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무분별한 선행은 되레 해악일 수도

237호 (2017년 11월 Issue 2)

PDF 다운로드 횟수 10회중 1회차 차감됩니다.
다운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아티클 다운로드(PDF)
4,000원


Article at a Glance

무분별한 선행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실효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해악이 되는 선행 사례는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에 식수 펌프를 보급하려 했던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은 선의와 열정만 앞세운 사업 운영으로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폐업했다. 월드비전, 옥스팜, 유니세프 등 거대 자선단체도 종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 차원의 선행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세상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하는 이유다.

237_126_1


많은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비영리단체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보내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는 데도 아낌없이 돈을 낸다. 근데 그 돈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알고 있는가? 대부분 모를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그런 생산적인 자원의 배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무분별한 선행은 무익하다. 실효가 없거나 오히려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함부로 내지 말고 냉정하게 따져서 내라는 것이다.

우선 다음 사례를 보자. 트레버 필드는 회전 놀이기구인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결합한 플레이펌프를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보급해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아이들이 기구를 돌리며 놀 때 발생하는 회전력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린다는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에 기업인과 정치인, 유명인들이 열광했고 이들의 후원에 힘입어 그가 설립한 자선단체 ‘플레이펌프인터내셔널’은 급성장했다. 근데 효과는 어땠을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펌프를 돌리는 데 아이들이 동원되면서 사고가 속출했고 고장이 나면 자체적으로 보수를 할 수도 없었다. 플레이펌프는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고 오히려 여자들의 일거리만 늘었다. 결국 플레이펌프 미국 지부는 폐업했다. 선의로 한 일이지만 효과성은 거의 없고 민폐만 끼친 대표적 사례다.

다음은 효과성의 비교 사례다. 아프리카 학교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이 시도됐다. 크레머는 이들의 효과성을 조사했다. 프로그램을 시행한 학교 7곳과 그렇지 않은 학교 7곳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성과를 비교해 실효성을 측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첫째, 교과서 및 수업교구 제공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줄이는 것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생충 감염 치료는 결석률을 25%나 줄였다. 완치된 아이들의 출석 일수가 2주 늘었고 추가 출석일이 100달러당 10년이나 늘어났다. 큰 효과에도 불구하고 학생 1명을 하루 더 출석시키는 비용으로 단 5센트가 들었다. 기생충 구제는 보건, 경제 등 교육 외적인 부분에서도 연쇄 효과를 가져왔다. 빈혈, 장폐색증, 말라리아 등 다른 질병의 발병 위험도 줄었다. 10년 동안 감염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주당 3.4시간 더 일했고 소득도 20% 더 높았다. 구충제 복용이 세수 확대로 이어져 실행 비용을 자체 충당할 정도였으니 실로 효과적인 사업이었다. 이렇게 같은 목적을 갖고 일을 해도 효과성은 천차만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개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근데 그렇지 않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연소득이 5만2000달러 이상이면 전 세계 상위 1%에 해당한다. 하루 수입이 1.5달러 미만인 극빈층이 12억2000만 명이고, 지구 인구의 20%에 해당한다. 극빈층은 수입 대부분을 식비로 쓰지만 하루 섭취 열량이 1400k㎈에 불과하다. 같은 1달러도 극빈층에게는 큰돈이고, 큰 편익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가령 술집에서 할인행사를 하는데 제 돈을 내고 맥주를 마시면 5달러인데 남에게 사줄 때는 5센트로 할인해 준다면 한없이 관대해질 것이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적은 비용이 빈곤층에게는 최소 100배 이상의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도와 봤자 양동이에 물 한 방울 보내는 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물 한 방울 크기지만 그들에겐 큰 양동이 만큼의 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질문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다양한 선행방식들이 타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그저 좋은 선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선행에 힘을 쏟아야 한다. 셋째,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관심을 덜 받고 있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숨어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째,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굳이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어차피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일에 헛된 노력을 쏟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성과가 적은 일과 실현가능성은 낮아도 성공만 하면 막대한 보상이 따르는 일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르완다에서 수십만의 투치족이 학살을 당하던 당시, 국경 없는 의사회장의 자격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의사 오르빈스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부상자가 넘친다. 환자 이마에 테이프를 붙였다. 1은 즉시 치료, 2는 24시간 내 치료, 3은 치료불가능으로 구분하고 치료를 했다. 넘쳐나는 환자를 모두 구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등급을 나누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은 오르빈스키처럼 딜레마에 직면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찾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즉각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미뤄도 될 것은 어떤 일일까? 내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행동이 가져올 결과부터 따져봐야 한다. 돈을 기부했을 때 그 돈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 잘 모른다. 그저 좋은 일에 쓰인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이는 상품에 가격표시가 없는 슈퍼마켓을 가는 것과 다름없다. 점원이 “오늘 우리 매장에서 얼마를 쓰실 건가요?”라고 물은 뒤 당신에게 돈을 받아 그가 알아서 식료품을 골라주는 것과 같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비영리단체가 하는 일이 그렇다. 일단 돈부터 내고 그가 알아서 골라주는 대로 지켜보는 일 외엔 할 일이 없다. 내가 똑같은 상품을 10배 비싸게 사더라도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상품인지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보건 분야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질보정수명(Quality-Adjusted Life Year·QALY)이란 지표를 개발했다. 질로 보정된 인간의 수명이란 말이다.

이 지표는 다양한 의료사업 중 무엇을 먼저 시행할지 결정할 때 유효하다. 의료혜택 제공 방법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편두통으로 죽는 사람은 없지만 편두통이 없으면 삶의 질은 높아진다.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로 하루를 사는 것을 요통을 앓으면서 며칠을 사는 것과 바꿀 것인가? 저자의 경우 완벽한 건강상태로 지내는 나흘이 아픈 허리로 고생하며 사는 닷새와 맞먹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가?

남을 도우려 할 때 돈을 잘 쓰는 것과 극적으로 잘 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콘돔 배포가 카포시 육종 치료보다 100배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고,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 기부하면 콘돔보다 2.5배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내구성이 좋은 살충모기장을 보급하면 카포시 육종 치료사업에 기부했을 때보다 500배 더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특정 분야에 많은 관심과 자금이 모인다면 굳이 그 분야에 추가 지원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 돈을 방치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강력한 지진으로 1만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0년에는 아이티 지진으로 15만 명이 죽었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지진은 일본 지진의 5배, 아이티 지진의 절반에 맞먹는 8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대서특필되지 못했고 지원금도 일본이나 아이티에 몰려든 지원금의 10분의 1에 불과한 5억 달러에 그쳤다. 사실 도호쿠 지진 사망자 수보다 많은 1만8000명의 아이들이 매년 결핵 같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규모로 보면 아이티, 도호쿠, 쓰촨 지진보다 심각한 재난이다. 근데 관심에선 큰 차이가 난다. 일본 지진 당시 기부금은 사망자 1인당 33만 달러였지만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에게는 1인당 평균 1만5000달러가 지원된다. 효율성 측면에선 재해 구호에 기부하는 것보다는 빈곤 구제 단체에 기부하는 게 합리적이다. 긴급 재난구조 활동은 검증된 보건사업들에 비해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효율은 떨어진다. 남을 도울 때는 감정에 치우치기 쉽다. 기존의 심각한 문제보다 새로운 사건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어떤 사건이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돕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이에 저항해야 한다. 이보다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한 마리를 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은 5만 달러다. 이를 시각장애인의 실명을 완치하는 데 쓴다면 어떨까? 개발도상국에서 실명의 원인인 결막병 트라코마 예방 수술에 쓴다면 같은 돈으로 500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암도 그렇다. 암 사망자는 연간 820만 명이다. 암은 사망원인의 7.7%를 차지한다. 암 치료비로 2170억 달러를 쓴다. 한편 말라리아는 QALY를 3.3% 감소시킨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암이 두 배 더 심각하다. 규모로 보면 말라리아 치료에 연간 1000억 달러가 지원돼야 하지만 실제는 16억 달러가 지원된다. 필요 금액의 6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말라리아에 돈이 적게 몰리는 것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라진 질병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이라도 가난한 나라에는 의미가 크다. 같은 100달러로 훨씬 큰 혜택이 돌아간다.

돕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양로원에서 간병보조인으로 일하는 것과 돈을 벌어 기부금을 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대개 시간과 돈은 맞교환할 수 있다.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거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그가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기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평생 2명의 목숨을 구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면 매년 4명의 생명을 구한다. 35년간 일한다면 14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만약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버는 수입을 기부한다면 몇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매년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남을 돕는 곳은 어디일까?

100달러의 돈을 어떤 단체에 보내면 좋겠는가?

자선단체를 평가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출내역을 살피는 것이다. 운영비, CEO 연봉, 주요 사업비로 직접 투입되는 기부금 비율의 비중을 따지는 것이다. 체러티내비게이터는 이 방법을 활용한다. 기부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재무건전성이야말로 사업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임을 잘 알고 있다. 효율적인 단체는 예산의 75% 이상을 사업비로 쓴다. 운영비 비중은 25% 미만이다. 하지만 재무건전성만 보면 안 된다. 상품을 살 때 그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보고 사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자선단체가 벌이는 사업의 실제 효과다.

윤리적 소비 물결이 일고 있다.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을 웃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윤리적 소비를 하자는 것이다. 근데 과연 이게 바람직한 방법일까? 그렇지 않다. 어린애들을 하루 16시간씩 노동을 시킨다는 뉴스에 사람들은 분개하고 그 회사 제품을 사지 않으려 한다. 근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 착취 공장이 그나마 좋은 일거리다. 이런 직업이 사라지면 할 일이라곤 훨씬 열악한 농장일, 넝마주이일 뿐이다.

“공장에서 일하면 정말 좋겠어요. 거기선 그늘에서 일할 수 있잖아요.” 재활용 플라스틱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는 캄보디아 여성 핌 스레이 라스의 말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은 노동 착취 공장이 가난한 나라에 득이 된다는 데 의문을 달지 않는다. 폴 크루그만은 “이 같은 고용 증대 방식이 전 세계 극빈층에게는 반가운 희소식이라는 게 압도적 견해”라고 말한다.

“내가 걱정하는 건 노동 착취 공장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너무 적다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의 말이다.

노동 착취 공장을 옹호하는 이유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저임금 농업 위주 경제가 부유한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엔 노동 착취 공장의 건설이 절실하다. 선진국에서 불매운동을 벌인다면 가난한 나라에 사는 빈곤층의 삶은 더 궁핍해질 것이다. 1993년 아이오와주 상원의원 톰 하킨이 아동 노동 착취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할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수많은 아동이 기성복 제조공장에 고용돼 있었다. 법안 통과를 우려한 공장이 5만 명의 아동을 해고했는데 이들은 더 좋은 직장으로 간 것도, 학교로 돌아간 것도 아니다. 대다수 아동들이 더 영세한 미등록 하청 의류공장이나 기타 업종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유니세프 조사결과 해고당한 미성년 의류노동자 다수가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길거리 사기단, 성매매 등에 내몰렸다.

윤리적 소비는 의도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 공정무역이 그렇다. 바나나, 초콜릿, 커피, 설탕, 차 등 개발도상국 생산작물에 적용된다. 공정무역 인증서에는 두 가지 혜택이 따른다. 첫째, 생산자는 생산제품에 대해 최저가격을 보장받는다. 둘째, 시장가격에 붙는 웃돈 프리미엄을 받는다. 근데 과연 그런 결과가 나올까?

그렇지 않다. 첫째,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이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이런 커피의 대부분은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 생산한다.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과 비교해 10배 이상 잘사는 나라들이다. 둘째, 추가로 지불한 돈 중 농부들 수중에 떨어지는 건 극히 일부다. 나머지는 중개인이 갖는다. 셋째,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그 적은 몫마저 더 많은 임금으로 바뀐다는 보장이 없다.

친환경적 생활도 그렇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널리 보급된 방법 중 대다수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전원을 꺼두라는 것도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뜨거운 물로 목욕 한 번 덜 하는 게 낫다. 집에 아예 불을 켜지 않고 살아도 탄소배출량 감축에는 별 효과가 없다. 비닐봉지 사용도 그렇다.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식품의 종류가 더 중요하다. 붉은 색 육류 및 유제품을 먹지 않는 것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개인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 장거리 이동을 줄이는 것, 가정에서 전기 및 가스 사용 줄이는 것이다.

가진 돈과 시간은 제한돼 있고 내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돕기 전에 누구를 어떤 기준에 의해 도울지를 결정해야 한다. 실제 단체가 하는 일은 예상과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선진국 의료 자선단체 상당수가 연구 활동을 강조하지만 연구비로는 극히 일부만 할당하고 여타 사업에 나머지 기부금을 쏟아붓는다.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는 사업비의 43%를 환자 지원에, 21%를 예방에, 14%를 검진 및 치료에 사용하고 연구비로는 22%만 쓴다. 아이스버킷 릴레이로 유명한 ALS협회(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ssociation·미국루게릭병협회)는 사업비의 41%를 대중 및 전문가 교육에, 24%를 환자 및 공동체 지원에 투입하고 연구비로는 35%만 집행한다. 연구비 비중이 낮다고 해서 이들 단체에 기부하지 말라거나 해당 단체가 기만적인 마케팅 전략을 쓴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부금이 연구비가 아니라 기타 여러 사업에 분산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윤리적 소비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도덕적 면허(moral licensing) 효과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하고 나면 이후 선행을 덜 실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도덕적 면허다. 면죄부를 산 것처럼 일종의 면허를 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한다. 절전형 전구를 구입한 후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작은 선행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효율적인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도덕적 허가 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이 문제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취하면 이후에 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을 할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터 드커러가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란 책에서 한 말이 연상됐다. 아주 심플하다. ‘기업은 비영리단체처럼, 비영리단체는 기업처럼’ 운영하라는 것이다. 기업은 비영리단체의 사명과 가치를 배우고, 비영리단체는 기업의 생산성을 배우라는 말이다. 숭고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생산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비영리단체에 오랫동안 기부금을 내고 있지만 늘 그들이 그 돈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책이 그런 비영리단체,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3호 2018 Business Cases 2018년 12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