다. 어느 날 라오스 국숫집을 찾은 진짜 라오스 사람들. 제작진은 국수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습니다. “라오스 쌀국수 먹고 싶으면 이건 아닌 것 같다” “국물과 고기가 따로다”, 국수를 먹은 라오스인들의 혹평이 이어지자 사장님은 적잖이 당황합니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 했습니다. 그만큼 꼭 필요한 얘기들입니다.

앞서 ‘자기부정’과 ‘자기중심’을 말씀드렸는데, 마지막 키워드는 ‘자기인식(自己認識)’입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냉정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평가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고객입니다. 내가 맛있는 게 아니라 고객이 맛있어야 합니다. 숫자 6을 써놓고 아무리 6이라 우겨봐야 손님이 9라 하면 게임은 끝입니다. 손님의 시각에서, 손님의 관점에서 나를 다시 봐야 합니다. 그게 자기인식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민낯 그대로의 나를 마주해야 합니다. 출발은 거기서부터입니다. 고객이 답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경영이고 마케팅은 삶이라 역설하는 입장이다 보니 ‘백종원의 골목식당’ 역시 제게는 경영 혁신 프로그램이자 마케팅 프로젝트입니다. 두 개의 국숫집 사례를 통해 자기부정과 자기중심, 자기인식을 짚어봤습니다. 비단 이들 국숫집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변화하고 혁신하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경영화두입니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와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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