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성공 신화와 ‘후광효과’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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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없었으면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2 월드컵 4강에 오르지 못했을까? 

15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히딩크 감독을 다시 영입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히딩크 감독 덕분에 2002년 4강 진출에 성공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축구 후진국 한국을 4강으로 이끈 영웅 히딩크 감독”이라는 믿음은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이기보다는 국민들의 바람이 만들어낸 신화에 가깝다. 문제는 히딩크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월드컵 4강이 가능했는지, 히딩크 감독의 어떤 능력이 대표팀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 때문에 4강에 진출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근거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다른 감독들과 히딩크 감독의 성적을 비교한 것이다. 역대 한국 대표팀 감독들 중 히딩크 외에 누구도 4강 진출에 성공한 적이 없다. 이를 근거로 역대 감독 중 히딩크 감독이 가장 뛰어나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대표팀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정 요인들을 모두 무시한 전형적인 결과 편향(outcome bias)의 오류다.

대표팀 성적은 감독의 역량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히딩크가 역대 한국 국가대표 감독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 반드시 그가 가장 훌륭하게 감독직을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월드컵 성공의 결정적 요인은 막대한 투자였을 수도 있고, 전 국민의 열광적인 성원이었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감독이 잘하면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 반대, 즉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감독이 반드시 잘했다는 결론을 내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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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감독, 즉 역대 월드컵 주최국 대표팀의 감독 성적을 살펴보면 총 20회 대회에서 절반에 가까운 8명이 결승에 진출했다. 4강에 들지 못한 주최국 감독은 7명밖에 없다. 이 결과만 가지고 보면 히딩크 감독은 지극히 ‘평범한’ 주최국 대표팀 감독이다.

2002 월드컵 이후에 쏟아져 나온 히딩크 감독의 성공요인 분석도 후광효과(halo effect) 오류로 인해 그가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객관적이고 의미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의 CEO들은 예외 없이 공정하고 결단력 있다. 이러한 덕목들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칭송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찬사는 후광효과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CEO가 공정하고 결단력이 있어서 기업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공한 기업의 후광 때문에 CEO가 공정하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것이다.

성공한 CEO 중 우유부단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히딩크 감독 경우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이후 우리 국민과 언론은 히딩크 감독의 꿋꿋함과 소신을 첫 번째 성공요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의 소신과 팀 성적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꿋꿋하고 소신 강한 감독이 실패한 예도 수없이 많다. 사실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이전 컨페더레이션스컵과 평가전에서 프랑스와 체코 대표팀에 5대0으로 대패하며 고전했을 때 그의 꿋꿋함과 소신은 오히려 고집스러움으로 비춰졌으며 가장 큰 실패요인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 영웅 만들기는 CEO 성공신화의 전형적인 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추구하고 실패를 회피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공과 실패의 분명한 원인을 파악하고 싶어 한다. 원인만 정확하게 이해하면 원하는 대로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우며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업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매우 쉽고 눈에 띄는 몇 가지 요인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욕구와 결과 편향, 후광효과가 결합해 CEO 신화가 만들어진다. 성공한 기업의 CEO는 기업의 성공 원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적인 후보다. 후광효과 때문에 성공한 기업의 CEO는 유연하고, 꼼꼼하며, 결단력 있는 리더로 비춰진다. 기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다 보니 리더의 뛰어난 역량이 성공 비결이었다고 칭송받는다. CEO가 뛰어나면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그 역명제도 참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결과 편향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CEO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 데도 불구하고 기업은 성공하는 경우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

CEO 성공신화는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결과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다양한 부작용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잘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위험이 크다. 또한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게 된다. 결과만 가지고서 CEO를 평가하기 때문에 단지 운이 좋은 CEO의 능력이 과대평가받고, 실력 있는 CEO가 내린 최선의 결정들이 평가절하당하고 폐기당하는 등 기업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러한 CEO 성공신화는 객관적 증거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과거 성공을 근거로 후광효과와 결과 편향에 의해 과장된 고대 영웅 이야기 같은 신화(myth)다. 때문에 소비자나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히딩크가 감독을 맡으면 한국이 2018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는 믿음은 과학적이고 심도 있는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2002 월드컵 성공과 영웅 히딩크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좋아한다고 해도 신화는 결국 소망을 담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신화는 재미있는데다 우리의 힘든 마음을 달래줄 수는 있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못한다. 한국 축구나 기업 모두 그럴듯하고 흥미로운 신화만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진 않은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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