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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와 조직 불안

한국 성인 52% 분노 조절 못해 관찰, 경고, 상담 등 감정 치료 인프라 갖춰라

이경민 | 246호 (2018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부하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화내는 상사, 상사를 욕하며 매사에 불만을 늘어놓는 사원. 사소한 일에 충동적으로 화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정신의학과에서는 이를 ‘분노조절 장애’로 진단한다. 우리나라 성인 중 절반 이상이 이 같은 증세를 앓고 있을 만큼 흔하게 발견되는 증상이다. 분노조절 장애는 개인은 물론 조직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 자신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통제하거나 예측하지 못할 때 주로 나타난다. 예정되지 않은 잦은 야근이나 회식이 대표적인 예다. 분노조절 장애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노 감정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관찰해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야 한다. 조직 차원에서도 직원이 분노조절 장애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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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청소부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고 옥상의 로프 줄을 끊어 세 아이의 아버지인 청소부를 사망하게 만든 사건.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홧김에 여관에 불을 질러 6명이 사망한 사건. 모두 분노조절과 관련된 사건이다.

분노조절 문제는 범죄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52%)이 분노조절이 제대로 안 되는 상태라고 한다.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충동조절 장애 고위험군(11%)도 10명 중 1명이 넘는다. 주변을 살펴보면 병원까지 갈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이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걱정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사춘기 아들의 얼굴만 봐도 속에서 피가 솟는 것처럼 화가 난다는 주부나 팀원의 반복되는 실수에 화가 나서 주변 물건을 잡히는 대로 벽에 던지고 후회했다는 팀장, 직장에서는 그럭저럭 참을 만한데 집에만 가면 사소한 일에 화가 폭발해 자신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직원들도 있다.

한국 기업과 사회에서 이처럼 사소한 일에 분개하고 충동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과도한 스트레스와 이를 제대로 풀 방법이 적은 환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Eustress)와 디스트레스(Destress)로 나누어진다. 유스트레스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정신적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자극이 되는, 말하자면 좋은 스트레스다. 반대로 디스트레스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고 그 스트레스가 본인에게 고통스러운, 말하자면 나쁜 스트레스다.

한국과 미국의 야근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야근 문화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구글이나 애플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성과를 내기 위해 야근을 자청한다. 그러나 이 두 나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야근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다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자신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자신의 성과와 경력을 위해 자발적으로 근무를 더 하는 형태가 많다. 자연스럽게 근무시간이 초과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다. 일종의 ‘유스트레스’로 분류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일을 모두 끝냈다고 하더라도 눈치상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야근이 많다. 또한 야근의 주원인 중 상당 부분이 임원들이 회의를 마칠 때까지 무작정 대기하거나 갑작스럽게 퇴근 전에 내리는 업무 지시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차지한다. 이는 ‘디스트레스’에 속한다.

‘타임 푸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직장인들은 긴 근무시간에 비해 개인적 여가를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 없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항상 높게 유지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정을 통제하는 전두엽, 특히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과거 교통사고로 머리 손상을 받아 전두엽 부분이 크게 눌려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앞머리의 반 정도가 움푹 꺼진 그 환자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병동 문을 발로 부수고 주먹으로 두들겨 항상 손과 발에 붕대를 감고 있어야 했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지 못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전전두엽 기능을 저하시켜 위와 비슷한 현상을 일으킨다.

둘째,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일 경우에 분노를 조절하기 어렵다.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은 내적으로 “OO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라면 OO해야 한다” “훌륭한 직원이라면 OO해야 한다” “나에게 충성하는 직원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OO해야 한다” 등이다. 이런 사람은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내적 욕구가 일반인보다 크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의지를 뛰어넘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계다. 자신이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상관없이 실망스러운 상황들이 수시로 생겨난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기도 한다. 수차례 미팅을 거쳐 계약을 진행해온 파트너가 중간에 일을 틀어버리기도 하고 아래 직원에게 믿고 맡겼던 일이 생각보다 진척이 느릴 때도 있다.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은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에 대한 도전처럼 느낀다. 이는 자신에 대한 모욕감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하는 데 매우 서툴다. 어느 정도의 성취를 했어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일 뿐 자신은 더욱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외부 상황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으로 평가한다. 자신의 기준을 벗어나는 상황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끼고 격렬하게 분노한다. 이런 성향을 보이는 직원이나 리더의 경우 사소한 일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어떤 일에 대해 분노할지 예측하기 어려워 주변에서 항상 눈치를 보며 긴장을 하게 된다.

셋째, 분노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회문화적 환경도 원인이 된다.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도널드 위니콧은 분노에 대해 ‘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이란 말을 하면서 ‘주어진 것을 허물고 나만의 창조적인 인생을 만들기 위한 동력원’이라고 정의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또는 윗사람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까지를 공격성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런 공격성과 분노는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공격성을 개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외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이가 화를 내면 “뭐 그런 일로 화를 내고 그래”라고 하든가 “화를 자주 내는 걸 보니 너는 성격이 이상하다” 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네가 참아”라고 하면서 내면의 공격성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 화를 언어로 표현하는 건강한 방식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이 느껴질 때 그것이 화인지,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임계점을 넘은 부정적 감정은 결국 분노의 형태로 고함을 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표출된다.

더 큰 문제는 화를 억누르길 원하면서 화 자체를 존재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문화다. 한국에 만연한 갑질 문화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고정관념,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부하에게 폭언을 해서라도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그릇된 성과주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존재 앞에서 갑질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내면에는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약한 사람에게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느끼려 한다.

직원에게 호통을 치며 자신은 카리스마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리더들이 주변에 반드시 있다. 조직에서는 이런 리더들을 ‘성격은 불같아도 뒤끝은 없다’라든지 ‘저렇게 화를 내서라도 아래 사람을 가르쳐야 성과가 나는 법이다’라는 평가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 리더십은 분노 폭발과는 다른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리더십은 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상황에서 찾는다. 이를 통해 개선해야 할 점은 ‘행동’으로 국한한다. 인격 모독과 굴욕감을 불러일으키는 상사의 분노 폭발은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Bullying)의 한 형태일 뿐이다.

분노의 원인은 위와 같이 다양할 수 있으며 발생 양상도 개인마다 다르다. 대표적인 것은 욕설, 고함, 신체적 폭력을 동반한 분노 폭발이다. 특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 생기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는 감정을 경험한다. 회의실에서 혼잣말로 욕을 하거나 상대를 향해 협박을 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몇 시간이고 분이 풀리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는 직장에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자신과 친밀한 사람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억눌린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훌륭한 리더인데 집에서는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나 주변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잘못 걸려온 전화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ARS 상담원에게 집요하게 화를 내는 사람, 평소에는 사람이 좋은데 술만 마시면 주변 사람을 때리고 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또는 분노를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 수동적인 공격성(Passive aggressiveness)이 발현되기도 한다. 주로 상급자에게 화가 난 부하들에게서 발견되는 분노 표현 방식이다. 일을 맡아 놓고 느리게 처리한다든지, 일을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고 잦은 실수를 해 상급자를 곤란하게 만든다. 뒤에서 상급자를 험담하거나 패거리를 만들어 조직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등의 감춰진 형태의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수동적인 공격성은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나아지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커리어를 망가트리고 조직 전체에도 냉소적이고 비협조적인 문화를 조성한다.

한편 공격성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 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온순하고 순응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억눌린 화가 자신에게 향하기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고 스스로를 미워한다. 심한 경우 우울감, 무기력감 등을 보인다. 폭식, 폭음, 과다한 수면, 무절제한 생활, 충동적 구매 등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을 반복하는 내적 공격성을 보인다. 이러한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면 스스로는 자신의 화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한국 조직에서 드러나는 만성적인 병폐다.

이러한 분노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조직의 리더가 자신의 공격성이나 분노를 잘못 처리하는 경우, 다른 곳으로 전이되면서(Displaced aggression) 점점 증폭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문제 상황이 발생할 때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투사(projection)의 방어기제가 늘어나게 된다. 결국 서로 간의 불신과 편 가르기, 눈치 보기 문화 등이 증가한다.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조직의 생산성은 저하되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개인과 조직을 위해 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분노 폭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활용해볼 것을 제안한다.

우선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파악해야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대처가 가능하다. 분노와 관련된 호르몬은 15초 내에 최고조에 달한다. 이 감정은 천천히 분해되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할 때 스스로 화를 인지하고 잠시 동안 주의를 환기하는 것도 좋다.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속으로 세는 타임아웃 방법이나 천천히 복식 호흡을 하는 것, 또는 미리 정해둔 말(예를 들어 “마음을 가라앉히자” “나는 침착할 수 있다” 등)을 속으로 몇 번 되새기는 방법들이 효과적이다. 자극이 되는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분노는 한번 시작되면 통제를 벗어나 점점 더 위로 치솟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주 분노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잘 보이는 종이에 화가 나기 시작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미리 적어두고 분노의 신호가 느껴질 때 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것이 좋다.

직장 내에서 분노가 자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주로 분노가 생기는지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부정적 감정이 강하게 드는 순간에 자극이 된 상황과 그에 대한 감정과 스쳐 가거나 떠오른 생각 등을 적는 감정일지를 1∼2주가량 적어보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별일 없이 넘어가는데 유독 자신만 화가 나서 참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그 기저에는 무언가 자존감을 건드리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반복해 분노가 느껴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자극하는 원인을 스스로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 경지에 오르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신화(Mentalization)가 가능해진다. 즉, 내가 무엇 때문에 자주 화가 나는지 말로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상황에서 분노로 감정이 치닫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30대 회사원이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는 직속 상사 앞에만 가면 화가 나고 별거 아닌 지시에도 말대답을 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져 회사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몇 번의 상담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은 흥미로웠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너 같은 놈이 뭘 할 수 있겠냐’며 무시를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가 직속 상사와 같은 대머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은 외모를 가진 상사가 업무와 관련해 지적하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무시받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분노의 감정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무서워 말대답을 못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아버지와 비슷한 상사에게 화를 내고 들이 받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자신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게 된 그는 그 이후 부장님에게 지적을 받더라도 이전처럼 극도의 분노가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나눠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부정적 감정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로만 인식한다. 팀원이 회의 시간에 관련 없는 말만 늘어놓으면 화가 난다. 이럴 때 화는 2차 감정이다. 1차 감정은 2차 감정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2차 감정만 겉으로 표출되기에 사람들이 1차 감정을 종종 놓치는 경우가 많다. 1차 감정은 팀원들이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감일 수 있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다는 무력감일 수도 있으며,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초조함일 수도 있다. 2차 감정인 화를 내면 상대방은 방어와 변명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감정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다고 느껴지면서 화가 더 나게 된다. 그러나 1차 감정인 실망감이나 무력감, 초조함에 대해 나의 관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상대도 나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일으킨 부정적 감정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며 행동이 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1차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특히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감정을 회피하는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오랫동안 억누르고 겉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진짜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했을 때 자신의 의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적다. 특히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스스로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더군다나 남에게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극도로 힘들어한다. 이런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면 매우 시원시원하고 쿨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고 감정적 고민도 적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 회피형 애착인 사람의 내부에는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이 쌓여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하기도 하며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게 소외감과 절망을 느끼게 한다.

회피형 애착의 사람이 리더가 되면 조직원들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기 때문에 주변과 진실한 소통이 어렵다. 이러한 리더는 조직에 대한 불만이 쌓여 한순간의 분노로 폭발한다. 회피형 애착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분노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평소에 자신이 진짜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조직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분노가 반복해 조절되지 않는 구성원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에선 변호사, 경영컨설턴트 등 전문직 프로페셔널 직군을 중심으로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치료 등을 지원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러한 관찰과 조치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삼성, LG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업무상 스트레스가 높은 개발자들이 많은 게임사 또는 온라인 포털 등을 중심으로 전 직원 심리상담 등을 제공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관찰에 더해 조치의 원칙도 명확하게 수립돼야 한다. 반복적으로 분노조절의 문제를 나타내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경고나 직위 해지, 퇴사 등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조직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존재감의 표현이나 리더십의 형태로 분노를 받아들이는 직원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 분노가 관계와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을 교육을 통해 학습시키고 부정적 감정을 조직 내에서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I message’를 사용해 문제가 있을 때 상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나의 일차적인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 후 감정적으로 다시 유대감을 높이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셋째, 조직 차원에서 분노가 증폭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직원들은 낮은 통제성과 예측가능성, 단기 성과주의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시달린다.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부정적 감정은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직원이 자신의 일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업무의 실질적 권한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단기 성과주의가 아니라 실패가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용적인(holding) 조직문화 구축이 필요하다. 찰스 두히그(『습관의 힘』의 저자)는 서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규범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실패해도 그에 따른 징계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조직에 실패를 다음 기회를 위한 경험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수용적 문화(holding environment)가 형성될 때, 조직원들의 분노조절 문제가 줄어들 것이다.

이경민 이머징 리더십 인터벤션즈 공동대표 kmlee@emerging.co.kr

이경민 이머징 공동 대표는 정신과 전문의로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갈등 치료 전문가다. 이 대표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이 대표는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Medical Director 등을 역임했다. 대한우울조울병 학회 정회원이자 학회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이경민 | - 마인드루트 대표 / 정신과 전문의
    - 기업정신건강 진단 및 관계/갈등 치료 전문가
    - 대한우울조울병 학회 정회원 및 학회지 편집위원
    - 前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前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Medical Director, 前 용인정신병원 WHO 협력기관 Research coordinator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및 석사
    -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 'Mindfulness 전문가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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