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보다 위대한 살리에리?‘전략적 인재 활용’으로 천재를 넘어서다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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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유성열
박상순 박상순


Article at a Glance

지난 8월, 각종 음악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건 시사주간지 표지에까지 등장했던 남성 아이돌 그룹도, ‘삼촌팬’들이 새 음반 나오면 ‘힘내라’며 소속사 주식 매입으로 ‘팬질’을 한다는 여성 아이돌 그룹도 아닌, ‘옛날 사람’ 윤종신의 노래였다. 예능인 윤종신이 아닌 ‘뮤지션 윤종신’을 다시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월간 윤종신’으로 상징되는, 그가 7년 가까이 묵묵히 만들어오던 음원 플랫폼 전략이 만들어 낸 성과다. 협업과 개방의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강점과 외부 참여자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접목했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다. 세상이 아무리 급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이별의 감정’을 시대에 맞는 코드로 재해석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분석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와 정하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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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선곡과 대중의 선택

2017년 8월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걱정말아요 그대’ ‘야생화’ ‘오르막길’ ‘지친 하루’ 등 4곡의 가요가 흘러나왔다. 당시 청와대 측은 “기자회견이 무겁고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며 “노래에 담긴 메시지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래의 메시지는 심상찮았다. 이적이 리메이크해 부른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는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진행된 촛불집회 때 가장 많이 불린 노래였고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를 피우리라’는 가사가 담긴 ‘야생화’(박효신)는 10년 만에 정권 교체로 들어선 새 정부를 은유하는 듯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탁현민 행정관과 함께 히말라야에 갔을 때 즐겨 들었다는 ‘오르막길’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와 함께 앞으로 닥칠 오르막길을 오르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이란 가사가 담긴 ‘지친 하루’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자타공인 ‘윤종신 덕후’로 통하는 필자(유성열)는 이 네 곡의 노래 중에서 두 곡이 귀에 확 들어왔다. ‘오르막길’과 ‘지친 하루’이다. 이 두 노래는 ‘월간 윤종신’1  2012년 6월 호와 2014년 12월 호를 통해 각각 발표한 곡이다. 두 곡 모두 윤종신이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지친 하루’는 곽진언, 김필, 윤종신이, ‘오르막길’은 정인이 불렀다. 한국어의 맛을 가장 잘 살린다는 윤종신의 작사 실력을 청와대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농반진반’의 분석이 뒤따랐던 이유다.

진짜 놀라운 사건은 따로 있다. 윤종신이 워너원, 방탄소년단 등 엄청난 팬덤을 가진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음원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17년 6월에 발표한 ‘좋니’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으며 멜론 월간 차트에서 8, 9월 두 달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방송 차트 1위에도 올랐다. 1990년 015B의 객원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한 윤종신의 음악방송 1위는 그의 27년 음악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음악계에서는 1993년 ‘애모’의 김수희가 ‘하여가’의 서태지와 아이들을 이기고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과 비견되는 ‘혁명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렇다면 윤종신의 ‘혁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이돌 음악이 무차별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옛날 사람’ 윤종신의 ‘전략’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분석했다.

 

보컬리스트 윤종신과 살리에리 콤플렉스

윤종신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인 1990년대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이자 뮤지션이다. 1990년 서울대 출신 작곡가 정석원과 기타리스트 장호일이 결성한 015B의 1집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의 보컬(객원)로 데뷔한 그는 1992년과 1993년 각각 발표한 솔로 2집 ‘너의 결혼식’과 3집 ‘오래전 그날’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지금은 예능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닐 만큼 가수로서의 인기가 상당했다.

두 곡 모두 실연당한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찌질 감수성’의 대표곡으로 지금도 널리 불린다. 하지만 두 곡의 가사는 박주연이 썼으며 작곡 역시 정석원의 도움을 받았다. 이처럼 1, 2, 3집은 윤종신 본인보다는 작곡가 정석원과 김형석, 작사가 박주연의 역량이 더 돋보이는 앨범이다. 
90년대를 주름 잡은 신승훈, 서태지, 신해철, 김동률, 정석원, 유희열 등 ‘천재 뮤지션’들이 1집부터 싱어송라이터 또는 프로듀서로 데뷔한 것과 비교하면 데뷔 초창기 윤종신은 ‘뮤지션’이란 단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윤종신이 뮤지션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95년 발표한 4집 ‘공존’부터다. 이 앨범에서 윤종신은 타이틀곡 ‘부디’를 비롯해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부디’가 KBS 가요Top10 차트 3위까지 오르고 디스코곡 ‘내사랑 못난이’가 히트를 쳤다. 하지만 평단은 ‘뮤지션’ 윤종신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때도 윤종신의 대표 앨범은 4집이 아니라 여전히 2집과 3집이었다. 보컬리스트 윤종신이 아닌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은 대중을 휘어잡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보컬리스트와 싱어송라이터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윤종신은 1995년 ‘광기 어린 천재’ 유희열을 운명처럼 만난다. 서울대 작곡과 출신으로 1992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대상 수상자인 유희열은 군 제대 후 무작정 윤종신을 찾아갔다. 유희열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윤종신은 선뜻 프로듀서를 맡기고 5집 앨범 ‘우(愚)’를 함께 만들어 1996년 발표했다. 윤종신의 ‘음악 노예’로 불리는 유희열의 음악 인생도 이때부터 꽃을 피웠다.

타이틀곡 ‘환생’을 비롯해 9곡이 담긴 이 앨범은 윤종신 앨범 중 최고의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평단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으며 음악 웹진 ‘100BEAT’가 선정한 2010년 ‘90년대 100대 명반’ 27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5집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발라드 콘셉트 앨범(어떤 하나의 주제나 스토리를 가지고 구성한 음반)이다. 사랑에 눈을 뜬 대학생이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환생) 뒤,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다음(여자친구), 성공해서(의지) 교제를 시작하지만(club에서), 어머니가 반대하면서 헤어진 뒤(너의 어머니), 1년이 넘도록 괴로워하다가(아침, 일년, 오늘),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바보의 결혼)하면서 끝난다. 음악 앨범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하나의 ‘소설’인 셈이다. 평론가들은 유희열과 윤종신의 이런 실험에 매우 높은 점수를 줬고, PC통신 나우누리의 대중음악 비평동호회 ‘Muse’ 출신 평론가 4명(신승렬, 김영대, 박찬우, 오준환)은 2006년 ‘90년대를 빛낸 명반 50’(동명의 책으로도 출간)을 선정하면서 이 앨범을 포함시켰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곁에 두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들 평론가 4명은 5집 앨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2


“이 앨범은 그의 최고작일 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인가? 사실 윤종신은 보컬리스트의 재능만으로 판단할 때 최고의 소리꾼은 아니다. 다른 015B 객원 가수 출신들과 비교해 봐도 감성적인 전달력은 이장우, 독창적인 면에서는 김태우에 비해 다소 처진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적절히 구분해, 모자라는 재능은 다른 실력 있는 음악인을 영입해 채워 넣는 프로듀서로서의 능력, 그리고 최고의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단점을 최대한 극복하려는 노력은 자신의 발전에 게으른 음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리에리가 되지 말자”

다소 실험적이고 무모해 보였던 5집 앨범이 평단의 찬사는 물론이고 대중적 성공까지 거두자 윤종신의 ‘작법(作法)’은 180도 달라진다. 본인 스스로 모든 걸 해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드는 게 자신과 같은 ‘보통 뮤지션’이 성공하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방법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윤종신은 정석원과 같은 ‘천재성’이 부족했고, 유희열처럼 전문적인 음악 교육도 받지 않았다. 대원외고 졸업 후 인문학(국문학)을 전공하며 통기타를 들고 스스로 음악을 익혔다. 우연한 기회에 학내 가요제에서 입상한 뒤 정석원의 눈에 띄어 보컬리스트로 데뷔했고 국문학 전공자로 작사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음악 실력은 당대 뮤지션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속적으로 앨범을 내면서 작사, 작곡 능력은 일취월장했지만, 편곡 작업은 윤종신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윤종신이 5집 앨범을 내놓은 90년대 중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변혁기였다.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중의 수준은 높아졌고,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작곡 못지않게 편곡이 중요해졌다. 음악적 재능과 편곡 실력이 떨어지는 윤종신에겐 위기였다.

하지만 윤종신은 5집을 만들 때 유희열을 통해 익힌 공식으로 이런 변혁에도 슬기롭게 대처해왔다. 윤종신은 1996년 발매한 6집부터 최근의 ‘월간 윤종신’까지 하림, 이근호, 조정치, 포스티노 등의 ‘신예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음악 노예’로 곁에 두고 작곡과 편곡을 대거 맡기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앨범 제작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내려는 욕심이 있다. 또 평단은 그걸 해내는 뮤지션에게 좋은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윤종신은 정반대의 전략으로 음악계에서 생존했고 ‘월간 윤종신’까지 궤도에 올렸으며 ‘청와대’까지 입성했다.

물론 윤종신도 남에게 절대 맡기지 않는 작업이 있다. 바로 작사다. 이별한 남자의 감성을 글로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윤종신은 가사만큼은 지금도 직접 쓴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까지 굳이 ‘천재’들을 활용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27년 만에 가요차트 1위를 점령하게 해준 ‘좋니’ 역시 신예 작곡가 포스티노가 만들었지만 가사는 윤종신이 직접 썼다. 윤종신의 이런 전략은 스티브 잡스가 없는 삼성전자가 각 분야의 최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영입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한 것과 유사하다. 윤종신은 2012년 SBS ‘힐링캠프’에 나와 유희열을 만난 뒤 갖게 된 생각을 이렇게 증언했다.3

“나는 정석원을 보면서 어깨너머로 음악을 배웠다. 정석원은 말 그대로 천재다. 학창 시절 곡 쓰면서 할 거 다 하면서 서울대를 갔다. 처음에는 열등감이 있었다. 내 곡은 후져 보였다. 사실 티는 되게 안 냈지만…. 015B의 후광을 나도 입었다. 신문에는 학력과 음악적 실력을 겸비한 ‘엘리트 그룹’으로 나왔고, 나도 항상 같이 나왔다. 나는 엘리트가 아닌데 말이다. (그때는) 천재가 싫었다. 유희열도 천재였다. 내가 뭘 시키면, 그건 별로라며 새 곡을 써오는데 (내 곡보다) 더 좋았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나는 살리에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차르트에게 왜 열등감을 느끼나. 모차르트의 매니저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곡을 듣고) ‘아냐, 이게(내 곡이) 더 좋다’고 얘기하지만 난 (유희열의 곡이 더) 좋다고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천재란 친구들, 잘하는 친구들과의 시너지를 맛보게 됐다. 무조건 열등감을 느끼고 돌아설 게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과 친화력이 있는, 그런 색깔(능력)을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다.”

 



뮤지션에서 혁신가로: 음악 창작/유통의 플랫폼을 만들다

1990년대 후반 MP3 플레이어가 보편화하면서 음악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든다. 윤종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 제대 후 1999년 7집부터 2008년 11집까지 꾸준히 앨범을 냈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윤종신이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모차르트를 곁에 두고 성공한 윤종신도 그저 그런 옛날 가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2010년 3월 윤종신은 승부수를 던진다. ‘월간 윤종신’이라는 일종의 월간지 형태의 플랫폼으로 매달 한 곡씩 음악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한 것. 10곡 내외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한 뒤 휴식기를 가지며 다음 앨범을 제작하는 관행을 정면으로 뒤집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이 월간 윤종신을 ‘음원 플랫폼’의 시초라고 본다. 매 월말이나 월초에 신곡을 디지털 싱글 형태로 발표한 뒤, 1년이 지나면 음원을 모아 연말에 ‘행보’라는 이름으로 정규앨범을 발매하는 방식이다. 윤종신의 이런 시도는 선언 당시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앨범이 아니라 음원이 소비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윤종신에게는 천재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과 ‘꾸준함’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 역시 홀로 꾸려나가지 않았다. 정석원과 유희열, 윤상, 김현철 등 90년대 뮤지션은 물론이고 김연우, 조원선, 이적, 박정현, 양파, 김범수, 김윤아 등 내로라하는 보컬리스트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정인, 정준일, 규현, 임슬옹 등 신예 보컬리스트나 아이돌 스타는 물론이고 타블로, 개코, 지코, 빈지노 등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주저하지 않았다. 유희열에 이어 윤종신의 2, 3대 ‘음악 노예’가 된 하림과 조정치, 포스티노 등 신진 작곡가들 역시 월간 윤종신으로 꾸준히 활용했다.

그렇게 윤종신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만 제외하고 2010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102곡의 음악(리메이크 18곡 포함)을 꾸준히 발표하며 월간 윤종신의 페이지 수를 차곡차곡 늘려왔다. 대중들은 즉각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오르막길’과 ‘지친 하루’ ‘말꼬리’(2011년 6월 호)와 ‘고요’(2014년 10월 호)처럼 뒤늦게 알려진 명곡을 찾기 위해 월간 윤종신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2010년 5월 호)와 ‘막걸리나’(2010년 4월 호)는 강승윤과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에서 불러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뮤지션 음원 플랫폼의 시초가 된 ‘월간 윤종신’의 역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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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음원 플랫폼의 시초가 된 ‘월간 윤종신’의 역사

2010년 1월 이후 윤종신은 매월 자신의 플랫폼에 새로운 곡을 올렸다. 처음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어디선가 좋은 노래를 듣고 그게 월간 윤종신에서 발매한 곡이었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월간 윤종신을 찾았다. 그리고 ‘구독’했다. 그냥 일상에서 스치듯 소비되던 2010년대의 음악은 윤종신의 플랫폼을 통해 다시 ‘보관’하고 ‘구독’하고 ‘꺼내 듣는’ 음악이 됐다.

아래 [표 1]과 [표 2]는 월간 윤종신이 발행되기 시작한 첫해인 2010년과 올해의 월간 윤종신에 올라온 곡을 정리한 리스트다.지면관계상 첫해와 올해의 곡만 제시했지만 지난 7년간 ‘꾸준함’으로 상징되는 월간 윤종신의 노래 중에는 오랜 시간 사랑받는 명곡이 많다.

2011년에는 6월의 ‘말꼬리’ 11월 호의 ‘늦가을’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말꼬리’는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기 위해 매달리는 슬프고 처절한 감정을 담은 노래로, 그룹 메이트 정준일이 불렀다. 역대 월간 윤종신 발표 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며, 팬이 뽑은 윤종신 작사 노래 3위에 올랐다. ‘늦가을’은 인기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규현이 피처링한 곡으로, 멜론 기준 월간 윤종신 인기곡 1위에 랭크돼 있다.

2012년에 발간된 월간 윤종신 중에는 5월 호 ‘도착’과 6월 호 ‘오르막길’이 유명하다. ‘도착’은 가수 박정현이 불렀고, 가수 하림의 히트곡 ‘출국’의 연작 개념이다.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떠난 여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별 이야기를 담았다. ‘오르막길’은 가수 정인이 부른 곡으로, 발매 후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그 후에도 음원 차트 상위권에 랭크됐던 월간 윤종신의 대표곡이다. JYJ의 김준수, 이적 등 유명 가수들이 방송에서 꾸준히 리메이크하고 있으며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멜론 기준 월간 윤종신 발표곡 중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곡이다.

2013년에는 자신의 기존 발표곡을 다른 가수들을 통해 리메이크한 노래를 올리는 콘셉트로 월간 윤종신이 채워졌다. 2014년 발표곡 중에서는 ‘고요’와 ‘지친 하루’가 많이 회자되는데, 특히 ‘지친 하루’는 슈퍼스타K6의 1, 2위 수상자 곽진언과 김필이 피처링해서 화제가 됐다. 역시나 문재인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장에서 흘러나온 곡이다. 2015년에는 유명 래퍼 빈지노가 참여한 4월 호 ‘The Color’와 12월 호의 ‘탈진’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2016년 월간 윤종신은 1월 호부터 크게 이슈가 됐다. 윤종신, 타블로, 그리고 세계적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존원이 컬래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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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은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다. 본인의 방송 활동과 이따금씩 출연하는 음악 방송 외에는 SNS 홍보가 전부였다. 아이돌 댄스 음악이 주류인 2010년대 한국 음악시장에서 월간 윤종신이란 플랫폼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월간 윤종신을 들어보면 27년 경력의 가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소위 ‘세련된 음악’이 많은 편이다. 월간 윤종신은 어느덧 윤종신만의 플랫폼이 아니라 모든 뮤지션들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위 뜬다는 아티스트들은 죄다 한 번씩 거쳐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됐다. 월간 윤종신이 폐간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으며 세련된 음악을 대중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개방형 플랫폼’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6년 12월부터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로서 장재인, 박재정, 에디킴 등 신예를 영입하고 이들을 위한 디지털 음악 유통 플랫폼, ‘LISTEN’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4 이러한 플랫폼은 자연스럽게 다재다능한 뮤지션들을 끌어들여 그들이 놀고, 창작하고, 음악을 유통하게 만들었다. 본인은 그 플랫폼을 관리하고 편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LISTEN은 월간 윤종신에 이어 시작된 또 하나의 실험이다. 미스틱의 소속 가수가 많아지면서 곡을 정식으로 내놓기 전에 일종의 ‘임상 시험’용으로 만든 플랫폼이다. 월간 윤종신과 다르게 정해진 주기 없이 좋은 노래가 나오면 바로 진행되며 프로젝트는 ‘탈차트’를 지향하기 때문에 마케팅도 최소화한다.5  ‘저스트 리슨, 저스트 오디오(Just Listen, Just Audio)’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윤종신 음악 본연의 매력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곡들을 주로 올린다. 월간 윤종신은 ‘트렌디’하고, LISTEN은 한결 잔잔한 느낌이다.6  2017년 9월부터는 ‘리슨 스테이지’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미스틱 사옥 1층에서 미스틱 아티스트들이 하루에 꼭 한 번은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방식이다.




 

음악: ‘구독하고 보관하는 것’의 의미

윤종신의 이런 행보는 ‘듣는 음악’에서 ‘읽고 보관하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史)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월간 윤종신이 연속된 음악 앨범이자 월간지로 자리 잡으면서 윤종신의 음악은 음원으로 소비되면서도 잡지의 형태로 꾸준히 ‘보관’되고 있다. 대중들은 과거 CD를 구매할 때처럼 윤종신 음악이 생각날 때마다 월간 윤종신을 뒤적여 듣고, 가사를 읽으며 사유한다. 2012년 6월에 발표된 ‘오르막길’이 5년3개월 후 청와대에서 울려 퍼지고, 이를 지켜본 대중들이 다시 가사를 읽고 곱씹게 된 것 역시 같은 경로다. 이는 음악이 음원으로만 소비되는 현재의 대중음악 시장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음악이 ‘소비재’가 아닌 ‘가치재’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다시금 일깨우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매달 음악만 발표한 것도 아니다. 2012년 상반기에는 김완선, 호란, 조원선, 박정현 등 여성 보컬리스트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3년에는 자신의 과거 곡들을 편곡해 성시경, 김연우, 김범수, 양파 등이 다시 부르게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윤종신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매달 개봉되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곡으로 만들었으며 미술, 문학, 도서, 사진 등 다른 예술과의 협업도 다채롭게 진행해 오고 있다.

한류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는 아이돌 스타들이 대기업이라면 윤종신의 플랫폼은 중소기업 수준이다. 하지만 대중음악이라는 ‘창조경제’의 영역에서 이제는 서점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월간지’ 플랫폼과 ‘읽고 보관하는 음악’을 들고나와 아이돌을 이겨버린 그는, 이제 음악시장의 ‘창조적 파괴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윤종신은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월간 윤종신 플랫폼에 노래를 올렸다. 읽고 보관하는 음악과 개방형 플랫폼으로 이어진 그의 ‘창조적 파괴’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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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요인과 시사점 분석: 플랫폼 전략을 중심으로

1. 플랫폼, 그리고 ‘월간 윤종신’

윤종신의 성공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후 20년 동안 변화해 온 한국 음악계의 상황, 기술의 발달, 문화 변동, 대중들의 변화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경영학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그리고 실제로 성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지는 ‘플랫폼 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월간 윤종신은 ‘뮤지션이 직접 만들어낸 음원 플랫폼의 시초’로 불린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 플랫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윤종신은 또 다른 플랫폼을 만들며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플랫폼이란 사용자/고객/파트너 등 복수의 그룹이 참여하고 공정한 거래를 통해 각 그룹이 합리적으로 가치를 교환하는 강력한 상생의 생태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용자는 플랫폼에 접속해 플랫폼의 기능을 이용하는 모든 이를 통칭한다. 그중에서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콘텐츠나 제품을 구매하거나 광고를 소비해 플랫폼의 가치를 높여주는 사용자가 고객이고, 이러한 플랫폼에 콘텐츠나 제품을 공급하는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광고를 제공하는 광고주가 파트너다. 음원 플랫폼 월간 윤종신에서는 ‘읽고 보관하는 음악’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들이 바로 고객이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작곡가, 보컬리스트, 그리고 힙합 아티스트 등이 바로 파트너가 된다. 일반적으로 플랫폼은 이러한 고객과 파트너 간의 중개를 통해 각 그룹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플랫폼의 가치는 고객과 파트너 간에 직접 거래하는 것이 높은 거래비용으로 인해 비효율적일 때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교차 네트워크의 효과가 존재해 고객 기반이 클수록 파트너에 대한 효용이 더욱 커질 수 있고, 참여하는 파트너가 많고 다양할수록 고객에게 더 큰 효용을 줄 수 있다. 감성적이고 세련된 음악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무수히 쏟아지는 대중음악의 홍수 속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부류의 음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음악 창작 및 유통 플랫폼인 월간 윤종신을 통해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저렴한 마케팅 비용으로 본인들의 작품을 원하는 두터운 고객층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 월간 윤종신이 플랫폼으로서 높은 가치 창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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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간 윤종신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플랫폼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사용자 기반의 확대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 오늘날 플랫폼은 가능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며, 사용자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자의 확대는 플랫폼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고객과 파트너 발굴을 위한 텃밭을 넓힌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악 유통 플랫폼인 LISTEN, ‘리슨 스테이지’라는 프로젝트의 시작 등 월간 윤종신과 윤종신의 회사 등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다양한 사용자와의 접점을 늘려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플랫폼 태생적으로 ‘확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가치 제고를 위해 확장 가능한 개방적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개방적 플랫폼은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기능, 정보, 서비스 등을 사용자나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대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구(예: Open API)를 제공하고, 이들로 하여금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 및 콘텐츠의 질적, 양적 향상을 위해 기여하게 한다. 살리에리가 되지 않겠다는 윤종신은 그야말로 개방적 생태계를 처음부터 추진해왔다. 다재다능한 뮤지션들이 함께 호흡하면서 월간 윤종신을 통해 창작하고 유통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세련된 음악을 제공한다.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이러한 시너지는 결국 사용자 내지 고객의 경험 차별화로 구현되고 있다.

셋째로, 플랫폼의 가치를 강력하게 만드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보유한다. 여기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란 특정 플랫폼을 반드시 사용하게 만들 정도의 매우 영향력 있는 기능이나 서비스로 사실상 진정한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카오의 메신저 서비스, 네이버의 검색엔진 등이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사례다. 과연 월간 윤종신에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월간 윤종신에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장착될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살펴본 개방적 생태계 구축을 통해 사용자나 고객 측면에서, 그리고 파트너 관점에서 다양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사용자나 고객 측면에서 매 순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대중음악이라는 콘텐츠 가운데서 고객 취향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 큐레이션(상품추천) 서비스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과의 관계 구축을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고객 데이터 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음악 장르별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고객 커뮤니티의 구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트너 관점에서도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구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미 다양한 뮤지션들이 본인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유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달 개봉되는 영화에 대한 곡들이 만들어지고 발표되는 것처럼 다양한 예술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우면서도 강력한 마케팅 플랫폼의 대두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약 7년9개월째에 접어든 월간 윤종신이라는 플랫폼은 시장에서 이미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고 또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도 내고 있다.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원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월간 윤종신이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해 더욱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유성열 동아일보 기자 ryu@donga.com
박상순 Fin2B 대표 sspark@fin2b.com

유성열 기자는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 노동대학원 노동법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8년 동아일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일했고, 2014년부터 정책사회부에서 고용노동을 담당하고 있다. 동아일보 최초로 ‘노동’ 지면을 신설해 ‘유성열 기자의 을(乙)로 사는 법’을 연재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 연예인, 작가 모두 윤종신을 꼽는 자타공인 ‘윤종신 덕후’다.

박상순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받았다. 한화경제연구원에서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1997년부터 2014년까지 글로벌 컨설팅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일했으며 파트너 및 금융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중소기업을 위한 혁신적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 Fin2B를 창업해 대표로 있다. 윤종신과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37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교육 2017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