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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작가와 상생 파트너십 구축한

판매하는 ‘딜러’ 아닌 지원하는 ‘매니저’전속작가제 도입해 ‘윈윈’ 모델 구현

이방실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라리오갤러리 성공 요인

1) 공간 브랜딩 통해 중소도시 갤러리라는 지역적 한계 극복

: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고 수십억 원대 조각품들로 구성된 야외 조각공원을 운영하며 공간에 파워와 권위를 더함. 그 결과 천안이라는 중소도시에 근거지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자리매김에 성공.

2) 화랑 역할 재정의 통해 작가와 갤러리 간 상생 파트너십 구축

: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딜러’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해주는 ‘매니저’ 역할로 갤러리 역할 재정의. 전속작가제 도입해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모델 구축.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하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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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충남 천안이야말로 예술적으로 가장 ‘핫(hot)’한 도시다.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 등 7m짜리 대형 조각들이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광장에 놓여 있다. 전 세계 미술지도에 꼭 표기돼야 할, 믿을 수 없는 광장이다.”

― 독일 미술잡지 아트(Art), 2013년.

 

보통 지방 버스터미널 하면 허름한 건물에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아라리오가 운영하는 천안종합버스터미널은 다르다. 버스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눈앞에 ‘야외 갤러리’가 펼쳐진다. 영국의 도발적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물론 미국의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 일본 조각가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 프랑스 출신 미국 조각가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Millions of Miles)’,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Line of Control)’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세계적인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들이 터미널 옆 광장에 즐비하게 놓여 있다. 독일의 저명한 예술잡지 『아트』가 한국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아라리오 조각광장을 꼽는 이유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국내 조각공원 중 단위면적당 작품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작품가 총액으로 따져도 국내 톱이다. 작품 하나에 수십억 원이 넘는 진품 작품들이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버스터미널 옆 길거리에 놓여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현재 ㈜아라리오에선 조각광장이 있는 천안을 비롯해 서울과 상하이 등 총 3곳에서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를 종전보다 3배나 넓은 규모로 확장 이전했다. 한때 중국 시장에 무더기로 진출했던 국내 갤러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최근 잇달아 사업을 철수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국내외로 존재감을 확대해가고 있는 아라리오갤러리에 대해 DBR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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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전시회 잇단 개최로 ‘아라리오’ 브랜드 각인

㈜아라리오가 갤러리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89년부터다. 천안역 앞 버스터미널 사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1980년 ‘아라리오 스몰시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버스터미널 위치를 천안역 앞에서 현재의 신부동으로 옮기며 백화점, 영화관, 식당, 갤러리 등 다양한 소비문화 시설까지 함께 갖춘 복합 단지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김창일 회장은 “당시 돈으로 250억 원을 투자해 2만 평이 넘는 공간에 터미널을 세우겠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며 뜯어말렸다”고 회상했다.

1989년 터미널 이전과 함께 개관한 아라리오화랑(현 아라리오갤러리)은 아라리오 스몰시티의 일환으로 터미널 옆에 함께 건축한 야우리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내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독립적인 전시 공간을 마련하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백화점 옆에 신축한 5층짜리 단독 건물 중 2개 층(약 350평)을 전부 전시 공간으로 확보한 것.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로는 전시 공간 측면에선 국내 최대 규모라는 게 아라리오갤러리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최상의 전시 인프라만 구축해 놓는다고 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 어지간한 갤러리들은 서울, 그것도 종로구 인사동 등 일부 지역에 밀집해 있다. 반면 아라리오갤러리는 수도권도 아닌 지방 중소도시가 근거지였다. 지역적으로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국내외 화랑계에 아라리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아라리오갤러리는 2002년 개관 후 초기 2∼3년 동안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데만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주로 한국 작가들 위주로 전시회를 기획했던 아라리오화랑 시절의 전략과는 정반대 접근을 취한 것. 그 첫 번째로 독일의 스타 작가인 안젤름 키퍼와 키스 해링 작품전을 개관전(2002년 12월∼2003년 2월)으로 기획했다. 특히 그래피티(graffiti) 아티스트로 유명한 해링은 뉴욕의 거리 문화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미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 세계를 지향한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사람, 강아지, 피라미드 등 다양한 이미지를 만화적 캐릭터로 표현한 초기 작품부터 정치사회적 이슈를 포함한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해링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영국 현대미술(British Contemporary)’ 전시회(2003년 10월∼2004년 4월)를 개최했다. ‘현대 미술계의 악동’ ‘악마의 아들’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물론 그와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1 의 또 다른 대표 주자인 마크 퀸 등 내로라하는 영국 작가 12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 중에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석고로 떠서 두상을 만든 뒤 그 속에 4리터나 되는 자신의 피를 넣어 만든 마크 퀸의 엽기적인 조각 ‘자화상(Self)’ 등 충격적인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세기말적 고뇌와 사회 비판적 시각,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품들로 국내 미술계에 큰 자극이 됐다. 이어 2004년엔 떠오르는 독일 작가인 지그마 폴케의 개인전, 2005년엔 독일 신표현주의의 대표 화가인 요르그 임멘도르프 개인전 등을 연이어 개최했다.

한국이라는 미술계의 변방국, 그것도 수도 서울도 아닌 중소도시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갤러리가 이처럼 엄청난 전시회를 기획하고 고품격 조각공원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창일 회장의 개인적 역량이 주효했다. ‘씨 킴(Ci Ki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이기도 한 김창일 회장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술 매체인 아트넷(Artnet)이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에 들어가는 미술계의 ‘큰손’이다.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케링(Kering)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명예 회장, 러시아 석유 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할리우드 배우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세계 미술계에서 김창일 회장이 갖는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김창일 회장이 소장한 현대미술 작품 수는 3700여 점에 달한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에 상설 전시돼 있는 작품들 역시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이다.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총괄 디렉터는 “컬렉션의 양과 질이 워낙 훌륭한데다 해외 미술시장에서 ‘씨 킴’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아라리오갤러리 개관 초기 굵직굵직한 해외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라리오갤러리는 전시회를 개최할 때마다 최고급 탈부착식 조명을 써가며 최적의 관람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주연화 디렉터는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조명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완성 작품의 최종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게 조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 작품의 경우 작품 한 개당 15개 이상의 조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어떤 전시회는 조명 값으로만 수억 원이 들어갈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품격 있는 전시회를 한 번도 아니고 해마다 계속해서 개최하자 아라리오갤러리는 단기간에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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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작가제 도입으로 유망 작가 발굴 및 양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에 또 한 번 일을 냈다. 국제 무대에서도 통용되는 스타 작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그해 2월 권오상, 이동욱 등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 8명과 1인당 연간 수천만 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전속계약을 맺은 것. ‘아라리오갤러리의 사전 허락 없이는 아라리오 외 다른 곳에서 전시를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지만 아티스트들이 생계 걱정 없이 오직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소속 작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전시를 앞두고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작가에게 지급하고 생활비 명목으로도 매달 수백만 원씩 지원해 줌으로써 작가가 작품 판매나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파격적인 계약 조건에 국내 화랑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물론 아라리오갤러리가 작가에게 지원하는 돈이 아무 대가 없는 돈은 아니다. 일종의 선지급금으로,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 판매되면 갤러리에서 그동안 작가에게 지원해 준 금액만큼을 먼저 회수하고 나머지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식이었다. 만약 작품이 끝까지 판매되지 않으면 작품 소유권을 갤러리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수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작가에게 미리 투자해 본 적이 거의 없던 국내 화랑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같은 선진 시장에선 갤러리와 작가 간 독점 계약을 맺고 특정 갤리리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일괄 관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알음알음 안면으로 진행하는 ‘관계 비즈니스’가 대부분이다. 평소 안면이 있는 작가와 편하게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올해 전시회 한 번 같이 하시죠’ 하는 식으로 캐주얼하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라리오가 전속 계약을 맺고 체계적인 작가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 게다가 사전에 대규모로 재정 지원까지 한다는 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주연화 디렉터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아라리오는 왜 이렇게 공격적인 전속작가제를 도입한 걸까. 아시아 최고의 상업 갤러리로 도약하기 위해선 전속작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김창일 회장의 굳은 신념 때문이다. 

30년 넘게 수많은 컬렉션을 해오던 김창일 회장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외국 작가들의 작품만 수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그는 외국 작가, 특히 유망한 신예 작가들의 경우 앞으로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아무리 창의적인 아티스트라 해도 소위 ‘뜰’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그 주된 이유는 “작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경우 작가마다 전속 갤러리가 붙는다. 그 덕에 작가는 작품에만 전념하고 갤러리가 나서서 각종 전시회도 기획하고, 작품도 유통시키며,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대부분 작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생각만 하지 체계적인 관리가 없다”는 게 김창일 회장의 설명이다.

더욱이 요즘엔 작품 트렌드가 스펙터클한 설치미술 작품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설치미술은 “가산 탕진하기 딱 좋은 예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 특성상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 캔버스와 붓만 있으면 되는 회화와는 차원이 다른 예술이라는 뜻이다. 이런 대형 작품을 젊은 작가들이 독자적으로 시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외부 조력자들의 도움이 있어야 실험적인 시도가 원활히 나올 수 있다. 아라리오갤러리가 사전 투자를 겸한 전속작가제 도입에 나선 배경이다.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줌으로써 작품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갤러리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게 아라리오갤러리의 전략이었다. 그 결과 아라리오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작가들은 지원금을 기반으로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들을 추구하며 작품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가령, 과거엔 돈이 없어서 값싼 플라스틱 재료로만 작업했던 설치미술가가 훨씬 견고한 브론즈 재질을 활용한 작품을 만드는 식의 변화가 생겼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다. 제작비 목적으로 지원을 받긴 했지만 정작 창작 활동이 지지부진해 이렇다 할 성과물 없이 생활비 형태로 쓰는 작가도 있었고, 갤러리 입장에선 더 나은 작품 활동을 위해 제안을 한 것인데 이를 자신의 창작 세계에 대한 침해와 간섭이라고 오해하며 관계가 틀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아라리오는 월급 형태로 주는 생활비 지원은 더 이상 하지 않고,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국한해 지원하는 형태(대개 작업 공간이 없는 작가들을 위해 스튜디오를 마련해 주고 그 외 작품 제작 및 전시에 따른 비용을 갤러리 측에서 부담)로 방식을 개선해 전속작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에 소속된 전속 작가는 40여 명. 한국 작가는 이 중 25명이고, 나머지는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작가들이다. ‘아시아 No. 1’이라는 목표에 걸맞게 전속작가도 한국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제화했다. 김창일 회장은 “전속작가는 갤러리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라며 “얼마나 좋은 전속작가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갤러리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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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 공략해 ‘아시아 No. 1 갤러리’ 목표

전속작가제 도입과 함께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 12월 중국 베이징에 ‘아라리오갤러리 베이징’을 오픈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2  한국 갤러리로선 최초의 중국 시장 진출이었다. 아라리오갤러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시아 최고의 상업 갤러리가 되기 위해선 해외에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둘째, 전 세계 미술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중국 작가들과도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지 아티스트들을 체계적으로 밀착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중국 진출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후 아라리오갤러리 베이징은 2014년 상하이 쉬자후이(徐家匯) 지역 헝산루(衡山路)로 갤러리를 이전했고, 지난 7월 다시 상하이 내 차세대 문화특구인 웨스트번드(西岸)로 확장 이전했다. 웨스트번드는 상하이 시정부의 전폭적 지원하에 오는 2019년까지 황푸강(黃浦江) 서쪽을 따라 11㎞에 달하는 지역에 유럽, 북미 지역의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을 유치할 계획이다. 소위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이라 불리는 이 지역엔 프랑스 퐁피두미술관 상하이 분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처럼 상징성이 큰 문화 특구에 한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아라리오가 입성하게 된 것.

게다가 약 300평이나 되는 공간으로 상하이 내 화랑 중 최대 규모이다 보니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주연화 디렉터는 “마지막까지 유럽 유수의 갤러리와 이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지만 최종 승자로 아라리오가 낙점됐다”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배치 문제로 한중 양국 간 관계가 경직된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아라리오갤러리에 대한 중국 작가들과 평론가들의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는 지난 2015년 타임아웃 상하이(Timeout Shanghai)가 ‘상하이 최고의 갤러리’로 선정하며 주가를 올렸다.

한때 중국 붐이 일었을 때에는 상하이에만 20여 곳이 넘는 국내 갤러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철수했다. 반면 아라리오는 10년 넘는 세월 동안 중국 시장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결이 뭘까. “갤러리나 미술관은 일주일이면 키울 수 있는 ‘콩나물’이 아니라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하는 ‘산삼’ 비즈니스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처럼 인내심을 갖고 정성껏 관리하며 기다려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비즈니스다. 중국 사업은 더더욱 그렇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만 생각한다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하지만 아라리오갤러리는 먼 미래를 본다. 미래 가능성을 본다면 중국에 도전하지 않는 건 큰 잘못이다. 단언컨대 상하이는 뉴욕에 버금가는 미술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다.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상하이에 진출하려고 줄을 서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김창일 회장의 설명이다. 즉, 중국 비즈니스의 경우 특별한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갤러리에 대한 기본 경영 철학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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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갤러리는 중국에 진출할 때 ‘한국’ 화랑이라기보다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갤러리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작품을 중국에 선보이려는 노력이 대표적 예다. 가령 아라리오갤러리 베이징 오프닝 전시회의 경우 총 24명의 동서양 작가들이 참여한 그룹전으로 기획했는데 당시 왕광이, 핑리준, 장샤오강 등 중국 현대미술 작가 7명의 작품은 물론 요르그 임멘도르프와 안젤름 키퍼 등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 작가 7명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중국에선 외국 작품 전시회를 접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중국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는 게 갤러리 측 설명이다. 새롭게 문을 연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역시 개관전 주제를 ‘아시아의 목소리(Voice of Asia)’로 정했다. 극사실주의로 유명한 강형구 작가를 비롯한 한국 작가 5명, 미야오 샤오춘 등 중국 작가 9명, 코헤이 나와를 비롯한 일본 작가 4명, 필리핀의 제럴딘 하비엘, 인도네시아의 에코 누그로호, 인도의 수보드 굽타 등 아라리아갤러리 소속 작가 22명의 작품 40여 점으로 전시회를 구성했다. 김창일 회장은 “중국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미술을 총망라해 본 전시회가 거의 없어서 이런 기획전을 마련했다”며 “아시아 작가를 기반으로 한 전속 시스템을 기반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목할 만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작품을 소개해 아시아 최고의 상업 갤러리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사점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공간과 작품으로 구성된다. 심리학의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공간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에 따라 몸의 움직임과 감각에 영향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사고나 감정, 의사결정 및 행동까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3 이는 갤러리라는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브랜딩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매겨지는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좋은 전시를 하는 공간이라는 소문이 나야 좋은 작가(작품)가 몰리고, 좋은 작품이 몰릴수록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또다시 좋은 전시를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

아라리오갤러리는 파워 컬렉터인 김창일 회장의 소장품과 해외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2002년 개관 초기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전시회를 집중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아라리오갤러리라는 공간에 권위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YBA처럼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가들의 기획 전시회를 통해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더했다. 엄청난 거금을 들여 수집한 컬렉션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거리에 ‘내놓은’ 것 역시 아라리오갤러리의 공간 파워를 더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됐다. 미술품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이나 즐기는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물론 일반 대중과의 지속적 소통이 가능한 접점을 만들어 냄으로써 아라리오라는 브랜드 지속성(brand sustainability) 관점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그 결과 근거지가 지방 중소도시에 있다는 지역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아라리오갤러리는 소위 ‘딜러’ 수준에 머물러 있던 국내 갤러리의 역할을 ‘매니저’로 재정의하고 화랑과 작가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전속작가제)을 정착했다. 갤러리가 딜러의 역할에 머무른다면 특정 작가와 독점적 계약을 맺기보다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그때그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편이 효과적이다. 그렇게 해야 사전 투자 부담 없이 상황에 맞춰 돈이 되는 전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유망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소수의 검증된 인기 작가 위주로 미술품을 거래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전시회는 단기적이고 일회성 이벤트 형태로 흘러 갤러리가 본원적 경쟁력을 쌓기 어렵고, 젊은 유망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어 전체 미술시장 생태계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라 할 수 있다.

반면 갤러리가 일종의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장기적 안목에서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사전 투자를 통해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창의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가나 작품을 발굴하고,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가치 있는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시즌별로 자사 브랜드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마케팅하는 것처럼, 화랑에 소속된 전속 작가들을 관리하며 체계적인 상품 개발(전시회 기획)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적인 투자를 요하는 길이지만 궁극적으로 갤러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과거 국내 갤러리들은 대부분 작가와 함께 ‘성장’하려 하기보다는 ‘이용’하는 데 치우쳐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젊은 작가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 프로그램은 미흡한 실정이었다. 반면 아라리오갤러리는 이 같은 기존 관행에 반기를 들고 미술시장의 근본적 체질 개선에 집중했다. 그 결과 현재 40여 명이 넘는 국내외 작가들을 전속 작가로 확보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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