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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Market Strategy

非시장 전략의 핵심은 정치. ‘도덕적 의지’가 리스크 줄여

문정빈 | 218호 (2017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민주주의적 시장경제에서 기업 부문과 정부 부문, 그리고 시민들은 서로 정치적 영향을 주고받는다. 기업과 정부, 시민 간의 상호작용 방식과 이에 따른 정치 전략은 네 개로 구분할 수 있다. 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과 혜택을 나누는 범위에 따라 이익집단 정치, 고객형 정치, 창업형 정치, 다수결 정치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네 가지 정치 전략 형태는 이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측의 조직화 정도에 따라 가변적이다. 이러한 정치전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태적으로 파악하는 툴로 ‘정책윈도 모형’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들은 각자 처한 위치와 이슈의 내용, 여론의 흐름에 따라 네 가지 정치 전략과 정책윈도를 염두에 두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편집자주

기업 성공의 기회와 실패의 위기는 반드시 ‘시장’에서만 나타나고 발생하지 않습니다. 때론 정치사회적 환경, 변화와 규제가 새로운 기회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기업가들이 ‘비시장 전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인 문정빈 교수가 ‘Non-Market Strategy(비시장전략)’를 연재합니다.



들어가며

2012년 12월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훅에 위치한 샌디훅초등학교에 무장괴한이 침입해 스무 명의 어린 초등학생과 여섯 명의 선생님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총기 사건이 빈발하는 미국에서도 이 사건은 천진난만한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타깃이 됐다는 점 때문에 특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와 관련된 논란이 재점화돼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모든 총기 구매자의 범죄경력을 체크하게 만드는 법안이 의회에 상정됐다. 전 국민의 85% 이상의 지지를 받는 이 법안은 그러나 끝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012년 11월에 무난히 재선돼 총기 규제 강화를 집권 2기의 주요 안건으로 삼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강력한 총기산업 로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기업의 정치활동 참여는 선거 및 주민투표 과정에의 참여, 입법과 규제 과정에의 로비, 이익대변(advocacy)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위의 예에서는 총기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미라이플협회(NRA)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871년 설립돼 5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NRA는 미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익단체로 꼽힌다. 하나의 산업에 불과한 총기산업이 국민 대다수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 수립을 저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이번 호에서는 비시장전략 중에서도 정치전략, 특히 공공 부문에서의 정치전략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흥미로운 미국 사례 하나를 더 들여다보자.

사례 캘리포니아 주민투표 제안 37호(Prop 37): 유전자 변형 식품 정보 공개 이슈

2012년 캘리포니아에서는 유전자 변형(GM) 식품에 관한 정보 공개를 두고 주민투표가 있었다. 환경 전문 변호사인 제임스 휘튼(James Wheaton)이 발의한 이 제안의 핵심 내용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 동식물을 원료로 만든 식품의 경우 이 사실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제품에 표시해야 하며 동시에 광고나 제품 포장에 ‘자연산(natur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내세운 이 제안은 유기농소비자기금 등 시민단체와 네이쳐스패스(Nature’s Path)와 같은 GM을 거부하는 식품회사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몬산토(Monsanto), 듀퐁(Du Pont), 다우농업과학(Dow Agrisciences), 신젠타(Syngenta), 바이엘(Bayer), 펩시(Pepsi) 등의 식음료 및 제약 대기업들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양측은 언론을 통해 열띤 홍보전을 펼쳤는데 Ballotpedia에 따르면 찬성 측은 총 870만 달러(약 100억 원), 반대 측은 총 4570만 달러(약 525억 원)의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한 주의 단일 주민투표 안건으로서는 매우 규모가 컸던 셈인데 찬성 측의 선거자금 모금 액수도 상당하지만 반대 측은 실로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몬산토가 810만 달러(약 93억 원)의 자금을 지원해 찬성 측 전체에 버금가는 규모를 지원했고 듀퐁, 펩시 등도 2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식료품제조업협회(Grocery Manufacturers Association)의 경우 반대 측에 네 번째로 많은 금액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대표이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제안이 통과돼 법률이 제정되게 되면 다른 주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고, 50개 주의 각각 다른 법과 규정들을 따르느라 식료품 제조사들의 원가가 크게 상승하고 수익성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춰볼 때 제안 37호는 정책변화로 인한 비용을 집중적으로 부담하는 소수의 기업과 단체가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서는 ‘창업형 정치’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창업형 정치’ 등 기업 정치의 다양한 분류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논의하겠다. 어쨌든 제안 37호를 둘러싼 광고들을 보면 특히 반대 진영에서는 “이 제안이 통과되면 캘리포니아 거주민 가구당 식료품비가 400달러 오를 것”이라는 식의 광고를 내보냈는데 소비자의 알 권리와 감성에 호소하는 찬성 진영의 광고에 비해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컸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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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민투표가 결정되고 선거가 있기 한 달 반 전까지는 제안에 대한 찬성 측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선에서 거의 변동 없이 유지됐으나 막판에 반대 진영의 광고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지지율이 극적으로 뒤집혀 결국 48.6%대51.4%로 제안이 부결됐다. 동시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결과는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에 60%대37%로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지지층이 비교적 유전자 변형 식품 반대나 소비자의 알 권리 측면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반대 측의 선거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식음료 제조사들은 비교적 큰 선거비용을 치르기는 했지만 목표로 했던 제안의 부결을 성사시키면서 현상유지에 성공하게 되고, 이는 4년 뒤 2016년 선거에서 이와 유사한 주민투표 제안이 다시 없었다는 점에서 반대 측의 위력을 널리 알려 중장기적인 세력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 사례는 ‘정치적 의제로서의 기업 관련 이슈’가 어떻게 촉발되고 기업의 정치전략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정치전략에서 기업이 왜 많은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4개의 정치전략

민주주의적 시장경제에서 기업 부문과 정부 부문, 그리고 시민들은 서로 정치적 영향을 주고받는다. 시민들은 주권을 행사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들을 감시하며 정치적 지지 및 반대의사를 표현한다. 이렇게 선출된 정부는 시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어떤 이슈들에 대해서는 여론을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정부는 기업 활동에 대해 입법과 행정 규제를 통해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업들은 스스로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얻기 위해 인물과 정보에 투자한다. 기업과 시민 사이에도 상호작용이 있으며, 기업은 광고 및 홍보 활동을 통해 기업이미지를 높이려 하고, 시민들은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며 불매운동 등을 통해 의사를 표현한다. 이를 4시장 모형을 이용해 얘기하자면 기업이 평판과 정통성 시장에서 소비자 대중을 대상으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정부를 대상으로 정통성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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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문과 기업 부문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공익이론(public interest theory)과 다원주의론(pluralist theory)이 있는데 공익이론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 실패를 교정해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평가도 효율성에 기반한 규범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하며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을 구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원주의론에서는 이와는 달리 정부 정책이란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선호를 반영해 형성된다고 보며 정책의 수혜자가 있는 반면 정책의 피해자도 존재함을 강조한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실증적인 입장을 띠며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비용을 지불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기업이 정책변화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틀로 윌슨-로위 행렬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정책이 변화했을 때에 현상유지(status quo)에 비해 비용과 혜택이 모두 발생하게 된다. 기업의 정치 전략은 이와 같은 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과 혜택을 나누는 범위에 따라 이익집단 정치, 고객형 정치, 창업형 정치, 다수결 정치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과 혜택이 모두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를 이익집단 정치(interest group politics)라고 부르는데 자동차 보험에서 국산 차와 외국 차의 보험료에 차등을 둘 것인지 말 것인지, 이동전화 판매 시 보조금을 제조사에서 부담할지, 이동통신사에서 부담할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익집단 정치에서는 정책 변화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분명하고 이익과 손해의 크기가 크므로 양쪽이 모두 필사적으로 공식적인 정치 영역에 참여하여 다투게 된다. 그 결과 정치 전략의 비용은 커지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위험성 또한 크게 되므로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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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은 다수에게 나눠지고 혜택은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에는 고객형 정치 (client politics)라고 부르는데 산업 보조금이나 담뱃세 인상과 같은 정책이 대표적이다. 고객형 정치의 경우 비용은 다수가 나눠 부담하며 일인당 부담 비용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정책의 혜택은 소수의 특정 집단(보조금의 경우 특정 산업에 속한 생산자들, 담뱃세 인상의 경우 중앙정부)에게 크게 돌아가므로 혜택을 보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들이 고객이 되는 집단을 대신해 정책 결정과정에 관여하는 형태가 된다. 고객형 정치의 경우 비용을 지불하는 다수 대중의 관심을 받지 않고 조용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기업들로서는 가장 선호하는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혜택은 다수에게 분산될 경우 창업형 정치 (entrepreneurial politics)라고 하는데, 이동전화 발신자 번호 표시 서비스의 경우 매월 1000원씩을 부과하던 부가서비스였으나 통신기술에 밝은 소비자들이 이슈를 제기해 무료 서비스로 전환된 사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1000만 명 이상의 소비자 일인당 연간 1만2000원의 혜택을 보게 됐고, 이동통신사들은 연간 수백억 원의 수입원을 잃게 된 셈이다. 미국의 총기 규제 강화나 캘리포니아의 유전자 변형 식품 정보 공개 또한 창업형 정치의 사례다. 비용을 부담하게 된 측에서는 필사적으로 정책 변화에 저항하지만 혜택을 보는 쪽에서는 누가 딱히 나서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형태인데 이때 누군가가 창업기업가처럼 선도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혜택을 보는 다수를 조직함으로써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에서 자동차의 안전 문제를 제기해 명성을 날린 랠프 네이더 같은 이가 대표적인 정책 창업가라고 할 수 있으며 총기 규제 강화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유전자 변형 식품 정보 공개의 경우 주민투표를 제안한 제임스 휘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수 대중이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므로 기업들의 경우 가장 피하고 싶은 정치 형태이다.

마지막으로 정책 변화에 따른 비용과 혜택이 모두 다수에 분산될 경우 다수결 정치(majoritarian politics)라고 하는데 9·11테러 이후 항공 보안 강화나 최저 임금의 결정,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수결 정치의 경우에는 비용을 부담하는 쪽이나 혜택을 입는 쪽이 모두 다수인데 어느 쪽이 먼저 조직화해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게 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큰 혜택이 예상되는 쪽이 먼저 조직화되면 고객형 정치의 모습을 띠게 되고, 반대로 분산된 혜택을 기대하는 쪽에서 큰 이슈가 되면 창업형 정치의 모습을 띠게 된다. 양측이 모두 조직화되면 다수결 정치가 이익집단 정치화하기도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자영업자들을 대변하는 단체와 노조 양측에 의해 주도되거나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이 제조업 대 농업의 대결의 장이 된다거나 하는 것이 좋은 예다.



정책윈도 모형

지금까지 논의한 네 개의 정치형태는 이슈에 대한 찬성과 반대 측의 조직화 정도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학관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본인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변화에 따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의제를 설정하고 함께 혜택을 보는 강력한 원군을 끌어들여 조직화한 다음 반대세력이 조직화하기 전에 신속하게 의제를 통과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정치 전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태적으로 파악하는 정책윈도 모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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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든(John Kingdon)이 제시한 정책윈도모형은 정책 변화에 대한 동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형이다. 정책윈도모형을 나타낸 <그림 5>에서 가로축은 시간을, 세로축은 정부 부문에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는 변화의 동력을 나타낸다. 점선으로 표시된 곡선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변화의 동력을 나타내는데 이슈는 소수의 직접적 이해관계자들만이 관심을 갖는 상태로 잠복해 있다가(잠복기), 어떠한 계기로 다수의 관심을 받으며 사회 전면에 부상하게 된다. 이 단계를 정책윈도가 열린다고 표현하는데 정책윈도가 열리게 되는 계기에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나 대형 사건에 따른 여론의 환기 등이 있다. 총기 규제 이슈에 대해서는 샌디훅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항공보안 이슈에 대해서는 9·11 테러, 유전자 변형 식품의 정보 공개 이슈에 대해서는 제임스 휘튼의 노력으로 인한 주민투표의 성립이 정책윈도를 열리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정책윈도가 열리게 되면 의회, 관련 부처, 언론이 모두 동원돼 다양한 의견들을 검토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데 항공보안 이슈의 경우 탑승자 보안검색의 강화, 항공기 조종석 보안 강화, 이를 위한 추가적인 예산과 인력의 배정 등의 합의가 이뤄졌으며 총기 규제 강화와 유전자 변형 식품의 소비자 알 권리 이슈에 대해서는 현상유지로 결론이 나게 됐다. 이렇게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면 이슈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고 정부 부문에서 변화의 동력이 상실되는데, 이 단계에서는 정책원도가 닫힌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측에 최선의 전술은 지연 전술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을 끌며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고 변화의 동력이 소진될 때까지 버티기를 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총기 규제 강화의 경우 반대 측이 성공적인 로비를 통해 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의 법안 상정 반대, 그리고 상원에서 공화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통해 현상 유지에 성공함으로써 미국 국민의 85%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는 총기 구매 시 배경 조사와 같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만 이 정책이 무산되는 것을 보며 국민 절대 다수의 의견이라도 매우 영리한 전술적 선택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실화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한편 앞서 사례로 제시한 유전자 변형 식품의 정보 공개 이슈에서는 주민투표라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었기에 반대 진영이 지연전술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가용 자원을 정책윈도가 열린 시점에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불리하던 여론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는 적극적인 반대전술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항공 보안 강화 이슈의 경우 국민적인 지지와 항공업계의 이해관계가 일치돼 약간의 우려(특히 중동계 여행자들에 대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큰 반대 없이 새로운 정책이 채택됐다. 정책윈도가 열리는 시점부터 닫히는 시점까지의 기간은 물론 이슈별로 다르겠지만 요즘처럼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빈발하는 환경에서 대중의 주의가 집중되는 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으며 보통 6개월 이내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잠복기는 그에 비해 매우 길 수 있는데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십 년이 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 기간에 기업 부문이 해당 정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가장 크며 정책윈도가 열리게 되면 대중의 주목과 공공 부문의 절차 때문에 기업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운신의 폭은 제한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잠복해 있는 이슈들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대비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어서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이 수립되는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정치 전략의 실행을 위해서는 기업 부문이 정부 부문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 포획 이론(capture theory)에서는 이러한 수단들을 인적 자원과 정보 두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인적 자원 측면에서는 회전문(revolving door)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는데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부와 기업 부문 양측을 오가며 고위직을 번갈아 맡는 것을 회전문에 비유해 생긴 표현이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루빈(Robert Rubin)이나 폴슨(Hank Paulson)의 경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CEO를 지낸 후 재무장관이 됐으며, 공직 퇴임 이후에는 다시 기업 부문에서 요직을 맡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비서실장이자 재무장관인 잭 루(Jack Lew)의 경우에도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직에 있다가 이후에 시티은행에서 COO를 지냈으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재무장관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논란이 되는 이와 같은 회전문 현상은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최근 농심의 경우를 예로 볼 때 기업의 평판 측면에서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보 측면에서는 기업 부문이 정부 부문에 비해 월등한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부 부문을 압도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복잡한 기업 활동에는 수많은 기술적, 재무회계적 세부사항들이 존재하고 기업은 이와 같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정부 부문에 제공할 수 있다. 이때 담당 공무원의 경우 기업이 원하는 정책에 반대할 만한 근거를 찾는 데 많은 시간과 법률적인 위험이 따르게 되고, 정책 변화의 영향을 받을 이해당사자들 중 대형 로펌을 고용해 범람하는 정보를 정리하고 파악할 수 있는 소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정부 부문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기업 부문을 규제하기 위해 탄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적자원과 정보 측면에서 우월한 기업 부문이 정부 부문을 포획해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게 된다는 것이 포획이론의 핵심이며 이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정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비시장전략의 양대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전략과 전략적 이해관계자 관리 전략 중 공공 부문의 정치 전략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다. 비시장전략을 아주 쉽게 정의한다면 시장경쟁이라는 게임에서 ‘게임의 룰을 정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룰이 경쟁 우위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룰은 불공정 시비를 낳게 되고, 경쟁자는 물론 이해관계자들로 하여금 이 시장을 외면하게 만듦으로써 파이의 크기를 오히려 줄일 수 있다. 적어도 과반수의 시장참여자들로 하여금 공정성을 인정받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 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며 이는 기업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효과적인 소통과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요구한다. 또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도 있는 불법행위를 단호하게 멀리 하는 도덕적 의지 또한 절실하다. 불법과 탈법 행위로 얻어낸 단기적 이익이 진실성을 의심받는 치명적 위험을 통해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크나큰 손실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서는 전략적 이해관계자 관리에 대해 살펴보고, 기업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ESG 평가와 이를 활용한 투자기법인 사회책임투자(SRI)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자료

Baron, David P. (2013) Business and Its Environment, 7th edition, Pearson.

Kingdon, John W. (1993) “How do issues get on public policy agendas?” Ch. 3 of Sociology and the Public Agenda, edited by William J. Wilson, Sage.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 교수 jonjmoon@korea.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다. <경영학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 문정빈 문정빈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ESG와 지속가능 경영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경영학 연구』 『전략경영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전략경영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jonjmoon@kore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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