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컨셉은 나올 만큼 나왔다? 소셜라이징 호텔의 남다른 도전

243호 (2018년 2월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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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고급화’가 대세인 도쿄 호텔업계에 ‘사회공헌’을 표방하고 나선 호텔이 있다. T&GN에서 세운 트렁크호텔이다. 이 호텔은 폐자원 재활용과 장애인 채용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물론 사회에 대한 공헌을 표방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속해 있는 카테고리(호텔업)에서 1등이 될 수 없다면 1등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카테고리(사회공헌)을 만들라는, 포지셔닝의 기본 원칙을 간파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뭐든 최초는 눈길을 끈다. 마케팅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인 『포지셔닝(Positioning)』은 ‘3대의 비행기 그림’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 비행기에는 린드버그(Lindbergh)라고 쓰여 있다. 찰스 린드버그,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비행사’다. 두 번째 비행기와 세 번째 비행기에는 각각 힌클러(Hinkler)와 에어하트(Earhart)라고 쓰여 있다. 각각 두 번째, 세 번째로 대서양을 횡단한 비행사다.

1등, 2등을 넘어 3등까지 적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잘 모르지만 미국 사람들은 린드버그 못지않게 에어하트를 잘 알고 있다. 왜일까? 대서양을 횡단한 세 번째 비행사가 아닌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주연 다이앤 키튼)까지 있으니 이 정도면 굉장한 유명 인사다. ‘당신이 속한 카테고리에서 당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등이 아니라면(세 번째 비행사) 일등이 되는 카테고리를 만들라(첫 번째 여성 비행사). 이것이 포지셔닝이 주는 핵심 메시지다.

2020년 올림픽을 앞둔 도쿄는 글로벌 호텔들의 각축장이다. 각자 최초가 될 수 있는 카테고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988년 푸껫에 아만푸리(Amanouri)호텔을 세우고 초호화 호텔(ultra-luxury)의 역사를 새로 쓴 아만(Aman)그룹은 ‘세계 최초의 도심형 풀빌라’라는 콘셉트로 고객을 유혹한다. 하얏트그룹이 새로 개발한 라이프 스타일 지향 호텔 브랜드 안다즈(Andaz)도 ‘파크하얏트가 럭셔리라면 안다즈는 라이프 스타일이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설명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교토와 가루이자와(軽井沢)에서 환상적인 료칸을 운영하는 호시노야(Hoshinoya)는 ‘최초의 도심형 노천온천’을 강조하면서 도쿄 도심 한복판에 료칸형 호텔을 개장했다. 만다린오리엔탈, 페닌슐라 등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호텔이 다 들어선 도쿄지만 새로운 콘셉트라는 측면에서는 아만, 안다즈, 호시노야가 당분간 우위를 유지할 듯하다.

호텔에 있어 새롭다는 콘셉트는 ‘고급화’뿐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호텔이라면? 잠자는 것 이외 다른 모든 서비스를 생략하고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하는 호텔이 사랑받을 것이다. 러브호텔이라면? 이건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 정도면 새로운 콘셉트는 나올 만큼 나온 것 같다. 그런데 허를 찔렸다. 신축 호텔이 서로 고급화 경쟁을 하는 도쿄에 최초로 ‘소셜라이징’이라는 흥미로운 콘셉트를 지닌 호텔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17년 5월 시부야에 오픈한 트렁크호텔(Trunk Hotel)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셜라이징’은 사회공헌이라는 단어로 풀어쓸 수 있다. 호텔업을 영위하면서 사회공헌을 하겠단다. 어떤 것이 가능할까?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 호텔에 간다. 커피숍에 앉기에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로비에 앉아 이야기를 하자니 공연히 호텔 종업원의 눈길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 뒷목이 뻣뻣하다. 이것이 지금까지 호텔에서의 경험이었다. 트렁크호텔은 낯선 이의 방문을 환영한다. 무료 와이파이도 빵빵하게 제공한다. 부담 갖지 말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라고 권한다. 인근 주민의 방문도 포함해서다. 로비 라운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테이블, 벽 등에 폐자재를 활용한 흔적이 보인다. 호텔에서 사용하는 찻잔은 상처 난 그릇을 회수해 분쇄한 뒤 재탄생시킨 것이다. 자원 재활용의 극치다. 호텔 객실에 비치된 일부 제품은 장애인과 디자이너가 협력한 작품이다. 장애인 보호를 뛰어넘어 장애인과 공생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외국인을 위해 그들의 비자 취득에도 적극적이다. 식사는 로컬 푸드 중심의 식자재를 활용해 건강식을 제공한다. 숙박시설이 할 수 있는 사회공헌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느낌이다.

작년 가을, 이 호텔의 상점인 트렁크스토어(Trunk Store) 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직원은 신이 나서 호텔 자랑을 늘어놓았다. 제품을 누가 만들어 공급하고, 자기네 회사 철학이 어떻고... 순간 짧은 대화는 인터뷰로 변해버렸다. ‘홍보부서 직원이 아닌 일반 직원이 자기 회사 자랑을 하고 다닌다.’ 모든 CEO의 꿈이다. 이 호텔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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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텔을 창업한 이는 노지리 요시타카(野尻 佳孝)다. 결혼예식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역사적 건물 재생, 리조트 결혼식 기획 및 운영, 신혼여행 및 기념 여행 상품 기획 및 판매, 결혼 관련 융자, 보육소 운영, 호텔업까지 다양한 기업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을 일구었다고 하니 나이가 꽤 들었을 것 같지 않은가? 1972년생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메이지(明治)대 정경학부 졸업 후 스미토모해상화재(住友海上火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는 업무는 보험업이었지만 끊임없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비즈니스가 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는 ‘관혼상제 관련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해도 관혼상제 관련 비즈니스는 세상이 망할 때까지 지속가능할 것으로 본 것이다.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간 웨딩 프로듀싱 업계에 근무하며 실전 노하우를 익혔다. 그리고 T&GN(Take and Give Needs)을 설립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무언가를 먼저 줘야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 회사는 왜 이름을 테이크 앤 기브라고 했을까? 꼭 뭔가 먼저 받아야만 주겠다는 건 너무 깍쟁이 같지 않은가? 회사 측의 설명은 이렇다. 소비자의 니즈를 받아들이고(take),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give)하겠다는 의미란다. 사명 뒤에 니즈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건 그래서다.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공식이 있다. p = P*V-C(p는 이익, P는 객단가, V는 판매량, C는 비용)이다. 인구가 줄고,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고…. 따라서 결혼 횟수는 당연히 줄어든다(V의 감소). 하지만 노지리 요시타카는 P에서 사업기회를 찾았다. 호화 결혼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생의 한 번인 결혼식을 뭔가 의미 있는 장소에서 거행한다면 그만큼 가격을 올려도 예비 신랑신부들이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의 확신은 맞아떨어졌다. 시장 규모도 매력적이다. 2016년 기준 일본의 연간 결혼 횟수는 67만 건, 예식 및 피로연의 평균 단가는 358만 엔에 달한다. 3조 엔의 시장이다. 게다가 이 숫자는 예식 및 피로연 금액만을 의미한다. 결혼반지, 신혼여행 등을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멋진 예식장을 기반으로 결혼 예정인 커플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업 아이디어가 오늘날 T&GN그룹을 만든 것이다.

트렁크호텔은 환경, 지역우선주의, 다양성, 건강, 문화라는 다섯 개의 카테고리에 주력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공헌하는’ 호텔을 추구하고 있다. 고급화 경쟁에 매진하고 있는 동안 다른 관점에서 호텔업을 보며 최초를 지향하는 호텔. 포지셔닝 관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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